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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머리말: 어쩌다 우리는 요점만 남기고 사람을 놓쳤을까? 1부 믿음은 관계다 1. 신념 너머의 삶 2. 헌신에 대한 진리 2부 하나님과의 관계 3. 하나님과 크게 틀어진 아브라함 4. 관계의 진짜 시험 3부 하나님의 이야기와의 관계 5. 본문 속의 진리 6. 하나님의 이야기에 자신을 열라 4부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 7. ‘서로’ 사랑하기 8. 바른 관계의 의식들 5부 믿지 않는 사람들,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9. ‘타인’을 사랑하기 10. 예수님과 밑바닥 인생들 6부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의 관계 11. 하나님의 작품과의 화해 7부 상징물, 예술품, 인공물, ‘사물’과의 관계 12.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해주는 ‘사물’들 8부 영적 세계와의 관계 13.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분명한 징후들 상호작용: 개인 묵상과 그룹 대화를 위한 질문 주 |
Leonard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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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가르침’이 신앙생활에 완전한 답을 준다면, 우리 사회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인쇄물을 통해 기독교의 가르침을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기독교 명제들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이 퍼부어진 적도 없었다. 우리는 기독교 ‘정보’에 사실상 파묻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가 기독교 정통에 지금처럼 매력을 못 느낀 적도 없었다.
‘바른 관계’, 하나님과 점점 깊어지는 관계를 잃어버렸다. 현대 사회는 의문 제기를 최고의 일로 만들었다. 답을 찾으려는 평생의 탐구는 최고의 여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믿음은, 풀어야 할 문제나 답해야 할 의문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신비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신비란 하나님과의 생생히 살아 있는 관계, 곧 ‘하나님삶’(GodLife) 관계다. --- 2. 헌신에 대한 진리 ‘하나님삶 관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이야기’가 된다. 마르틴 부버는 중풍에 걸린 어느 할아버지 이야기를 즐겨 했다. 어느 날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그의 스승인 위대한 바알 솀(기적을 일으키고 병을 고쳐 유명해진 사람을 일컫는 호칭)의 생애에 관한 일화를 들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바알 솀이 기도할 때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춤도 추곤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노인은 바알 솀처럼 되어 급기야 스승의 행동을 몸소 보여 주기 위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깡충깡충 뛰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후로 할아버지는 병이 나았다. 부버는 계속해서 “이야기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내용처럼 된다. 원수를 용서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은 자기 원수를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버림받은 자 하나를 도와주려 길을 건너신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은 가장 근처에 있는 버림받은 자를 돕기 위해 길을 건넌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삶으로 산다. 말로만 하지 않는다. --- 6. 하나님의 이야기에 자신을 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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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명제를 뛰어넘어 ‘관계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다
기독교는 본래 예수님이라는 살아 있는 인격 위에 세워졌지만, 관계의 토양에서 뿌리 뽑힌 채 신념과 명제의 종교로 축소되었다. 우리의 ‘믿음’은 교리적 동의에 머무르고 있는가,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로 나타나고 있는가? 바른 진리를 일상에 스며든 다양한 관계 안에서 구현해 내는 삶이야말로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모습이다. 이제 기독교 신앙에 생명을 불어넣는 ‘관계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보자. 특징 (1)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말을 실생활과 관련된 비유와 예화, 새로운 성경 해석을 통해 생생하게 와 닿게 한다. (2)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관계’(하나님의 이야기,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피조 세계, 사물, 영적 세계 등)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3) 관계를 놓치고 박제화 된 기독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레너드 스윗의 역사적 안목과 통찰, 참신하고 기발한 접근법을 엿볼 수 있다. 독자 대상 - 종교 활동을 넘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고 싶은 그리스도인. -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의 진리를 살아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