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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범례 一. 수도 변경을 향해 二. 봉상첨판 시절 三. 항주통판 부임행로 四. 항주통판 시절 五. 밀주지주 시절 六. 서주지주 시절 七. 호주지주 시절과 오대시안 부록 주요 참고문헌 저자 소개 역자 소개 |
蘇東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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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역자입니다.
2010-06-19
一. 소동파(본명 蘇軾, 1036-1101)는 중국 북송조 최고수준의 문인으로 정치가 ․ 예술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자연을 애호하여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했으며, 경학(經學), 요리 만들기, 술의 제조, 차의 품평, 서예, 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송대(宋代) 최고의 지성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를 실천하였다. 그는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듯 시를 지었다. 그만큼 기록을 중시한 문인이다.
二. 중국 - 청대의 평론 . 청(淸)나라 심덕잠(沈德潛)은 “소동파의 가슴에는 커다란 용광로가 있어 금, 은, 납, 주석 등이 모두 그 안에서 용해된다. 그 붓이 초광(超曠)하여 천마(天馬)가 굴레를 벗어나고 하늘을 나르는 신선이 노니는 듯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하다.”라고 평했다. . 청나라 조익(趙翼)은 소동파의 시에 대해, “평심(平心)으로 소동파의 시를 읽어보니, 그는 재사(才思)가 넘쳐흘러 부딪치는 곳마다 생기가 일어나고, 흉중에 서권(書卷)이 가득하여 그때그때 두루 응용할 수 있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三. 고려시대 문인과 소동파 . 서거정(徐居正)은 “고려 문인은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여, 과거 급제자의 방이 나붙을 때마다, 사람들이 ‘33인의 동파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東人詩話』, 卷上) 이에 대해 이규보(李奎報)는 “고려시대 문인들이 과거급제 전에는 과거시험 준비 때문에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 합격 후에야 부담 없이 시 지시기를 배우는데 그 가운데 소동파의 시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고 하였다. 서거정은 이어서, “고려 고종, 원종 연간에, 송나라 사신이 시를 요구하자, 학사(學士) 권적(權適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그 시에, ‘소동파의 문장은 해외까지 알려졌건만 송나라 천자는 그의 글을 불태웠네. 문장은 불에 태워 재로 만들 수 있겠지만 천고의 꽃다운 이름은 불태울 수 없다네.’ 라 하니, 송나라 사신이 탄복하였다.”(『東人詩話』, 卷上) . 고려 고종 23년, 몽고 침입의 와중에서 전주에서 동파문집을 중각(重刻)했던 사실에서도 당시의 소동파 열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 . 이인로는 『파한집(破閑集』卷上에서, “소동파와 황산곡에 이르러서는 고사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정밀하게 되어 뛰어난 기운이 멋대로 나오니, 구를 다듬는 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