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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프롤로그: 그 이야기 1. 태초의 찬란한 불꽃 2. 은하들 3. 초신성 4. 태양 5. 살아 있는 지구 6. 진핵생물들 7. 식물들과 동물들 8. 인간의 출현 9. 신석기 촌락 10. 고전 문명들 11. 국가의 융성 12. 현대의 계시 13. 생태대 에필로그: 경축 역자 후기 시대표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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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적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 신부가 들려주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다른 모든 생명체의 사촌이다! 2009년 1월 인간중심의 문명에서 생명중심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대기획『위대한 과업』의 출간에 이어 2010년 10월 토마스 베리의 생태사상의 핵심이자 우주의 역사를 밝혀주는 심오하고 방대한 저작『우주 이야기』출간! “백 년에 한 번, 인류 가운데 심오한 명료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토마스 베리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_『블룸베리 리뷰The Bloombury Review』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서구 산업 물질문명에서 야기된 지구 생태계 파괴이며, 생태계 파괴의 표면적 이유는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에 퍼진 과학과 기계 기술의 오용에서 찾을 수 있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설정해줄 수 있는 적절한 우주론이 없다는 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우주론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주는 전체적 맥락의 역할을 한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2009년 1월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생태적 우주론과 영적 우주론으로 전환해야 함을 주장하며 정치와 종교,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생태적 우주론에 기초한 대변혁이 일어나야 함을 주장한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을 번역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의 생태사상의 핵심인『우주 이야기』를 출간했다. 두 책 모두 방대한 지식과 시적인 문장으로 인해 매우 까다로운 번역을 요구하는 힘겨운 작업이었다.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오랜 시간 여러 프로그램의 기본정신으로 유지해온 ‘생명 존중을 향한 대안문화 지향’이라는 철학이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을 출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The Universe Story우주 이야기, 태초의 찬란한 불꽃으로부터 생태대까지 생태계 위기 상황의 극복을 위한 토마스 베리의 대안은 ‘생태대(Ecozoic era)’로의 비약이다. 베리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신생대에서 생태대로 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생태대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에게 과학적 우주론과 종교적 우주론을 통합한 새로운 우주론을 문화적(역사적) 이야기(story)의 형태로 제안한다. 이야기란 인간과 세계와 신을 연관짓는 시나리오이다. “이야기는 우주가 태초에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관한 설화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게 되고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신적 활력을 얻는다.” 우주 이야기란 우주와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현존하는 실체들이 창조되었는지, 어떻게 인간이 그 거대한 우주 안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우주이야기에서 우주 안의 생명 실체에 대한 궁극적 의미와 기원과 질서를 찾는다. 우주 이야기는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줄뿐만 아니라 신적 존재와 타인의 존재를 어떻게 보는가를 결정해 주기도 한다. 우주 이야기는 종교 사상의 원시적 산물이다. 우주의 본질과 기원에 대하여 말하는 우주 이야기는 원시 종교들의 신화들 속에서 잉태되어, 우주와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과학 시대 이전,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우주론을 창조 신화(myth)와 창조 이야기(story)로서 표현하였다. 종교적 창조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종교적 물음과 해답들이다. 종교적 우주 이야기의 의도는 바로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종교는 이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본다. 창조란 바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이 세계가 그냥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떤 위대한 초자연적 힘에 의하여 의지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주는 질서도 이유도 없이, 방향도 과정도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우주와 인간에게는 그 어떤 초월적 요소가 있고. 그 요소 속에는 질서와 의지와 이유와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그 이유는 정신적이며 논리적이다. 우주와 인간은 물 질적이고 기계적인 질서와 계통을 유지할 뿐 아니라 이성적이고 지적인 보다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 유지되는 뚜렷한 목적과 방향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 안에서 완성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으며, 신과 논리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이렇게 인간의 책임을 우주적 차원에서 찾는 것이 종교이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우주와 인간의 관계이?, 인간의 우주 안에서의 위치이다. 종교적 우주이야기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바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묻는 것이다. 우주 이야기는 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과 이해, 즉 세계관(world-view)을 반영한다. 세계관이란 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특별한 인식과 이해이다. 세계관은 우주에 대한 총체적 관점으로서의 우주관과 인간 삶에 대한 태도로서의 인생관과 삶에 대한 가치 기준으로서의 윤리관으로 나타난다. 세계관은 한 인간의 전체적 생활 방식, 즉 행동양식, 사고방식과 관계 양식들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세계관에는 신적 존재에 대한 어떤 감각이나 궁극적인 가치와 원리로서 인식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 차원을 신 또는 여신이라 부른다. 또한 세계관에는 인간이 시간과 물리적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 감각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이 물리적 세계의 원리와 법칙을 반영해야할 뿐만 아니라 우리 우주와 행성 지구를 지배하는 법칙들과 원리들과 역학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지배적 우주론은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에 그대로 반영되며, 한 인간의 삶은 그 사람의 세계관으로부터 드러난다. 오늘날 서구 문명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부장제(patriarchy), 이원론(dualism), 환원주의(reductionism)와 과학적 물질주의(scientific materialism)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종교적 우주론과 과학적 우주론으로부터 우리에게 입력된 것들이다. 한 공동체의 우주론은 그 사회의 세계관으로 나타나 그 사회를 지배한다. 그 결과 우주론은 사회 계급을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간-지구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현재의 생태계 위기는 바로 우리 시대의 지배적 세계관, 즉 우주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성서적 우주론과 근대 과학의 기계론적 우주론이 결정적으로 생태계 위기를 유발한 세계관을 모양 지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토마스 베리는 “우주 이야기가 더 이상 그 시대의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생동감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주 이야기에는 그 사회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가치들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리는 현재의 생태계 위기 상황 또한 우리가 “건전한 우주 이야기를 갖지 못해서 봉착한 난관”이기 때문에,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우주의 출현과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제시하는 ‘새로운 우주 이야기’, 즉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으로부터 착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베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예전의 전통적인 종교 이야기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을 우리 시대에 제공해 줄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리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에서, 즉 기본적 이야기,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사물들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미래를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교육할 이야기, 우리를 치유하고 인도하며 단련할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바로 이것이 베리가 ‘새로운 우주 이야기’를 제안하는 이유이다. 사회?정치?경제적 불안정성과 군국주의뿐만 아니라 생태계 위기가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우주론과 상호의존성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시동력이 되었다. 툴민(S. Toulmin)은 우리 시대를 근대 프로그램의 마지막으로 묘사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제들, 즉 전쟁, 생태계 파괴, 가난, 불의, 기아 등은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우주론이 처한 위기의 다른 면들이며, 이러한 위기는 우주론을 고쳐 만듦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생태학적 세계관은 우주론의 회복, 즉 전체로서의 우주, 우주 안의 모든 것이 그 안에 함께 통합되어 있는 우주를 주장한다. 그러한 우주론만이 우리로 하여금 세계에 대하여 다시 매혹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우주론이 없는 종교의 시대와 종교가 없는 우주론의 시대를 거쳐 이제 종교적 신비와 영이 어우러진 우주론의 시대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생태학적 세계관이 제안하는 우주론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제안하는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어떤 종교적, 신학적 우주론이 생태학적으로 적합하다 해도 우리가 우주론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은 과학이다. 문제는 과학이 우주에 대한 우리 이해를 더욱 발전시키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위기에 적합한 우주론은 과학적 이론보다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영감을 요구한다. 우리 시대는 신에 대한 관점을 일관성 있게 하는 진화적 우주론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진화적인 우주론이 과학적으로 조명되고, 문화적으로 이야기되?야만 생태계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과학적 우주론만이 문화적 이야기 안에 종교적 이야기를 넣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리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우주이야기』는 과학적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 관찰보다 선행하는 실재가 있다. 우주 이야기를 구성함에 있어 베리는 과학적 사실에 종교적 요소를 가미시킨다. 그는 새로운 우주론의 과학적 개념들에 주의를 기울인 다음, 여기에 종교적 감성을 접목시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룬다. 베리는 우리가 물리적 우주로 알고 있는 것을 기초로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자애로운 특별한 우주론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베리가 이렇게 과학과 종교와 역사를 통합하여 새로운『우주 이야기(The Universe Story)』를 제안하는 이유는 새로운 인간-지구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정신적, 영적 자원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우주이야기』는 생태대 실현을 위한 비전이다. 『우주이야기』는 이미 생태대의 한 부분이며 생태대를 시작하기 위한 요청이라고 베리는 말한다. 토마스 베리는 현재 인류가 신생대 말기 산업 문명이 초래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지금 생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생태대는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시대인 현생대(Phanerozoic Eon)를 고생대(Paleozoic era), 중생대(Mesozic era), 신생대로 분류하는 과학 전통으로부터 유래된다. 베리는 신생대 이후 지구에 나타날 지질학적 시기로서 생태대를 제안한다. 베리에 의하면 생태대는 전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 구성원들의 친교를 바탕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치유하는 시기”이다. 꽃과 나무 그리고 새와 포유동물 같은 다양한 신생대의 생명 양식들이 인간 종( L)에 의해 공격을 받아 퇴화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신생대의 다양한 생명 양식들을 지나치게 손상시켰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지구 질서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물과 공기와 토양 같은 기본 생명 유지체계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으면서도, 우리가 야기한 이 상황들에 대하여 아직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장구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자연의 균형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지구로부터 석유를 갈취하여 열과 에너지와 플라스틱 등 수많은 용도들을 위하여 사용하면서 그 부산물들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엄청난 양의 보고서들이 지금 우리 앞에 샇여 있다. 이 보고서들은 현재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층적 교란과 생물종( L)들의 멸종, 우림 지대의 절멸, 그리고 토양과 대기와 물 등의 오염 등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렇게 인간의 오만이 지구에 미친 영향들이 재평가되고 있으며, 인간이 처해 있는 현 상황이 보다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다. 토마스 베리가 제안하는 생태대는 상호증진적인 인간-지구 관계에 의해 특징지워지며, 또한 인간 스스로 지구의 생물학적 과정들에 대한 기계적 조작을 포기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제한된 자연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 마음대로 자연 세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 기술이 내포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 기술로 기본적인 생물학적 법칙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생태대는 모든 존재가 중심이 되는 생명 문화의 시대이며, 생명에 대한 친밀한 관심이 생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생태대의 생명 문화로 들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그 무엇보다 지구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워야 하며 회개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만 한다. 특히 생태대는 우리가 야생 피조물들을 위하여 남겨두는 서식지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다. 모든 생물 종들은 당연히 그들의 서식지를 가질 권리가 있다. 토마스 베리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생태대의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생태대는 이 우주가 착취되어야 할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친교를 나누어야 할 주체들로서 구성된 것이라고 할 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우주를 객체들의 집합이라고 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으므로 지구와의 친밀감을 회복시켜야만 인간-지구의 상호증진적 관계가 가능하다. 둘째 생태대는 지구가 오직 총체적으로 기능할 때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지구는 수많은 생태지역(bioregion)을 갖고 있으면서도 통일성을 이루는 하나의 실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구를 가이아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셋째 생태대는 이 지구가 우리에게 단 한번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두 번째 기회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지구를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영원히 대체될 수 없다. 넷째 생태대는 지구가 일차적이며 인간은 부차적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지구공동체는 인간에게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지구공동체로부터 파생되었다. 따라서 모든 인간 활동은 지구가 일차적이라는 사실에 맞추어 조정되어야만 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이 지구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 지구공동체가 우선시 되지 않는다면 지구공동체의 미래는 없다. 다섯째 생태대는 새로운 윤리원칙, 즉 종의 학살(biocide)과 지구학살(geocide)이 절대 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 윤리원칙이 필요하다. 여섯째, 생태대는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 즉 우주의 신성한 차원을 깨닫는 감수성을 필요로 한다. 즉 우주를 주체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역할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생태대라는 이 비전에도 어두운 측면은 있다. 그것은 산업 문명의 해체로 인한 고통과 생태대가 초래하게 될 혼란이다. 인류의 산업문명은 이제 희생의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경제가 제일 먼저 위축될 것이다. 이것이 생태대 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희생이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구에서 인간의 역할을 새롭게 고치는 일, 우리 경제를 개혁하는 일, 우리의 교육, 법, 종교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일 등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희생의 중요성은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새로운 존재양식을 찾아내는 과정 또한 요구된다. 희생적 존재양식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자아(??라는 관점에서 보다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자아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 자아, 가족적 자아, 사회적 자아, 지구적 자아, 우주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 희생이란 궁극적으로 보다 큰 자아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보다 큰 자아가 보다 작은 자아로 인해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보다 작은 자아는 보다 큰 자아를 위해서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이 본래적인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보다 큰 자아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의 보다 큰 자아는 생태대에 존재한다. 우리가 생태대로 도약하지 못하면 지구의 미래는 기술대(Technozoic era)가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만일 현재의 공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나 에너지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 소비를 제한하고 재활용하려는 우리의 노력들이 산업문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생태대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노력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목적 즉 생태대 실현을 위해서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자연적인 생물학적 과정을 지금처럼 유전공학이나 그와 비슷한 기계적 통제를 통하여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사실 자연세계의 황폐화가 분명한 현 시점에서도 생태대라는 비전은 기술대라는 비전을 상쇄 시킬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이미 고착되어 버린 산업화 과정을 계속 밟아가는 길밖에 없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생태대라는 비전은 낭만주의도 이상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지구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다. 그것은 지구의 역사적 변화뿐만 아니라 계절적 변화, 지구 생태지역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일관성, 지구의 실용적 기능뿐만 아니라 계시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인간이 자연에 개입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역동적인 자연계를 지배할만한 힘을 우리 인간은 갖고 있지 않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다. 지구는 스스로 번식하고 스스로 양분을 취하고 스스로 교육하고 스스로 통제하고 스스로 치유함으로써 자기실현 하는 자기-조직 공동체(Self- organizing Community)이다. 이러한 지구공동체에 인간 활동을 통합시키는 것이 우리가 생태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신생대로부터 생태대로 지구의 기능이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신생대의 출현과 형성에 인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생태대의 출현에 있어서 인간은 거의 모든 분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의 기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의 기능을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생태대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세계가 그 나름대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독특한 생명체인 지구는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것이다. 지구공동체의 미래는 지구의 모든 구성원들, 즉 인간과 땅과 모든 생물의 단결된 유기적 작용에 의하여 형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