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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김의정
제1부 차와 문화를 일으킨 선구자 / 박래부 제2부 학술과 실기에서 이룬 다례문화 복원 국가 행사로 격상시켜야 될 궁중다례 / 임동권 근현대 한국 최초의 여성 다인 / 이진수 초의 선사 뜻 살린 일지암 복원 / 김봉호 궁중다례의 전승과 명원 2대 / 정종수 오래 전 사라진 차 풍습을 되살리다 / 예용해 차에는 인간을 고결하게 하는 천성이 있다 / 김미희 한국 다도의 의식과 예절 / 김미희 제3부 차의 전통을 찾아 궁궐로, 산사로, 오지로 마지막 상궁이 궁중다례를 전수해주다 / 순정효황후 윤씨·김명길 최초로 실현시킨 차 생산 공동체 / 도광 차문화와 불교에 지대한 공헌 / 보성 차 인맥을 짚으며 춘설헌에서 나눈 차담 / 허백련 전통 도자기도 재현해야 합니다 / 황종례 궁중다례 덕택에 길 열린 조선시대 복식 연구 / 석주선 제4부 일생에 걸친 민족적 사명감과 열정 어린 내게 처음으로 차를 가르쳐주다 / 강문달 한 나라의 여인 / 최옥자 선생의 도움으로 성장한 수많은 예술인 / 이연숙 법정 스님과 어머니에 대한 작은 회고 / 김의정 여성 중 그런 분을 본 적이 없다 / 김인자 한국에 최고 다인 명원이 있는가 / 조만제 우아하고 기품 있던 우이동의 전통 티파티 / 선우용녀 단군전을 세우려 한 뜻 / 배상숙 회갑연 대신 우리 차 발표회를 열겠습니다 / 이훈석 지금도 나의 이상 / 정영자 차의 정신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 김리언 여성이 사회의 중추로 깨어나야 한다 / 김정순 제5부 남겨진 아름다운 모습들 김미희 씨한테 가서 도움을 청해보세요 / 한무숙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었다 / 정차심 여성유권자연맹을 끝까지 후원한 조용한 운동가 / 이범준 여성다운 이면에 남성을 능가하는 힘 / 김분남 한국 여성의 전형으로 추모되어 마땅하다 / 김정례 새마을 운동보다 앞선 농촌 생활개선 운동 / 권영자 임자가 차문화를 살리는 선구자가 돼 주시오 / 오원철 일본은 다도와 꽃꽂이로 민족성을 개조했습니다 / 서정길 전통 춤과 국악의 큰 후원자 / 김소희 궁중음식연구회 발전에 보탬이 되라 / 황혜성 확고한 국가관과 민족정신으로 일군 차문화 운동 / 강영숙 차 이론과 실기를 엄청나게 공부한 선각자 / 류승국 부처님 앞에 근래 최초로 차를 올린 분 / 김해근 차는 사람과 문화를 풍성하게 한다 / 목정배 차는 절집의 수행과 같은 것 / 박희준 격식 있고 까다롭던 신문로 차 강의 / 이효지 1970년대 체계적 차 활동 벌인 곳은 명원다회뿐 / 정학래 우리 차도 일본 차처럼 알려지는구나 / 설옥자 술이 남자를 위한 것이라면 차는 여성을 위한 것 / 이기윤 쬐그만 사람이 어찌 그렇게 간이 크오? / 임화공 엮은이 후기 / 김의정 명원茗園 김미희金美熙 연보 자료 명원다회 한국 전통의식 다례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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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복 후 짧은 기간 동안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룩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정신과 교양과 철학 면에서는 아직도 여유롭고 평화롭기보다 거칠고 남루하고 불안하다.
물질과 정신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 이 불완전한 시대에, 차문화의 복원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 민족과 선진국 건설을 꿈꾸었던 명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명원 선생은 다례에서 이룩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 빛나는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 훌륭한 덕성과 인격, 애국적 정신을 갖추었던 분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추앙돼야 할 인물이다. --- p.64 명원을 떠올릴 때 주목해야 할 것이 또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복원과 지원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한국 전통 꽃꽂이계의 대모랄 수 있는 임화공, 한국 도자기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황종례와 김익영, 전통매듭의 1인자이자 국가 지정 문화재인 김희진 매듭장, 패션계의 거목인 앙드레 김, 전통음식의 대모 황혜성 등 전통문화의 장인들을 발굴하고 키워냈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의 전통문화인은 지금과 다르게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다.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명원은 장인들이 맥을 이을 수 있게 실제적인 도움과 지원을 해주었다. --- p.74 경건한 마음과 태도를 갖추지 않고서 녹차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가짐 없이 다룬다면 당장에 차맛이 달라진다. 녹차 한 잔을 대접하고 대접받는 마음이 일치할 때는 똑같이 순수한 기분에 젖어 자기 소양을 높이는 시간이 된다. 차 생활이야말로 종교적 철리를 떠나 일상 체험에서 인간의 진실됨을 스스로 깨치며, 참됨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차 생활에서 얻어진다는 오묘한 경지를 체득하게 해준다. --- p.139 흔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말하지만, 반드시 영웅호걸만 이름을 남기고 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가장 여성답게 자신의 모든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삶으로써 후진에게 귀감이 되었다면, 그 역시 한국 여성의 전형으로 기록되어 추모됨이 마땅하다. --- p.266 나는 평생 선생처럼 다도를 하는 여중군자를 본 적이 없다. 차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차의 정신과 철학을 통해 우리 사회가 화목해지고, 윤리와 도덕이 바로 서는 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셨다. 다심과 도심을 통해 세상을 밝게 하는 진실한 영혼이 있는 다예를 통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세상을 맑게 하시려 진력하셨다. --- p.283 한국에서 명원 선생이 우리 차문화 보급운동을 1등으로 하셨다. 그 어른이 큰 씨앗이 되셔서 우리 강산에 차문화의 뿌리를 깊이 내려 주셨다. 지금은 우후죽순처럼 여기 저기 차하는 분들이 많지만, 명원 선생 같은 어른이 계셔서 지금의 한국 차문화가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p.296 명원 선생에 대한 기억을 하고 계신 분들이 무려 200명이 넘었다. 지금은 7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원로들로서 모두들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문화인들이요 지성인들이다. 나는 그분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내가 유년기에 잃어버렸던 어머니 명원 선생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었다. 나와 가족들에게 항상 엄격한 모습만 보였던 한 가정의 어머니가 아닌, 대한민국의 차문화를 일궈낸 한국 다도의 선구자로서, 한국 문화의 대모로서 거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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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우리 차문화를 현대에 되살린
명원 김미희 선생의 선구자적 삶을 돌아보다 이 책은 명원 김미희 선생의 선구자적 삶을 돌아보고, 그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상을 기억하려는 후대 사람들의 바람을 담았다. 잃어버린 우리 차 문화의 복원과 보급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문화·여성·사회운동의 대모로 불리던 선생의 발자취와 노력을 그를 아는 많은 분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시대를 앞장서 이끌어간 명원 선생의 사심 없는 노력과 겸손, 시대적 사명감, 애국적 열정 등을 읽을 수 있다. 명원 선생에 관한 책은 그가 직접 집필한 연구 논문을 모은 『명원다화』(비매품)와, 가까운 지인들의 추모 문집 『빛의 뜨락에서』(비매품)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은 논문집이거나 비매품이어서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타인의 시각에서 고인의 활동과 업적을 객관적·종합적으로 증언하고 조명하는 저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명원 김미희 선생은 누구인가 쌍용그룹 창업주 성곡 김성곤 선생의 부인인 명원 김미희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우리의 전통 차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열정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 싹트기 시작한 여성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명원 김미희 선생은 유서 깊은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안동 김씨는 조선시대 최대 명문가 중 하나로 장동 김씨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선비의 차문화 중심 가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다인으로는 김상용, 김상헌, 김수항, 김창집 등이 있다. 안동 김씨는 그 후에도 가풍으로 차문화를 대대로 전승했다. 명원 선생은 어릴 적부터 다풍을 익혔다. 명원은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 사회적인 혼돈을 보면서 한국 차문화 부흥을 통해 국민의 정신문화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명원이 본격적으로 차문화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52년부터다. 일본의 다인에게서 ‘한국에도 다도가 있나요’란 질문을 받고 나서부터 차문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 수집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에는 차문화 연구자는 물론 관련 자료도 전무한 상태였다. 한국 전통 차문화의 복원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명원 선생은 우리 차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우선, 학술적인 줄기를 세우기 위해 관련 문헌과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조사했다. 본인 스스로 「한국 다도의 의식과 예절」와 「차에는 인간을 고결하게 하는 천성이 있다」 등의 연구 논문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전통 차문화의 실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조선의 마지막 황후와 상궁으로부터 궁중다례를 전수받았고, 산사에 남아 있는 우리 차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뒤졌으며, 민간의 수많은 다인들을 만났다. 우리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명원의 노력은 차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피폐해진 불교 사찰의 중흥을 지원하는 한편, 수많은 여성단체와 문화단체, 그리고 문화 예술인 등을 후원하느라 바빴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창설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후원회 17인 클럽의 회장을 맡았다. 공군사관학교 어머니회인 청매회를 결성했고, 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인 김경오 씨를 지원해 한국여성항공협회를 창설하는 등 그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과 단체를 외면하지 않았다. 명원 선생은 이 모든 노력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수행했다. 다례문화 운동의 선구자이자 한국 여성계와 문화계, 그리고 가난한 이웃의 대모로 불렸던 명원 선생의 정신과 노력은 이 책을 엮은 김의정(서울시 무형문화재 궁중다례의식 보유자)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에 의해 2대째 계승되고 있다. 명원 선생의 둘째 딸로서 10대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김명길 상궁으로부터 직접 궁중다례를 전수받았던 김의정 이사장은 ‘차문화를 계속 복원하고 보급시키라’는 명원의 유지를 이어받아 명원문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어머니가 차문화 복원의 정지 작업으로 주춧돌을 놓았다면, 딸은 그 위에 풍성한 차문화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어온 셈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물질과 정신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 이 불완전한 시대에 차문화 복원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 민족과 국가 건설을 꿈꾸었던 한 여인의 빛나는 자취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흔적 없이 사라질 뻔했던 우리 차문화의 씨앗을 다시 뿌리고 열정적으로 가꾸었던 명원 선생이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뒤편에서 빛났던 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