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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書堂
축성 築城 해적 海賊 대의 大義 민란 民亂 애정 哀情 이양선 異樣船 낙조 落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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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았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그예 『자산어보』를 완성했고 표류기도 마무리를 지었으며 서당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순박한 섬사람들과 여생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없이 살면서도 넉넉한 인심과 갈수록 끌리는 인정. 한양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뭍을 그리는 것은 오로지 수구초심의 망향지정과 혈육들 그리고 옛 벗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제도와 관직따위는 이미 관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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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역사의 미명을 헤치며 당당히 맞선 자의 유배 일지!
『베니스의 개성상인』『타임 레이더스』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오세영이 최근 『소설 자산어보』(상·하)를 펴냈다. 오세영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배합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중세와 근세 역사를 무대로 하면서도 외국인과 세계무대와의 접합점을 찾아나가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들로 화제를 모았다.
『소설 자산어보』는 우리 역사에서도 정치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던 18, 19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1801년 신유사옥 때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를 쓴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된 후 그곳에서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당시 공리공론과 당파싸움에 몰두해온 권위적 양반 지배계층은 천주학과 서학을 비롯해서 밀려오는 서양 문명의 물결 앞에서 안으로만 움츠러들고 있었다. 이후 19, 20세기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천주학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서해의 외딴섬으로 유배된 실학자 정약전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유배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뇌한다. 그리하여 바닷가 어민들의 목숨이 걸린 상황을 맞닥뜨리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것은 잠녀들의 의문의 죽음과 조기 파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거나 고기잡이 나갔다가 먼 이역 땅으로 표류하고 돌아온 어부들의 이야기를 표류기로 정리하는 한편, 물고기들의 생태와 종류를 기록한 어보를 찬술하며 서당을 세워 실학과 서양 학문을 가르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실학자로서 혹은 신문명의 탐구자로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성실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위인으로서의 면모가 소설을 관통하는 작가의 강한 창작의식이다. 전통과 새로운 물결 사이의 갈등, 그리고… 『소설 자산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1801년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6년 동안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사전인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표류기漂流記』를 찬술하고 서당인 복성재 復性齋를 설립하여 학동들을 가르친다. 『소설 자산어보』는 그러한 사실들을 소재로 하고 19세기 초의 조선을 시대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를 꾸민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은 정약전과 그를 도와서 『자산어보』를 만든 실존인물 창대(본명은 장덕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독립된 에피소드마다 필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나폴레옹의 눈에 비친 먼 극동 은자의 나라 조선을 그리고 있다. 정약전이 숨을 거둔 해인 1816년에 영국 해군 소속의 배질 홀 대령은 알세스트 호를 이끌고 조선의 서해안을 탐사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배질 홀 대령은 귀로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들러서 그곳에 유배중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배알하고 조선의 사정을 들려준다. 나폴레옹은 정약전의 기록을 읽으면서 절해고도에의 유배라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다. 소설은 특이하게도 정약전의 사후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중이던 프랑스 황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눈에 비친 흑산도와 정약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비슷한 처지에 있으나 수동적이고 비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폴레옹과 비록 유배지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정약전의 자세가 선명하게 대조된다. 한 위대한 인물이 일구어내는 작은 변화는 미개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권위적인 기존 세력에 대항하면서 진정한 개혁의 방안을 모색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옥패가 부정한 짓을 했다는 이유로 바다의 제물로 바쳐지려고 하는 순간 약전은 지식인다운 냉정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한 선비의 말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내 말을 똑똑히 듣거라! 거듭된 변괴는 용왕님이 노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먼 남쪽 바다에서 우연히 차가운 조류가 수괴를 이루며 흑산도 앞바다까지 흘러왔는데, 잠녀들이 그만 그 냉수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약전이 몰려드는 마을 사람들을 행해 냉수괴의 정체를 설파했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요! 차가운 물덩어리라니.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이 나이까지 줄곧 여기서 살았지만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소. 글이나 읽은 선비님이 바다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서는 거요!” “맞소! 선비라고 하지만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온 몸, 괜히 마을 일에 끼어들지 마시오!” 이렇듯 약전은 논리적인 근거를 대어 애매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미신 같은 불가해한 믿음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가슴을 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결합 『소설 자산어보』에서는 어지럽고 지난했던 조선후기 사회상이 농민과 어민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어부와 잠녀들의 일상사나 표류민들의 애환, 홍경래의 난으로 봉기한 농민들과 그로 인해 쫓기는 잔당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또 옥패의 친구인 이국영과 허회영의 결혼을 앞두고 죽은 줄만 알고 있던 고상운(이국영의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이나 노비의 신분으로 은인과 정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 등은 남성우위 및 봉건제 신분 사회의 한계와 특성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서원의 동주(원장)가 서민들이 공부하던 사촌서당의 맥을 끊기 위해 약전과 최종문(약전의 제자)을 배척하고 고사시키려 했던 모습은 조정의 비호 아래 외딴섬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서원의 행태와 조개껍질 속으로만 숨으려 했던 조선후기 보수 지배계층의 단순무지함이 결국 근대사회 우리 국운을 몰아갔음을 암시한다. 유배지에서 힘없는 지식인으로서 궁지에 몰린 실학자의 면모는 다음과 같은 광경들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배성태는 지켜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약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경멸의 빛을 띠며 입을 열었다. “하루속히 축성 공역을 마쳐야 마을 사람들도 제 집을 고치고 또 출어도 할 것이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입만 벌렸다 하면 위민을 들고 나오는 당신이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실학이 정말로 위민의 학이라면 그리고 이용후생의 술術이라면 이 기회에 사실인지를 증명해 보이거라.” 뜻밖의 말이었다. 갑자기 위민과 이용후생을 들고 나오더니 증명해 보이라니. 구상복을 위시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약전에게 집중되었다. 무게 있는 역사소설의 출간은 전반적인 출판 및 문학작품 시장의 부진 속에서 누구나 기다려온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근대 역사의 방향이 잡히기 시작한 18세기와 19세기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비롯한 대립관계 , 전통 유교문화와 실학 및 서양문화가 부딪치는 현장을 정면으로 다룬 역사소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근대성의 규명이나 문화적 정체성 찾기를 위한 노력을 볼 때 한층 절실해진다. 『소설 자산어보』는 격동기 조선사회의 이면을 주된 배경으로 하면서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결합을 통해 감동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소설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