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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야
양장
200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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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산도르 마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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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캇사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변화의 징조가 뚜렷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그리고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캇사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변화의 징조가 뚜렷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그리고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헝가리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신문학 연구소에서 강좌를 수강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옮겨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독일어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작위를 받은 작센-메렌-헝가리 시민 가문에서 출생한 마라이는 독일과 헝가리 양국의 언어에 능통했다.

1923년 잠시 베를린에 체류한 후, 그는 같은 고향 출신의 젊은 부인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계속 기사를 쓰는 한편, 유랑민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당대의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다. 그 가운데 그는 카프카·트라클·벤 등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번역한다. 카프카에 대한 헝가리 최초의 비평 역시 그의 손을 거쳐 1922년 『카샤우 신문』에 실린다. 1927년 그는 중동 여행기 『신들의 흔적을 좇아-여행 소설』을 출간한다.

그 후 그는 영영 잃어버린 조국애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헝가리 말로 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 거기서 그의 왕성한 작가 활동이 시작된다. 서정시·산문·희곡 그리고 마라이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수상록 『가난한 이들의 학교』(1933), 『나라, 나라』(1945~1947) 등에서 그는 중부유럽의 상황을 선명한 필치로 절조 있게 논평하고, 타국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드러나는 자신의 이중적인 이질감을 설명한다. 그리고 마라이는 『어느 시민의 고백』(1934)으로 성공을 거두어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당대의 저명한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고독한 작가의 커져가는 인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글 밑바탕에 웅크린 존재론적인 문제들 때문이 아닐까!”

마라이는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향을 미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러한 성공을 뒤로하고 1948년, 고개를 쳐든 독재에 혐오를 느껴 헝가리를 떠난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그를 골수 보수주의자로 공격하면서 그는 숨막히는 질식감을 느낀 것이다. 처음에 그는 나폴리에 정착하지만, 1952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는 뉴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흥미 있는 도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애석하기 그지없다.” 마라이는 당시 미국 시민권이 있었지만 1968년에 이탈리아의 사례르노로 건너가 10년 이상 머무른다. 그러다가 다시 1979년 미합중국의 샌디에이고로 돌아간다.

이 무렵 역사·신화·성경에 관련된 주제를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다룬 소설들을 헝가리어로 집필한다. 마라이는 망명지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헝가리의 독재 정권은 그의 책들을 금지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동시에 1943년에 시작한 일지를 1983년까지 계속 쓰는 한편(일지는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31년에서 1947년 사이에 집필한 대하소설 『가렌의 업적』의 내용과 문체를 수정한다.

그의 망명 생활은 고독과 쓸쓸함의 연속이었다. 스위스에서 1년, 이탈리아에서 2년, 그가 증오한 뉴욕에서 15년, 다시 이탈리아, 그리고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었던 마지막 거주지 캘리포니아 해안의 샌디에이고. 그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의 고독이 때때로 유럽을 생각나게 하는 뉴욕에서의 상실감보다 견디기 쉬었다. 게다가 샌디에이고에서는 적은 수입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마라이는 헝가리 망명 인사들의 모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헝가리 문인협회가 정치적인 화해의 표시로 발송한 초대장도 거절한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자신의 희곡이 상연되는 것과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고독을 대변해주듯 수상록 『하늘과 땅』(1942)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파스칼·횔덜린·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혹한 다음 무덤 속에 내팽개치는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실패,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 혼자 남아 대답하는 것……”
60년 이상 생을 함께한 부인이 죽었을 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와 완전히 하나다. ……그녀는 마치 독립된 개체가 아닌 것 같다. …… 그녀는 아름답다. 사멸의 아름다움은 청춘의 도도한 아름다움이나 완벽한 여성미보다 때때로 더 설득력이 있다.”

이렇듯 자신과 완벽하게 합일한 인간의 사멸에 대한 관찰은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신중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부인에 이어 의붓아들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완전히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하지 않다.” 그러고 나서 그는 권총을 산 다음 경찰 강좌에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의 고향은 그때까지 그를 계급의 적, 배반자로 칭했으며, 거의 40년 동안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와 그의 작품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추호의 의심 없이 말했다. “어디로 떠밀려 가든지, 나는 항상 헝가리 작가일 것이다.”
그는 젊은 날 한때 독일어로 글을 쓴 적이 있었으며,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지구상에서 잘해야 천만 명 남짓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소수 민족의 언어에서 가능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데 자신의 사명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게는 독일어 번역들이 그의 예술의 한 가닥 빛을 전해주어 참으로 다행이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들로 시적인 깊이를 창조했다. 그 때문에 씌어진 지 60~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소설들은 선명함과 생명력, 슬픔과 사랑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1988년 ‘전환기’가 예고되었을 때, 부다페스트의 출판사 세 곳에서 그의 대작을 출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갑자기 깨어난 이러한 관심이 그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는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물러나고 자유로운 민주선거가 실행된 다음에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문인협회라는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해서 나와 내 책들의 기념비를 만들겠다고 한다. …… 모든 기념비 공동의 운명은 개들이 발치에 오줌을 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전환기가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기 직전인 1989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게 된 마라이는 샌디에이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9세의 그는 거의 한 세기를 헤아리는 자신의 삶을 권총으로 마감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무려 4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부인처럼 자신의 유골을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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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3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298g | 120*195*20mm
ISBN13
9788981336431

책 속으로

이 비극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두 사람 모두 앓기 시작했다. 루드비히는 신경 쇠약과 위통으로 두 번씩이나 병원에 입원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고통스러운 삶이 원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아델레는 이 모든 것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 p.119~120

줄거리

38세의 판사 크리스토프 쾨뮈베스는 다음 날 있을 재판 기록들을 들여다보며 회상에 잠긴다. 자신의 학교 동창이자 잘 나가는 의사인 임레 그라이너의 이름이 들어있었기 때문. 학창시절 자신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친구였고, 그의 아내 또한 결혼 전 자신과 우연히 서너 번 만남을 가져온 사이다. 한데 소문난 잉꼬부부로 알려진 그들이 이혼이라니……. 이로 인해 쾨뮈베스는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대대로 판사 또는 변호사를 지내온 법조인 집안에서 무미건조하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한테 판사라는 직업은 안성맞춤이었다. 기숙학교에서 만난 신부에게 부성애를 느끼게 된 일들과 안나 파체카스와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리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터라 사무실을 나와 모임 참석 후 집에 돌아오는데, 놀랍게도 임레 그라이너가 자신을 찾아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임레는 자신이 아내 파체카스를 죽였기 때문에 재판이 열리지 않을 거라며 이야기를 꺼내는데…….
의사로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나를 만나 청혼을 하고, 그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지만, (사건 발생일로부터) 육 개월 전 불현듯 진실을 깨닫게 된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남의 집 하녀로 일하는 어머니 곁에서 자라던 그라이너는 부유한 외삼촌의 집으로 들어가 곱게 길러진다. 대신 어머니를 끔찍이도 싫어한 외삼촌 때문에 그라이너는 어머니 곁에 머물지 못하고 늘 감시당했다. 반면 안나는 그리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끔찍이 위하는 아버지 덕에 물질적 풍요로 누리며 살아왔다. 그라이너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캐묻지 않는 아내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낀다. 그렇게 사 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집에 돌아온 그라이너는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는데 아내가 불감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흐른 후 그라이너는 아내와 별거에 들어가고 안나는 육 개월 동안 멀리 여행을 떠난다. 그 사이 두 사람의 법적 이혼 서류가 준비되고, 재판이 있기 삼 일 전 안나는 그라이너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만나줄 것을 요구한다. 그라이너의 병원으로 찾아온 안나는 구 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진실을 말하는데….
스스로도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는지 안나는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그라이너는 크리스토프를 찾아와 간절하게 묻는다. 단 한 번이라도 안나를 떠올리거나 생각한 적이 없느냐고

출판사 리뷰

『이혼전야』는…
이 세상 수많은 ‘사랑’의 정의 중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부합하는 말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여기 한 남자가 내리는 사랑의 정의는 과연 몇 명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동일한 박자’라고 부른다네!”

남자는 사랑도 삶도 모두 ‘동일한 박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쪽이 빠르면 다른 쪽은 느리고, 한쪽이 소심하면 다른 쪽은 용감하고, 한쪽은 뜨거운 반면 다른 쪽은 미지근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사랑의 정의를 ‘동일한 박자’가 아닌 ‘엇박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내의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는 수없이 사랑의 정의를 만들어 내곤 한다. 사랑은 ‘동일한 박자’이며, 사랑하는 이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소유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상대의 꿈까지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상대가 바로 자신의 삶 그 자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 지능이 발달하여 인간을 위험으로 몰고 가듯 남자 역시 수없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큰 상처를 입는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건 생각보다 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진정 사랑한 상대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임을 알고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아도 될 만큼, 죽은 아내가 사랑한 상대에게 찾아와 당신도 내 아내를 사랑했었냐고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세상이 아무리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쳐 온통 헤집어 놓을지라도 체제에 순응하며 엄격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모범 답안이 아닐까?

헝가리의 대 문호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이혼전야』는 이혼 전날 밤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여 그녀의 모든 걸 소유하려 했지만 결국 아내의 마음 한 쪽 가장 깊숙한 자리를 얻지 못한 남자와 십 년 가까이 자신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다가 이혼 직전에서야 자신이 진정 사랑한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여자, 그리고 남자의 동창이자 여자의 진정한 사랑인 이혼 전문 판사라는 인물을 내세우고 있다. 이혼 전날 밤이라는 시간과 엇갈리는 부부의 사랑, 그리고 그들을 떼어놓아야만 하는 이혼 전문 판사라는 구도는 어쩌면 약간은 작위적이면서도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하지만, 마라이는 긴장감 넘치는 극적 구도를 기반으로 하여 특유의 탁월한 문장력과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킨다. 작중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열중하다보면, 어느새 작중 인물에 매료되어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격정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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