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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한국의 독자들에게 1 비울수록 채워지는 삶 2 내가 살고 죽을 말씀 3 처녀비행 4 시간의 지성소 5 은총이란 대체 무엇일까? 6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곳을 원합니다 7 유리창 너머로 보기 8 흔들림 없는 믿음 9 낮아지기 10 비움으로써 채워지다 11 친교의 기쁨 책을 마치며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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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화폭에 난 상처가, 우리 세계에 뚫린 구멍이, 우리 자신의 텅 빈 자리가 실은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그곳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영혼의 찢긴 자리, 우리의 시야에 점점이 난 구멍들이 실은 이 혼돈의 세상 저편 가슴 시린 아름다움을, 그분을, 우리가 영원히 열망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가느다란 틈인지도 모른다. --- p.36 정말 너무 놀라워 눈이 멀고 발을 헛디뎌 넘어질 정도의 장관과 맞닥뜨려야만 우리 흐릿한 영혼의 눈이 장대함을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 못지않은 장관의 놀이 날마다 이곳 우리의 일상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과 안목만 있으면 된다. --- p.48~49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사, 이 씨앗이 거대한 기적을 키워낸다. 감사의 기적은 최후의 만찬과 마찬가지로 빵 조각을 먹고, 마실 것 한 모금을 삼키는 데에 있다. 삶은, 범상치 않은 삶조차도 작은 부분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무한소를 놓치면 전체를 놓치게 된다. 삶을 변화시키는 감사는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인 못을 박을 때 삶 속에 붙들어 맬 수 있다. (…) 빈 공간은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진다. 사소해 보이는 것에 감사드릴 때 내 안에 하나님께서 자라날 공간이 생겨난다. 이것이 나를 가득 채우고 하나님은 세상에 들어오신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 69:30). 감사를 통해 우리는 작아지고 세상은 제자리를 찾는다. 나는 감사를 말함으로써 그분과 함께 커진다. --- p.84, 87 사탄이 내 눈을 가려 말씀을 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내 시력이 나빠 빛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빛으로 온몸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이 나쁘면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영혼이 병든다. 빈 것은 정말 빈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렌즈로 사용하지 않으면 세상은 뒤틀린다. --- p.128~129 영광의 무게가 내 두꺼운 비늘을 걷어내기를, 그 영광의 무게가 필사적인 물질주의의 사슬을 끊어버리기를, 생명을 마비시키는 환락의 껍질을 쪼개기를, 얼음처럼 딱딱해진 심장을 부수기를 나는 얼마나 바라는지! 나는 내 속마음을 속속들이 아시면서도 시들어가는 이 필멸의 육신 안에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뵙고 싶다. … 감사거리는 어디에나 있어서, 그걸 모든 곳에서 찾아내고 싶다. (…) 모든 아름다움은 무엇을 반사한 것이다. 내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내가 경탄하는 모든 피조물에서 내가 고개 숙이는 대상인 그분의 얼굴이 섬광처럼 지나간다. 그것이 피조물이 아니라 그분임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내게 있을까? 대롱대롱 매달려 현란하게 빛나는 싸구려 장신구에 현혹되지 않고 그것이 부서지고 깨질 때까지 모든 것에서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눈이 내게 있을까? --- p.56~157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믿음 훈련의 최우선 자질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축복에 이름을 붙이던 몇 달 동안 이 말은 나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이었다. 감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특징이다. 감사하지 않는 생활이 하나님에게서 나를 떼어놓았듯 감사하는 생활은 나를 하나님께로 되돌려주었다. 감사는 기독교 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는 감사가 믿음 훈련의 최우선 자질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감사가 신뢰를, 진정한 믿음을 낳기 때문이다. --- p.211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 대신 선물을, 우리 몸을, 우리 시간을, 우리의 이 생명을 자비롭고 열정적으로 내려주신다. 하나님은 권리를 주시지 않고 사랑의 선물에 응답할 책임을 지워주신다. 나는 알고 있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순간의 선물에 한심하게 응답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를 거만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선물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다. 감사란 늘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 p. 244 세탁이 우리 아이들의 열두 팔과 열두 다리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들이 내게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탁은 골치 아픈 일거리가 되고, 기쁨에는 벼락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설거지도, 빨래도, 잡일도 모두 그분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가 되고, 기쁨이 쏟아진다. 그리스도께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사랑 넘치는 종이 된다. 마음의 눈을 하나님께 맞추면, 두 손으로 언제나 예수님의 발만 씻기면 우리 몸이 기쁨을 노래하고, 일은 가장 순수한 상태로 돌아간다. 일이 감사의 예배가 된다.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우리의 일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일이 기도가 되면… 그것을 예수님께 하면, 예수님을 위해 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 p.267~268 그동안의 기독교적 훈련, 성경 공부, 교회 참석은 내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감사 연습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처음으로 꼼꼼히 따져보게 되었다. 쉼 없이 뒤쫓는, 말도 안 되는 그분의 담대한 사랑. 모든 곳에,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단순한 믿음을 뛰어넘어 그분 안에 살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늘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다(살전 5:18). 이것이 바로 완전한 교제다. --- p. 283, 299~300 감사 수첩이 여느 때처럼 싱크대 위에 펼쳐져 있다. 순간을 헤아리고 그분의 사랑을 적어 넣는 수첩. 이처럼 수를 꼽는 삶의 본모습을 체스터턴은 이렇게 요약했다. “가장 위대한 시는 재고 목록이다.” 나는 헤아리기의 한가운데에서 행복하게 웃는다. 나는 숫자 세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노래를, 그분의 마음의 운율을 문자로 옮기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과 나, 한 쌍. 천 개의 선물을 세고, 하루에 백 번 거룩하신 분을 축복하고, 세탁실과 부엌과 병원과 포도밭과 고속도로와 샛길과 일하러 가는 길과 활활 타오르는 별들의 길을 채우시는 그분의 존재와 교제하리라. 그분의 존재가 나를 채운다. 이것이 바로 충만한 삶이다. --- p.309~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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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어떤 과정을 지날지라도
날 향한 ‘맞춤 은혜’가 예비되어 있다!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마저도 내 필요와 내 기준을 따라 재단하고 축소한다. 내가 준비한 간장 종지 크기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고 그분의 사랑은 이런 사소한 필요도 채워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이어간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은총은 그다지 와 닿지 않고, 안 믿는 이웃의 성공과 풍요로움이 더 커 보인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느낌과 생각과 상상보다 훨씬 거대해서 개인적인 필요와 소망이라는 그릇에 잘 담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좋은 것들로 채우신다는 신은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부모와 이웃에게 받은 트라우마와 원망의 골짜기에서 헤매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그런 삶이 실제로 가능하긴 한 건가? 나도 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실패보다 크다는 것을. 99가지를 잘못했어도 잘한 것 하나로 나를 안아주시는 그분의 마음을. 하지만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인생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할 건가? 그분을 원망하고 싶은 인생의 가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 따질 것이 많은 곤고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이토록 상처뿐인 삶을 안고 어떻게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하나님께 감사로 마음을 열면, 하나님은 내 인생을 활짝 열어주신다! 앤 보스캠프는 내가 인생의 어떤 과정에 있더라도,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릴 적,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부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 앞에서도, 여섯 남매를 키우며 농사를 거들고 1,400마리가 넘는 돼지를 먹이는 격한 분주함 속에서도, “말씀이 임하는 인생”을 살기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도저히 감사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바쁘고 피곤해 입안에서 단내가 나는 날에도 그분을 만났던 ‘하나님 임재연습’이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일상에서 이 감사드리는 일을 영적 훈련으로 삼아,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한량없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같은 묵직하고 큰 주제가 아니라, “낡은 바닥에 드리워진 아침 그늘”, “미친 듯이 머리칼을 헤집어 놓는 차가운 바람”과 같이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순간(경험)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을 살갑게 누릴 수 있는 최적화된 경험이 그 정도라면? 이러한 소소한 선물 같은 순간들이 쌓여 더욱 단단하게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이어진다면? 관념과 사상 속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 일상에서 손을 내미시며 쓰다듬어 주시는 하나님 손길을 매 순간 경험할 수 있다면? 보스캠프는 하나님 은총의 저수지에서 나에게로 전달되는 은혜의 통로가 ‘감사’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열린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실존적 은혜는 바로 여기, 감사하는 영혼을 향해 부어진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감사하시며 축복하신 것도, 고침 받은 나병 환자에게 구원을 선포하신 것도, 최후의 만찬에서 날마다 먹는 빵과 포도주를 그대로 감사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도, 우리 일상에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과 곧바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 아니겠는가?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하나님 임재의 비밀 감사. 많이 들어왔지만, 실제로 삶에서 제대로 적용해본 적이 없는 낯선 진리. 이 책은 단지 감사의 삶을 머리로 묵상한 사색의 흔적이 아니다. 천 개가 넘는 감사의 목록(하나님의 선물 목록)을 적으며, 온몸으로 경험하고 깨달은 변화의 기록이다. 뭘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에, 이미 누리는 것에 감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다. “감사드리기 연습은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는 방법이야. 그분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지. 그리고 반드시 눈의 훈련이 필요해. 우리가 보는 것을 바꾸는 게 아니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거지.” 감사라는 키워드로 말씀과 삶의 여러 신비를 열어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성경이 감사라는 주제를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음에 새삼 놀란다. 감사연습을 영적 훈련으로 삼아 내 삶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필독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