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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고려 땅을 휩쓴 폭풍우
2장 고려의 멸망, 조선의 건국 3장 두문동으로 사라진 고려의 신하들 4장 이방원의 야망과 정도전의 죽음 5장 정종과 황희의 대립 6장 태종의 시대 7장 양녕대군을 보호하려는 황희 8장 세종과 황희가 만든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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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이재 양성 기관인 자제위(子弟衛)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그의 행위는 걷잡을 수 없이 문란해져 갔다. 그러다 홍륜이 익비를 범하여 임신시키자, 이를 은폐할 의도로 홍륜·최만생 등을 죽이려다가, 그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신돈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떠돌던 우왕(고려 제32대)이 왕위에 올랐다. 그 무렵에 중국 대륙에서도 큰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새로 일어난 명나라가 원나라를 몽고로 내쫓은 뒤에 차츰 북쪽 만주 지방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그런 혼란기에 태어난 황희가 관직에 나간 것은 14살 때 음서로 복안군의 녹사에 보임되면서부터였다. 복안궁 녹사란 궁에서 사무를 보는 서기로 비교적 낮은 벼슬이었다. ---‘고려 땅을 휩쓴 폭풍우’ 중에서
정종 원년인 1399년 3월에 정종은 개경으로 천도를 명했다. 정종은 무엇보다 왕실의 내분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패기만만한 이방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썼으며 왕자들에게는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게 하거나 가난하거나 권력이 없는 집의 자식처럼 처신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기도 했다. 황희가 유배에서 풀려나 개경으로 돌아온 것은 1399년(정종 1)이었다. “황희에게 보궐(정6품의 간관) 벼슬을 내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황희는 1년도 안 되어 정종과 마찰을 빚었다. “양홍도를 낭장에 임명하고 교첩을 내리려하니 문하부는 승인을 내리도록 하시오.” 하지만 황희를 비롯한 문하부 낭시들이 정종의 명을 거부했다. ---‘정종과 황희의 대립’ 중에서 시중드는 아이가 울면서 황희에게 물었다. “대감마님께서 이렇게 돌아가시면 소인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갑니까?” 그러자 황희는 조용히 대답했다. “공작은 날거미줄만 먹고도 사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그리고 얼마 뒤, 황희는 눈을 감았다. 그때 나이 90세였다. 황희가 세상을 뜬 뒤에 중국에서 공작 한 쌍을 조선에 보내며 잘 길러서 돌려보내라고 했다. 공작은 조선의 새가 아니어서 아무도 공작의 먹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황희가 온갖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조정 관리가 황희 집을 찾아가 물었다. “날거미가 공작의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중드는 아이는 황희의 마지막 말을 전했고, 과연 공작은 날거미를 먹으며 잘 자라주었다. 문종은 그 말을 전해준 아이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세종과 황희가 만든 세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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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통쾌한 모험!
성장기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역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공부이다. 다른 나라 역사보다 우리나라 역사를 더 알아야 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역사를 이끌고 가는 것은 인물이다. 역사를 이로운 길로 이끈 인물이건 나쁜 길로 이끈 인물이건 역사에서 인물이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한 인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많고, 역사로 인해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그 시대의 중요한 인물을 알아야 하고, 인물을 통해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인물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 그 사람 삶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절망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도 모두 함께 담겨 있어야 한다. 또 그 사람의 행동은 당시 사회 상황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 인물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바꾼 인물·인물을 키운 역사’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청소년,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부담 없이 읽고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엮는 것을 최우선 방향으로 잡았다. 인물 이야기는 백과사전이 아니다. 한 사람을 역사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제대로 쓰인 인물 이야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하늘이 내린 인물이나 신적인 존재로 그려진 그런 인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대로 쓰인 인물 이야기가 필요할 때다. 또한 역사는 결코 지난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언제든지 새롭게 발견되고 새롭게 해석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우리의 역사는 오랜 세월 동안 왜곡되고 사라진 부분이 많은 만큼 연구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 역사의 국통을 아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섬겨 왔던 조물주의 창조 섭리,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봄·여름·가을·겨울을 살아왔느냐 하는 삶의 과정과 역사의 깊은 섭리를 아는 것이다. 그러자면 여러 가지 학설과 주장을 두루 듣고 연구해서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그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를 움직인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