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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굽은 다리로 걸어가는 사람들 - 오래된 집 - 소의 행방을 묻다 - 소실점의 자리 - 고궁을 나서며 2 시대를 기억하는 세 가지 방식 - 어떤 몸짓 - 의상을 입어라 - 시대의 공기 3 옛날 여자와 옛날 남자 - 가족이라는 형식 - 어른과 아이 - 해변의 가족 4 유년의 유원지 - 어항이 부서지던 오후 - 서정시를 배우는 시간 - 운동장 조회 -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5 가면, 얼굴들 - 가면들 - TV 속의 남자 - 한낮의 퍼레이드 - 얼굴들, 헐벗은 6 징후들 - 서울역에서 만난 어머니와 아들 - 기억나지 않음 - 서부영화의 첫 장면 - 론리 스트레인저 - 미래라는 낱말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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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에게는 돌아보지 않은 오래된 집이 있다. 역사, 무의식, 오랜 상처, 고통의 기억.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폐허에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 위에 한 켜를 더 얹지 않기 위해 이제 오래된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안에서 이미 죽어버린 꿈들을 애도하고, 다시 살려내야 할 무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이 마치 좀비처럼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헛된 꿈을 떨쳐내기 위하여. 이미 죽어버린 것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떠도는 죽음에 제대로 된 무덤을 선사하기 위하여.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래된 집의 문을 열고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어두움을 응시하려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과거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pp.25-26)
공기나 햇빛, 날씨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로 한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 가능할까. 시대를 말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지식이나 이론, 정치적 분석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것일까. 앞서 말한 것들은 나에겐 ‘중요한 현실들’이지만 담론의 영역에서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나날의 먼지로 분산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다 하여 그런 미묘한 것들을 모두 걸러내버리고 실제적인 것들만을 남기고 나면 삶의 일부로서 시간은 사라지고, 추상적인 관념만 남게 될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시절에 대한 느낌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람들의 매일 매일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가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미묘한 것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환기하도록 이끄는 어떤 단서나 기억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그런 감각의 잔해들인지 모른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역사를 환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p.79) 엄마와 아빠를 ‘옛날 여자’ ‘옛날 남자’라고 호명하는 순간, 가본 적 없는 낯선 시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들은 이 세상에 있었으며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온 존재라는, 평범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들은 정말로, ‘옛날 여자’와 ‘옛날 남자’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역사’의 영역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너무 멀거나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바르트는 역사를 거대한 담론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간명하게 응수했다. “역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부모님이 살아왔던 시간이다.”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먼 시간이 아닌 것이다. (p.111) 소녀는 출발을 계속 지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려! 하고, 신호를 보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멈춰 있는 시간의 주문에서 벗어나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를, 우리가 새로운 시간을 흐르게 하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소녀는 숨바꼭질 하듯 숨을 곳을 찾아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대로 자취를 감춘 것도,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소녀는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놀이를 끝내고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소녀가 돌아올 시간은 언제일까. 그 시간은 언제 당도할까. 그 순간을 ‘미래’라고 믿고 싶어졌다. ‘미래’라는 낱말이 정당한 서사와 다시 연결될 때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 세계는 안전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이 세계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기 전까지 소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212) 멈춰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듯 우린 광장에서 홀로, 또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멈춘 시간 앞에 우린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았다. 우리의 깨져버린 마음을 응시했다. 죽어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조금씩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우리의 열기로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시간.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 더 이상 시간에 짓눌리지 않길, 우리의 마음과 다르게 무정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빌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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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진을 닮아갔다”
흑백사진 속, 묻어둔 시간을 찾아서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가 이갑철이 1979년 제주에서 찍은 사진이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뒷모습. 이 책의 지은이는 우연히 마주친 이 사진을 예사로이 보고 지나치지 못한다. 바다, 그것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가려던 그곳, 제주에서 찍은 사진이라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2014년 4월의 그날 이후 우리는 이 사진에 30여 년 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을 겹쳐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진은 어떤 전조 같았다. 우리가 맞게 될 삶을 예견했고, 삶은 사진을 닮아갔다.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항구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기다리며 바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역시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장소에서 그해 봄 바다와 마주쳤다. 우리도 그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_「프롤로그」에서 지은이는 이 사진과 소설가 조세희가 1980년 광주 이후에 “슬프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위”해 쓴 책(『침묵의 뿌리』)에 이끌려 이 책을 썼다. 사진은 아픈 기억을 건드려 책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제공해주었고 책은 그러한 글쓰기의 전범이 되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사진가 이갑철이 1980년대에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기억에 관해, 결국에는 그 기억이 축적되어 만들어낸 오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과 기억이 시간에 저항하면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시간’도, 우리를 짓눌렀던 ‘시대’도, 무정하게 흘려보낸 ‘세월’도 아니다.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시간,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결코 그 순간 깨닫지 못했던 이야기들, 바로 우리 자신이다.” 과거의 사진이 현재를 소환하고,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사건과 중첩된다. 이국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흑백사진들은 그러나 기묘하게도 우리의 오늘과 연결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우리가 잊고자 했지만 끈질기게 되살아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의 사진이 자꾸 오늘의 현실을 환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모든 과거가 제대로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이 사진들을 통해 지은이는 눈 돌리지 말고 제대로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한 발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억과 감정을 증언하는 사진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대체로 ‘타인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찍힌 사진가 이갑철의 작품들이다. 이갑철은 이 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타인의 땅’을 찍던 기간은 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엄청난 변화를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단기간에 도시의 외관이 바뀌었고, 외형적 변화 외에도 기존의 관습과 인습 등 많은 것들이 흔들렸다. 나는 이 과도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었고, 사진기라는 눈을 하나 더 가진 목격자였다.” _『타인의 땅』(열화당, 2016) 서문에서 이갑철의 카메라는 날카롭다. 그는 우리가 망각으로 이끌려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포착한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은이가 지적하듯 그의 1980년대 사진이 우리 앞에 들이미는 것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다. “그의 사진은 과거의 파편에 가깝다. 프레임으로 잘려버린, 파편화된 조각들. 우리에게 닥친 그 무엇으로 인해 조각나버린 시간들. 파괴된 이야기,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조각들”이다. 이갑철의 카메라는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의 목격자이며, 그의 사진은 기억과 감정의 증언이다. 이갑철의 사진에 얹힌 글들은 한편으로는 지은이의 자서전이면서 우리 각자의 초상이 되기도 한다. 책은 영화 「곡성」에서 본 듯한 낡고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오래된 집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오래전 떠나 온 이 집은 황급히 치우고 묻어버린 우리 자신의 기억, 과거, 역사의 상징물이다. 이갑철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풍경을 묘사하던 글은 지은이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가족의 탄생, 어린 시절 이야기, 또 성인이 된 후 겪은 몇 가지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개인적인 것과 집단의 기억이 섞여 들어간다. 결국 묻어버린 기억을 파헤쳐 진실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자 주제다. 세월호는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거대한 재난이었지만, 그 사건과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반복이라 기시감마저 들 정도였다.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더니 제자리에서 선 뜀박질”이었던 것이다. 『기억극장』은 사진을 매개로 벌어지는 일종의 심리극이기도 하다. 이갑철의 1980년대 사진을 한 장씩 꺼내어 보여주면서 지은이는 거기에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사진을 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독자들 또한 자신의 기억을 겹쳐놓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죽어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지”는 희망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