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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제프 하이든 - 불행한 남편, 그러나 행복한 연인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에로틱과 플라토닉 넘나든 사랑의 이중성 3. 루드비히 판 베토벤 - 오오, 그대 '불멸의 연인'이여! 4. 니콜로 파가니니 - '작은 이교도'의 악마적인 사랑이야기 5. 엑토르 베를리오즈 - 낭만주의 광(狂)천재의 드라마틱 러브 6. 프레데리크 쇼팽 - 안개 속에 묻힌 수수께끼의 사랑 7. 프란츠 리스트 - 메피스토펠레의 화려한 여성편력 8. 주세페 베르디 - 예술의 길목에서 만난 필생의 반려 9. 요한 슈트라우스 - 마법의 왈츠는 '사랑의 묘약' 10. 요하네스 브람스 - 격정의 연인, 그러나 독신주의자 11. 자코모 푸치니 - 평생의 족쇄 된 젊은 날의 열정 12.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예술엔 완벽주의자, 사랑엔 부실한 연인 13. 엔리코 카루소 - 불행한 테너 왕, 나폴리의 카사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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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동시대인인 미예치슬라브 카를로비츠는 어느 날 저녁 쇼팽이 자주 그랬듯이 친지들의 목소리와 제스처를 흉내내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을 전해주고 있다. "델피나는 갑자기 그를 중단시키고 말했다. '이제 내 차례예요. 나 자신에 대한 당신의 인상을 보여주세요.' 쇼팽은 피아노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녀가 세계 앞에서 가장하고 있는 베일 밑에 감추어진, 바로 그녀의 핵심을 알고 이해하고 있음을 과시하는 우울한 가락을 즉흥연주했다.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는 타르노프스키 백작의 회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쇼팽과 델피나 사이에 깊은 암묵의 이해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게다가 델피나에 대한 쇼팽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하는 편지를 그는 가족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1847년 4월 19일). "제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아시지요." 이것은 "제가 얼마나 그녀를 좋아하는지 아시지요" 라고 번역돼 왔다. 그러나 쇼팽이 사용한 낱말은 분명히 '사랑'이란 뜻의 폴란드 말 'Kocham' 이었다. 통상 그는 여인들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가족들에게 얘기하는 것을 극도로 삼갔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서조차 쇼팽은 상드에 관해 얘기할 때 마담 상드라고 했지 조르주 혹은 나의 애인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그가 사랑이란 낱말을 사용한 것은 확실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영국에 있을 때 쇼팽은 일기(1848년 7월 26일)에 이렇게 기록했다. "사자 모양으로 된 아버지의 코담뱃갑 속에 6백 프랑. 이것은 내게는 퍽이나 소중한 마담 델피나 포토카로부터 받은 작은 지갑 안에 들어 있다." 쇼팽이 죽어가고 있었을때 그는 작은 종잇조각을 집어 거기다 'Nella miseria' 라고 쓰고 사인한 뒤 델피나에게 주었다. 이것은 물론 단테의 인용으로 ("불행 속에 있을 때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아무것도 없다"),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의 비극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쇼팽이 죽기 이틀 전 델피나는 그를 방문했고, 그의 요청에 의해 노래를 불렀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눈물에 목이 메어버렸다. --- p.134~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