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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
책머리에 책의 구성에 대하여 <도덕경>의 시대상 노자와 공자의 대화 장자에 대하여 제1장 명名/제2장 무위無爲/제3장 위무위爲無爲/제4장 혹존惑存/제5장 불인不仁/제6장 현빈玄牝/제7장 신존身存/제8장 상선上善/제9장 신퇴身退/제10장 현덕玄德/제11장 무지용無之用/제12장 목복目腹/제13장 애신愛身/제14장 도기道紀/제15장 도자道者/제16장 불태不殆/제17장 태상太上/제18장 대도大道/제19장 소박素樸/제20장 식모食母/제21장 도덕道德/제22장 천하식天下式/제23장 희언希言/제24장 췌행贅行/제25장 도법道法/제26장 중정重靜/제27장 요묘要妙/제28장 대제大制/제29장 신기神器/제30장 부도不道/ 제31장 불상不祥/제32장 지지知止/제33장 구수久壽/제34장 불위주不爲主/제35장 대상大象/제36장 미명微明/제37장 박樸 덕경 책 머리에 책의 구성에 대하여 <도덕경>이 잘못 읽혀져 온 이유 <도덕경>의 판본에 대하여 제38장 상덕上德/제39장 득일得一/제40장 반약反弱/제41장 문도聞道/제42장 물생物生/제43장 지유至柔/제44장 지족知足/제45장 청정淸淨/제46장 상족常足/제47장 불행不行/제48장 익손益損/제49장 무상심無常心/제50장 생사生死/제51장 존귀尊貴/제52장 모자母子/제53장 이경夷經/제54장 이관以觀/제55장 적자赤字/제56장 지자知者/제57장 무사無事/제58장 무정無正/제59장 조복早服/제60장 소선小鮮/제61장 취국取國/제62장 좌진坐進/제63장 이세易細/제64장 종사從事/제65장 계식稽式/제66장 선하善下/제67장 삼보三寶/제68장 불여不與/제69장 용병用兵/제70장 지기知己/제71장 병병病病/제72장 대위大威/제73장 천망天網/제74장 상수像手/제75장 구생求生/제76장 유약柔弱/제77장 장궁張弓/제78장 정언正言/제79장 계철契徹/제80장 소과小寡/제81장 천지도天地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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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도기(道紀)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부득 명왈미. 이경숙: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니 이름하여 희(希)라 하고, 얻지 않고도 잡은 듯이 알 수 있음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김용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라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라하고,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라한다. 오강남: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이름하여 이(夷)라 하여 봅니다.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 희(希)라 하여 봅니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 이름하여 미(微)라 하여 봅니다. 최진식: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일컬어 미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일컬어 희라 하며, 만져 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일컬어 이라 한다. 윤재근: 보아도 보이지 않음을 일러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을 일러 희(希)라 하며, 잡아도 잡히지 않음을 일러 미(微)라 한다. 이경숙 해설: 이 장은 『도덕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고전의 번역에서 부딪히게 되는 매우 미묘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즉 한자라는 그림문자로 사람의 복잡한 사유 내용을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겠느냐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보고 글쓴 사람의 의도한 바대로 읽어낸다는 것 역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자로 쓰여진 옛 글은 하나의 문장만으로는 어떤 의미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문장이 많다. 왜냐하면 한 문장을 번역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 문장을 가지고 우리말로 옮기게 되면 열 명이 옮긴 내용이 전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한자는 사람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기는 소리글자가 아니기 때문에 네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정리해야 한다(생각→말). 그 다음 말로 정리한 생각을 그림문자를 이용해서 번역해야 한다(소리→그림). 그리고 읽을 때 그 그림을 보고 다시 소리인 말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그림→소리). 그런 다음에 그 말의 뜻을 다시 생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소리→생각). 이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단계별로 조금씩 달라지면 나중에는 아주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의 문장만을 보고 의미를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때문에 고전을 올바르게 반역하고자 하면 그 문장의 앞 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서 어떤 장 전체에서 화자話者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 지를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 장 내에서도 그것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런 대목은 그 책의 전체를 살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는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냐 하면, 한자라는 문자가 갖는 표현의 한계를 글을 쓰는 사람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말의 뜻을 읽는 사람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염려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장 또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의미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배려를 유리는 놓치면 안 된다. 『도덕경』은 문자가 갖는 한계를 쓰는 사람의 기술과 배려로써 극복한 뛰어난 사례이다. 읽는 사람의 오독誤讀이나 오해誤解를 피하기 위하여 노자가 기울여놓은 세심한 주의와 문장의 배열, 그리고 의미의 일관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감복하게 만들 정도이다. 그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오직 문장 하나의 문법이나 용례 같은 것에만 매달려서 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도덕경』 연구였다. 고전은 전체를 통괄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장을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도 왜 그런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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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의 번역에 기초하여야 한다. 아니면 어떤 사람의 번역에 기초해서 해석만 붙였을 뿐이라는 명확한 집필 의도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원문을 직접 번역하였음을 밝힌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해석서의 잘못된 번역들을 바로잡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읽는 사람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읽어갈 수 있도록 체제를 구성했고, 자전을 뒤지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원문의 뜻을 독자들이 나름대로 풀어볼 수 있도록 나오는 대부분의 한자의 뜻을 실어두었다. 한자를 깊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기 식의 번역을 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여러 가지 판본이나 관련 문헌의 연구를 통해 고전의 내용에 대한 진위를 구분하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고도 전문적인 영역의 일에 속한다. 그러나 성서를 연구하는 것과 그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여 신앙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가 고전이라 말하는 책들은 그런 진위의 논란이 일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읽고 배워야 할 가치 있는 선인의 말씀들로서 전해져 온 것이다. 때문에 그런 연구와 논쟁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자. 이 책은 그런 전문가들을 상대로 쓰는 학술적 논문이 아니다. 고전을 좋아하고 또 노자의 사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을 위한 『도덕경』의 주해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본별 차이점에 대한 분석이나 진위 규명은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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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읽고 마음으로 뜻을 얻는『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 본문 전체에 걸쳐 원문과 관련된 춘추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명쾌한 해설과 당시 시대상과 사상적 배경이 되는 풍부한 일화가 실려 있어 노자의 고뇌와 목소리를 독자들도 느낄 수 있다. ● 시중에 나와 있는 대다수의 고전 번역서가 원문을 직접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해설을 공부하고 모아서 다시 하나의 책으로 마치 자기의 순수 번역인양 내놓는 사정을 고려할 때 저자가 직접 번역하였음을 책머리에 밝힌 것도 그의 내공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 문체는 노자를 화자로 해서 노자가 바로 앞에서 들려주는 듯한 노자의 진의가 더욱 독자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고대화체를 썼다. ● 원문의 향기가 느껴지는 제대로 된 번역.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되고 그 자체로 그럴듯해도 원문의 직역이 잘못되었다면, 즉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을 뿐더러 원작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 원저자의 사상이나 고전의 향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종국에는 이상한 번역만 남게 되는 것이다. ● 책 전체에 걸쳐 고전 번역의 기본기와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이론을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한문으로 쓰여진 고전 원문을 독자 스스로 원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책 전체의 체제를 잡았다. 그래서 독자들이 갖는 고전의 원문에 대한 기피와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모든 원문에 우리말 음을 달았고, ● 자전을 뒤져보는 수고를 줄이도록 자의를 달았으며, ● 모든 원문과 전문을 써볼 수 있도록 쓰기란을 두었다. ● 도덕경의 주해서로 『장자』를 원용하여 장자 원문도 본문과 같은 체제로 구성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은 장자를 통해 도덕경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도덕경 한 권으로 장자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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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된 여자 이경숙
그녀가 『도덕경』을 읽으면서 떠올렸다는 장면을 함께 보자. 나는 『도덕경』이란 책을 볼 때에 장강長江을 거슬러오는 뱃머리에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복수의 화신인 오자서가 서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손무의 호령 아래 영성?城을 포위한 오군의 함성이 들리고 불타서 무너지는 영성의 성곽과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울부짖던 초나라 사람들의 비명이 들린다. 역시 그 초나라가 저질렀던 무수한 침략과 약탈로 숨져간 원통한 민초들의 절망과 비탄이 생각난다. 『완역 이경숙 도덕경』에는 본문의 전체에 걸쳐 원문과 관련된 춘추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명쾌한 해설과 당시 시대상과 사상적 배경이 되는 풍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예를 보자. 노자의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초는 원래 주나라의 제후국이 아니었다. 초나라 왕의 조상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보육保育을 맡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어린아이를 돌보는 보모保姆의 역할을 한 남자였을 것이다. 전하는 이름은 죽웅?熊이다. 대대로 주나라의 왕실에서 어린 왕손들을 돌보는 하인이나 다름없던 것 같다. 하지만 왕들이 어릴 때 열심히 돌봐준 공을 인정받아 주성왕周成王 때 죽웅의 증손자인 웅역熊繹이 자작子爵에 임명되어 황무지나 다름없던 먼 남쪽의 작은 땅을 봉토로 받게 된다. 그러나 천하의 제후들 중 이것을 제후국으로 인정해주는 나라는 없었고 오랑캐라는 뜻의 형만荊蠻이라 불렀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져 춘추시대로 접어들 무렵인 주환왕 때에 이르러 작위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주왕실이 거부한 것을 빌미로 독자적인 왕호王號를 사용하게 된다. 초나라의 첫 번째 왕이 초무왕楚武王인 웅통熊通이다. 초나라는 황하黃河 문화라 할 수 있는 중원과 달리 독특한 장강長江문화의 중심지로 세력을 확장해서 공자가 태어나기 63년 전인 B.C. 614년에 왕위에 오른 초장왕楚莊王은 천하 열국의 맹주盟主가 되어 춘추오패春秋五覇에 끼일 만큼의 강대국이 되기에 이른다. 노자의 조국인 진陳을 멸망시킨 초나라는 B.C. 506년에 일시적으로 멸망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노나라에서 양호의 난이 일어나기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이때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군대를 격파한 오나라 군대의 총사령관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을 남긴 병가兵家사상의 시조 손무孫武였다. 손무와 오자서伍子胥가 이끄는 오나라의 군대가 초나라의 수도 영성을 함락시키고 초소왕은 달아났다. 오군에 함락된 초나라 수도 영성은 목불인견의 지옥으로 화했다. 오나라 왕 합려闔廬는 초소왕의 어린 부인과 잉첩들을 번갈아 가며 욕보였고 장수들은 초나라 대신들의 집을 닥치는 대로 점거하고 아녀자들을 폭행하였고 일반 군사들까지 약탈 방화 강간을 자행했다. 오왕과 오자서는 이것을 만류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고무 권장하였으니 그것이 다 오자서의 복수극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자행한 끔찍한 만행 중에 압권은 초나라의 종묘를 파헤치고 죽은 초평왕礎平王의 시신을 무덤 밖으로 끌어내어 구리로 만든 채찍으로 두들겨 가루로 만든 사건이었다. 물론 오자서가 직접 한 짓이다. 오자서는 초평왕의 시신에서 두 눈알을 후벼내고 배를 밟고 목을 끊은 후 구리채찍으로 가루가 될 때까지 두들겼다. 오나라 군사들까지도 외면할 정도로 그것은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런 인간의 행위에 몸서리를 치고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 중에 노자도 들어 있었다. 중원의 어떤 강대국도 손대지 못했던 남쪽의 대국 초나라가 겪은 참화를 보면서 노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연민을 넘어 선 환멸을 느끼지 않았을까? 초나라가 어떤 나라였나? 멸망 직전까지 말했다시피 춘추오패의 당당한 일국이었고 중원의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하던 강국이었다. 그런데 이 강국 초나라가 힘을 믿고 저지른 일들을 살펴보자. 초소왕의 아버지인 초평왕은 자기 아들인 세자 건建의 부인으로 보내온 맹영孟?이란 진나라 공주를 뺏어다가 자기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그 대신 맹영의 몸종으로 딸려 온 동강이라는 여자를 진나라 공주라고 속여서 아들과 혼례를 시켰다. 그래놓고는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감정을 품지 않을까 염려하여 변방으로 보내버리고 나중에는 자객을 보내 죽이려 하였다. 세자 건은 아버지의 살수殺手를 피하여 송나라로 도망쳤다. 그러나 초평왕의 비위를 거슬릴 것을 우려하는 송宋나라에 오래 머물 수 없어서 다시 정鄭나라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초평왕은 아들에게서 빼앗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삼았다. 이때 죽은 세자 건의 스승이 바로 훗날 초나라를 멸망시키게 되는 오자서의 아버지인 오사伍奢다. 초평왕은 세자가 달아나자 세자의 스승인 오사와 그의 큰아들을 죽였는데 오사의 둘째 아들인 오자서는 세자가 있던 송나라로 달아나 목숨을 구하게 되고 세자와 함께 정나라로 갔다가 그곳에서 세자가 죽임을 당하자 오吳나라로 도망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꾀하게 된다. 불세출의 병법가인 손자는 원래 제나라 사람인데 이때 오자서가 오왕 합려에게 천거하여 오군의 대장이 되어 초나라를 격파하고 『손자병법』이라는 불후의 병서를 남겼다. 세자 건建이 정나라로 도망쳐 왔을 때 정나라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자산子産이 막 죽은 직후였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는 젊은 시절 자산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하고 공자 역시 자산에 대해서는 극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연배 차이가 많이 지는 자산이 어린 공자와 형제처럼 지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지만 공자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시절에 여러 곳을 다녔던 같다. 아마 노자도 이런 젊은 시절의 유랑기에 만났는지 아니면 노나라의 사신으로 초나라에 가던 도중에 만난 것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두 성현이 살았던 시대가 이처럼 막가는 세상이었다. 유교와 노장사상은 그런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었던 것이다. 오자서가 무덤 속에서 꺼내 눈알을 파고 배를 가르고 그 살과 뼈를 부순 초평왕은 오자서의 부친과 형을 죽인 원수였다. 그러나 오군이 약탈하고 짓밟은 땅은 그가 태어난 고향 땅이었다. 오자서에게 쫓겨 나라를 잃은 초소왕은 바로 세자 건에게 시집가는 줄 알고 초나라로 왔다가 그 시아버지의 부인이 되어버린 맹영이 낳은 아들이었다. 이 초소왕도 교만하기는 그 아비와 다를 바 없었다. 초나라 이웃에 당唐과 채蔡라는 소국이 있었다. 두 나라 공실이 갖고 있던 보물이 탐이 나서 초나라에 인사를 하러 온 두 나라 군주를 감옥에 처넣고 협박해서 기어코 보물을 갈취한 사람이 초소왕이었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들은 비단 초나라의 일만이 아니었고 춘추전국시대의 일상이었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를 놓고 다투고 일국의 왕들이 보물 하나를 놓고 싸우고, 왕이 신하를, 신하가 왕을,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던 시절이었다. 훗날 유가에서 말하는 인이나 덕은 찾아볼 수 없는 금수禽獸와 같은 시대였다. 오히려 금수보다 못했다. 이와 같은 시대상에 절망하여 노자는 세상을 등졌고 공자는 천하를 떠돌았다. 그리고 한 사람은 도道와 덕德,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성인치도聖人治道를, 또 한 사람은 예禮와 인仁, 입신양명立身揚名과 군자지도君子之道를 답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그후 2천 년 동안 동양은 이 두 가지 답으로 세상사를 풀게 되었다. 불교는 속세에 대한 답이 아님으로 같이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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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 이후 모든 도덕경은 오독과 오역의 역사였다
근거로 삼고 있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도덕경』이라는 책이 그것을 지은 노자라는 사람의 뜻과는 아주 다르게 읽혀져 왔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겼으며 2천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이 연구를 하고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해온 것이 어떻게 그토록 틀릴 수가 있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답변하면 바로 한자라는 문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자가 『도덕경』을 쓴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5백 년 전이다. 이 시기는 지금 우리가 막연하게 추측하거나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한자라는 문자의 초창기에 가깝다. ...... 중략 ...... 이런 점으로 볼 때 춘추시대의 저작물을 보고 의미를 유추하는 것은 사실 그림으로 된 암호의 해독에 가까운 작업이다. ……중략…… 노자의 『도덕경』은 그런 시대에 쓰인 것이다. 노자나 공자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말로 글을 쓴 사람들이 아니라 단어를 만들어가며 글을 쓴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자의 시대에 산 사람이 아니고 문자의 시대를 연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든 말들을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옛사람들의 문장을 후대의 문법이라는 틀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고전에 이토록 많은 오독과 오해가 있게 된 것이다. 왕필 시대의 사람들에게 노자나 공자가 써놓은 문장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욱 생소하고 생경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그들이 해놓은 주석을 금과옥조로 삼아온 것이다. 공자나 노자는 단어나 문법을 만들어가면서 썼던 사람이고 왕필만 해도 어느 정도 한문의 틀이 잡힌 시대의 사람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고문古文에 대한 정보가 더욱 부족한 가운데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노자가 살았던 시대에 조금 더 가까이 살았던 사람이니까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겠지 하는 착각 때문에 고전의 진의가 가려져 왔던 것이다. ……중략…… 오늘날 정형화된 문법의 틀로써 노자의 문장을 읽으려고 들면 오역을 피할 수가 없다. 갑골학의 연구 성과와 지난 세기에 대량으로 발견된 고문자의 연구 결과로써 우리는 겨우 한자의 원형과 고대에 그것에 담긴 의미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우리가 진나라나 한나라 시대의 학자들보다 노자와 공자의 고전에 대해서 훨씬 정확한 번역이 가능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의 연구에 있어서는 21세기에 사는 이경숙이 2천 년 전의 왕필이나 동중서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덕경』의 번역과 해석에 있어서 이경숙이 왕필보다 더욱 노자의 본의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본래부터 한자는 사람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하는 기능이 없었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말과 글이 완전히 별개로 분리된 사유체계에 숙달되어야 했다. 때문에 문자의 기록은 보다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만 되었다. 생각은 말로 구체화되었다가 이것이 다시 글자로 번역이 되어야 했고, 글자의 판독도 그 역순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한자라는 그림카드는 그 수가 수천 개가 넘고 그것을 이용해서 표현하려고 한 사유의 깊이와 내용은 말이라는 표현의 수단을 오히려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그것을 보아야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시각이 아닌 2천5백 년 전의 그분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림카드들을 보고 그 뜻을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전 읽기는 노자나 공자와 같은 위대했던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림카드 놀이다. 아이들의 마음으로 그들과 같아져야 그 의미가 보인다. 이경숙은 『도덕경』을 ‘우주론, 처세론, 통치론’이라 말한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이 중요한 가르침과 메시지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도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의 번역이나 해설 작업들을 보면 그 값진 뜻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2년간 준비해서 책을 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바로 이 때문이라 하겠다. 그래서 저자 이경숙의 『도덕경』 완역을 놓고 “21세기에야 비로소 노자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도덕경』 해석과 번역은 오역의 역사였다. 2천5백 년 『도덕경』 주석과 번역의 주류학설을 뒤집는, 가히 번역반정이라 할 수 있다.” 고 말할 수 있다. 고전 해석과 번역에 있어 중요한 점들을 짚어본다 고전 번역의 동시성과 동소성이란 당시와 현재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당시의 저자가 살던 시대상을 충분히 숙지한 후에 지금의 독자에게 맞는 문법으로, 즉 글이 지닌 품격과 시대적 맥락을 충분히 살리면서 원저자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렇게 볼 때 고전 번역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당시의 시대와 사회상을 철저하게 고증하였는가? 그래서 원 저작자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번역자가 고전 원문을 직접 번역할 능력이 있는가? 원문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번역을 하지는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번역에 있어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문체를 고려하였는가? 고전의 향기는 원문의 뜻에 있다. 그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라 해도 그것은 사상누각이요, 빛 좋은 개살구다. 원문을 해독할 능력과 당시 시대상에 얼마나 정통한지, 저자 자신의 내공은 얼마나 깊은지,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과연 인문 고전 번역에 있어 원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뜻을 번역하여 현재에 전달할 수 있는 저자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볼 문제이다. 『완역 이경숙 도덕경 』은 우선 이런 번역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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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텍스트 도덕경, 무엇이 문제였나?
그동안 『도덕경』 해설서를 사서 마지막 81장까지 시원하게 다 읽어낸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중도에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던져버린 독자는 또 몇이나 될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도덕경은 정말 보통사람들의 이해를 거부하는 난해한 텍스트인가?” 기존『도덕경』 해설서의 특징을 저자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번역과 해석 그리고 난해함! 특히 그 난해함이란! 그러나 이 점에서 『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기존의 『도덕경』 해설서와 그 선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선 쉽다. 이는 기존의 『도덕경』이 앞 구절이 뒤 구절을, 뒤 구절이 앞 구절을 걸고넘어져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하는 데 비해, 『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수미일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유의 깊이를 느끼는 데 있어 흐름을 방해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도덕경』이 이경숙이 주장하듯 쉽게 이해 가능한 텍스트인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다면 왜 지난 2천5백 년간 어느 누구도 『도덕경』을 이해 가능한 텍스트로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어쩌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전제, 즉 노자가 횡설수설 수미가 어긋나는 이야기를 남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 『도덕경』이 쓰여졌던 시대가 문자의 시대라기보다는 말의 시대에 가까웠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이유로 노자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듯 아주 쉽게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줬을 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난 2천5백 년간 『도덕경』 해설자들은 가장 쉬운 이야기를 가장 어렵게 풀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전의 특성상 늘 새로운 해석본은 나오게 마련이고, 시간의 격차와 이에서 비롯되는 고증의 한계는 ‘이것이다’ 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완벽한 주석본의 출현을 어렵게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향기를 맡기 원하는 독자라면 일관성 있게 원전의 본뜻을 짚어내는 해석본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왔을 것이다. 그동안 한 권을 채 읽어내지 못해『도덕경』읽기에 답답증을 느낀 독자들에게 시원한 물 한 컵을 권하는 마음으로, 『완역 이경숙 도덕경』을 내놓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