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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Snoek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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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굉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을 하려니, 마치 보드카 한 잔을 들이켠 듯 뻣뻣했던 목구멍이 느슨해지고 손가락 끝에서 전율이 일었다. 무력감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 한 마디면 이 상황에서 분명히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남자, 여자 경찰관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들의 표정이 변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 깊게 그들을 응시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레베카 윈터예요. 11년 전에 납치를 당했어요.” --- p.8~9 눈이 어둠에 적응했을 때, 벡은 헉 하고 숨을 멈췄다. 구석에 본래 거기 없었던 그림자가 있었다. 짙은 회색에 대비되는 칠흑 같은 검은색이라 겨우 보이는, 거기 있어서는 안 되는 얼룩.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벡의 심장은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쿵쾅댔다. 아주 느리게, 그것이 일그러졌다. 사지가 뻗어져 나오더니,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커졌다. 벡은 눈을 꼭 감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이 구석에서 걸어 나왔을 때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 p.70~71 휴대전화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정말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언제 오냐는 엄마의 문자이리라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니었다. 나가. 그게 다였다. 그때 삐익 하는 타이어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그 밴이 방향을 돌려 내 뒤쪽에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댔다. 날 따라오는 게 분명했다. 담배를 던져버린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밴이 속도를 높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달려 진입로를 지나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쾅 닫은 나는 등을 기대고 서서 숨을 헐떡였다. --- p.109 레베카의 방에 들어서자, 그 애와 친구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애는 마치 만사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안도폴리스의 말이 떠올랐다. 뭐라고 했더라? 사진을 본 것에 관한 얘기였는데. 네 눈을 보며 네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썼지. 레베카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과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진. 리지와 함께 얼굴에 두껍게 화장을 한 채 카메라를 향해 입술을 내밀고 있는 사진. 뒤에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 나는 내 눈과 너무도 닮은 벡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안도폴리스의 말이 맞았다. 그 안에는 슬픔이,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어쩌면 레베카는 정말 비밀을 갖고 있었는지도. --- p.258~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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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쫓기는 심리전, 치밀한 구성, ‘신빙성 없는 화자’라는 장치를 통해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심리 스릴러! 『외동딸』은 두 명의 화자가 11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교차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신의 기존 인생을 숨긴 채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착한 딸’ 행세를 하기로 한 ‘나’와 가족의 진실을 외면한 채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레베카. 이 두 주인공은 각자 서로의 관점에서 가족과 주변인들을 관찰하고 소통하며 끝내는 같은 운명을 공유하게 된다. 철부지 20대인 ‘나’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신을 연출하는 일이라면 얼마든 자신이 있고,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일에 능란하다. 납치당한 희생자를 자처하며 남의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눈치껏 교묘하게 난처한 상황을 은근슬쩍 넘기곤 한다. 레베카는 사춘기 소녀의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냥 해맑고 천진한 모습으로만 보이고 싶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뭣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는 건 ‘노, 땡큐’다. 어른으로 대접받고 싶고 성인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노는 게 좋다. 머릿속에는 과거에 본 끔찍한 기억들이 자꾸 떠오르고 간혹 ‘내가 미쳐가는 건가?’ 할 정도로 악몽과 불길한 일들에 시달리지만, 그런 것들은 자신의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걸로 치부하고 철저히 외면하기로 한다. 한편 ‘레베카 실종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안도폴리스는 11년 만에 돌아온 레베카가 무척 반갑기는 하지만 사건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며 사건 해결에 몰두한다. 피해 당사자도 나타났으니 범인 검거는 시간문제일 것이고, 그 동안 묵직하게 가슴을 조이던 미제사건을 드디어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레베카가 사건 충격에 의한 ‘기억상실’을 내세우며 도무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때부터 가짜 레베카와 안도폴리스 형사 사이에 쫓고 쫓기는 심리전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안도폴리스 형사는 도대체 왜 레베카의 비밀을 이리도 캐내려는 걸까? 그는 왜 실종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11년 전 레베카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족의 치부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디까지 감쌀 수 있을까? 레베카의 가족은 누가 보아도 단란하고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이다. 무탈해 보이는 부모와 장난꾸러기 쌍둥이 아들 둘, 그리고 밝고 명랑한 외동딸 레베카. 레베카는 나이 차가 좀 많이 나는 쌍둥이 동생들이 다소 지나칠 정도로 장난을 쳐대도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다. 엄마가 동생들을 과잉보호하는 것 같아 유감이고 어린 동생들 때문에 자기에게 좀 소홀한 게 불만이긴 하지만, 귀염둥이 동생들을 보고 있자면 불만이고 짜증이고 싹 가실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밤에 악몽을 꾸고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지만, 아침에 일어나 까불까불 웃어대는 동생들을 보고 나면 지난밤의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씻은 듯 사라진다. 또한 제2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동료들도 그 알 수 없는 두려움의 해소제가 되어준다. 더구나 그중에는 짝사랑 오빠도 있다. 그와 함께라면 아무리 끔찍한 악몽이라도, 어떤 두려움이 닥쳐도 끄떡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그 모든 일들이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선택 때문이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서로의 잘못을 용납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