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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빼앗긴 나라, 일어서는 백성들 - 무단 통치와 3·1 운동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 한국인의 토지를 조사하고 상공업을 억압하다 꺼지지 않은 독립 운동의 불씨 1910년대 독립 운동의 절정 -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2. 독립을 향한 다양한 물결 - 문화 통치와 독립 운동 더욱 교묘해진 식민 통치와 경제 수탈 민족 실력 양성의 빛과 그늘 나라 밖에서 타오른 독립 운동 또다시 울려 퍼진 만세 소리 3. 긴 어둠을 지나 찾아온 광복의 새벽 - 일제의 침략 전쟁과 민족의 수난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이 시작되다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고 민족 말살을 기도하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독립 운동의 불씨 4. 변화하는 사회,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 - 사회 환경과 의식의 변화 먹을 것, 입는 옷, 사는 곳의 변화 도시와 철도의 발달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한 상업 문화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 5. 억압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학문과 문화 - 일제 강점기의 역사·문화·예술과 스포츠 학문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다 한국 과학의 씨앗을 뿌리다 시와 소설로 그린 민족의 수난 그림 속에 비친 일제 강점기 서민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 문화의 탄생 식민지 설움을 그라운드에서 털어 내다 일제 강점기를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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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을 강점하자마자 일제가 큰 힘을 들여 추진한 사업이 토지조사 사업입니다. ‘토지 조사’란 땅을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우리 국토 대부분은 농사를 짓기 위한 농토였습니다. 그러니까 토지 조사 사업이란 결국 전국적으로 농토의 주인과 경계를 가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보면 별것 아닌 사업이지요. 하지만 강점 직후부터 1919년 무렵까지 계속된 토지 조사 사업의 숨은 의도와 결과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제는 1910년 9월, 조선 총독부에 토지 조사 사업을 담당할 관청으로 임시토지조사국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1912년 〈토지 조사령〉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선 총독부가 발표한 토지 조사 사업의 원칙은 ‘신고주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땅 주인이 “여기에서 여기까지가 내 땅이오”라고 신고하면, 먼저 그 말이 맞는지 조사해 보고 맞으면 그 사람의 소유권을 확정해 주겠다는 것이었지요. 이 원칙만 들어 보면 별 문제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땅의 주인이오”라고 신고하지 않은 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먼저 예전 대한제국 황실 소유의 땅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땅은 황실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영구적인 소작을 주어 경작하게 했습니다. 황실 소유 땅을 소작하는 농민들은 비록 땅 주인은 아니었지만, 주인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렇지만 농민들은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유권 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 총독부는 이러한 땅을 모두 나라 땅, 곧 국유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있지만 아직 개간을 하지 않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땅은 다른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땅 주인조차 그 땅이 자기 땅인지 남의 땅인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또 한동네 혹은 한집안에서 공동으로 소유한 땅이나 산이 있었습니다. 이런 땅은 여러 사람이 같이 이용하면서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했지 특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토지를 신고하라고 해도 내 땅이라고 신고할 사람이 없었지요. 이런 까닭으로 전국에서 신고할 수 없거나 신고하지 않은 많은 땅이 생겨났습니다. 조선 총독부는 이런 땅은 무조건 주인 없는 땅이라고 하여 국유지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농민들은 대대로 자기 땅이나 다름없이 농사를 지어 오던 땅을 순순히 빼앗길 수 없었습니다. 토지 조사 사업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소유권 분쟁이 9만 9000여 건이나 일어난 것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분쟁에서 농민들은 조선 총독부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선 총독부는 우리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식민 통치에 드는 비용을 채워 나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 조선에 건너오는 일본인들에게 땅을 싼값에 팔기도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신고 기회를 잃은 많은 농민들은 자기 땅이나 다름없이 농사짓던 땅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또 자기도 모르는 새에 땅 주인이 되어 나타난 조선 총독부나 일본인에게 땅을 빌리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토지 조사 사업은 당시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농업과 농민에 대한 수탈의 첫걸음이었던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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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우리 역사》시리즈는 어떤 책인가?
이 시리즈가 처음 출간되고 10년이 지나면서 한국사 관련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은 상당히 많은 종류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각 시대를 전공한 전문학자가 해당 시대를 직접 집필한, 10대를 위한 이런 수준의 한국 통사는 아직까지 보기 드물다. 이는 다른 출판 분야와 달리 공력이 훨씬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적잖은 투자비와 장기적인 시간, 갖가지 얽히고설키는 힘든 작업 과정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여느 출판사들이 이렇게 대대적인 한국 통사 시리즈에 도전하기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다양한 독자층들에게 이 시리즈가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역사》 시리즈(전15권)가 다른 책들이 미처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담아 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첫째, 이 책은 전문 역사학자들이 소신 있게 들려주는 우리 조상들의 삶 이야기다. 원시 시대부터 해방 후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민주 정권 탄생 전후까지를 15권에 아우르는 《우리 역사》는 한 권 한 권, 해당 시대의 역사를 연구해 온 선생님이 직접 썼다. 고구려 역사를 오래 공부한 선생님이 고구려 편을 쓰셨고, 조선 시대 역사를 연구해 온 선생님이 조선 시대 편을 썼다. 둘째,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연령층의 10대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만들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이나 동화 형식의 역사물은 여럿 있었고, 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펴낸 생활사, 왕조사 책도 눈에 띈다. 또 처음 역사 일기를 시작하는 초등학생을 위해 쉽게 풀어쓴 한국 통사도 이젠 몇몇 종 출간되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는 벗어나고, 고등학생의 역사 인식과 독서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단계에 필요한 징검다리 책은 아직도 없다. 《우리 역사》는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생 연령층의 청소년에게 바로 이러한 징검다리 역사책이 될 것이다. 셋째, 각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동안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이 대부분 영웅이나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이 시리즈는 과거 조상들의 생활에 중심을 두고 시대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의 변화를 당시의 국제 정세와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세계를 머릿에 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최근 연구 성과에 따른 글쓴이의 목소리에도 힘을 주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구성했다. 교과서에 결론이 내려진 문제라 할지라도 글쓴이의 견해에 따라 당시 상황의 발단과 과정에 확대경을 대고 결론을 달리 생각해 보거나 논쟁할 수 있도록 주제를 끌어냈다. 곧 암기식 역사 교육의 틀을 깨고, 독자 스스로 여러 각도에서 역사의 비밀을 푸는 주인공이 되어 보게 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통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통합적인 눈으로 내다보게 하는 장치이며, 여기에 바로 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의도가 있다. 다섯째, 전문적인 내용일수록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했다. 주제마다 독자의 상상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권마다 200여 장에 이르는 유적·유물 자료 사진과 학계의 고증을 거친 그림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오하ㅅ으며, 내용을 충실하게 담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또한 중간중간 독자 여러분이 좀 더 깊이 있게 알았으면 하는 주제는 네모 상자 안에 자세히 정리해 정보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책을 위해 젊은 역사학자 9명이 힘을 합쳐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한국사, 재미있는 한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사란 너무나 많은 것을 품고 있기에, 집필진 모두는 한국 역사를 쉽게 풀어서 새롭게 쓴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절감했다. 더구나 청소년의 정서에 맞추어 우리 역사 전체를 꿰뚫는 책을 쓴다는 것은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것 못지않게 힘든 과정이었다. 거기에 편집진들은 한 문장 한 단어마다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수없이 많은 교열·교정을 거듭했다. 『아! 그렇구나 우리 역사 13 : 일제 강점기 편』은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는 때부터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35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단지 35년이라는 시간만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시기이다. 다른 나라의 완전한 식민 통치를 받으며 우리의 민족적·역사적 정체성을 부정당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식민 통치 정책들이 실제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상세히 서술했다. 일제 식민 통치 정책에 대해서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히 드러내고자 했다. 예를 들어, 일제가 자행해 온 [태형령]을 1919년 폐지를 발포한 것이 그들의 주장처럼 문화 통치의 하나로 한국인을 위해 실시한 파격적 단안이었던 게 아니라, 태형령이 폐지될 때까지 이 제도가 그만큼 우리 조상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음을 서술했다. 일제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전개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여러 독립 운동 노선의 의미와 전개 양상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사실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우리 독립 운동에는 서로 다른 노선들이 있었으며, 각각의 노선을 따르는 독립 운동가들은 때로는 협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열망하고 그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는 데에서는 차이가 없었던 점을 드러냈다. 일제 강점기가 현재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담았다. 자칫 불행한 시기로만 기억하기 쉬운 일제 강점기는 우리 사회와 생활에 여러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도나 관행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일제 강점기에 처음 생겼다. 따라서 현재 우리 생활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우리 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데에도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는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서의 변화, 도시 발달의 빛과 그늘, 철도와 같은 새로운 교통 체계의 출현, 여성의 사회 진출 문제, 영화 등 새로운 대중 문화와 스포츠 발달, 과학자의 성장 등 일제 강점기에 새롭게 나타난 우리 사회와 문화의 변화 모습을 많이 다루었다. 일제 강점기 역사 연구의 진전에 따른 결과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폭넓게 들여다보았다.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물론 그 중에는 좀 더 폭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발전적인 시각도 있지만,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잘못된 시각 또한 있다. 이런 다양한 시각들의 옥석을 구분하여 예전보다 폭넓게 역사를 보되, 중심을 잃지 않도록 유의했다. 시시각각 새로운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처음에 쓴 초고를 교정할 때가 되면 필자의 생각도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용을 고치고 보충하면서 처음에 짠 얼개도 많이 바꿀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가능한 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더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전통적인 시각과 새로운 시각 사이에 차이가 크고, 현재 연구 수준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료가 가리키는 바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쓰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