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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_5

제1부

빈칸 / 12
묵화를 그리며 / 14
물이 끓는 시간 / 16
촉觸 / 18
점핀 / 20
하늘 아침 / 22
투병 / 24
하얀 도화지의 소리 / 26
산동네 골목 안 오케스트라 / 28
맨홀 속 물소리 / 30
벙어리장갑 / 32
얼굴 / 34
돌아가는 길 / 36
흰지팡이 / 38
비 갠 후 / 40

제2부

까치밥 / 44
의자 / 46
곶감 / 48
입동 무렵 / 50
베란다 밖에는 지금 / 52
보름달 / 54
사랑 / 55
금몽암 해우소 / 56
하산 / 58
겨울나무 한 권 / 60
알 / 62
옆구리 / 64
문제 / 66
가시 / 67

제3부

보편적인 기도 / 70
빈집 / 72
순장 / 74
촛불 / 76
부릉회 / 78
몰락하는 바다 / 80
목련꽃 뉴스 / 82
베란다 화초 / 84
웅덩이 / 86
이름 없는 뼈 / 88
아내의 입덧 / 90
따뜻한 흙 / 92
바람의 발자국 / 94
문필봉 출사표 / 96

제4부

감자 / 100
홍역 / 102
눈빛 / 104
소꼬리 / 106
다람쥐의 손 / 108
만트라 / 110
별떡 / 112
소주 반병 / 114
산 108번지 / 116
옆집 / 118
완전한 아침 / 120
아픈 사랑 / 122

발문
어둠보다 선명한 것이 없을 이에게 | 문동만 / 123

저자 소개 1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푸른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산문집 『어둠의 감시자』 등을 냈다. 2006년 구상솟대문학상, 2007년 민들레문학상, 2008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2009년 전국장애인근로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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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41쪽 | 194g | 120*180*20mm
ISBN13
9788966550777

책 속으로

눈을 뜨고는 알 수 없는 말
단연코 들을 수 없는 말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화면 낭독 프로그램 이야기다

꺼진 모니터에 펼쳐진 텍스트
검은 여백이 내어준
활자와 활자 사이
행과 행 사이

두 눈을 크게 떠도
아무리 두 눈을 부릅떠도
아무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캄캄한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빈칸 혹은, 빈 줄이라는 말

비어 있어서 명백히
비어 있지 않다는 드넓은 소리
밤하늘에 빛나는 시공의 소리

언제나 꽉 찬 공명
먹먹하게 환한
저 빈칸 혹은, 빈 줄이라는 말
---「빈칸」중에서


틈이란 틈을 다 비집고 날아오르는
커피포트 속 물소리처럼
모든 날갯짓은 다 뜨거운 걸까

시력을 잃고 엎질러진 물처럼
내 생이 밑바닥 밑바닥으로 스미는 동안
오래전 몸속에서 식은 시간이 끓어오른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고
투명한 벽은 점점 더 두께를 키웠을까

뜨겁고 서늘함이 한바탕 뒤엉키며
고인 시간이 비등점에 이를 즈음
커다란 날개 한 쌍이 활짝 펴진다

적절한 온도의 바람이 불고
모든 틈이 사라진 여기가 바로
내가 간절히 원한 절정
그러나 지금은 잠시
펼쳐진 날개를 접어야 할 때

괜찮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끄고
한껏 벌어진 생각을 메우듯
스물네 시간 쉬지 않을 내 몸에 전원을 켠다
---「물이 끓는 시간」중에서


혀를 태우고 있다

단단한 껍질이 에워싼
말들이 녹고 있다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최후의 발바닥까지
녹아내리고 있다 타오르고 있다

시퍼런 말들의 춤이
빛나는 노래가 되어
캄캄한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뜨거운 한마디가
커다란 불새의 날갯짓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출렁이고 있다

몸속 깊이 뿌리박힌
말들의 심지가
일제히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다

---「촛불」중에서

출판사 리뷰

어두워서 밝은 시!

여기 한 권의 ‘어두운’ 시집이 있다!
‘어두운’ 시집이라고 해서 시집에 실린 작품들이 어둡다는 뜻은 아니다. 도리어 손병걸의 시는 밝다. 그런데 그 ‘밝음’은 ‘어둠’을 단지 배경으로만 하지 않고 어둠을 베어 문 상태에서 밝다. 손병걸 시인은 20년 전에 현실의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서 밝음을 발굴하는 고된 시적 노역의 길을 나섰다. 대다수의 시인들이 밝음의 세계에서 어둠을 향해 갱도를 파 들어갈 때 그는 역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몸속 깊이 고인 어둠이
고이다 끝내 넘친 어둠이
돌벼루 속에서 찰랑인다

어둠보다 선명한 것이 있을까

-「묵화를 그리며」 부분

손병걸 시인에게는 “어둠보다 선명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는 어둠의 세계이지만 언제나 빛을 향해 있으니까. 도리어 어둠을 어둡다고 말하는 존재는 그칠 줄 모르는 빛의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 빛은 “선명”하지 않고 도리어 존재와 존재가 거처하는 세계를 어둡게 만든다. 손병걸 시인의 위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이렇게 된다.

까무룩 완성된 그림 한 점 향기가 명쾌하다

이쯤 되면 손병걸 시인을 ‘어둠의 시인’으로 명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손병걸 시인이야말로 빛의 시인이며 그의 빛은 기존의 빛을 역설적으로 의문에 부친다. 그래서 이런 구절이 가능한 것이다.

비어 있어서 명백히
비어 있지 않다는 드넓은 소리
밤하늘에 빛나는 시공의 소리

언제나 꽉 찬 공명
먹먹하게 환한
저 빈칸 혹은, 빈 줄이라는 말

-「빈칸」 부분

통증을 켜다

하지만 손병걸 시인의 이런 관점들이 어떠한 시적 필연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일종의 정신 승리 또는 자신의 ‘장애’를 갑옷으로 한 인정투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손병걸 시인의 ‘밝은’ 작품들을 허투루 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시에는 어떤 아픔들이 생선 가시처럼 작품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손병걸 시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빗물 고인 병실 창문에서
아침 햇빛이 반짝거린다

참다못해 먹구름 녹아내리듯
내가 몽땅 흘려보낸 눈물이
종내엔 돌아와 창문을 적셨으니

빗소리를 외면한 새벽녘
지나치게 네 안이 건조했던 건
지극히 옳다

(…)

절망의 태풍이 휩쓸고 간
네 속에 뜨거운 사막을
갈증으로만 여기지 않겠다

-「투병」 부분

아직도 그에겐 “불치의 빗줄기가 흘러 몸이 패”인 자리가 있다. 다만 그 ‘패인 자리’를 “넓은 바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공존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힘’이 무엇인가는 시에서 드러내기 쉽지 않지만 아무튼 이 ‘힘’으로 손병걸은 시를 쓰고 있는 것이며 그 시는 통증을 켜는 스위치 역할도 한다.

꺼진 별들 뒤에 감춘 통증을 켜야
별똥별 점자는 멀리 빛나는 것
이것이 시력 없는 내 생활의 활자이다

(…)

와글와글 모여든 별빛이 흘러가면
비로소 먼바다에 해가 솟듯
꺼진 별들을 켜는 내 문장은
명백한 실존이다 농도 짙은 기록이다

-「점핀」 부분

통증을 켜서 “별똥별 점자”를 멀리 빛나게 한 다음에 손병걸 시인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빛을 밝히는 어둠

죽지 못해 살아 있어 살아야 할
나도 분명 할 일이 있다 아내와 현관문을 열고
불빛 한 점 없는 빈집의 불을 켜야 한다
여전히 차가운 바다 밑인 듯
구명조끼를 동여맨 아이가 갇혀 있다

-「빈집」 부분


어디에도 따스한 4월은 없다 급기야
와르르 무너진 하늘 아래 시푸른 생매장
누대에 누대를 걸쳐온 악마들의 권력이
비로소 부족분의 순장을 완성했다

-「순장」 부분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최후의 발바닥까지
녹아내리고 있다 타오르고 있다

시퍼런 말들의 춤이
빛나는 노래가 되어
캄캄한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촛불」 부분

마냥 어둠에 산다고 느꼈을 법한 손병걸 시인의 시는 어느새 이렇게 이른바 빛의 세계로 성큼 나와 있었다. 「빈집」과 「순장」은 우리가 잊지 못할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다음에 시인이 내보인 자신의 다른 내면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소리로 세상을 보는 시인에게 바닷속에 가득 찬 비명과 공포들이 안 들렸을 리 없다. 「빈집」은 바다에 갇힌 영혼들을 위해 불빛을 켜는 작품이고 「순장」은 바다에 “시푸른” 영혼들을 가둔 “악마들의 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작품이다.
또 「촛불」은 명백히 지난겨울 얼어붙은 광장을 녹인 ‘촛불’에 대한 헌시이다. 손병걸 시인에게 지난겨울의 “촛불”은 “말들의 춤”이었고 “빛나는 노래”였다. 이제 그의 어둠은 “춤”으로 “노래”로 그 진화의 방향을 잡은 듯하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은 그는 언제나 깊이 모를 ‘어둠’을 뒷배로 하고 있다는 것이며, 거기가 바로 실존의 토대라는 것이다.

어둠에서 사는 삶처럼 강한 게 있으랴!

시인의 말

슬픔 한 짐 지고 길을 걷는다
가도 가도 도무지 끝이 없다
부은 발목을 부여잡고 이대로 부서져 내리듯
바람에 흩어져도 좋겠다 싶을 때
빗방울 흠뻑 내린다 이마에 소금 알갱이들은
젖은 유도블록과 유도블록 사이에 스민다
애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니
발소리는 멈춤 없이 어두울 것이다

추천사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본다는 것, 믿는다는 일은 자기 안에 잠재되어 무한히 확장되어 나갈 수 있는 수천수만 갈래 길의 사유와 상상력을 가두어버리며 비좁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오래전 강화도의 한 농원으로 시낭송을 하러갔다가 검은 안경을 쓰고 기타를 든 이를 만났다. 비가 부슬거리는 날이었는데 굳이 색안경을 썼을까 하며 무대의 흔한 소품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아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아차! 미안했다.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 이용복을 떠올렸다.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시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좌중을 휘어잡으며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의 넉살과 재치와 밝은 웃음에 한 번 더 놀랐다.
그의 시를 읽다 소름이 돋듯 깜짝 놀라고는 한다. 그가 혹시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일기도 했다. 장년이 된 뒤에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훨씬 뒤에 알았다. 그 지독한 절망의 터널을 어찌 더듬어 건너왔을까. 우리가 어두운 시대의 질곡을 걷어내며 광장으로 향했듯 손 시인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언어를 길어 “점핀”의 “흰지팡이”를 두드렸을 것이다. 시인은 무릇 보이는 너머를 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얀 도화지의 소리”를 그리는 손병걸 시인의 시를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
_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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