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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골고다에서 죽지 않았다
김동진 저
한미르 200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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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책머리에 | 또 다시 예수를 죽이고 나서야

1. 예수인가, 야훼인가
2. 기독교의 비극
3. 교회의 원죄
4. 헛되지 않은 피
5. 빈 무덤
6. 바울 - 기독교 신앙의 원형을 찾아서
7. 말씀대로 믿지 못할 이유
8. '말씀의 틀' 을 넘어서
9. 예수 - 십자가의 하나님
10. 바울을 그리며 - 교회의 몰락

- 부록 | 사도행전의 거짓 증언들

저자 소개

저자 : 김동진
1957년 10월 12일 생.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 한국관광공사 11년 근무. 배타적이며 독서적인 신 야훼를 두려워하는 신앙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기독교 신앙은 이제 야훼를 죽이고, 거짓 예수를 죽이고, 거짓 바울을 죽이는 신앙으로 발전하여, 권위주의적인 종교 기독교의 장엄한 최후를 고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19쪽 | 518g | 153*224*30mm
ISBN13
9788985486019

책 속으로

예수께서는 골고다라 불리는 해골산에서 돌아가신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 산에서 그는 단지 세속적인 의미의 죽음만 보여주셨을 뿐이다. 그 산은 그가 패배하신 장소가 아니라, 승리하신 장소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에……. 진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정말로 죽인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 pp 279

“그래, 바로 이 거야! 사도행전의 바울부터 죽여야 해! 그 바울은 너무나 권위주의적이거든. 진실의 바울이 전혀 아니거든. 그리고 그 다음은 예수! 예수의 부활에 군더더기들이 많이 붙어 있지. 그걸 털어 내야지. 거짓 예수를 죽여야 해! 그래야 정말로 예수가 바로 보이게 되거든. 그리고 그 다음은 또, 모세! 율법의 신, 모세! 성서의 모든 신화를 죽여 버리는 거야! 아참, 아담도 있지? 그래 인간에게 원죄는 없어! ”

--- 작가의 후기 중

관련 자료

“성서를 신화로 예곡하는 교회에 실망” 김동진씨, 20년 교리공부 바탕 무비판적 신앙에 반기
김동진씨가 쓴 ‘예수는 골고다에서 죽지 않았다’(한미르)에는 자극적인 어휘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정적인 행태를 비판한 글은 아니다. 교회의 교리, 철학, 성서의 권위 등 신앙의 근본적인 뿌리에 끝없는 의심과 검증을 요구할 뿐이다. 성서를 통해 교회바로보기를 주장한다. ‘본래의 하나님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1월 17세의 나이로 자살한 아들에게 바치는 김씨의 신앙간증서이다. 교회적인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아들에게 때늦은 용서를 빌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교회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아들에게 율법주의 사고를 강요했으니 너무도 이중적인 삶을 살았던 셈입니다. 이 책은 우둔한 아비가 아들에게, 미련한 신앙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가증스런 죄를 고백하는 참회록입니다. 평신도의 반란이라고 하시겠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예수의 부활과 사랑을 전하기 위한 작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도 기독교는 이미 차고 넘치는 종교인데, 우리나라 교회에선 왜 신화화·교리화를 통해 하나님을 우스꽝스러운 신으로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씨는 1991년 11년동안 재직했던 한국관광공사를 그만둔 뒤 교회의 틀에 길들여진 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제도적·관습적인 신앙에 반기를 들어왔다.

그는 성경의 토대를 이룬 바울도 선교전략에 의해 등장하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예수부활 직후 복음서에 전해졌던 사도 바울의 원래 행적이 3세기후 사도행전을 통해 신화적인 행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모세도 율법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율법사제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현대신학에서 이미 성경의 신화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년동안 기독교 교리를 공부했다는 저자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경에 돌을 던지는가.

“교회는 ‘말씀 그대로 믿어라. 그렇게 믿지 않으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낫다. 성경대로 믿지 않는 믿음은 불신앙보다 못하다’며 믿음을 담보로 군림합니다. 사춘기엔 그렇게 절대적인 교회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입학 후 하나님을 친구같은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으로 만나면서 성서를 왜곡하는 ‘교회’에 점점 실망했습니다.”

그는 책이 발간되자 ‘기존 교회교리를 꼬집어 신선하다’ ‘말도 안된다’는 등 독자들의 상반된 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고 전하며 “믿음의 소산물인 이번 책에 대해 어떠한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의 저자는 “나는 말씀대로 믿지 않는다. 말씀대로 믿지 않는 신앙인은 과연 좋은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조금은 도전적인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은 2000년의 기독교를 뒤집는 엄청난 내용으로 그 결말을 맺는다.

“기독교에는 예수가 없다. 예수뿐만이 아니라, 바울도 없다. 기독교는 여전히 우상이나 다름없는 신 야훼의 종교일 뿐, 제2의 유대교일 뿐, 기독교가 아직 아니다.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모세의 종교요, 바울의 종교인데, 그나마 진짜도 아닌 가짜 바울의 종교이다. 기독교가 기독교다웠던 적은 바울의 시대에 잠깐 있었는데, 그런 바울의 꿈마저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와 베드로의 간섭과 방해에 의하여 산산이 부수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부정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기독교의 여러 문제점들을 나열식으로 건드린 흔하고 흔한 기독교 비평서가 아니다. 2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교회를 지탱해 온 모든 것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엄청난 글이다. 교리며, 신관이며, 말씀의 권위며, 교회의 권위며…….

그럼, 반기독교적인 글인가? 작가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작가는 본래적인 기독교 신앙에, 기독교 신앙의 원형에 더 가깝게 다가가 보려고 이 글을 썼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감히 근본주의 신학이야말로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하면서, 종래의 기독교 신앙 및 신학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작가는 먼저, 사도행전의 바울을 죽인다. 그 바울은 교회의 선교전략에 의하여 각본에 짜여져 등장하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진실의 바울은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볼 수 있는 나약하고 이지적인 인물. 병약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인물. 십자가의 예수를 꼭 닮은 인물. 사도행전의 바울은 이미 거짓이다. 그 바울은 “교회의 신”, “성직자의 신”으로 등장하는 ‘기독교표’ 바울이다. 이어서 그는 바울의 부활신앙을 근거로 복음서의 신화적인 부활을 부정하고……. 가짜 예수, 신화적인 예수가 죽는다. 같은 논리로 모세가 죽고, 아담이 죽고……. 기독교, 아니 유대교의 신화로부터 기인한 원죄를 비롯한 모든 이 종교의 권위주의적인 교리들이 부정된다. 모세의 신 역시 율법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율법종교의 사제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우상일 뿐이다.

동정녀 탄생, 기사와 이적을 행한 예수 등, 복음서의 신화들 역시 그 의미를 잃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기독교가 로마에 입성한 이후로 후대의 적당히 타락한 교회에 의하여 도입된 예수 신화화의 결과이다. 실체적인, 역사적인 예수에 덧입혀진 우상과도 같은 헛된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천국과 지옥과 같은 교리와 함께 로마 정통 교회가 세계 선교 전략 차원에서 도입한 장삿속 교리이다. 작가는 스스로의 예리한 판단력에 의하여 신약성서의 모순점들을 들추어내어 이 모든 사실을 밝혀낸다.

그럼, 기독교에 무엇이 남나? 기독교는 그저 헛것이 아닌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진실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 부활이야말로 바로 기독교 신앙의 태동이요 본질이기 때문이다. 바울 시대의 기독교만으로 기독교는 이미 족하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바울의 신앙을 오늘날 우리가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시대 바울의 기독교보다도 못하다는 것.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통하여 계시되신 하나님의 인고(忍苦)의 사랑, 그것만으로도 기독교는 이미 차고 넘치는 종교인데, 그만 그 십자가의 예수를 교회가 죽여 버렸다. 그 예수가 뭔가 미흡하다고 착각하여……. 그러고 나서는 예수를 신화화 작업을 통하여, 교리화 작업을 통하여 아주 우스꽝스러운 신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책은 과연 작가의 주장대로 매우 기독교적인 글인가? 아니라면 비기독교적인 글일 수밖에 없는가? 이 책에는 그 양면이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기독교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이 책의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종래까지 알고 있었던 기독교 교리를 놓고 볼 때, 이 책은 매우 비기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루터의 개혁은 개혁도 아니라고 감히 선언하면서, 작가는 오늘날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개혁의 실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시작으로부터, 기독교의 근본 교리로부터 찾아낸다. 교회가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그 교리로 말미암아 상업주의의 근원일 수밖에 없으며, 온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뭔가 잘못된 교회의 문제점을 교회의 기원,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찾는다.

이 한 권의 책의 위력,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여 그 어디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그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기독교를 종식시키고, 인도주의적인 기독교의 역사를 새로 쓰기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이 과연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한편으로 작가는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와 사랑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하여서라도 이 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이 작가의 희망대로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그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작가는 다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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