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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8
《도덕경》의 시대상 12 《도덕경》이 잘못 읽혀져 온 이유 27 《도덕경》의 판본 54 노자와 공자의 대화 63 《장자(莊子)》에 대하여 105 제1장 명(名) 110 제2장 무위(無爲) 115 제3장 위무위(爲無爲) 123 제4장 혹존(或存) 129 제5장 불인(不仁) 135 제6장 현빈(玄牝) 143 제7장 신존(身存) 148 제8장 상선(上善) 153 제9장 신퇴(身退) 157 제10장 현덕(玄德) 164 제11장 무지용(無之用) 181 제12장 목(目)과 腹(복) 188 제13장 애신(愛身) 194 제14장 도기(道紀) 203 제15장 도자(道者) 217 제16장 불태(不殆) 230 제17장 태상(太上) 240 제18장 대도(大道) 244 제19장 소박(素樸) 249 제20장 식모(食母) 259 제21장 도덕(道德) 270 제22장 천하식(天下式) 278 제23장 희언(喜言) 284 제24장 췌행(贅行) 301 제25장 도법(道法) 306 제26장 중정(重靜) 316 제27장 요묘(要妙) 324 제28장 대제(大制) 328 제29장 신기(神器) 343 제30장 부도(不道) 346 제31장 불상(不祥) 354 제32장 지지(知止) 361 제33장 구수(久壽) 365 제34장 불위주(不爲主) 367 제35장 대상(大象) 369 제36장 미명(微明) 371 제37장 무명지박(無名之樸) 374 제38장 상덕(上德) 376 제39장 득일(得一) 398 제40장 반약(反弱) 405 제41장 문도(聞道) 409 제42장 물생(物生) 415 제43장 지유(至柔) 422 제44장 지족(知足) 426 제45장 청정(淸淨) 430 제46장 상족(常足) 433 제47장 불행(不行) 436 제48장 익손(益損) 439 제49장 무상심(無常心) 442 제50장 생사(生死) 447 제51장 존귀(尊貴) 453 제52장 모자(母子) 466 제53장 이경(夷徑) 479 제54장 이관(以觀) 486 제55장 적자(赤字) 491 제56장 지자(知者) 496 제57장 무사(無事) 500 제58장 무정(無正) 506 제59장 조복(早服) 516 제60장 소선(小鮮) 521 제61장 취국(取國) 526 제62장 좌진(坐進) 533 제63장 이세(易細) 539 제64장 종사(從事) 542 제65장 계식(稽式) 549 제66장 선하(善下) 558 제67장 삼보(三寶) 563 제68장 불여(不與) 571 제69장 용병(用兵) 577 제70장 지기(知己) 586 제71장 병병(病病) 591 제72장 대위(大威) 594 제73장 천망(天網) 598 제74장 상수(傷手) 602 제75장 구생(求生) 608 제76장 유약(柔弱) 614 제77장 장궁(張弓) 616 제78장 정언(正言) 620 제79장 계철(契徹) 623 제80장 소과(小寡) 630 제81장 천지도(天地道) 634 색인 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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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첫 구절인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를 오랫동안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또는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도가 아니다’로 번역되어 왔다. 이 말을 약간 바꾸어 ‘도를 도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라고 하면 약간 철학적인 경구이다.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바로 뒤 구절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을 같은 구조로 보고 옮기면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와 ‘이름을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그것은 참 이름이 아니다’가 된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말이 된다. 철학적인 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말도 아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와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라는 구절과 논리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번역이 안 된다는 것이다.
--- pp.110~111 《도덕경》 전체에서 제10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번역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던 장이다. 노자의 말뜻과는 전혀 동떨어진 해석들만 있어왔다. 왜냐하면 첫 번째 구절인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을 번역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는 이 장의 내용을 ‘노자가 도가적(道家的)인 수행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고 짐작하였다. 그래서 ‘영백(營魄)’을 ‘육신의 생명력’이 아닐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법으로는 납득할 수 있고 논리적인 문장을 도저히 만들어낼 수가 없었고 이 문장의 번역태와 해석문은 학자마다 책마다 구구각각이어서 어느 것이 정설인지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수백 가지가 넘는 번역의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 p.165 제14장 도기(道紀) 첫 구절을 보자. ‘시지불견 명왈이(視之不見 名曰夷)’다. 노자가 등선(登仙)한 후 2천5백 년 동안 이 문장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한다’로 이해되어 왔다. 이 문장만을 보면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읽는 순간 이 장의 내용은 전체 문맥이 연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지리멸렬한 해괴한 내용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음 문장과의 연결이나 논리성은 차치하고라도 이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문장이다. 〈중략〉 ‘시지불견(視之不見)’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본다’는 말이다. 〈후략〉 --- pp.204~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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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노자 《도덕경》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도덕경》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구절은 한 번쯤 머릿속에서 되뇌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 구절을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또는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그것은 참 이름이 아니다.’라고 그 뜻을 주저 없이 새긴다. 이유는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도덕경》 해석서가 이렇듯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역 및 해설된 노자의 《도덕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수많은 책으로 출판되어 많은 독자에게 읽혀 왔고, 그 해석이 마치 정설인 양 통용되어왔다.
그런데 이 책 《도덕경정해》는 유일하게 기존의 해석과 첫 장부터 전혀 다르다. 다를 뿐만 아니라 기존의 통용된 번역과 해설과의 차이를 누구나 쉽게 이해되도록 정확한 이유를 들어 마지막 장까지 일관되게 바르게 설명한다. 또한, 작가는 끝없이 반복된 오역의 원인과 이를 바로 잡는 바른 번역의 방법까지도 노자가 《도덕경》을 남긴 지 2천5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알려준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正解’ 즉 ‘바른 해석’이란 작가의 말처럼 단순한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못 행해졌던 《도덕경》에 대한 이해를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미 작가를 알고 있고, 오래전 절판된 작가의 완역본을 읽은 독자일 수도 있다. 그런 독자라면 아마도 더욱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작가의 《도덕경》 해설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바른 해석이 갖는 불변의 힘과 변화의 힘에 이전 독자들이 먼저 겪었던 전율 내지는 희열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어느 경우든 《도덕경정해》를 통해 노자의 진의와 사상을 바르게 알게 된 일생일대의 소중한 만남일 것이다. 《도덕경정해》를 다 읽을 때쯤이면 왜 《도덕경》을 읽어야 하는지, 《도덕경》의 올바른 번역과 이해가 얼마나 독서와 삶에 있어서 중요한지 독자들은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서 이 책 《도덕경정해》는 누구에게나 무위자연처럼 늘 곁에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