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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Brass United 피치 블랙 - 풀치넬라 모음곡 2.0 (Pitch Black - Pulcinella Suite 2.0: Pergolesi, Berio, Albeniz, Gallo, Wassenaer, Monza, Bartok, MacMillan) 브라스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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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FM '명연주 명음반` 선곡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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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Pulcinella Suite 2.0 (arr. Steven Verhelst)

  • 01 Carlo Ignazio Monza: Harpsichord Suite No.1
  • 02 Giovanni Battista Pergolesi: Opera Buffa 'Il Flamminnino', Act.1: Aria 'Mentre l'erbetta pasce l'agnella'
  • 03 Domenico Gallo: Trio Sonate No.3
  • 04 Giovanni Battista Pergolesi: Opera Buffa 'Lo Frate ‘Nnamorato': Aria, Chi disse che la femina
  • 05 Unico Wilhelm van Wassenaer: Concerto Armonico, No.2
  • 06 Alessandro Parisotti: Si tu m’ami
  • 07 Carlo Ignazio Monza: Harpsichord Suite No.3
  • 08 Giovanni Battista Pergolesi: Sinfonia for cello and continuo:Presto
  • 09 Giovanni Battista Pergolesi: Opera buffa 'Lo Frate ‘Nnamorato': Aria, Pupillette, fiammette d’amore
  • 10 Domenico Gallo: Trio Sonate No. 7
  • 11 Luciano Berio: ‘Call’ (St. Louis Fanfare)
  • 12 Isaac Albeniz: Suite Espagnol: Asturias
  • 13 Isaac Albeniz: Suite Espagnol: Cataluna
  • 14 Isaac Albeniz: Suite Espagnol: Sevilla
  • 15 James MacMillan: A New Song
  • 16 Jacob TV: Pitch Black for ghetto-blaster & brass quintet
  • 17 Bela Bartok: Rumanian Folk Dances

아티스트 소개 7

작곡Giovanni B. Pergol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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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작곡Luciano Be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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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베리오

작곡Isaac Alben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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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알베니즈,Isaac Manuel Francisco Albeniz y Pascual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모험에 흥미를 느낀 끝에 가출하여 단신으로 에스파냐 북부를 연주여행하였으나 사모라에서 그 당시의 명물인 산적을 만났고, 한편 누나의 사망으로 부득이 귀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집을 뛰쳐나와 남에스파냐를 여행하였으며 이때 본 풍물과 민족음악이 소년 알베니스를 매혹시켜 이것이 후년 많은 걸작을 낳게 하였다. 카디스의 시장으로부터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통고를 받고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미로 건너가 각지로 연주여행하면서 쿠바로 갔을 때 우연히 아바나의 세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만났으나 알베니스는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된 13세의 음악가였으므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여행을 계속하였다. 뉴욕에 왔을 때는 가진 돈이 없어 항구의 화물 운반 인부로 또는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끼니를 이었다. 이때 바에서 연주할 당시 그는 피아노를 뒤로 등지고 양손을 뒤집어 여러 가지 곡을 연주하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뒤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와 야다스존과 라이네케에게 배우고, 귀국하여 국왕의 보조로 브뤼셀 음악원에서 배워 18세 때 우등으로 졸업하였으며 그 뒤에 리스트에게 배워 대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시타인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여 20세로 세계 일류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나 이것으로 그의 연주활동은 그쳤고 그 뒤로는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23세 때 페드렐한테 배운 뒤 그의 작곡은 일변하여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세간에서 말하는 플라멩코라고 하는 향토민요 춤곡)의 형식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불멸의 피아노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전기의 작품 <에스파냐의 노래>(5곡), <에스파냐 모음곡>(8곡), <여행의 추억>(6곡), <붉은 색의 탑>, <탱고> 등은 모두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후세에 남은 명곡이나, 이 시기의 곡 중에서는 <에스파냐의 노래> 중의 한 곡 <코르도바>가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후기의 작품에는 보다 고도의 <카탈로니아>, <라 베가>, <아스레포스>, <이베리아 4권 12곡> 등이 있다. 특히 <이베리아>는 그가 만년에 파리에서 고국을 회상하며 각지의 인상을 묘사한 것으로,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의 요소를 예술적 형성 속에 자유롭게 이상화시킨 걸작이다. 민족음악의 형식과 에스프리를 소재로 한 모음곡이 이와 같이 고도로 예술화된 것은 매우 드물며, '브람스 이후의 최고의 피아노 문학'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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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James Ma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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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밀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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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Bela Bar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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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바르톡,Bartok Bela Viktor Janos / Bela Viktor Janos Bartok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중앙유럽의 민요를 수집해서 정리한 음악학자이다. 바르톡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大)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너지센트미클로시(Nagyszentmiklos)는 현재 루마니아의 슨니콜라우 마레(Sannicolau Mare)이다. 본명은 바르톡 벨라 빅토르 야노시(헝가리어: Bartok Bela Viktor Janos)이다. 그는 부다페스트 왕립음악학원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코다이 졸탄을 만나 같이 민요를 수집했다. 이는 그의 음악스타일에 크게 작용했다. 예전의 그는 헝가리 민요에 대해서 프란츠 리스트의 곡에서 보여지는 것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중앙유럽의 민요를 수집해서 정리한 음악학자이다.

바르톡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大)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너지센트미클로시(Nagyszentmiklos)는 현재 루마니아의 슨니콜라우 마레(Sannicolau Mare)이다. 본명은 바르톡 벨라 빅토르 야노시(헝가리어: Bartok Bela Viktor Janos)이다.

그는 부다페스트 왕립음악학원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코다이 졸탄을 만나 같이 민요를 수집했다. 이는 그의 음악스타일에 크게 작용했다. 예전의 그는 헝가리 민요에 대해서 프란츠 리스트의 곡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집시 멜로디로 생각했었고 1848년 헝가리 혁명의 영웅 코슈트 러요시(Kossuth Lajos)를 기리기 위한 대편성 관현악곡 《코슈트》에서도 그런 선율을 사용했었다. 집시 멜로디가 아닌 마자르인 농부들의 민요를 접하고 나서 그는 이를 진짜 헝가리 민요라고 생각하고 민요적인 색채가 드러나도록 그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02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부다페스트 초연을 들었을 때 이는 바르톡의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1907년 왕립음악학원에서 피아노 교수직을 맡으면서 정착하게 되었고 트란실바니아 일대의 민요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은 민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코다이가 클로드 드뷔시를 파리에서 데려오면서 그와도 교류했다. 그는 당대의 요하네스 브람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대편성의 관현악곡들을 써왔지만 그의 피아노 소품은 민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민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최초의 작품은 현악 사중주 제1번(1908)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09년 마르터 치글러(Marta Ziegler)와 결혼하여 1910년에 벨라 바르톡 주니어를 낳았다. 1911년에 바르톡은 그의 유일한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을 그의 아내 마르터(Marta)에게 헌정하였다. 이를 Hungarian Fine Arts Commission 주최의 콩쿠르에 출품했지만 연주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는 이 오페라를 공연하려 했지만 헝가리 정부는 오페라의 작사자 벌라주 벨러(Balazs Bela)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라는 압력을 주었다. 바르톡은 거부했고 결국 오페라는 1918년까지 공연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헝가리 정부와 기관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콩쿠르의 일이 있고 나서 2~3년 정도만 곡을 쓰고 그 후엔 중앙 유럽과 발칸 반도, 터키 일대의 민요를 수집하여 정리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민요 수집이 힘들게 되자 그는 다시 작곡을 시작했다. 발레곡 《허수아비 왕자》(1914~6)는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바르톡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또다른 발레곡 《중국의 이상한 관리》와 두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작품 중 화성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가장 복잡한 작품이다. 《중국의 이상한 관리》는 노골적인 주제 때문에 1926년까지 공연되지 않았다.

1923년 바르톡은 마르터(Marta)와 이혼하고 그에게 피아노를 배운 파스토리 디터(Pasztory Ditta)와 재혼하여 다음해인 1924년에 두 번째 아들 페테르(Peter)를 낳았다. 1924년은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완성한 해이기도 하다. 바르톡은 이후 곡을 쓰지 않다가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위한 여섯 권 분량의 피아노 연습곡 《미크로코스모스》(1926~37)를 썼다. 이는 현재에도 피아노 교재로 쓰이고 있다. 이후에 쓴 현악 사중주 제6번(1939)는 그가 유럽에서 쓴 마지막 곡이 된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고 그는 헝가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치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독일에서 유명해졌을 때에도 독일에서의 콘서트를 거부했고 독일 출판사와도 계약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자유분방한 세계관은 헝가리의 우익 세력의 반감을 샀다. 그는 부인과 함께 마지못해 미국으로 떠났다. 페테르는 1942년 미국으로 가서 후에 미 해군에 입대한다. 벨러 주니어는 헝가리에 남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의 생활은 편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유명하지 않았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계속 유고슬라비아 민요를 정리했지만 그의 재정 상황과 건강은 나빠졌다.

그는 현악 사중주 제6번(1939)을 끝으로 작곡을 그만 두려 했지만,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위탁으로 《Concerto for Orchestra》(1943~5)를 작곡했다. 예후디 메누힌의 위탁을 받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작곡했고 비올라 협주곡에 착수했다.

1945년 바르톡은 뉴욕 시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미완성의 비올라 협주곡은 그의 제자 Tibor Serly가 완성했다. 바르톡의 유해는 뉴욕 주 Hartsdale에 있는 Ferncliff Cemetery에 안장되었다. 후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나서 1988년 7월 7일에 부다페스트의 Farkasreti Cemetery로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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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유나이티드

다섯 명의 관악기 연주자로 이뤄진 브라스 밴드.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4월 24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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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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