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악마
아가야 |
안슬기의 다른 상품
|
“훈아. 아버지가 치즈케이크 사왔다.”
지수는 베이커리 종이 가방을 열어 보지 않아도, 심지어 받아들지 않아도, 안에 있는 것이 치즈케이크인지 알 수 있다. 하기야 아니면 또 어떤가? 그런 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집이다. 보통은 엄마가“아빠 오셨다. 나와서 인사해야지!”라고 하지만, 이 집은“아버지가 치즈케이크를 사왔다.”라고 하지 않는가? 무언가가 지나간 집이고, 무언가가 빈 집이고, 무언가가 꽉 찬 집이다. 역시 훈은 이 집에 어울리게 아빠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먹고 싶지 않아.” 초등학교 4학년짜리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저렇다. “나중에 먹을 게.”도 아니고, “지금 바빠.”도 아니고, “먹기 싫어.”도 아니다. “먹고 싶지 않아.”다. 먹고 싶지 않아. 이 말은 시간의 조건이나 공간의 수용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원히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네가 사온 것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pp.47-48 그래서 그랬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한 번은 눈을 부라리고 싶었다. 난 아버지가 없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버지가 없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없는 것이 맞다. 한 번도 나에게 그런 기운이 전달된 적이 없다. 누추한 어머 니만 있었고, 그 어머닌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친척들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도 그랬다. 나도 동정녀의 자식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버지로 두기 싫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좋았는가? 그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들이 되는 것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려야 할 만큼 힘겨운 책임이다. 나는 그 대신 혼자이길 원했다. 투항하기 싫었다. 당신은 총애 받는 장자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둘째였다. --- p.207 |
|
시나리오픽션, 시나리오를 소설화하다.
생생한 묘사와 거침없는 대사, 빠른 이야기 전개 심산 시나리오스쿨 출신 작가들이 내놓는 시나리오픽션.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뼈대를 이루는 시나리오에서 작가는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자본의 제약과 대중성과의 협의 등 영상화를 위한 작업을 해나가면서 시나리오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시나리오의 순수성은 때로는 방향을 잃고 만다. 따라서 시나리오 작가들이 생각하는 초기 시나리오에 깃든 이미지가 궁금해진다. 시나리오픽션은 작가의 시나리오를 집필 당시의 순수성에 기대어 작가의 의도가 명확한 세부묘사를 더하여 소설화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시나리오 픽션은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시작인 셈이다. 「악마」와 「내가 죽였다」에서 사용한 대사들과 묘사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일반 소설들이 절제된, 정제된 표현을 선호한다면, 「악마」와 「내가 죽였다」는 다소 거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걸러지지 않은 대사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단문 위주의 묘사는 한 편의 영화의 장면이 지나가는 듯하다. 자! 이제 글을 통하여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반대편 가족을 그린 소설 사회와 가족 속에서 악마가 되어가는 한 가장의 이야기 「악마」 인디영화감독 안슬기의 첫 책 「악마」는 가난하고 연약한 한 가장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안슬기 감독의 첫 장편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는 일반적인 사회와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대안 가정의 경쾌하고 밝은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서로 기대며 한 가족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세상의 따뜻함을 웅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소설 「악마」는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그의 첫 소설은 사회와 가족의 이데올로기 속에 갇힌 가정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해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가족을 위해 악마가 되어가고, 가족에 의해 악마가 되어버린 한 가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족과 가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인류의 자진 멸종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짧은 이야기 「아가야」 「악마」 뒤에 짧게 쓰인 「아가야」는 어머니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전해주는 7페이지의 짧은 이야기이다. 인류의 자진멸종을 추구하는 테러집단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죽고, 한 여자와 뱃속의 아기만 남은 상황. 어머니는 아기에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과 아기가 태어난 후 그녀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들려준다. 욕망이 허무를 낳고 허무가 분노로 변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극단적 염세는 그러나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희망의 실체가 테러집단의 선택만큼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이자 최초의 인류인 어머니가 곧 태어날 아들에게 전하는 이 짧은 편지는 종교와 인간 역사에 대해 던지는, 불편하지만 의미 있는 화두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