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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비지

책소개

목차

≪論語≫ 解題
1. 四書에 대하여
2. ≪論語≫의 由來
3. ≪論語≫의 釋名
4. ≪論語≫의 編者
5. ≪論語≫의 註釋書

論語集註 序說

論語集註
學而 第一
爲政 第二
八佾 第三
里仁 第四
公冶長 第五

부록1. 공자주유열국도(孔子周遊列國圖)
부록2. 孔子年表
색인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82쪽 | 729g | 153*224*30mm
ISBN13
9788975988226

책 속으로

1. 四書에 대하여

四書란 ≪論語≫·≪孟子≫·≪大學≫·≪中庸≫의 네 가지 儒學經傳을 말한다. 唐代 이전의 儒學이 五經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던 것에 비하여, 宋代 이후의 儒學은 四書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四書는 南宋 성리학의 대가인 朱子가 ≪論語≫·≪孟子≫·≪大學≫·≪中庸≫의 네 가지 책을 모아 유학의 기본 경전으로 정하고, 이것들에 대해 註解를 달아 ≪四書集註≫를 지음으로써 유학에 있어서 그 지위가 확립되었다. 朱子는 ≪大學≫이 孔子(B.C. 552∼479)의 제자인 曾子(B.C. 505∼435)가 지은 것이며, ≪中庸≫은 孔子의 손자인 子思가 지은 것이라고 여기고, 여기에다 孔子의 언행을 기록한 ≪論語≫와 孟子(B.C. 372∼289)의 언행을 기록한 ≪孟子≫를 한데 묶어 이것을 四書라고 한 것이다.
≪大學≫은 본래 ≪小戴禮記≫ 49편 중 제42편에 들어있던 것을 前漢 유향劉向(B.C. 77∼6)이 그의 ≪別錄≫에서 대학을 '通論類'에 넣음으로써 ≪大學≫을 유학의 개론서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 ≪禮記≫는 孔門 70弟子의 기록이라고 하나 저작연대가 불확실하여 戰國時代末說과 前漢說이 있다. 그 후 唐나라 한유韓愈(768∼829)가 ≪大學≫을 기본으로 '원도原道' 편을 지어 이른바 ‘道統’(堯舜禹湯文武周公)說을 주장하면서 ≪大學≫의 八條目을 언급하였고, 宋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최초로 ≪예기禮記≫에서 취하여 ≪대학광의大學廣義≫와 ≪중용광의中庸廣義≫를 지었다.
≪論語≫는 모두 20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論語≫의 편찬자에 대하여 漢代의 劉向이 최초로 그의 ≪別祿≫에서 “孔子의 제자들이 훌륭한 말씀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고, 後漢 鄭玄(127 ∼200)은 그의 ≪論語序≫에서 ‘≪論語≫는 仲弓·子游·子夏 등이 撰定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唐代 柳宗元(773∼819)은 '論語辨'에서 孔子와 曾子의 나이 차이와 ≪論語≫에 오직 曾子와 有子만이 존칭으로 불려지고 있는 점을 근거로 ≪論語≫의 편찬자는 曾子의 문인인 악정자춘樂正子春과 子思의 무리들이라고 하였다. 朱子는 이를 이어받아 ≪論語序說≫에서 程子의 말이라 하며 ≪論語≫는 有子와 曾子의 문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淸代 최술崔述(1740∼1816)은 ≪論語餘說≫에서 ≪論語≫ 속의 의심스런 내용들에 대한 고증을 통하여 ≪論語≫ 20편 중 前 10편만이 有子와 曾子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고, 後 10편은 후인들이 續記한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論語≫가 한 시기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듯하다.
≪孟子≫는 司馬遷의 ≪史記孟子荀卿列傳≫에 의하면 孟子가 자신의 제자인 萬章의 무리들과 함께 ≪詩經≫과 ≪書經≫을 정리하고, 仲尼의 뜻을 祖述하여 지은 것으로 모두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漢書藝文志≫의 諸子略에 ≪孟子≫ 11편이 실려 있고, 응소應의 ≪風俗通義窮通≫ 편에 孟子가 ≪中外≫ 11편의 책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孟子≫의 최초의 주해서인 조기趙의 ≪孟子題辭≫에서 孟子가 ‘7편의 책을 지었다’고 했으니 '外書' 4편은 후인들의 僞書인 것이 확실하다. ≪孟子≫에는 ‘民本思想’을 중시하여 “백성이 가장 貴하고 사직社稷이 다음이며 人君은 가장 가볍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주장했다.
≪中庸≫은 본래 ≪禮記≫의 제31편에 들어있던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史記孔子世家≫에 ≪中庸≫의 작가를 孔子의 손자인 子思라고 했고, 二程子는 ≪中庸≫을 ‘孔門에 전수되는 心法’이라 하였다. 朱子는 이를 계승 발전시켜 ≪中庸章句≫와 ≪中庸或問≫을 지어 ≪中庸≫의 의의를 밝혔으며, 이를 四書의 범주 안에 포함시켰다.

2. ≪論語≫의 유래

≪論語≫는 孔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論語≫의 고본에는 원래 ≪魯論語≫·≪齊論語≫·≪古論語≫의 세 종류가 있었지만, 이들 원본은 前漢末에 이미 대부분 일실佚失되었다.
≪魯論語≫는 魯나라에 전하는 것으로 20편이고, ≪齊論語≫는 齊나라에 전하는 것으로 22편인데, ≪魯論語≫보다 '問王'과 '知道' 두 편이 더 많다. ≪古論語≫는 漢 武帝때 孔子의 古宅에서 발견된 것으로 21편이고, 과두문자文字로 기록되었는데 前漢末에 그 원형이 없어졌다.
한편 前漢末 장우張禹가 하후건夏侯建에게서 수학한 ≪魯論語≫와 용생庸生·왕길王吉에게서 배운 ≪齊論語≫ 두 가지를 합해서 20편으로 편찬한 것이 바로 오늘날 전하는 ≪論語≫의 원형이 되었다. 張禹는 安昌侯에 封해졌으므로 그가 편찬한 논어를 ≪張侯論≫이라고 부른다. ≪隋書經籍志≫에 의하면, ≪張侯論≫은 ≪齊論語≫의 '問王'·'知道' 두 편을 없애고 ≪魯論語≫와 같이 20편으로 교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張侯論≫도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그 후 後漢 鄭玄이 ≪張侯論≫을 근간으로 해서 지은 ≪論語≫ 注가 바로 魯·齊·古論語의 3종을 절충한 현전본 20편으로 당시에 널리 전해졌으나, 이도 오늘날 일부만이 전할 뿐이다.
지금 완전하게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論語≫ 판본은 곧 魏나라 하안何晏(∼249)이 편찬한 ≪論語集解≫ 10권(古註)이다. 또한 梁나라 황간皇侃이 편찬한 ≪論語義疏≫ 10권도 널리 유행했는데, 皇侃의 ≪論語義疏≫를 교정한 宋나라 형병邢昺의 ≪論語正義≫ 20권이 현재 ≪十三經註疏≫에 수록되어 있다. 그 후 南宋 朱熹가 형병邢昺의 ≪論語正義≫를 바탕으로 前人들의 여러 가지 해설을 참고하여 ≪論語集註≫ 10권(新註)을 완성했다.
특히 朱熹는 일찍이 34세 때 ≪論語要義≫를 지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그 후 43세에 이르러 二程과 장재張載·범조우范祖禹·여희철呂希哲·여대림呂大臨·사량좌謝良佐·유초游酢·양시楊時·후중량侯仲良·윤돈尹焞·주부선周孚先 등 12家의 학설을 두루 취하여 ≪論孟精義≫를 지었다. 나아가 그 정밀한 本旨를 요약하여 ≪集註≫를 짓고 다시 ≪或問≫을 지었으니, 당시 주희의 나이 48세였다. ≪集註≫는 考據와 義理를 함께 중시했으나 義理에 치우친 바가 많고, 文字訓를 중시한 반면 名物訓에는 구애되지 않았다. 그 후 ≪大學章句≫·≪中庸章句≫·≪孟子集註≫와 合刊하여 ≪四書集註≫를 완성했다.
이밖에도 考證學이 발달한 淸代에 이르러 진전陳(1753∼1817)의 ≪論語古訓≫ 10권, 반유성潘維城의 ≪논어고주집전論語古注集箋≫ 10권, 유보남劉寶楠(1791∼1855)의 ≪論語正義≫ 24권 등은 訓學的 考證이 뛰어난 주해서들이다.

3. ≪論語≫의 釋名

≪論語≫에 대한 명칭은 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지만, 그중 대표적인 주장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後漢 반고班固(32∼92)는 그의 ≪漢書·藝文志≫에서 “‘論語’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 및 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것, 제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말이거나 공자에게 전해들은 말이다. 당시의 제자들은 각기 기록한 것이 있었는데, 공자 사후에 문인들이 서로 모으고 의논하여 편찬했기 때문에 ‘論語’라고 불렀다. 論語者, 孔子應答弟子時人及弟子相與言而接聞于夫子之語也. 當時弟子各有所記. 夫子旣卒, 門人相與輯而論纂, 故謂之論語.”라고 했다.
≪文選·辯命篇≫ 註에서도 ≪부자傅子≫를 인용하여 “옛날에 仲尼가 죽자, 仲弓의 무리들이 夫子의 말을 追論했는데 이것을 ‘論語’라고 한다. 昔仲尼旣歿, 仲弓之徒追論夫子之言, 謂之論語.”라고 했다. 또한 유희劉熙는 ≪釋名·釋典藝≫에서 “≪論語≫는 공자와 제자들이 말한 것을 기록한 말이다. ‘論’은 ‘倫’의 뜻이니 倫理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語’는 서술의 의미이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서술한 것이다. 論語, 記孔子與弟子所語之言也. 論, 倫也, 有倫理也. 語, 敍也, 敍己所欲言也.”라고 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論語≫에 기록된 것은 주로 공자가 그의 제자 및 당시 사람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둘째 “論語”의 ‘論’字에는 ‘논찬論纂’의 뜻이 있고, ‘論語’의 ‘語’字에는 ‘言語’의 뜻이 있다는 점이다. 즉 ‘論語’란 ‘夫子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論纂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論語’라는 명칭은 당시에 이미 존재했던 말로서 후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편, 後漢 鄭玄은 ≪論語序≫에서 ≪論語≫는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 등이 撰定한 것이다. ‘論’이란 綸과 輪과 理와 次와 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으로 世務를 經綸할 수 있으므로 ‘綸’이라 하고, 둥글게 구르며 다함이 없으므로 ‘輪’이라 하며, 온갖 이치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理’라 하고, 篇章에 질서가 있으므로 ‘次’라 하며, 群賢들이 集定한 것이므로 ‘撰’이라 한다. 仲弓子游子夏等撰定, 謂論者綸也輪也理也次也撰也. 以此書經綸世務故曰綸, 圓轉無窮故曰輪, 蘊含萬理故曰理, 篇章有敍故曰次, 群賢集定故曰撰.”라고 했다.
또한 鄭玄의 ≪周禮≫ 註에서는 ‘語’에 대하여 “응답하고 기술하는 것을 ‘語’라 하는데, 이는 의론에 대해 답한 辯言을 ‘語’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答述曰語, 是謂答所論之辯言曰語.”라고 했다. 이처럼 仲尼가 제자 또는 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말을 ‘語’라고 했다.
한편 형병邢昺은 何晏의 ≪論語集解序≫에 대한 疏에서 ‘語’가 ‘論’字 보다 뒤에 위치한 것은, 반드시 論纂을 거치고 나서 글에 실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4. ≪論語≫의 編者

≪論語≫의 編者에 대해서도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표적인 주장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孔門의 弟子’ 편찬설
前漢 유향劉向은 ≪別祿≫에서 ≪論?≫는 “孔子의 제자들이 훌륭한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고, 後漢 班固도 ≪漢書藝文志≫에서 “≪論語≫는 공자 문인이 편집한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魏 何晏도 ≪論語集解序≫에서 劉向의 說을 인용하여 “≪魯論≫ 20편은 모두 공자의 제자들이 善言을 기록한 것이다. 魯論二十篇, 皆孔子弟子記諸善言也.”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論語≫가 공자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보고 있다.

2)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 편찬설
後漢 鄭玄(127∼200)은 ≪論語序≫에서 ≪論語≫는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 등이 撰定한 것이다. 仲弓子游子夏等撰定.”라고 했다. 또한 梁나라의 황간皇侃(488∼545)은 ≪論語義疏≫에서 “≪論語≫는 공자가 죽은 후 칠십 제자의 문인들이 공동으로 撰定했다. 論語者, 孔子歿後, 七十弟子之門人共所撰錄也.”라고 했다. 皇侃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으나, 아쉽게도 이에 대해 상세한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그 후 唐代 육덕명陸德明도 ≪經典釋文敍錄≫에서 鄭玄의 주장을 인용하여 ‘仲弓子游子夏’ 편찬설을 인정했다.
仲弓·子游·子夏는 모두 孔門의 “四科十哲”에 들어 있고, 특히 子夏와 子游는 문학에 뛰어났으므로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 편찬설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3) ‘有子와 曾子의 門人’ 편찬설
唐代 柳宗元은 ≪論語辨≫에서 孔子와 曾子의 나이 차이와 ≪論語≫에서 曾子와 有子만이 존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論語≫의 편찬자는 曾子의 문인인 악정자춘樂正子春과 子思의 무리들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程子도 ≪論語序說≫에서 “≪論語≫의 글은 有子와 曾子의 門人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책에 유독 二子만을 ‘子’라고 稱하였다. 論語之書, 成於有子曾子之門人. 故其書獨二子以子稱.”라고 했고, 朱子도 程子의 이 설을 계승했다.

4) ‘민자건閔子騫’ 편찬설
南宋의 홍매洪邁(1123∼1202)는 ≪용재수필容齋隨筆≫에서 공자가 제자들을 부를 때, 오직 민손閔損만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字(子騫)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論語≫는 閔氏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5) ‘戰國時代’ 편찬설
淸末 장학성章學誠(1738∼1801)은 ≪文史通義詩敎上≫에서 ≪論語≫에 曾子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曾子는 戰國時代 初에 죽었으므로 ≪論語≫는 戰國時代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6) ‘前 10편’과 ‘後 10편’의 저자설
淸代 최술崔述(1740∼1816)은 ≪論語餘說≫에서 ≪論語≫ 20편 중 ‘前 10편’만이 有子와 曾子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고, ‘後 10편’은 後人들이 續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에서 ≪論語≫의 편자에 대하여 학자에 따라 약간씩 의견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論語≫가 한 시기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論語』는 유학의 가장 중요한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중에서 孔子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儒家 연구의 필독서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論語』의 해설서는 수십 종에 달하지만, 대부분 『論語』의 경문(經文)과 朱子의 『論語集註』에만 국한된 것들이다.
論語集註 備旨 (Ⅰ)은 『論語集註 大全』의 소주(疏註)들을 집대성한 「原本 備旨」 본을 국내 최초로 현토(懸吐)와 주석 작업을 한 학술저작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본 저작은 중국 고문(고대산문) 전공자로서 기존의 국내 출판본은 물론, 중국의 역대 주해서들을 널리 참조함으로써 역주의 객관적인 신뢰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본서가 대학에서 설강되고 있는 동양철학강독, 동양철학개론, 제자강독, 한문강독, 한문원전강독 등의 교재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양전통사상의 근간이 되는 유가의 기본 입문서로서 일반인들의 교양도서로서 적극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宋代의 巨儒 朱子(1130∼1200)는 중국 儒學의 집대성자이자 우리나라 性理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朱子가 일생동안 정리하고 연구한 儒家經傳은 주로 五經과 四書 및 北宋 諸子들인 주돈이周敦?(1017∼1073)·정호程顥(1032∼1085)·정이程?(1033∼1107)·소옹邵雍(1011∼1077)·장재張載(1020∼1077) 등의 著作들로 나눌 수 있다.
이들 儒家經傳들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朱子는 ≪朱子語類≫ 105卷에서 “四子는 六經의 입문서이고, ≪近思錄≫은 四子의 입문서이다. 四子, 六經之階梯. ≪近思錄≫, 四子之階梯.”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四子는 ‘四書’, 六經은 ‘五經’, ≪近思錄≫은 북송 諸子들의 학설을 말한다. 이 말의 뜻은 四書의 지위가 북송 諸子들의 저작 보다 높고 五經의 지위가 四書 보다 높기 때문에,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近思錄≫으로부터 시작해서 四子에 이르고, 다시 四子에서 五經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이다.
六經의 입문서인 ‘四書’란 곧 ≪大學≫·≪論語≫·≪中庸≫·≪孟子≫ 등을 말한다. 이 四書의 중요성에 대해서 朱子는 그의 '書臨?所刊四子後'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河南 程氏는 사람을 가르치는데 반드시 먼저 ≪大學≫·≪論語≫·≪中庸≫·≪孟子≫ 등의 책에 힘을 쓴 다음에 六經에 미치도록 했다. 대개 그 난이難易와 원근遠近과 대소大小의 차례가 진실로 이와 같아야 어지럽지 않게 된다. 河南程夫子之敎人, 必先使之用力乎 ≪大學≫·≪論語≫·≪中庸≫·≪孟子≫ 之書, 然後及乎六經. 蓋其難易、遠近、大小之序, 固如此而不可亂也.” 이에 朱子는 二程사상을 계승해서 일생의 심혈을 기울여≪大學≫·≪論語≫·≪孟子≫·≪中庸≫에 주해를 함으로써 ≪四書章句集註≫를 완성했다.
朱子는 四書를 공부하는 순서에 대해서도 程子의 “≪大學≫은 孔氏의 遺書이며 처음 배우는 사람이 德에 들어가는 문이다. 大學,孔氏之遺書, 而初學入德之門也.”라는 주장을 계승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大學≫을 처음과 끝을 완전히 관통하여 모두 의심난 바가 없게 된 연후에 가히 ≪論語≫와 ≪孟子≫에 미칠 수가 있고, 또 의심난 바가 없게 된 연후에 가히 ≪中庸≫에 미칠 수가 있다. 大學首尾貫通, 都無所疑然後, 可及語孟, 又無所疑然後, 可及中庸.”(大全註疏) ≪大學≫이 이처럼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朱子는 ≪大學≫이 학문의 처음과 끝을 꿰뚫어 말한 것이고, ≪大學≫을 먼저 읽고 ≪論語≫와 ≪孟子≫를 읽어야만 학문의 길에 쉽게 들어갈 수 있으며, 나아가 학문의 大體가 갖추어져 나머지 공부가 저절로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四書集註≫와 備旨에 대한 주해 작업에 뜻을 두고, 지난번에 출간된 ≪大學章句 備旨≫에 이어서 이번에 ≪論語集註 備旨≫(Ⅰ)을 출간하게 되었다. ≪論語≫는 儒家學說 중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全書의 원문은 약 1만 6천자이고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論語≫의 내용은 비단 초기 儒家思想의 기본적인 면모와 그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생활과 관련해서 크게는 ‘治國安邦’과 ‘德治仁政’, 작게는 개인의 ‘安身立命’과 ‘處世爲人’을 논하고 있다. 또한 ≪論語≫에는 人生哲理와 사회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풍부한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육과 연구적인 측면에서 그 활용 가치가 매우 높은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論語≫의 핵심은 맨 앞 세 구절과 마지막 세 구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孔子는 맨 처음 '學而' 篇의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君子가 아닌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컕,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의 三句에서 군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知行合一’과 ‘人我合一’ 및 ‘人際交往’의 세 가지를 대전제로 삼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堯曰' 篇의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되지 못하고, 禮를 알지 못하면 바로 설 수 없으며, 남의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의 三句에서 배우는 자는 ‘知命’과 ‘知禮’와 ‘知言’의 능력을 두루 갖춰야만 비로소 참된 군자가 될 수 있고, 나아가 社會 各所의 제자리에 바로 서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때문에 程子도 '論語序說'에서 “≪論語≫를 읽는데 읽고 나서 전연 일이 없는 자도 있고, 읽고 난 후에 그 가운데 한 두 句를 얻고 기뻐하는 자도 있으며, 읽고 난 후에 알고 좋아하는 자도 있고, 읽고 난 후에 다만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다. 讀論語, 有讀了, 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라고 했고, 또한 “지금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른다. 예를 들어 ≪論語≫를 읽을 때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이요, 읽은 후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는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今人不會讀書. 如讀論語, 未讀時是此等人, 讀了後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려서부터 항상 ≪論語≫를 몸 가까이 두고 읽어 오면서도 여지껏 ≪論語≫의 참다운 가치와 그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다거나 또한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聖人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聖人에게 크나큰 죄업을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끝으로 본 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동안 엄격하고 자상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弦齋 金永雄 선생님, 본문의 험난한 한자변환 작업을 위해 노고를 다해준 李鎬俊 선생님, 表紙題字를 써주신 德 岩 李鍾昱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본 書의 출판에 도움을 준 전남대학교 당국과, 편집과 출판을 위해 노고를 다해주신 전남대학교출판부 관계자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庚寅年 立春節
著者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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