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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구획되는 경계 1장자기증명의 정치학: 근대국가에서의 국적, 여권, 등록 _조경희 2장해방 이후, ‘신분증명서’를 통한 개인의 관리와 통치 _이정은 3장누가 국민이고 누가 유권자가 되는가?: 남한의 최초 총선거와 주민의 자격·분류·등록 _서호철 2부|국민과 난민 사이 4장한일협정 체제하 재일조선인의 국적과 분단 정치 _조경희 5장오키나와의 조선인: 배봉기 씨의 ‘자기증명’의 이중적 의미를 중심으로 _김미혜 6장무국적 사할린 동포의 대한민국 국적 확인 소송의 내용 및 의의 _윤지영 3부|자기증명의 실천들 7장분단 체제하 재일 코리안의 이동권: 고국권을 제안하며 _이재승 8장국가 폭력 사건의 재심을 통한 자기 회복: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_고연옥 9장‘무호적자’ 관리를 통해 본 중국의 인구 통치 _김미란 10장국경도시 중국 단둥의 중첩되는 경계: 2010년 전후를 통해서 _강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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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2012년에 새로운 외국인 재류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재일조선인들을 비롯한 영주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재입국허가제를 간소화했으나, 한편으로는 ‘유효한 여권’이 없는 조선적 재일조선인, 비정규 체류자들에 대해 관리 단속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즉, 국경의 벽은 유효한 여권을 갖고 있는 주류 시민들에게는 낮아졌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상반된 움직임이 아닌 국경의 ‘스마트화’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얼핏 자유로운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로벌 엘리트들조차 생체 인식이 포함된 전자 여권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감시 체제하에 있다. 여행자(tourist)와 방랑자(vagabond)를 구별하는 이동의 양극화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여행자의 꿈과 욕망을 확대하는 글로벌화는 언제 여행자를 방랑자로 전락시킬지 모른다.--- p.1
전 국민을 고유 번호로 식별하는 주민등록제도가 국가 안보와 총력전 태세의 명목으로 강화되면서, 개인 식별 번호에 의한 개인 정보의 과다한 수집과 통합은 행정 편의 앞에 묵인되어왔다. 이렇게 온순한 양민임을 다양한 신분증으로 검증받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풍경’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시체제와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국민을 ‘적색 반동분자’로 몰아세우며 냉전 시기의 체제 대결을 환기해 국민 개개인에 대한 파악과 이념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p.2 법적으로 누가 조선인인지 여부를 증명하는 실증적 근거는 여전히 식민지기 이래의 가족관계 등록 장치인 호적이었으나, 여기에도 문제가 많았다. 해방 직후 한반도 인구의 5%가량을 차지하던 일본인은 거의 본국으로 돌아갔고[引揚], 해외의 조선인이 대거 귀환했다. 미·소의 분할 점령으로 남북에 다른 체제가 들어서면서 38도선을 넘는 사람도 많았다. 개중에는 식민지의 호적에 편입되지 않아서 혈통상의 조선인이면서도 그것을 서류로 입증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고, 월남민으로 북쪽에 있는 호적을 확인·증명할 수 없는 자들도 있었다. 1948년까지의 귀환자·월남민 수는 대략 220~25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남한 인구의 10%를 상회하는 규모다.--- p.3 일본 식민지 지배의 결과 조선인들은 일본 국적을 부여받았으나 호적을 통해 일본인과 구분되었다. 조선인들은 1909년 민적법, 1923년의 조선호적령(조선총독부령 제154호)에 따라 일본 호적이 아닌 조선 호적에 편입되었다. 이 호적의 차이는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근거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1945년 선거법 개정으로 조선인들을 일방적으로 국정 참정권에서 제외했고, 1947년 5월 2일에 공포된 외국인등록령을 발포해 조선인들을 따로 관리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때 일본 정부가 일률적으로 부여한 등록상의 표시인 ‘조선’은 국적이 아닌, 지역적 기호로서의 의미를 가졌다.--- p.123~12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배봉기 씨로 상징되는 오키나와의 조선인에게 강제된 ‘자기증명’의 현실을 통해서 그들에게 관철된 식민주의와 남북 분단 그리고 냉전 시스템의 폭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밝히는 ‘근거’(grund)에 접근한다. 층층이 겹쳐진 폭력에 노출되어온 오키나와 조선인의 역사를 대면하다 보면, 자기증명을 하라는 폭력에 노출된 존재들이 거꾸로 이와 같은 폭력의 억압성과 차별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키나와의 조선인들에게 자기증명을 강제하면 할수록 식민 지배의 폭력과 국가 폭력의 민낯이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이를 통해 역사를 굴절시키고 훼손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에 맞설 수 있게 되고, 그 주장들을 무효화할 수 있는 다양한 논리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p154~155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이주했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포의 수는 약 4만 30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이 1938년에 제정한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강제징용되었고 식민지 체제의 특성상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45년 패전으로 일본은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일본인만 귀환시켰고 조선인은 사할린에 남겨두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출신이지만 일본 국적을 가졌고 사할린에 남게 된 조선인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이하에서는 통칭 ‘사할린 한인’이라 부른다)는 러시아인인가, 일본인인가. 아니면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 국민인가, 대한민국 국민인가.--- p.180 고 씨는 과거 북한 체류 중에 북한 당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사정 때문에 현재 북한에 입국할 수 없는 처지이며, 리미오 씨는 조선적으로 인해 현재 남한에 입국할 수 없다. 부부가 남북에서 각기 이동권을 제한당하고 있다. 고 씨는 분단 조국의 국적을 몹시 불편하게 여기고 차라리 무국적자가 되기로 했다. 일본의 특별영주권을 가지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고 씨는 국적 포기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불이익을 야기하지 않는다며 국적 이탈을 신청했으나 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고 씨는 국적포기소송에서도 패소했다.--- p.204 1970~1980년대 간첩 사건은 모두 966건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 사건은 319건이며,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가 73건을 수사했다. 재일동포 관련 사건은 보안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특히 1980년대 일본 관련 공안 사건은 1980년대 전두환의 등장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1980년 이후 보안사는 한국에 와 있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했다. 보안사는 ‘수사 근원 발굴 작업’을 통해서 재일동포 유학생들에 대한 집중 조사를 거쳐 정권의 위기나 사회통제의 필요에 따라 거의 정기적으로 간첩 사건을 조작해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들 유학생은 보안사의 계획에 의해 관리되다가 필요할 때마다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낙점되어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보안사에서 발간한 기록물도 이러한 정황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p.244~245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 거주하는 성원은 태어남과 동시에 아무 조건 없이 출생신고를 통해 공민이 된다. 공민권을 명시한 이 ‘호적법’(‘戶口登記條例’, 1958. 1.9)은 2010년, 중국 정부가 중국 영토 안에서 태어난 국민 가운데 1300만 명이 그 어디에도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없는 무호적자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한 뒤 ‘공민권’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왜냐하면 지난 30여 년간 한편으로 무조건적으로 국민 성원권을 인정한 ‘호적법’이 존재하고 동시에 ‘공민권’ 박탈을 정책 실행의 수단으로 활용한 계획생육(‘計劃生育’) 정책이 시행됨으로써 1300만 명의 무호적자, 그중 50%를 차지하는 650만 명이 초과 출산 헤이후(黑戶, 무호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p.268~269 조선족의 여권에는 삼국을 연결하는 교류의 흔적이 있다. 2016년 2월, 한국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출장 온 조선족 A는 서울의 호텔에서 북한 사람(단둥 거주)의 국제전화를 받고, 그가 단둥에서 TV로 보고 있는 한국 홈쇼핑 물건의 구매를 부탁받았다. 대형 마트에서 같은 물건을 구입한 조선족은 다음 날 아침 인천공항에 갔다. 점심 때 단둥에 도착한 그는 오후에 중·조 국경을 넘어 신의주의 손녀딸을 만나려 가는 북한 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한다. 2016년 한국에서 구입한 물건이 신의주의 아이에게 가는 시간이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의 여권을 보면, 한 면에 “中國”, “대한민국”, “조선” 글자가 선명하다. --- p.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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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국민’과 ‘불온한 그들’을 나누는 경계
국적, 여권, 등록 국경 없는 지구는 가능한가? 1985년 솅겐 조약 체결 이후 유럽 시민 수억 명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반면, 최근 수년간 지중해는 목숨을 걸고 밀항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선진국으로 유입되는 이민과 난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고, 일본은 2012년 새로운 외국인 재류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영주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재입국허가제를 간소화했으나 ‘유효한 여권’이 없는 조선적 재일조선인, 비정규 체류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즉, 국경의 벽은 주류 시민들에겐 낮아졌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가는 여권을 통해 개인에게 국경을 이동할 자유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이동 과정을 감시하고 의심하면서 경계인을 만들어낸다. 즉, 사람들을 ‘선량한 국민’과 ‘불온한 그들’로 나누고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여권이나 신분증은 번호, 사진, 비자, 출입국 도장 등의 기록을 통해 삶의 이력과 이동의 흔적을 저장하고 축적하는 장치이며, 국가는 이를 개개인을 식별하고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자원으로 삼는다. 이와 동시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나이, 성별, 외모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권의 색깔과 국적 표시, 날마다 수시로 입력하는 등록번호 등을 통해 자신의 제도적 위치를 확인하고 자기증명을 실천한다. 식민, 분단, 냉전, 독재의 동아시아 현실 속에서 국적과 여권을 둘러싼 자기증명 실천의 역사 이 책은 한반도와 접경 지역에서 국경을 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인구의 파악과 등록, 이동의 의미를 묻는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냉전의 희생양이 되었던 한반도에서 다른 인접 국가로의 이동은 역사적으로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선량한 국민’과 ‘불온한 그들’로 경계를 만들어왔기에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했다. 이 책을 엮은 이정은과 조경희는 그동안 한반도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동과 탈국경적인 생활권에 착목해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장치이자 그들 스스로의 생명과 생활을 보장하는 여권이나 신분증의 의미를 묻고 그것의 아시아적 맥락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의 ‘자기증명’ 팀은 국적, 여권, ID, 국가 통치성과 국제 인권 제도와 관련된 글들을 읽고 국적법과 여권법, 주민등록법, 해외이주법, 밀항단속법, 국가보안법 등의 이동 관련법들도 함께 검토했다. 제1부 ‘구획되는 경계’에서는 근대국가에서 국적과 여권의 등장 배경과 한국에서 경계를 강화해온 정치 맥락을 사례를 통해 다룬다. 1장에서는 선행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면서 이 책의 개략적인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2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주민등록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 신분증명서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했던 제도의 변화 과정을 분석한다. 3장에서는 남한에서 이뤄진 총선거에서 누가 시민이고 누가 유권자가 되었는지를 ‘수의 정치’와 인구의 조사와 등록, 분류의 관료제의 통치성으로 분석한다. 제2부 ‘국민과 난민 사이’에서는 일본 식민지 지배와 한반도 분단 체제의 틈새에서 불확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 현실을 다룬다. 4장에서는 한국 외교문서를 통해 1965년 이후 재일조선인의 국적 변동과 ‘협정영주’허가 신청과 관련된 한일 정부의 개입 과정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시정권 반환 후, 체류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혀야만 했던 배봉기 씨의 경우를 ‘강요된 자기증명’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배봉기 씨의 삶을 통해 식민주의, 전시 성폭력, 동아시아 냉전, 남북 분단이라는 층층이 겹쳐진 폭력에 노출되어온 오키나와 조선인의 역사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6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에서 무국적자로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적확인소송을 다루고 있다. 무국적 동포의 대한민국 국적을 법리적으로 밝힌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 소송판결의 의미를 확인하면서도 대한민국 정부가 여전히 동포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한계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3부 ‘자기증명의 실천들’에서는 무국적이나 경계인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에 대응해가며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룬다. 먼저, 7장은 한국 보수정권하에서 정치적 이유로 입국이 거부된 재일조선인의 사례들을 국제인권법상의 이동권 관념에 비추어 검토하고 있다. 8장은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의 재심 절차를 형사 무죄판결과 보상·배상으로 나누어 그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해 재심과 관련된 그들의 생각과 감회를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 더욱 현실감 있게 전하고 있다. 9장에서는 중국이 한자녀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지만 동시에 1300만 명에 달하는 무호적자 집단을 양산한 점에 주목해, 공민권을 박탈하는 인구 통치가 가능할 수 있었던 중국의 통치 방식을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 단둥(丹東)과 신의주의 두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국경은 북·중 관계뿐 아니라 남·북 관계, 그리고 한국, 북한, 중국 관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라고 규정한다. 오랜 기간 이 지역을 연구해온 필자는 2010년을 전후로 단둥의 중첩되는 경계의 의미를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의 네 집단의 실천을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