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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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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후의 영국에서 도시노동자들의 생활조건에 가장 적합했던 것은 홍차와 설탕, 가게에서 산 빵과 포리지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다. 설탕을 넣은 홍차를 기본으로 하는‘영국식 아침식사’는 제대로 된 부엌이 없더라도 뜨거운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준비가 가능한 음식이었다. 특히 설탕을 넣은 홍차는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즉효성 있는 칼로리 보급원이었다.
즉효성이라는 의미에서는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일하는 도중에 차를 마시는‘티 브레이크’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충분한 칼로리를 보급하여 정신이 번쩍 든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야말로 공장 경영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던 노동자였던 것이다. 차가운 빵을 한순간에 더운 요리로 바꿔주는 한 잔의‘설탕을 넣은 홍차’가 없었다면 19세기 영국 공업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은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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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예무역과 설탕의 수입무역은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예컨대 영국 리버풀을 출발하는 노예무역선은 아프리카 흑인왕국이 원하는 총과 유리구슬, 면직물 등을 가득 싣고 가서 서아프리카에서 노예와 교환한다.
이어서 획득한 노예들을 비극의 ‘중간항로’를 따라 수송해 가서 남북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에서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설탕(또는 면화)을 사들여 리버풀로 되돌아오는데, 이러한 일련의 무역을 역사가들은‘삼각무역’이라 불렀다. 이 삼각무역에 의해 아프리카,유럽, 아메리카의 세 대륙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연결되었는데, 유럽은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항구도시와 상인들의 경제력도 급속히 신장된 반면 아프리카에는 비참한 영향을 미쳤다.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1천만여 명이 끌려갔던 탓에 성장의 동력 자체를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베닌 왕국 같은 연안의 흑인왕국 중에서는 노예사냥을 생업으로 삼고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을 팔아넘긴 대가로 이익을 취한 나라들도 있었으나, 이런 식의 장사를 계속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제발전은 이룰 수 없었다. --- p.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