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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유럽 연주회
1. 뽕나무 위의 현자 용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가구 밤낚시와 유랑극단 처음 쓴 악보 바이올린이 떠난 자리 어두운 시대, 첼로와의 만남 2. 일본 유학 그리고 해방 알에서 깨어나다 첫 번째 일본 유학 화양학원 시절 다시 일본으로 독립투쟁의 한길 병상에서 맞이한 해방 3. 새로운 나라를 위하여 통영문화협회 일꾼이 되어 고아들과 더불어 보름달 아래 꽃핀 사랑 포연을 뚫고 솟아오른 동요들 낭만적인 성북동 시절 서울시문화상이 열어준 길 4. 유럽 유학 첫 기항지 파리에서 음音의 깊이를 찾아 서베를린음대 졸업장의 의미 다름슈타트와 빌토벤에서의 대성공 시련과 영광 북한 방문 5. 고난의 길 도나우에싱겐음악제에서 얻은 명성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다 가장 특별한 생일 선물 감옥에서 쓴 희극 오페라 국제적인 윤이상 석방운동 킬 문화상 수상 6. 승천하는 용 전 세계를 감동시킨 오페라 '심청전' 조국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헌신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조국애로 버무린 칸타타와 교향곡 범민족통일음악회와 서울송년음악회 끝내 이루지 못한 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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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음악가 윤이상. 그는 고전과 현대,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음악기법을 한데 아우르면서 그 자신 역시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음을 갈망했으나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한 시대 앞에서 많은 좌절과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고국 땅에 한 줌의 흙으로 남기를 염원했으나 끝내 그를 외면해버린 고국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치며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었던 윤이상의 삶을 재조명해보며 모진 역경과 고난 속에서 찬란한 예술을 탄생시킨 음악적 집념과 그의 음악이 현대 세계 음악사에 남긴 족적을 세세하게 담아냈다.
통영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나며 자연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과 사람들 사이의 교감에서마저 하나의 음악을 찾아내던 감수성 많은 아이.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사르며 음악이라는 한길만을 가고자 했으나 어려서는 그 간절함을 헤아리지 못한 아버지라는 벽이, 청년이 되어서는 직면한 시대가 벽이 되어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길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며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음악과 현실, 예술과 시대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을 옭아맨 조국의 현실에 아파하며, 아픔만큼 성숙하고 커다란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해 손 내밀어준 적 없는 조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민족의 아픔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그야말로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음악 속에 녹여냈던 슬프고도 찬란한 이름, 윤 이 상! 동양 음악과 서양 음악의 만남-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통영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윤이상은 일본 유학에서 음악가로서의 뜻을 세우고, 프랑스를 거쳐 독일 유학을 통해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 가야금 연주의 농현 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꾸어 표현하거나, 민요나 판소리에서 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내려오고 올라가는 기법을 첼로나 바이올린 연주 시에 사용하게 하는 등 ‘우리 음악’의 독특함을 서양 음계에 탁월하게 적용, 독일 현대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작곡계에 널리 떨친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 고국의 박정희 정권은 ‘동 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공포정치를 펼치고 그 와중에 윤이상은 베를린에서 영문도 모른 채 한국으로 붙들려와 간첩죄로 구속된다.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문화 예술인들은 이 전대미문의 조작 사건에 대해 분노했고, 그들의 열렬한 석방운동에 의해 윤이상은 곧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영영 밟지 못한 채 타국 땅에서 운명했다. 감옥에서도 작곡을 놓지 않았고 석방 후에도 고국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남과 북의 하나 됨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윤이상. 그의 예술은 찬란했으나 그의 운명은 불운했다.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성은 드라마틱한 그의 삶과 함께 변혁의 새벽을 온몸으로 열어젖혔다. 고국보다 타국에서 명성을 높인, 위대하면서도 처연한 운명의 음악가 윤이상은 동양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의 음악기법을 도입시켜 앞으로의 현대음악이 나아갈 길을 개척해낸, 세계가 주목한 작곡가였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음악적 실험, 그리고 성공은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한국의 위상을 함께 높였다. 그러나 정작 그가 서고 싶어 했던 고국은 대립하고 있던 두 개의 이념에 그를 끼워 맞추며 순수하게 음악만을 갈망하던 그의 예술혼을 짓밟고 외면하였다. 세계인의 찬사와 환호 속에 음악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의 순간들을 수없이 누렸지만 단 한 번 서고 싶던 고국에서의 무대와 단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싶던 고국 땅에서 끝내 외면당한 그의 운명은 그래서 위대하면서도 처연했다. 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처염상정’이라는 글귀는 그의 음악인생과 인생 역정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