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장 정겨운 애월, 애월리 사람들
우리 가족이 제주도로 간 까닭 차에 싣고, 배에 싣고... 1박 2일의 이삿길 ☆ 네 여자만 남은 애월의 밤은 무서워 ‘애월로 가는 길’의 일곱 가지 즐거움 정겨운 애월 ‘금잔디 다방’ 앞 네거리 5년만에 아내에게 밝히는 “그것이 알고 싶소?”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친구들...교실 창문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 제2장 못 말리는 우리 가족 강아지들의 깔깔법칙 전쟁터 총33마리 동물들로 드디어 ‘동물의 왕국’(?)을 만들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 그러나 “어머어머~ 조심해라, 별아!” 서울선 주중 총각 / 제주선 주중 자유부인 넓고 넓은 바닷가를 휘저은 네 명의 소녀들(?) “손님들이여, 오시라!” 손님접대용 지네와 광란의 모기떼, 머릿니까지 등장 ☆ 앞뒷마당을 전전한 환상의 똥돼지숯불구이 ‘파~리’ 가짜 강태공에 낚인 불쌍한 애월 바다고기들 실패한 텃밭 농사와 집 뒤 배나무밭 수박서리 제3장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2박 3일간의 제주도 자전거 일주 “이제 곧 한라산 정상이에요! (호호호)” 솔빛별, 사물놀이에 도전하다 내가 만난 제주의 조직원(?)들 "하늘에 저축합니다" 20여년 만에 꿈처럼 만든 음반 한 장! 컴퓨터 음악! 내겐 얄미운 당신! 정식(?) 녹음실에서의 음반작업 제4장 마음을 두고, 제주를 떠나며 ☆ “똥개라도 넌 찾아 올 수 있겠지?” 애월의 잠 못 이루는 밤 푸른 하늘과 바다를 그리며 책을 만들고 나서 |
조한별의 다른 상품
|
똥개라도 넌 찾아올 수 있겠지?
2001년 여름, 우리 가족은 제주를 떠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2년만 살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2년반 째로 접어들었으니 6개월쯤을 더 산 것이다. 제주에 산 지 2년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제주를 떠나는 여부에 대해서 수 차례 가족회의를 해야만 했다. 처음 제주로 내려올 때야 2년도 길다고 생각했으나 살다보니 순식간에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이제 떠나면 ‘또 언제 이런 전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솔이는 애월초등학교 졸업생이 되지만 빛별이는 1년을 남겨두고 졸업을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그렇다고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 남편과 가족이 한없이 따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남편 또한 그 당시 회사 상황이 우리가 제주를 떠난다면 어디에 정착을 할 것인지가 조금 어중간한 시기였다. 곧이어 지방으로 내려가 근무하게 될 수도 있었던 터라 남편의 직장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1년만 더 있기로 결정을 하고 봄이 되었는데 5월부터 남편이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근무를 하게 되었다. 매주 대구와 서울, 제주를 왕래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정적인 시간에 서울 제주를 오가는 일이야 그 동안 가능했으나 시간도 불규칙적인 상황에서 비행기를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어 한 번 못 오게 되면 2주를 서로 못 보게 되는 것이었다. 남편의 상황이 그럴진대 온 가족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제주에 더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추억도 없는 서울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빛이와 별이가 가장 마음에 걸렸으나 여러 차례 대화 끝에 모두 다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기왕에 떠나야 한다면 마음까지 얼어붙는 삭막한 추운 겨울보다는 시원한 바닷물이 넘실대는 여름이 더 좋겠다고 마음도 다그쳤다. 돌아서는 시점을 가리켜 `터닝 포인트'라고 하던가? 제주에서 살다보니 고기가 잘 잡히는 장소를 일컬어 ‘낚시 포인트’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나 또한 제주의 경치를 감상하는 곳 중에 유난히 정이 가는 ‘경치 포인트’가 한 곳 있었다. 집에서 애월읍내로 가자면 200여 미터의 구불구불한 밭사잇길을 지나야 하는데(물론 일주도로변으로 바로 가도 되지만 나는 이 길을 자주 애용했다) 벌판같은 길 양 옆으로 얕은 야산과 나즈막한 돌담과 취나물밭들이 즐비하고, 이름도 잘 모르는 어여쁜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 길 가운데쯤에 200여평즘 될까, 유채꽃밭이 한 군데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었다. 제주에서는 흔하기만 한 유채꽃밭이지만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멈춰선 그 포인트에서 움직임 없이 바라보이는 전경 속엔 딱 세 개의 색채만이 있었다. 노란 유채꽃과 검은 돌담과 푸른 바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끌려 발길을 멈추고는 잠시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만이 알고 있는 듯한 은밀함까지 겹쳐지며 마음이 행복해지곤 하였다. 세 번째 봄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 자리에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네사람이 살기 위해 조립식 판넬집으로 짓고 있었는데 그 후부터는 그곳 포인트 앞을 지날 때면 집 때문에 가려져 버린 보이지 않는 경관을 바라보며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해져옴을 느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그 집 앞을 지나다가 마침 인부들이 없는 틈을 타 아직 완공이 덜 되어 어수선한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그토록 아름다움을 주던 경관을 안으로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 동안 한결같이 한 곳에서만 감상하던 나의 포인트 자리를 저 안쪽으로 옮긴 셈이다. 결과는 대실망이었다. 그곳의 경치 포인트는 내가 늘 바라보고 섰던 바로 그 길가였던 것이다. 나의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섰던 별이가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도 이렇게 좋은 마음이 있을 때 떠나야 되는 거 아닐까요?” 쪼그만게 참, 어른스러운 말도 하지! 지금이 그 터닝포인트, 이별의 시점이던가. 너무나도 많은 추억 아름다운 시간들 남겨두고 떠나려니 아쉽기만 하구나 아하! 좋은 생각났다. 남기지 말고 담아가자. 머릿속에 마음속에 가득 담아 떠나자. 한별이의 시 (당장에 기르던 집짐승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이곳 제주의 아름다운 매력 앞에 수없이 “여기서 살아버려?” 온 식구가 헷갈려 하며 살았던 터라 이제사 진짜 이별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상대에게 정을 주는 수위가 조절이 된다면 좋으련만 사람이 머리와 마음이 한데 가질 못하고 따로 놀고 있으니 있는 정 없는 정을 모아 하나로 든 정을 떼내기가 어찌 쉬울 것인가. 아이들과 심사숙고 끝에 어쨌든 우리 강아지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네 마리의 개들 중에 유일한 숫놈 바람이는 나의 ‘경치 포인트’ 자리에 우뚝 집을 지어서 내 마음을 허전하게 했던 이웃집에 드렸고, 남편 친구가 보내주신 삽살개 노을이는 분재예술원에 드렸다. 그곳에는 노을이 외에 삽살개가 두 마리 더 있었는데 토종삽살개 보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은 곳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님이와 새끼 모녀는 우리 집에 새로 들어오시는 분께 드렸다. 오늘은 강아지와 헤어지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강아지들을 전부 풀어줬다. 별님이와 바람이, 노을이는 신나게 밖으로 놀러나갔고 돌핀이는 이삿짐 트럭 바퀴 아래 그늘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이삿짐센터 아저씨를 보고 막 짖기도 하고 우리한테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귀여운 짜식... 강아지를 놔두고 가야하는 게 진짜 싫다. 엄마아빠에게 막 졸라서 돌핀이를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돌핀이는 엄마와 사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자기 아빠(바람이)도 가서 만나보고... 이삿짐을 다 옮기고 바람이를 옆 집에 갖다줘야 할 차례가 왔다. 우리는 바람이를 붙잡아, 귀에 대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백마마을 청구아파트 000동 0000호야. 꼭 찾아와야 돼!. 똥개라도 넌 찾아올 수 있겠지? 꼭 찾아와. 안 그러면 미워할꺼야. 제주도 와도 너 보러 오지도 않을 거야. 알았지? 꼭 찾아와야 돼!” 그리고는 바람이를 옆 집에 데려다 주고 왔다. 별님이에게는 쪽지에 주소를 써서 목줄에 잘 넣었다. 불쌍한 우리 집 강아지들... 정말 잘 해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 제주도 오면 꼭 찾아올게. 이사하는 날 옆집으로 보낸 바람이가 자꾸만 우리집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아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1999년 추석날 아침에 태어나 지금도 그 집을 지키고 있는 별님이는 올봄에 두 번째 임신을 하여 자신과 꼭같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삽살개 노을이 또한 지금 두 번째 임신중에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