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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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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기억과 망각의 강을 넘어
즐거운 집단 오줌 누기
'좃' 때문에 좆된 사연
연애보다 문학이 더 중요해
연못 시장, 축제의 밤
하늘 아래 가장 슬픈 일
4월의 노래
두통과 불면의 날들, 지하의 방
밤새도록 소쩍새가 울었다
낮은 언덕 위
시디 부 사이드, 죽음에의 권유

저자 소개

저자 : 문영심
1957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등학교는 인천에서 다녔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다. MBC 〈러시아 동구의 문학과 예술〉, 〈우리 시대의 명인〉, KBS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Q채널 〈아시아 리포트〉, EBS 〈다큐 여자〉 등 50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썼다. 2010년 현재, 5년째 SBS 〈물은 생명이다〉를 쓰고 있다.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지하의 방』이 당선되었다. 2010년 첫 번째 장편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썼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14쪽 | 367g | 137*193*30mm
ISBN13
9788995919194

책 속으로

"이게 뭐예요?"
내가 묻자 이현은 웃으면서 그것을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풀어보십시오."
박 감독은 자기 짐작이 맞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포장지를 풀었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어른 주먹 크기의 돌멩이였다.
"아니, 이게 뭐예요? 수석인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멩이를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돌멩이는 동물의 모양을 닮았다든가 하는 특별한 모습을 가진 게 아닌 그저 평범한 돌멩이일 뿐이었다.
"보시다시피 이건 돌입니다. 수석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돌멩이는 아닙니다.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입니다."
이현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로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유형생활을 했던 시베리아의 옴스크 감옥에서 가져온 돌입니다. 이 돌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다 해서 관광객들이 아주 탐을 내는 기념품이랍니다. 그런데 하도 오는 사람마다 하나씩 집어가다 보니 이젠 몇 개 남아 있지 않아서 절대 가져가지 못하도록 관리인들이 엄중하게 감시를 하고 있어요. 특히 문학 지망생들은 이 돌멩이가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 있어서 이 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하게 된다고 믿고 있답니다."
박 감독이 이현을 대신해서 그 돌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 p.16

"우리는 우리가 문학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문학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희수는 동의를 구하듯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럴지도 몰라. 아무튼 나는 그르니에가 말한 것처럼 어느 날부터인가 그냥 살 수 없게 되어버렸어.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됐지."
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희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사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나는 내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거든. 아니, 누가 나더러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어본 적도 없지. 물어봤다면 나는 거절했을 거야. 노 땡큐라고 말했겠지. 그래도 이왕 태어났으니까 불평하기보다는 살아야겠지. 우리가 직접 알아보자고. 왜 이따위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말이야. 장 그르니에나 알베르 카뮈처럼 우리의 언어로 그 비밀을 밝혀 보는 거야. 그게 우리가 이 엿 같은 세상에 던져진 이유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희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우리는 그 시절에 우리가 그곳에서 마주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문학에 의해서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게 하고 싶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그 무의미하고 막막한 세계를 헤쳐나갈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 p.44

"너희들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했다."
석균이 느닷없이 그런 말을 했다.
"나도 그래.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어."
희수가 웃지도 않고 석균의 말을 따라 했다.
"나는 너희들이 있어서 불행했어."
수옥이 말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왠지 그녀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니? 천재 끼가 있는 네 말은 항상 난해해서 말이야."
희수가 말했다.
"친구란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이잖아. 비교 대상이지.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나보다는 나은 친구들이니까 그래서 불행했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말이야. 제일 결정적인 것 하나만 말하자면 너희들 셋은 어른이야. 나는 영원히 피터팬으로, 유아적인 단계에 머무는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거 같아." --- p.194

정오가 가까워 올수록 햇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뮈가 살았던 알제는 이곳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나의 소설들은 『이방인』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지중해 깊은 바닷속에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모두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해변을 걷고 있었다. 온 천지에 햇빛이 너무 가득해서 어디 한 군데 눈 돌릴 곳이 없었다. 어젯밤처럼 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내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어떤 지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보잘것없는 삶이 떠올랐다. 나의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빛은 내 존재의 무력함과 비천함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문학도 삶도 이 세계의 광대무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그 순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 p.310

출판사 리뷰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자전소설이며 성장소설이다. "소설가가 하는 얘기는 쉽게 믿으면 안돼, 알지? 그 속에서는 늘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거든." 문 작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친구인 문학지망생 희수의 입을 통해 이렇듯 연막을 피웠지만 소설 속에는 아슬아슬하리만큼 많은 작가 자신의 현실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비친다. 다큐 작가답게 그녀는 20대 치기만만한 시절 카뮈의 이방인 못지않은 작품을 쓰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풋풋한 소설가 지망생이 그저 수많은 평범한 작가들처럼 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으며, 실존의 새로운 단면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는 고통스런 과정을 정밀하게 그렸다. 그리고 입으로는 소설을 때려치웠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꿈을 놓지 못하고 가위 눌려 지내는 오랜 세월을 반추한다. 이 소설은 그녀가 이 소설을 쓰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박정희 군사 독재 막바지, 그리고 통기타 시대가 저물어가던, 그 야만과 낭만이 공존하던 대학 캠퍼스로 우리를 데려간다. 40~50대 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음울한 판타지처럼 비치는 그 몽환의 세계이다.

시속 20매. 방송 다큐 작가 문영심씨(54)를 동료들은 그렇게 부른다. 한 시간에 200자 원고지 20매도 거뜬히 메울 수 있는 '라이팅 머신'같은 필력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그녀가 한창 방송 일을 많이 할 때, 몇몇 방송사 PD들은 급작스럽게 프로그램을 맡아 눈앞이 캄캄할 때면 문 작가부터 찾는다고 했다. 그녀의 치마꼬리만 붙들고 늘어지면 최소한 펑크 낼 염려는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계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다작을 자랑하는 그녀가 뜻밖에 아주 오래 뜸을 들여 5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장편 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펴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77학번인 그녀가 습작을 시작한 지 34년 만이고,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해 등단 작가가 된 지도 19년 만이다. 남들 눈에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듯 술술 글을 잣는 듯 보이는 그녀가 소설 한 권을 내기까지 어째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인 8년차의 방송작가 이수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에 관한 프로그램 대본을 쓰느라 골머리를 앓던 중 뜻밖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손에 넣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수형생활을 했던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의 것으로, 특히 문학 지망생들은 이 돌멩이가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 있어서 이 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평소 그녀가 소설을 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온 촬영감독으로부터 건네 받은 이 돌은 수영을 그토록 외면하고 있던 한 시절로 데려간다.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예감으로 심각한 분열 증세를 겪던 스물한 살 그 시간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박정희 군사 독재 막바지, 그리고 통기타 시대가 저물어가던, 그 야만과 낭만이 공존하던 대학 캠퍼스로 우리를 데려간다. 40~50대 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음울한 판타지처럼 비치는 그 몽환의 세계이다. 그곳에서 수영을 비롯한 작가 지망생들은 모름지기 문학이란 반항이고 저항이라고 굳게 믿으며 모든 진부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 없이 믿는 가치들, 특히 모럴과 윤리의식 따위와 거칠게 불화한다. 그들은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과거에 대해 격정적으로, 공격적으로 즐거운 집단 오줌 누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능가하는 소설, 카프카의 『변신』을 압도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수영을 비롯한 군상들은 쥐꼬리만한 재능은 주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하나 둘 글쓰기를 포기하고 만다.

수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얻고 난 뒤 다시 습작을 시작한다. 그녀는 더 이상 대가들의 소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에 대해 소박하게 써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스스로 절절히 느낀 것, 생각한 것,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199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일간지에서 당선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인간과 삶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대학 때보다 더 무뎌지고 관습화되어 있었다. 치열함과 솔직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세상이 인정하는 도덕의 잣대 안에서 안주하고 있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또다시 실패했고, 그녀는 다시 절망하고 만다.

문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왜 어떤 사람은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쓰고자 하는 열망 때문? 그렇게 고통 받는가?'라고 묻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 우리는 왜 사는지 또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타고난 재능이 크든 작든 무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의미한 행동을 되풀이해야 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광대무변함에 비하면 문학도 삶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 그녀가 발견한 사물의 핵심이고, 실존의 한 단면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에는 문 작가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습작했던 작품들과, 그리고 신춘문예에 출품했던 작품 등 모두 4편의 단편이 거의 고스란히 실려 있는데 이는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30년이 넘는 시차를 두고 이어지는 단편들은 작가의 내면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숙해 가는지 우리에게 흥미롭게 펼쳐준다.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475사람들'에 이 작품이 연재됐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이 작품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수성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는 더더욱 첫 사랑의 추억처럼 달콤하고 쓰리게 다가올 책이다.

추천평

이 소설은 감옥에서 읽었던 '천국의 열쇠' 이후로 내가 단숨에 읽은 첫 소설이다. 창작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이야기로 읽힌다. 누구의 가슴 속에나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회한을 상징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다.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다.
문정현 (길 위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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