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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베틀라나
2 전조(前兆)들 3 수지바, 운명이여 4 소금꽃 5 안녕, 다 스비다냐 6 마법이 풀릴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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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쇠바퀴의 진동을 느끼고 있자니 러시아 횡단열차 안에서 보낸 낮과 밤의 시간들이 생각난다. 끝없이 펼쳐지는 스텝의 야생화들과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들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달리던 붉은화살호에서의 밤도 잊을 수 없다. 지나간 시간들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들 속에는 우리가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과정이 내재한다. 요컨대 우리가 추억이라고 명명하는 것들.
이 소설을 쓰려고 애면글면했던 시간들도 생각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바빴고 가장 암울했고 가장 무모했던 시기와 겹쳤다. 소설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탕진한 채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추스르느라 정작 작업은 지지부진이었다. 그랬음에도 어쨌거나 끝을 맺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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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완은 시사 월간지를 통해 러시아에 살고 있는 장도수라는 인물의 인생유전을 일독한다. 그리고 자살한 친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마음에 담고 있었던 한 남자가 그일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수완은 그 끌림에 의해 장도수를 만나러 러시아로 간다. 암묵적인 약혼녀 다현을 한국에 두고서다. 장도수 역시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지만 유독 박수완이라는 남자의 요청은 거절하지 못했다. 러시아에 도착한 수완은 장도수에게 전화를 하지만, 낯선 러시아 여자로부터 장도수의 장기여행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장도수는 수완을 피하고 있었다.
수완은 장도수 대신 장도수가 친딸처럼 아끼는 스베틀라나를 만나게 된다. 장도수가 스베틀라나를 통해 수완에게 거절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수완과 스베틀라나는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수완은 한국에 두고 온 연인 다현에 대한 미안함, 한국에 두고 온 배다른 여동생 수명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수완은 만삭인 여동생 수명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스베틀라나에게 이별을 고하며 한국으로 간다. 끝내 만나지 못한 장도수에게는 스베틀라나를 통해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수완은 결국 장도수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사랑한 남자임을 확인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고, 편지를 받은 장도수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고영완의 아들이 수완임을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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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열차 안에서, 뒤로 밀려나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계절이었다.
달리는 열차 뒤로 밀려난, 우리들의 자화상 『백야의 연인』은 그간 해체된 가족관계를 주제로 탁월한 심리묘사를 보여준 소설가 정길연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해체된 가족관계를 중심 소재로 하고 있으나, 북한에 혈육을 둔 한 남자(장도수)의 러시아 망명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광범위한 주제로 넘나들고 있다. 그리고 이 남자(장도수)를 만나러 무작정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또 다른 남자(박수완)의 갈등과 선택, 이들 사이에 얽힌 운명을 따라가면서 이 소설은 인간이 가진 모든 심리를 섬뜩하리만치 냉정하게 그려낸다. 이렇듯 등장인물의 극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작가 특유의 냉정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냉정한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담백한 문체는 등장인물들의 아픔, 슬픔, 외로움, 공포, 쓸쓸함, 두려움 같은 미묘한 감정들을 확실하게 구분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탄탄한 구성까지 덧붙어 마치 한 편의 거대 서사극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빠른 하루들 속에 묻혀버린 생의 오류,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러시아로 건너가는 주인공 박수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진실의 문제를 묻고 있다.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선뜻 꺼내보기 두려운 우리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 이곳에 계속 고여 있는 이유가 그 두려운 마음 때문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끌리듯 떠난 러시아에서 발견한 진정한 사랑, 진정한 자아 이 소설은 자살한 친어머니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를 찾아 남자 주인공 수완이 무작정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수완은 낯선 러시아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생의 오류들을 발견한다. 스베틀라나와 함께 러시아 예술작가의 박물관과 생가 등을 돌아보면서 예술작가와 예술작품에 자신의 삶을 맞춰보는 것은 수완이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수완은 스베틀라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지만, 그들의 이별이 처음 만난 그 순간에 이미 예비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수완이 겪었던 짧고 강렬했던 러시아에서의 사랑처럼, 우리네 인생도 짧고 강렬한 한순간만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이 소설은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해체된 가족집단 사이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어디인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수완을 비롯하여 수완의 배다른 여동생 수명, 그리고 수완의 암묵적인 약혼녀 다현, 수완이 러시아에서 만난 진실한 사랑 스베틀라나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해체된 가족집단 사이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혹은 아프게 이별한 영혼들은 기댈 곳이 없다. 수완과 수명, 수완과 다현, 그리고 수완과 스베틀라나까지,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있지만 그 모습은 아슬하기만 하다. 이렇듯 내밀한 심리를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묘사한 것 또한 이 소설이 돋보이는 이유다. 이 소설에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인물들은 저마다의 색을 갖고 있고, 그들끼리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감정 또한 저마다 표현 방식이 달라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 소설은 예민하게 날 선 등장인물들의 하루를 반복해 전개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숨어 있던 진실이 안개처럼 서서히 드러난다. 그 진실들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만, 결국 그들은 태연하게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기댈 곳 없이 막막한 삶에서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자아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