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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여행
허시명과 함께 떠나는 행복한 우리 술 기행
허시명
예담 201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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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_ 길 위에서 술을 만나다
1_ 견훤에겐 독주, 왕건에겐 미주가 된 술 - 안중의 고삼주
2_ 당나라까지 소문난 신라주와 그 후예 - 김유신과 경주법주의 화랑
3_ “내가 죽거든 술을 쓰지 말라” - 이익과 청명주와 세계술문화박물관
4_ 8진사 8천 석 가문의 술 - 황희 집안과 호산춘
5_ 흑산도 유람길에 맡은 술 향기 - 다산, 천용자, 손암
6_ 한라산보다 높은 제주 술의 명성 - 강술, 오메기술, 고소리술, 감귤주, 오합주
7_ 울릉도 신선이 담근 술 - 신선주, 씨앗술, 호박술
8_ 한반도 최초의 포도주는? - 원나라 포도주, 하멜의 포도주, 조선 포도주, 머루주
9_ 보리술 항아리에 대통 꽂아놓고 - 운해, 강하주, 진도홍주, 이강주
10_ 막걸리에 묘리가 있다네 - 전주 막걸리 골목, 영양막걸리, 장수막걸리, 부자
11_ 물 좋은 마산, 술의 도시 마산 - 가을국화, 무학소주, 맑은내일
12_ 술병과 술의 향연 - 증류식 소주 화요
13_ 일본 술 축제 행렬 속으로 - 수수고리와 사케마쓰리
14_ 일본 청주의 비법을 듣다 - 후시미 월계관 양조장
15_ 산신이시여, 흠향하소서 - 강릉 단오 신주
16_ 우리 안의 보석, 누룩 - 금천주조장과 송학곡자
술도가 연락처

저자 소개 1

술 평론가, 여행작가, 막걸리학교 교장.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2001년 여행작가들과 함께 한국여행작가협회를 결성했다. 2009년에 막걸리학교를 열어 15년째 막걸리 인문학과 창업강좌 등 다양한 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국내 술 기행을 다니며, 해외 술 기행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막걸리학교 네이버 카페와 유튜브 [술술TV]를 운영하고 있다. Youtube @TV-S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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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714g | 174*225*30mm
ISBN13
9788959136001

책 속으로

그때 호산춘을 빚는 황규욱 씨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호산춘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나는 분청인화문잔에 호산춘을 따르고 싶어졌다. 충동이 일면 되도록 결행하는 쪽을 택하는 게 여행을 업으로 삼으면서 생긴 버릇이다. 갈까? 말까? 고민되는 순간이면 가는 쪽을 택한다. 인생은 나아가는 만큼 사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호산춘 술병 마개를 열고 “술 한 잔 따라 마셔도 될까요?” 말하고서, 이 관장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분청인화문잔에 술을 채웠다. 나는 “이 술잔도 술맛을 보지 못한 지 500년은 되었을 겁니다.”라고 말하고선 냉큼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술맛을 보고 나자 황규욱 씨가 물었다. “술맛이 어떻습니까?” 술을 빚는 이들은 자신의 술맛이 어떤지 늘 궁금해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궁금증이 더 커진다. “500년 된 술잔에 술을 마시니, 500년 된 술을 마신 것 같습니다.” ---p.78「4. 8진사 8천 석 가문의 술」 중에서

“내 술 좀 팔아주이소, 하고 발로 뛰고 사정하고 홍보하고 배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그런 배짱 장사를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럼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하면 웃고 맙니다. 돈은 안 돼도 속은 편합니다. 남의 자본 끌어들이지 않고 분수를 지켜가면서 적절히 술을 빚는 게 내 방식입니다. 팔기 전에, 내가 마시고 내 이웃이 마시는 술입니다. 한 병 더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맛있는 술을 내기 위해서 술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길이 있다고 다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알고 있으면서도 갈 수 없는 길도 있어야 합니다.” 그의 삶에, 그의 집안에 신념이 있듯이, 그는 술도 신념을 가지고 빚는다. 자존심 센 술, 호산춘. 호산춘이 있어 문경까지도 자존심 센 동네로 보인다. ---p.91「4. 8진사 8천 석 가문의 술」중에서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 문화를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무주를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와인 사대주의에 흠뻑 취한 이들이 흔히들 “우리 와인 뭐 있어? 마실 만한 게 있어?”라고 말하는데, 조선의 포도주, 머루와인을 맛보고 나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싶다. ---p.167. 「한반도 최초의 포도주는?」 중에서

“맥주를 마신다. 마시는 방법은 용수(대오리로 짠 체)를 박거나 눌러 짜지 않는다. 대나무통을 항아리 속에 꽂는다. 둘러앉은 손님들이 차례차례 빨아 마신다. 옆에는 물잔을 놓아두었다가 술을 마신 만큼 항아리 속에 물을 붓는다. 술이 바닥나지 않는다면 그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려시대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이제현(1286~1367)이 맥주麥酒를 마시면서 쓴 글이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맥주는 보리밥을 지어 누룩과 섞어서 발효시킨 술로 여겨진다. 항아리에 대나무통을 꽂고 여럿이서 술을 빨아 마시다니, 풍경도 낯설다. 마신 술의 분량만큼 술독에 물을 부으니 술맛은 점점 옅어졌을 텐데 시인은 맛이 결코 줄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술과 분위기에 취해 술맛이 옅어지는지도 몰랐던가 보다. 대나무는 피리만 한 것을 사용했던 듯한데 위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p.172「9. 보리술 항아리에 대통 꽂아놓고」 중에서

한 시간도 넘게 솥뚜껑도 닫지 않고, 소줏고리도 얹지 않고 전술을 끓이니 부엌 안이 알코올 기운으로 가득 찼다. 부뚜막에 앉아 아짐의 말벗을 하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기체로 퍼진 알코올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현기증을 일으켰던 것이다. (……) 깨진 소줏고리 주둥이에 이어둔 대나무 홈통을 타고 소주가 한두 방울씩 내려왔다. 투명하고 맑은 액체다. 처음 증류하면 알코올 70% 안팎의 술이 나오는데, 아짐의 홍주는 50도 정도로 느껴졌다. 중국 고량주 56도짜리보다는 덜 독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알코올을 날려보냈으니, 순도 높은 알코올은 다 증발한 뒤라서 그랬다. 그러니 내가 애가 탈 수밖에. ---pp.188~190「9. 보리술 항아리에 대통 꽂아놓고」 중에서

어느 회사의 소주를 두고 “그래 이 맛이야, 소주는 이래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상표를 떼고 나서 다른 소주들과 섞어놓으면 그 맛을 가늠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 소주를 만드는 연구자들조차 그 맛을 구분해내기 어렵다고 하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소주는 95%가 동일하고 5% 정도만 차이가 난다고 소주 제조자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감미료의 차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희석식 소주 맛의 차이는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개성 있는 맛이 아니라 애향심이나 익숙해진 습관에 따라 술을 선택한다. ---p.230「11. 물 좋은 마산, 술의 도시 마산」 중에서

술병을 보고 취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그런 경험이 있다. 2005 서울국제주류박람회장에서였다. 재미있는 술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을 받치는 높은 굽 안에 방울이 들어 있어서, 잔을 흔들면 탈랑탈랑 소리가 났다. 가야 고분에 잠들어 있던 토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방울잔이었다. 얄상하면서도 탄탄한 게, 쥐어보니 방아쇠처럼 손가락 마디에 착 감겼다. 방울잔 옆에는 인상적인 술병도 놓여 있었다. 발 물레의 회전력에 몸을 맡겨, 둥근 테 문양을 낸 반투명 유리병이었다. 디자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술맛도 보기 전에 술잔과 술병에 취하기는 처음이었다. ---p.245「12. 술병과 술의 향연」 중에서

우리나라 소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진로 참이슬은 첫 출시되고 7년 7개월 만에 100억 병을 판매하면서, 5년 연속 세계 증류주 시장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희석식 소주를 만들어내는, 세계 최강 소주의 나라다. 하지만 증류식 소주 시장은 형편없다. 소비자들은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고, 증류식 소주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주를 오로지 가게에서는 천 원, 음식점에서는 3천 원 하는 값싼 술로만 안다. 이런 상황이니, 증류식 소주 시장에 뛰어드는 일은 헬멧도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급류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이 위험천만한 일이다. ---p.248「12. 술병과 술의 향연」 중에서

도수가 높은 41도 화요의 향을 맡아보니, 콧속에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했다. 아세톤에서 느껴지는 휘발성 알코올 향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소주의 향을 즐긴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경험이다. 한입에 털어 넣고, 캬아! 삶의 쓴맛이라도 대신 토해내는 양 지르는 탄성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본디 소주란, 오크통에서 무르익은 위스키처럼, 포도주에서 끌어올린 브랜디처럼 향긋한 몸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런 소주 향과 너무도 무관하게 살아왔다. 41도 화요는 소주 본래의 몸내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술이다.---p.252「12. 술병과 술의 향연」 중에서

똑같은 쌀을 가지고 술을 빚지만 일본의 양조업은 조직화되고 과학화되어 있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면서, 청주를 세계에서 가장 만들기 까다로운 술로 각인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독한 발효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본 청주는 세계 명주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름도 오사케〔お酒〕로 통한다. 같은 청주淸酒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청주의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는 여기에 있다.
---p.280「13. 일본 술 축제 행렬 속으로」 중에서

술 축제는 술의 이름을 빌린 주당들의 잔치가 아니다. 물론 술의 전시장도 판매장도 아니고, 사람을 많이 모으는 가수들에게 판을 빌려주는 자리도 아니다. 좋은 술을 지키려면 좋은 물이 있어야 하고, 물을 지키려면 땅이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술의 잔치는 물의 잔치이고 땅의 잔치라야 한다. 그리고 술 속에 녹아든, 이 땅의 쌀과 농산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술 축제가 성대해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p.281「13. 일본 술 축제 행렬 속으로」 중에서

우리의 전통을 팽개쳐두고 남의 것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지금 법으로 규정해놓은 청주는 일본 청주라고 고쳐 부르면 된다. 그리고 우리 전통주에 청주라는 이름을 되돌려주고, 지금껏 불러온 약주라는 이름도 세분화하면 된다. 독도만 우리 땅이 아니라, 청주도 우리 것이다. 식민지 잔재 청산은 일본 것을 일본 것이라 하고,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하면 이뤄지는 일이다. 그리고 청주를 진정한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청주를 일본 청주보다 발전시키고 과학화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p.299「14. 일본 청주의 비법을 듣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맛있는 우리 술을 찾아 천 리 길을 나서다
“어쩌다 술향을 맡았다가 그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낯선 길을 보았고,
기꺼이 그 길 속으로 들어섰다. 그 길에는 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술에 인생을 건 장인이 있었고, 세월이 쌓아놓은 제조 비법이 있었고,
곰삭은 문화가 있었고, 휘청거리는 역사도 있었다.”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는 행복한 술 기행

소주를 만드는 한 대형 양조장에서는 하루 평균 100만 병의 술이 공장문을 나선다고 한다. 놀라운 숫자다. 그 술병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세상과 소통한다. 이 술이 존재해온 많은 이유 중에서 술을 가장 고귀한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제물祭物로서의 술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술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했다. 신과 연결되기를 염원하는 인간의 숙명적 나약함과 존재적 한계로 인해 술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 이유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인간의 삶과 가장 지근거리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가장 인간다운 순간을 함께 해온 술, 이 술이 여행과 만나면 어떤 빛깔일까?

여행작가임과 동시에 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고, 최근에는 2007년 국세청 주최 제1회 대한민국 주류품평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국내에서 ‘우리 술 전문 여행작가’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는 허시명이 세 번째 술 얘기를 들고 나왔다. 이 책은 그가 발품 팔아 건져낸, 술 냄새,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인문 기행서이다. 저자는 세월 속에 묻혀지고 잊혀진 보석 같은 우리 술들을 찾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볐다.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과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술들의 담박한 맛과 고졸한 멋을 이 책 속에 오롯이 담아냈다. 그의 안내를 따라가는 길에는 전통을 지키며 묵묵히 술을 빚는 장인들도 있고, 저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술 제조 비법도 있고, 술을 벗 삼아 산 옛사람들의 풍류와 정취도 녹아 있다. 허시명과 함께 우리 술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렇듯 술의 맛과 흥취, 풍류와 전통의 멋까지 더해져 눈과 코와 입이 향기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누룩 냄새 가득한 우리 술, 그리고 향기로운 사람 이야기

좋은 술은 세월이 빚는다. 우리의 전통술은 주로 쌀과 누룩으로 자연 발효시켜 추출한다. 하지만 우리 술이라고 꼭 멥쌀과 누룩으로 빚는 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리술도 있고 고구마술도 있고 좁쌀술도 있다. 요즈음은 와인 바람을 타고 머루주와 포도주가 세를 불리고 있다. 머루와인은 우리나라 전통 포도주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분자주, 사과주, 오디주, 다래주도 터를 잡았다. 우리 술은 자연을 닮았다. 그리고 술을 빚는 장인들은 자신이 빚는 술과 닮아간다. 고집스럽게 우리의 것을 지켜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모습은 짱짱한 술맛과 다르지 않다.

주당들을 감동시킬 만한 이야기들도 있다. 계란과 참기름이 들어가는 제주도의 기발한 보양주인 오합주, 발해 뗏목 탐사선을 타고 가다 일본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유명을 달리한 이덕영의 신선주, 황희의 후손 집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호산춘, 일본에 술을 전해준 백제인 수수고리를 기려서 후쿠오카 사람들이 빚은 술 수수고리 등은 그냥 듣고 지나치기에는 긴 여운이 남는 얘기들이다.

저자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안쓰러움과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전통 약주의 제조 기간은 30일 정도인 데 비해, 무려 150일이나 걸리는 제조 기간에 음악까지 들려주며 만든 최장기 발효주 ‘화랑’, 우리 농산물로 경쟁력 있는 술을 만들겠다는 뚝심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술도가를 차린 박중협의 ‘맑은내일’, 우리의 소주도 세계의 명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조태권의 증류식 소주 ‘화요’ 등, 전통을 고집하고 또 이를 막강한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이들의 고집스런 열정 속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술과 함께한 시간여행, 그 길에서 발견한 ‘놀라운’ 주당들

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 속 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드러난다. 그 속에서 놀라운 주당들을 만나는 건 보너스!
술 취한 아들에게 깍듯이 손님 대접을 하여 아들의 술버릇을 고친 황희,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도록 간곡히 써내려간 편지에는 그 자신의 음주관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경주박물관 안압지에서 발견된 14면체 주사위인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 얘기도 흥미롭다. 주령구는 술자리에서 가지고 노는 노리개다. 주사위를 굴린 사람은 주사위 면에 나오는 벌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여기 적힌 글귀들은 지금 보아도 매우 흥미롭다. 친구들에게 벌칙므 세우며 낄낄거리는 옛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면 슬며시 웃음도 난다.

술을 찾아 누빈 천릿길, 저자는 그 길에서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주당들도 발견했다. 벗들과 함께 보리술 항아리에 둘러앉아 대나무통을 꽂아놓고 술을 마신 고려의 문인 이제현, 혼돈주를 빚어 스승으로 삼은 조선의 기인奇人 정희량, 다산이 그려낸 천하의 술꾼 천용자, 술 없이는 시도 지어지지 않았다는 고려의 주선酒仙 이규보가 그들이다.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술에 얽힌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놓는 저자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그중에서도 ‘안중安中’에 대한 이야기는 유독 눈에 띈다. 허시명은 이번 책에서 왕건과 견훤의 안동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주모酒母 안중을 주신酒神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다. 테마캠프 여행사 류동규 대표는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처음으로 논개를 공론화했고, 허시명은 이 책에서 안중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고 말했다.

「tip」 숨어 있는 1인치의 역사, 우리에게도 이 있다!

우리에게도 와인의 역사가 있다! -하멜의 포도주
우리나라 최초의 포도주는 『고려사』 충렬왕 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 충렬왕 28년(1302) 2월에 원나라 “황제가 왕에게 포도주를 선물로 보내주었다.”고 했다. 최초의 포도주는 수입 포도주였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유럽 포도주는 1653년 하멜과 함께 표류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클래릿 포도주이지만, 조선에는 그 이전부터 조선의 빛을 담은 포도주가 있었다. 와인 바람이 구대륙과 신대륙에서뿐 아니라 우리 역사로부터도 시작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유럽 정통 포도주는 한반도에 언제 처음 상륙했을까? 효종 4년(1653)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이 폭풍을 만나 난파하여 제주도에 상륙했다. 역사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유럽 포도주는 1653년 난파한 하멜과 함께 들어온 한 통의 포도주다. 그 포도주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빚어진, 엷은 빛이 도는 레드와인 계통의 클래릿 포도주인데, 하멜 일행은 살아남기 위해 그 포도주를 제주도의 관리들에게 상납했다. 난생 처음 보는 포도주를 제주 관리들은 어떻게 했을까? 제주 관리들은 “그 술을 썩 좋아하여 취흥이 도도할 때까지 마시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한반도의 제주 땅에 상륙한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상륙 5일 만에 제주 관리의 몸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효종실록』에 클래릿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주신이 있다! -안중의 고삼주
이제 우리도 ‘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주신 하나쯤은 찾아서 기려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주신이 되기에 충분한 공을 세운 인물을 찾아냈다. 바로 후삼국시대의 안중이라는 여인이다.
안중은 술집을 운영하던 주모였다. 그녀는 930년 왕건이 견훤을 물리친 안동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술 잘 빚기로 소문난 그녀가 만든 고삼주라는 술은 맛이 진해 사람들이 금세 아찔하게 취했다. 그녀는 이 술로 후백제의 병사들을 곯아떨어지게 했다. 그 덕분에 왕건은 견훤의 군사 8천 명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두었다. 안동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왕건과 고려의 운명이 어찌 되었을까?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는 데 지대한 수훈을 했지만, 정작 고려 개국공신 명단에는 안중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안중이 여자였고, 한낱 주모였기 때문이리라. 안중은 지금도 안동에서 하늘을 나는 천마의 형상으로 기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안중을 주신의 반열에 올려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우리의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문을 닫는 양조장이 늘고 있다. 이제는 잡초만 우거진 쓸쓸한 양조장 앞에 서서 저자는 우리의 전통이, 우리의 문화가, 우리의 정신이 함께 퇴락해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한다. 이와 함께 옛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일본의 전통에 대한 진지함이 무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것을 소중히 해야 하고, 전통이 훌륭한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는 아직도 보존해야 하는 귀한 전통들이 가뭇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식의 무조건적인 전통 고수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옛것을 찾되 합리를 배우고 시대에 맞게 변주하여 새 길을 모색하는 것도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인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 것을 보존하고 시대와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술은 한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리가 술을 단순히 마시며 즐기는 음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이 담겨 있는 소중한 우리 술, 따라서 ?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나와 이 시대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진지한 반성과 애정 어린 관심만이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 그 속에 깃든 우리 정신의 원형질을 보존할 수 있다.
때론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행길에 한번 나서보자. 맛으로 기억되는 여행은 절대 잊히지 않는 법! 여행하는 길에 그 지역 특산품으로 나오는 지역 술들로 향을 음미하고 입술을 한번 적셔보자. 그러면 여행이 훨씬 풍성하고 즐거워질 것이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맛있는 여행이 되는 데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천 리를 돌고 얻은 술 10계명

1. 주는 대로 마시지 말고 골라 마셔라. 술에 대한 철학을 바꿔라.
2. 마음의 주신을 모시고, 술을 경계하라.
3. 술은 노인을 보양하기 좋은 음식이다. 약주로 효도하라.
4. 한국와인의 족보를 찾아라. 우리에게도 와인의 역사가 있다.
5. 감미료 술을 경계하라. 어떤 명주도 감미료는 넣지 않는다.
6. 지역의 술, 오랜 전통의 술을 찾아 즐기라.
7. 소주도 한류다. 한국 소주를 세계 명주로 만들자.
8. 100일 동안 숙성시킨 백일주를 즐겨라.
9. 자기만의 주안상을 차려라.
10.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하라.

「tip」 당신의 주도는 몇 단계?

시인 조지훈의 주도 18단계

1. 불주(不酒) : 될수 있으면 안마시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사람
4. 은주(隱酒) : 돈이 아쉬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마시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사람. 주졸(酒卒)의 단계
10. 애주(愛酒) : 취미로 술을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 굴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 일명 열반주.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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