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프롤로그: 말씀 제1장 신의 아들 예수 예수 세례 요한 포도주 성전 니고데모 신 랑 제2장 예수의 사명 사마리아 여인 추수 안식일 병아리 떡 살과 피 제3장 나를 보라, 진리를 보라, 얼을 보라 강물 양심 빛 자유 아브라함 제4장 예수의 피로써 소경 문 양 제5장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신 나사로 가야바 향유 제6장 나는 죽으러 온 것이다 밀알 전도 가롯 유다 제7장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새 계명 걱정하지 말라 길 제8장 예수의 유훈遺訓 계戒 평화 포도나무 박해 제9장 하나님의 뜻 뜻 빌라도 십자가 에필로그 |
|
* 보이지 않는 것을 체득하여 증거를 잡게 되는 것이 도道이다. 이 도가 동양인의 신앙이다. 동양인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 받아, 하나님의 도를 체득하는 것이다. 체득이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동양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복음이 전파 된 지 100년, 기독교는 과연 한국에 뿌리를 내렸는가. 아니다. 교회의 수나 교인의 수는 뿌리가 아니다. 설교나 신학은 뿌리가 아니다. 뿌리는 진리를 사는 것이다. 진리의 체득이 뿌리이다.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살 때 그것이 체득이다. --- pp.21~22 * 인간에게는 인간의 고유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영원을 그리워하고 무한을 꿈꾸며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어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 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하늘나라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러한 인간의 근본 욕구를 충족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한마디로 주체성의 회복이요, 하나님 아들의 회복이요, 인간 근원성의 회복이다. 이러한 근원성이 회복되면 인간은 언제나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살 수가 있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 화평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다. --- p.41 *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를 상실하고 남을 문제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예수에게 세례를 받으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각 사람 마음에 있다.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지기 전에는 물속에 백 번 들어가도 아무 쓸데가 없다. 사람의 정신이 깨기 전에는 예수한테 세례를 받건, 요한에게 세례를 받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의 정신이 깨서 세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 p.67 * 세상에 자기가 없는 것처럼 위대한 것은 없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자기에게서 일어난다. 자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요한에게도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예수에게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모든 문제는 자기 때문이다. 자기가 없어지는 것, 그것이 구원받는 것이다. 예수도 자기가 없고, 요한도 자기가 없다. 자기가 없는 사람들을 따라 자기가 없어지면 그것이 세례요, 그것이 구원이다. --- p.70 * 전도란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 놓고 있다. 진리를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류는 진리를 찾고 있다.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 그들을 사랑하는 길은 그들에게 진리를 전해주는 것뿐이다. 전도는 진리를 전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말인가. 아니다. 진리는 말이 아니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몸이다. 말씀은 말이 아니라 육신이다. 말씀은 육신이 되어야 한다. 진리는 보여 주는 것이지 들려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리가 되어야 한다. 내가 진리가 되기 전에는 진리를 보여 줄 수가 없고, 진리를 전할 수가 없다. 내가 진리가 되어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것 이상의 큰 사랑은 없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한 것 이상 큰 사랑은 없다. 인류는 진리를 통해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 p.88 * 사람은 누구나 물질이나 악마로 만족할 사람은 없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자기가 자기로서 생각해서 자기로서 판단하고, 자기로서 살고 싶은 것이 인생이다. 사람은 죽기까지 꼭두각시처럼 지령에만 움직일 수는 없다. 이제 죽는 순간에 사람은 한번 사람으로서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 나지 않을까. 죽음의 구름이 가까워 오면 하늘에서 영의 비가 내리지 않을까. 그리하여 생각의 싹이 트지 않을까. 그리고 양심의 나무가 자라지 않을까. 인간이 죽음에 처해서도 집단에 만족할 수 있을까. 기계로 죽을 수가 있을까. 기계가 죽을 수 있을까. 죽는 것은 사람이지 기계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없을까. 회의가 없을까. 삶을 묻고 싶지 않을까. 나를 찾고 싶지 않을까. 나의 근원을 찾고 싶지 않을까. 사람은 죽음에 부딪혀 죽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영원한 생명을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강같이 흐르는 생명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죽음에 처하여 진정으로 삶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 다시 생각의 싹이 트고 양심의 나무가 자라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지 않을까? --- pp.140~141 |
|
이 책은 원래 설교집『영원을 사는 사람』(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4) 제2부에 실려 있던 글입니다. 제2부는 설교가 아니고, 김흥호 선생님께서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쓰신 원고입니다.
『영원을 사는 사람』의 초판 발행이 1984년 8월인 것을 보면 저자는 1983년과 1984년 상반기 사이, 이화여대 교목과 대학교회의 담임목사의 임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이 글을 쓰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이번 '김흥호 사상 전집'을 기획하면서, 설교집에서 떼어내어, 예수의 평전으로서 『신의 아들 예수 ·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1984년 당시 『영원을 사는 사람』을 출판하면서 이 책을 영생永生에 대한, 신神에 대한 책이라 하였는데 이 글도 같은 책 속에 있었던 만큼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받은 계시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종전과는 다른 예수의 전기 혹은 평전입니다. 이 책은 현지를 답사하고 고증을 거쳐 학술적으로 쓴 예수의 전기도 아니며, 철학적, 신학적 연구를 통한 글도 아닙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에 이르러 예수와 하나가 되어, 風來水面時에서 통일된 마음, 열린 영으로, 예수의 입으로 나오는 말들입니다. 오히려 저자가 예수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종교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저자는 ‘체득’을 강조합니다. 체득이 되지 않으면 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종교인도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저자는, 기독교는 체득의 종교로서 예수를 체득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체득이란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예수가 살아가고 말한 그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진리를 깨닫고 행하여, 그 진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르친 대로 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말인가. 아니다. 진리는 말이 아니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몸이다. 말씀이, 말씀이 아니라 말씀은 육신이다. 말씀은 육신이 되어야 한다. 진리는 보여주는 것이지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리가 되어야 한다.”('추수' p.88) 저자의 인간에 대한 대전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육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준 이가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요한복음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함께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예수 생애의 메시지를 빈틈없이, 아주 자세하고 분명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저자의 말도 있지만, 저자는 예수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기도 하고, 예수의 대변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의 서술은 문장이 짧고 반복과 간결한 논리의 전개로 독자의 눈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고 따라서 자연 생각도 빨리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한 번에 읽고 말아버릴 수 없는 페이지 한 줄 한 줄 사이에서 독자로 하여금 또한 숨(호흡)을 모아 어느새 예수 자신이 되어 생각에 깊이 잠기게 만듭니다. 저자는 네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이 가장 동양 사람에게 맞는 복음서라고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예수의 생애는 아마도 우리 동양인이 가장 이해하기 쉽게 그려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독특한 예수의 평전, 『신의 아들 예수 ·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가 많은 독자들에게 예수의 신비한 생의 진실을 함께 체험하고, 예수 체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