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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올브라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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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 남보다 늦게, 그러나 길잡이별로

1. 마들렌카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로
열한 살,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미국으로
외국인에서 시민권 없는 미국 소녀로
웰즐리 여대생, 조 올브라이트와 결혼하다
집에 있는 엄마와 집에 있지 않은 엄마의 이분법
올브라이트 부인, 워싱턴에 진출하다
백악관과 브레진스키, 그리고 카터 행정부
이혼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
벨벳 혁명, 벨벳 분열

2. 열네 벌의 양복과 한 벌의 스커트
열네 벌의 양복과 한 벌의 스커트
내전으로 얼룩진 지구촌
세계를 내 집처럼, 발로 뛰는 외교
발칸 반도에 떠도는 공포
내 목소리의 힘

3. 마담 세크러터리
국무 장관이 되어 주십시오
유대인 국무 장관, 내 가족의 비극사

저자 소개 3

매들린 올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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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국 국무장관.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외교관의 딸 마리에 야나 코르벨로 태어났다. 1939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자 유대인이었던 그녀의 가족은 영국으로 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갔으나, 소련을 등에 업은 공산당의 쿠데타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1948년 미국에 정착하였다. 1959년 매사추세츠주의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신문재벌 상속자인 조지프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하였다. 1968년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민주당에 입당하여 1972년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을 위해 일
전 미국 국무장관.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외교관의 딸 마리에 야나 코르벨로 태어났다. 1939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자 유대인이었던 그녀의 가족은 영국으로 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갔으나, 소련을 등에 업은 공산당의 쿠데타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1948년 미국에 정착하였다.

1959년 매사추세츠주의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신문재벌 상속자인 조지프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하였다. 1968년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민주당에 입당하여 1972년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을 위해 일하다가 1976∼1978년 머스키의 입법담당 수석보좌관으로 재직하였다. 1976년에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고문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올브라이트도 실직하게 되었고, 1982년에는 남편과 이혼하였다.

1982부터 1993년까지 워싱턴D.C.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4년에는 먼데일(Mondale) 대통령 후보의 대외정책담당으로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고, 1988년에는 듀카키스(Dukakis) 대통령 후보 대외정책고문을 지냈다. 1984∼1993년 민주당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민주당 인사들의 모임에서 빌 클린턴을 처음 만난 뒤, 클린턴 외교정책 고위보좌관들의 모임에 참가하였으며,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된 뒤 1993년 국제연합(UN) 대사로 임명되어 4년 동안 재직했다. UN 활동 중에서도 특히 군사적 활동에서 미국의 역할을 증진시킴으로써 미국 국익의 저돌적인 대변자로 활동하였다.

1997년 미국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비준을 받아 국무장관이 되었으며, 2001년 공화당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임기를 마쳤다. 임기 중이던 2000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북미관계 개선에도 힘썼다.

주요 저서로 『Poland, the Role of the Press in Political Changes』 『The Soviet Diplomatic Service』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온 식구의 손가락 발가락 수를 다 합치고도 엄청 남을 정도의 많은 어린이책을 우리말로 옮겼어요. 틈틈이 화초와 물고기를 비롯해 집 안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온갖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는 마법을 수련하기도 해요. 옮긴 책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층 버스》, 《간다아아!》, 《올빼미 기사》, 《마법의 시간 여행》 시리즈, 《도그맨》 시리즈 등 500권이 넘어요.

노은정의 다른 상품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헨리 8세와 여인들』, 『매들린 올브라이트-마담 세크러터리』, 『줄리아니의 리더십』, 『섹스&더시티』, 『오만과 편견, 그 후의 이야기』등이 있다.
저자 : 빌 우드워드
외교 전문가로 올브라이트 국무 장관, 존 케리 상원 의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하원 의원인 게리 스터스를 위해 글을 썼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63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2734830

책 속으로

시간은 어느새 9시 45분이 되었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지만 내 몸은 스스로 몸속에서 독한 카페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이 마음을 바꾼 거야. 아마 늦게까지 고민하는 그에게 한밤중에 누군가가 결정을 번복하라고 얘기한 걸 거야. 어쩌면 유엔 대사 자리조차 못 맡을지도 몰라.' 이윽고 9시 47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일레인이 전화를 받고 잠시 얘기를 듣더니 조용히 내게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국무 장관이 되어 주십시오." 이것이 대통령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는 마침내 사실을 믿게 되었다. 나는 느린 말투로 대답했다. "영광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물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내게 따뜻한 축하 인사를 전하고는 마무리 인사를 하려 했지만 나는 황급히 이를 저지했다. "고맙습니다. 아마 저희 부모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좋아하셨을 겁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p.373

줄거리


◈ 제1부 마들렌카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로

1937년 5월 1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마들렌카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두 살 때 조국을 떠난다. 망명 정부에서 정보 분야를 담당하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에서 생활하던 그녀의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면서 베오그라드를 거쳐 대서양을 건넌다.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뒤로 하고 미국행 선택한 것이다. 웰즐리 대학 시절 미국 굴지의 미디어 그룹인 콕스 가문의 상속자 중 한 명인 조셉 올브라이트를 만나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다.
셋째 아이를 사산하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마흔다섯 살의 그녀는 어느 날 “당신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가 좋다.”라는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고를 받는다. 이혼 후 그녀는 조지타운 대학 교수와 민주당 국제 외교 전문 위원, 상원 의원 보좌관 등의 일을 한꺼번에 맡아 일하면서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력을 쌓아 나간다.

◈ 제2부 열네 벌의 양복과 한 벌의 스커트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에서 유엔 대사로 임명된 올브라이트는 그때부터 미국의 대변자이자 남성 대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 대사로 활약한다.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곧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는 일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고, 올브라이트는 미국을 대표하여 유엔 평화 유지 활동에서 미국이 더 큰 역할을 맡도록 노력한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발칸 반도에 유엔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는 데 앞장섰지만,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적잖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내가 유엔에서 일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은 미국과 국제 사회가 소말리아 사태를 초기에 막을 수 있었는데도 그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분쟁 지역의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정치 체제를 지니고 있기에 각지의 상황은 저마다 달랐다. 따라서 강압적이거나 획일적인 접근법은 먹혀들지 않는다. 내가 배운 교훈은 지극히 명백한 것이었다. 국제 사회는 자연적 혹은 인위적 참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도와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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