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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제1장 신라의 건국과 패망 제2장 불국토의 염원, 경주 남산 제3장 통일의 기운은 싹트고 제4장 찬란한 신라의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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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왕릉을 연결한 길의 문화유적과
마을을 걸으며 느낀 가슴시린 여운과 벅찬 감동! 저자는 어릴 때부터 자연의 이치에 골몰하여 이 바위 저 바위 절터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아 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다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여운과 쓸쓸함을 주는 고즈넉한 절터와 고요한 왕릉들을 수없이 거닐었고, 특히 지척에 있는 효공왕릉과 신문왕릉, 선덕여왕릉, 진평왕릉, 헌강왕릉 등은 제집 드나들 듯이 자주 찾아가 머물렀다. 그 가슴시린 여운과 벅찬 감동을 인연이 닿는 독자와 나누고자 왕릉과 왕릉을 연결한 길의 문화유적과 마을을 답사한 것이다. 천년왕국 신라의 경주는 2천년의 세월을 안고 오롯이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역사문화의 중심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더구나 험준한 산길이 아니라 분지형의 넉넉하고 아늑한 길은 어머님의 품과 같이 포근한 여유를 준다. 엄마 품이 그리워 지친 몸을 이끌고 그립고 정겨운 고향을 향하는 길이 얼마나 설레었던가. 저자는 그 설레임을 안고 행복한 나그네가 되어 길을 나섰다. 엄마 품속 같은 왕릉을 만나기 위해 신라왕릉 찾아 걷고 또 걸었다. 한 왕조가 개창하면 나름대로의 이상과 철학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라는 고대왕국, 세계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화백제도에 의해 집단지도체제의 전원 합의체 방법론의 나라였다. 이 합의체는 소통을 근간으로 한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다름을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신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신라가 1천년을 이어온 통치철학은 ‘덕(德)의 정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문화 수용의 정치’였다. 사람마다 자신의 길이 있다. 그 길을 온전히 가야 훌륭한 사람이며 혼신의 힘을 다할 때 향기롭고 아름답다. 왕이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거창한 제왕학이 아니더라도 나라와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만 있어도 휼륭한 왕이리라. 정치의 요체도 나의주장을 토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들어주고 치유해주는 것이리라. 국가나 개인이나 수용하는 포용력이 클 때 발전하고 문화의 꽃을 피운다. 신라의 다문화 수용의 포용력은 대단했다. 부족연합체의 대표 박씨와 철을 다루는 석씨 그리고 금을 다루는 김씨 세력이 왕위를 주고받으며 서로화합하면서 신라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삼국 중 가장 미약했던 신라가 왕과 귀족 백성들이 혼연 일체가 되어 마침내 삼한을 통합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신라까지 차지하려는 당의 침략야욕을 물리치고 통일국가를 이룩해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나라다. 그 바탕이 고려로, 조선으로, 상해임시정부를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는 모태가 된다. 지금 같은 현대의 국가에서는 선거로 대통령을 뽑고 총리를 뽑지만 고대국가는 대개 혈족을 중심으로 한 성씨가 왕을 하는데 신라는 아주 특이하게도 3성(박, 석, 김)이 번갈아 왕을 하는 민주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 박씨가 10명, 석씨가 8명, 나머지 38명이 김씨였다. 56명의 신라왕들은 나름의 한계도 있었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름다운 덕의 정치를 펼쳤기에 그 결집된 힘으로 마침내 반도를 평정하는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1천년이나 존재한 신라, 망한지 1천년, 즉 2천년의 역사가 땅속과 지상의 유적을 찾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