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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 문명과 소금
중국의 소금 이야기 이집트, 나트륨, 미라 북방의 소금민족 켈트 소금에 절여진 로마 문명 베네치아, 그리고 마르코 폴로 제노바 · 베네치아의 소금무역 전쟁 2. 중세와 근대 - 혁명과 정복의 소금 바이킹, 소금에 절여진 대구 절인 청어와 대항해시대 프랑스 왕실의 소금 사치 합스부르크 가의 돌소금 영국도 좋은 소금이 필요했다. 식민지를 지배한 소금 소금 독립전쟁 대혁명, 소금폭동으로 시작되다 미국의 독립 지키기 소금에서 무너진 남부연맹 붉은 소금이 좋다 3. 현대 - 여전히 중요한 소금 근대 화학의 밑거름 소금, 석유를 발견케 하다 땅이 무너진다 소금을 위한 행진 소금에서 시작한 유대인의 나라 사라지는 중국의 소금 두반장 · 간장의 아버지 생선은 더이상 짜지 않다 소금, 달라진 풍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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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설탕의 세계사
--- 김병희(cbang36@yes24.com)
역사와 문화 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빠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바로 미시사 혹은 작은 것들의 문화사를 다룬 책들이다. 『사생활의 역사』(새물결)처럼 두툼한 양장의 폼 나는 역사서가 있는가 하면, 『에로틱한 발』(그린비), 『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뿌리와이파리)처럼 사소한 것들의 역사를 맛깔 나게 소개한 부담 없는 문화사들도 있다. 요즘에도 이 ‘별의별 것들의 역사’는 한 달에 서너 권은 출판되어 나오고 있다.
소금과 설탕은 이런 별의별 것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리와 가까운 것들이다. 당신의 식습관이 일반인은 이해 못할 만큼 엉뚱하지만 않다면, 오늘도 벌써 몇 번쯤 이 두 가지를 섭취했을 것이다. 『소금』(세종서적)과 『설탕의 세계사』(좋은책만들기) 속에는 우리와 더 가까울 수 없는 이 하얀 가루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소금은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다. 아니, 조미료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소금은 그대로 맛이다. 그 역사는 인류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그 쓸모는 전세계적이다. 책 속 인용문을 다시 인용하자면, ‘금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있겠지만 소금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살아갈 수 없다’ 소금은 먹는 것 외에도 무수한 쓸모를 가지고 있다. ‘현대 소금업계’ 추산 1만 4,000여 가지의 용도로 쓰인다고 하는데, 먹을 뿐만 아니라 벽돌로 만들어 건물을 짓거나, 시체를 그 속에 넣어 미이라로 만들 수도 있고, 국민들에게 뇌물로 줄 수도 있었으며, 화폐처럼 거래에 이용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재수 없는 손님의 등 뒤에 뿌릴 수도 있고, 오줌싸개를 가르치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다. 염전은 전쟁의 원인이 될 만큼 중요했고, 소금을 전매한 정부들은 예외 없이 넉넉한 재정을 즐길 수 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좋은 소금을 가장 중요한 손님 앞에 놓는 것이 예의였고, 심지어 손가락으로 소금을 건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이프를 사용했다고 하니, 소금을 그저 조미료라고 하는 것은 결례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가장 필수적이며, 그래서 중요했던 소금과 달리 설탕은 탄생에서부터 사치스럽다. 벌꿀 외에는 단맛을 모르던 중세의 인류에게 사탕수수에서 나는 단맛 덩어리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약품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 극단의 사치, 혹은 만병통치약을 위해 신대륙 발견 이후의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유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현대인은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이백 년 전만 해도 동쪽 끝 중국에서 온 차에 서쪽 끝 신대륙에서 온 설탕을 타 마시는 것은 최고의 사치였다. 『소금』은 소금의 모든 것을 다루고, 또 그 주변 이야기까지 다룬다. 이를 테면, 소금에 절인 생선이 나오면 청어와 대구 이야기가 나오고, 돼지 앞다리를 절여 만든 햄이 뒤를 잇는 식이다. 이에 비해 『설탕의 세계사』는 설탕을 둘러싼 역사 사건에 주목한다. 전자가 저자의 박학 때문에 즐거운 책이라면, 후자는 역사가의 비판적인 시각에 귀 기울이게 되는 책이다. 정현종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몸보다 그림자가 더 무거워/머리 숙이고 가는 길/피에는 소금, 눈물에는 설탕을 치며/사람의 일들을 노래한다(『나는 별 아저씨), ‘고통의 축제 2’)’고 했다. 어쩌면 사람의 일들을 모두 알려줄지도 모를 소금과 설탕의 문화사에 주말 오후쯤은 훌쩍 지나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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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여러 프랑스 왕조의 왕실 식탁에는 크고 화려한 네프(중세의 배처럼 생긴 중세유럽의 그릇)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보석으로 치장한 소금 그릇이자 '국가의 배'를 상징했다. 네프는 군주의 건강이 국가의 안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1378년에 프랑스의 샤를 5세는 네프를 어디에 놓을까라는 곤란한 질문으로 만찬을 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네프를 자기 앞에 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손님으로 온 프라하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 4세 옆에 놓아야 하는가? 만찬에 합석한 황제의 아들인 독일의 벤체슬라우스 왕은 어떤가? 그는 그해 후반에 아버지가 죽은 후 황제가 된다. 결국 만찬 식탁에는 각 군주에 하나씩 세 개의 커다란 네프가 차려져야 한다는 결정이 났다. --- p.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