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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1장 탕평정치의 이념적 배경 1. 탕평 정국의 형성 2. 탕평정치의 이념적 모색 1) 요순정치(堯舜政治)의 추구 2) 문물제도 정비론 3. 탕평 정국의 『주례』 진강 1) 『주례』의 부각 2) 경연의 『주례』 3) 군주의 새로운 『주례』 인식 제2장 탕평 정국의 법제 정비 사업 1. 법제 정비의 과정 1) “대전(大典)”의식의 발현 2) 법제서의 증보 2. 국법 체계의 재인식 1) 국법 체계의 변화 2) 새로운 “대전”의 탄생 3. 『속대전』의 지향성 1) 관형주의(寬刑主義) 표방 2) 형정 운영의 합리화 제3장 탕평정치기 백성의 위상 1. 균역법의 백성 인식 1) 양역변통 과정의 백성관 2) 사회 각계층의 세제 편입 2. 사회신분제의 변동 1) 서얼의 허통 2) 공노비(公奴婢)의 신공(身貢) 3. 새로운 백성관의 구도 1) 황극탕평론과 ‘민극’ 2) 균역과 ‘민국’ 4. ‘민국’개념의 형성 1) ‘민국’의 원형 2) ‘민국’의 정치개념화 결론 부표 참고문헌 Abstract 발문(跋文) 찾아보기 |
金伯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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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도와 구성방식
책의 전반적인 기획과 구성은 18세기 종합적인 시대상의 재구성이라는 목표 아래 추진되었다. 오늘날 개별 연구자들의 전공이 세분화되어 개별 주제별로 전통시대상에 접근하고 있으나, 정작 당대에는 분야별로 각종 사업들이 추진된 것이 아니었으며, 대다수의 정책들은 실제로 동일한 그룹의 위정자들이 집행하였으므로 각 정책들은 상호 유기적인 관련이 매우 컸다. 이에 하나의 시대사를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정한 이해의 틀을 만들어보자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정치사, 사상사, 법제사, 사회경제사 등의 다방면에 걸친 변화상을 유기적으로 찾아보고자 시도해 보았다. 또한 기왕의 연구사에서는 전통시대가 왕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정치 참여와 역할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붕당의 시각에서만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당파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 인물들이 공유한 시대정신을 복원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17세기에는 산림이 세도(世道)를 주관하면서 사족(士族)은 정파(政派)와 학파(學派)를 일치시킴으로써 당인(黨人)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비정했으나, 바야흐로 18세기가 되면 탕평군주들이 세도를 장악하면서 사족은 국왕의 관료로서 자리매김 된다. 그래서 당색을 초월하여 군주가 세운 새로운 탕평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나가고자 했던 당대 위정자들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요순을 자처한 탕평군주 영조의 백성관 18세기 탕평정국에서는 군주(君主) 주도의 건극(建極)을 표방한 만큼 국왕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책 추진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국왕 영조는 마치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 앞에서 온몸으로 홀로 맞서면서, 이미 300여 년이 흘러버린 조선이라는 오래된 나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선택은 항상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유교적 이상사회의 구현이라는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아래의 글들은 이러한 영조의 백성관을 잘 보여준다. 임금[英祖]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나의 백성이 굶주림 가운데 거듭 해진 옷으로 이런 엄동설한을 만나니 더더욱 어찌 살 수 있겠는가?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고 난간에 나와 하유(下諭)하노니, 아! 도신·수령은 나의 이러한 뜻을 체득하여 동포(同胞)를 보호하듯 하되 마음을 써서 구제하고 내가 한밤중에 당부하는 효유를 버리지 말도록 하라. 『영조실록』권66, 영조 23년 12월 임오(26일) 뒷날 왕위를 계승하는 임금은 모름지기 오늘날의 뜻을 본받아 정성스런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도록 하라. 아! 그대들 360고을의 수령은 모두 이 뜻을 본받아 백성을 동포(同胞)같이 사랑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영조실록』권89, 영조 33년 5월 정미(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