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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서론 제1부 뉘른베르크까지의 여정 1장: 홀로코스트 2장: 아쉬칸 포로수용소 제2부 뉘른베르크 3장: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4장: 전범들과 정신과의사의 만남 제3부 악의 얼굴들 5장: 나쁜 뇌 6장: 호감형 사이코패스 7장: 나쁜 남자 8장: "그야말로 완전히 미친" 제4부 전범들의 심리분석 9장: 최악의 협력 10장: 로르샤흐 검사가 말하는 것 11장: 악은 곰팡이와 같은 것 12장: 사이코패스와 나쁜 뇌 에필로그 미주 본문에 나오는 로르샤흐 검사 카드 찾아보기 |
Joel Dimsd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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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들은 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걸까?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지독한 광기와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이코패스나 사디스트였을까? 많은 학자들이 사회 및 개인 행동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바탕으로 나치의 행동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대부분 방대한 기록 자료를 파헤쳐가며 훌륭한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범인들을 직접 면담한 경우는 드물었고, 제3제국Third Reich 지도자들 대신 하급의 평범한 구성원들을 전반적으로 조사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나치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정작 지도자들에 관해서는 어마어마한 사각지대에 맞닥뜨리게 된다. 부하들과의 면담 자료는 다수 있으나, 다들 본인은 제국이라는 큰 기계의 톱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톱니이고, 이 톱니들은 수많은 힘에 의해 맞물려 돌아가지만,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더 큰 톱니바퀴를 돌린다. 만일 대리권(즉, 책임)이 있다면, 고위 지휘계급-바로 뉘른베르크 재판 법정에 섰던 장본인들-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p.13~14 “[피고는] 살해된 왕의 시신 곁에 피투성이가 된 글로스터 공이 서 있던 것처럼 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이들이 여러분 앞에 빌고 있듯이 글로스터도 미망인에게 간청했습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자 앤 왕비는 이렇게 답했지요. ‘그렇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겠군요. 하지만 그들은 죽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사람들에 대해 유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전쟁도 없었고, 살해당한 사람도 없고, 범죄도 없었다는 말도 진실일 것입니다.”--- p.72 뉘른베르크에서는 정신과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 피고를 검사해보면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진단’결과들이 나왔음에도, 이 결과들이 악의 근원에 대해 알려주지는 못했다.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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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나치의 패망 이후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파견된 정신과의사와 심리학자. 이들이 수개월 동안 전범들을 관찰하고 검사하면서 본 악(惡)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유대인 6백만 명 및 기타 비전투원 수백만 명, 집시 20만 명, 정신질환자 및 장애아동 7만 명, 동성애자 1만 명…….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나치 홀로코스트는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였다. 규모와 조직 면에서 또 살상의 기간 측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보통의 제노사이드와는 확연히 달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나치 전범들은 지독한 광기와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이코패스이자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이 주모자들의 뇌를 부검해야 합니다.” “이 주모자들의 성격을 상세히 파악하는 것은 … 독일을 재조직하고 재교육을 담당할 이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 정신과 면담과 더불어 로르샤흐 검사 등 다양한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겁니다. … 피고가 유죄 및 사형선고를 받을 경우, 사체 특히 뇌 부위에 대한 면밀한 부검을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죄선고 후 총살형 집행 시에는 두부 대신 흉부에 총격을 가하도록 해주십시오.”(92~93쪽) 1945년 6월 11일, 존 밀레트 박사가 미국의 다양한 학계를 대표해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로버트 잭슨 대법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전범들의 심리를 검사해야 하고 뇌까지 부검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당시 전범재판소에서 받아들여졌고, 그리하여 나치 전범들에 대한 다양한 심리검사와 관찰, 그리고 심지어는 뇌 해부까지 이루어졌다(뇌 부검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베르트 레이가 유일하기는 했다). 당시 연합국 측의 정신과의사들이 관찰하고 검사했던 전범은 22명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은이가 선택한 사람은 네 명이다. 바로 독일노동전선의 수장 로베르트 레이, 제국원수이자 나치 독일 공군총사령관인 헤르만 괴링, 극렬한 인종혐오주의자이자 《데어 슈튀르머》 편집자인 율리우스 스트라이허, 부총통 루돌프 헤스이다. 이들은 특히 히틀러나 괴벨스, 힘러 등이 자살한 상황에서 포로로 잡힌 자들로서, 관련 자료가 방대하게 남아 있으며, 또 나치당을 이끌던 고위급 지도자들이었다. 책은 역사적 자료와 당시 연구자들이 남긴 자료를 토대로 이 네 사람의 심리상태, 재판정에서의 행동, 그리고 당시의 진단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한다. 아울러 당시 의사들이 내렸던 진단 즉, 우울증(로베르트 레이), 호감형 사이코패스(헤르만 괴링), 기억상실과 해리, 편집성 조현병(루돌프 헤스) 같은 진단을 현대의 기준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상세히 다룬다. 로르샤흐 검사로 전범들의 심리를 분석하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학자들이 수감자들에 대해 로르샤흐 검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왜 로르샤흐 검사일까? 지금이야 로르샤흐 검사는 한물간 구닥다리 심리검사 기법이지만 당시만 해도 최신 기법 중 하나로 ‘심리검사의 대명사’였다. 당시 연구자들은 피검사자들이 중립적이고 모호한 잉크반점에 자신의 의식 세계를 투영하며, 이로써 피검사자의 머릿속 지도를 그려낼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아쉬칸 수용소와 전범재판소에서 수개월 동안 전범들을 관찰하고 검사했던 로르샤흐 전문가 더글러스 켈리와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는 나치 전범들의 로르샤흐 검사자료를 방대하게 남겼다. 사실 지은이도 인정하듯 로르샤흐 검사가 과학적으로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검사는 아니다. 검사결과를 해석하는 데 검사자의 편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검사이며,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수천 명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를 실시해 엄청난 데이터세트를 구축했던 몰리 해로워가 행한 비교집단(전범, 성직자, 중산층, 인권운동가) 연구를 보면 전범과 일반인들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당시 연구자들과 이후 연구자들이 전범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무색케 했다.(237~24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범들에 대한 광범위한 로르샤흐 검사결과는 역사적 사료 측면에서 나치 전범들의 심리적 특성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악(惡)은 과연 무엇인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비웃는 잔혹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들은 자문하게 된다. 프로이트 말대로 인간들은 쓰레기이며 대부분 악한 것일까? 아니면 평범한 인간들도 비틀어진 사회와 왜곡된 문화와 속에서 악한 인간이 되는 것일까? 사실 그 어느 입장에 서더라도 악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또 이 양극단의 견해가 서로 화해하는 것이 요원한 일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고 나치가 패망하면서 승리자가 된 연합국과 전 세계인들이 나치 전범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자였다.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들.’ 그러면서도 연합국 측은 재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후대의 전쟁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전범들은 총살하는 대신 재판에 회부한다. 그리고 사상 유례가 없는 학계와 정부기관의 협력 하에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해부하기 위한 연구에 돌입한다. 물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악마들이었다. 그러나 과연 결말은 연합국 측의 소망대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을까? “악마 같은 모습은 전혀 없었다. 마치 겁이 나서 급여 인상도 요구하지 못하는 회계사처럼 보였다.”(246쪽) 1961년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지몬 비젠탈의 묘사였다. 게슈타포의 유대인 분과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은 사람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양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의 출발점에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기였다. 그 시작은 악의 평범함에 대한 통찰을 내놓았던 한나 아렌트였다. 아렌트는 본디 악한 인간의 광기보다는 거대한 관료제 시스템에 들어 있는 평범한 인간의 ‘생각 없음’이 엄청난 파멸, 즉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아이히만은 그저 생각이 없었고 … 이로 인해 희대의 범죄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평범’한 것이라면 …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 채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 그런 상태야말로 모든 악한 본능을 한데 합한 것보다도 더 심각한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 사실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었다.”(247쪽) 아렌트의 이런 통찰은 곧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복종하는 인간에 대한 스탠리 밀그램의 연구(251쪽), 방관자 무관심에 대해 연구한 존 달리와 빕 라타네(255쪽), 감옥 실험을 통해 권력과 역할에 대해 연구한 필립 짐바르도(258쪽) 등 사회심리학적 연구로 이어졌다. 이들 사회심리학적 연구는 인간의 악한 본성보다는 악이 마치 곰팡이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악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라는 이야기였다(이는 정신과의사로 당시 전범들을 지근거리에서 검사하고 관찰했던 더글러스 켈리의 주장과 맞닿는다). 그렇다면 악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인가? 지은이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실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썼던 하비 클레클리가 말한 것처럼 ‘멀쩡한 정신의 가면을 뒤집어쓴’ 사이코패스는(267쪽) 규칙과 법을 밥 먹듯 어기면서도 어떠한 가책이나 죄책감도 없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정서적 몰입과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실은 뇌 영상 연구나 신경전달물질 연구를 통해서 뒷받침되기도 한다. 나치 전범들의 말이나 행동에서도 이런 사이코패스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은이는 전범들의 행동에서 공감 능력 부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 그리고 그에 맞물려 학계와 정부기관의 유례없는 협력 속에서 나치 전범들에 대해 실시된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연구는 오늘날에도 인간의 악을 이해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처럼 쉽게 좁혀질 수 없는 양극단의 시각은 자기공명영상과 신경전달물질을 연구하는 발전된 현대의학으로도 그 대립점이 분명하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악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시도가 악의 심연을 밝게 비춰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이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가고, 무관심해지고, 무지 속으로 멀어져가는 현실을 다시 환기시키는 데 그 의의를 찾는다. 아이히만 재판 이후 진행된 다양한 사회심리학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지시에 따르는 무조건적 복종에 대항해 ‘생각’의 회로를 켜는 노력, 방관자 무관심을 깨는 작은 용기와 관심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가는 악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