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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원의 시작
군(軍)에서 시작된 혈액사업 국립중앙혈액원 적십자혈액원의 시작 기타 병원들의 혈액원 암흑의 매혈시대 직업매혈자들의 생태 비밀 혈액취급소 매혈풍토를 없애기 위해 헌혈의 여명기 4·19와 학생헌혈 재향군인회의 헌혈 수범 대학에서 일어난 헌혈운동 금과 은은 없어도 젊은 피 내게 있노라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적십자의 헌혈 시도 민간에서 일어난 헌혈운동 ‘피 주는 운동’ 사무실 한국헌혈센터 한국헌혈협회의 태동 헌혈의 집 헌혈협회 부산지부의 활동 한국헌혈협회의 조락(凋落) 군에서 먼저 제도화된 헌혈 월남파병과 혈액수급 머레이 교수의 고언(苦言) 내 피 한 방울 전우 생명 구한다 국방부령 218호 헌혈권장 음악회 혈액관리의 법제화 혈액관리법 제정의 배경 혈액관리법 제정과 의료계의 여론 헌혈위주의 혈액관리법 시행령 혈액원의 시설기준을 정한 시행규칙 1974년...세계 헌혈의 해 간염 항원 검출 혈액관리의 허점 속에 쏟아지는 사건들 혈액 도난사건의 발생 부족한 헌혈상식 매혈 찬성 37% Rh음성혈액 수급의 문제점 국제간의 혈액거래 헌혈확충을 위해 몸부림친 적십자 헌혈 전환을 위한 계획과 노력 헌혈혈액의 사용을 기피하는 병원들 원가에 못 미치는 혈액 공급가격 "당신의 헌혈, 생명을 구한다" 오염된 혈액...전국을 강타 대한혈액관리협회의 태동 김기홍의 혈액관리 구상 헌혈의 신장(伸張)을 위하여 혈액관리업무의 강화를 위하여 혈액의 원활한 수급체계를 위하여 김기홍의 건의내용 플라스틱 채혈용기(容器)의 등장 혈액관리위원회가 마련한 혈액관리 개선방안 헌혈 예치제도의 개발 적십자혈액원 내의 임대사무실 혈액수가(酬價)의 대폭 인상 헌혈 환부적립금 관리규정 제정 전국 혈액원 개설자회의 1976년...전국에 메아리친 헌혈운동 적십자 총재, 협회 설립에 불만 일반혈액원의 헌혈에 반대한 적십자 헌혈홍보자문위원회의 구성 보건의 날...헌혈의 날 헌혈계몽영화...생명의 예치 헌혈추진위원회의 구성 막대한 예산이 드는 헌혈계몽방송 예비군 헌혈을 모색 회원 자격의 시비 혈액관리의 강화와 수급조절 혈액원 실무자에 대한 교육의 시작 주식회사 녹십자, 전기영동기 기증 혈액 수급조절 업무의 시작 협회의 법정단체화 1977년...헌혈실적 77%를 올리다 헌혈계몽 대중광고 헌혈계몽과 나체 모델 2 땅콩 반쪽을 나누듯 [헌혈의 노래]와 헌혈계몽 독창회 [헌혈의 노래]제정 헌혈계몽 자선독창회 헌혈 시범도(示範道) 시도 헌혈촉진위원회 조직 헌혈 시범도 선포식 혈액 연구사업의 활성화 의사 및 간호사교육 연구와 해외시찰 협회에서 금전사고 발생 혈액관계자들을 분노케 한 사건들 ‘여호와의 증인’...수혈을 거부 헌혈환부적립금 횡령사건 적립금 활용론의 등장 헌혈이 매혈을 압도 1978년...순탄치만 않은 헌혈사업 전국을 누빈 헌혈계몽활동 헌혈예치제도 계몽강화 땀에 젖은 헌혈계몽반 의료보험의 실시와 헌혈운동 헌혈 신부(神父) 주는 사랑...받는 사랑 헌혈운동에 앞장선 연예인들 체계화된 혈액관리 및 교육연구사업 정도(精度)관리의 첫 도입 서울 일원에 매혈 중지령 혈액냉장고와 특별소비세 적십자, 혈액사업발전 5개년 계획 마련 혈액원 부정사건의 발생 진정서사건의 전말 헌혈자에 대한 통계분석의 정립 혈액의 남용방지론 등장 1979년...격랑속의 대한혈액관리협회 보사부 장관, 협회 조직에 불만 적십자의 혈액원 조직개편 혈액관리제도 개선 장단기계획 수립 원활한 혈액수급을 위한 기본 자료조사 혈액연구의 국제화시대 개막 수혈연구소의 기초를 놓다 혈액의 낭비를 막는 성분수혈 제4차 아시아·태평양 혈액학회의 국내유치 기독청년협의회의 헌혈반대 움직임 헌혈제도 비방 유인물 혈액제도규탄 정치집회 혈액사업에 국고보조를 요청 헌혈계몽비의 폐지 사전 준비된 혈액사업의 적십자 이관 김기홍을 밀어낸 1979년 8월 총회 보사부 장관 축사의 속셈 헌혈 90%를 넘어서다 4년 만에 결실을 본 헌혈권장 우표 헌혈차량의 배정 또 발생한 여호와의 증인 수혈 거부사건 헌혈 35만병 돌파 1980년...혈액관리체제의 전환 단체헌혈의 개발 개발촉진부의 설치 또 하나의 혈액오염사고 세계 헌혈포스터 전시회 매혈 금지령의 확산 서울대병원 헌혈의 날과 세계복음화 성회 헌혈의 집 헌혈에 적극 나선 서울대병원 시청 앞 지하도에 헌혈의 집 개원 혈액수급망의 확충 적십자혈액원의 신설 적십자, 35만병의 헌혈목표 설정 헌혈운동 6년의 아쉬운 마무리 반쪽 총회 적십자 이관에 불만 터뜨린 회원들 이삼열의 신상발언 헌혈운동 6년의 회고 황무지에 뿌린 헌혈운동의 씨앗 헌혈운동! 내일을 내다본다 하루를 천년처럼 냉동헌혈센터가 되기까지 혈액사업과 성분수혈 수혈용 혈액수급의 과제 하늘에 메아리치는[헌혈의 노래] 내가 본 혈액관리사업 헌혈통계 부록 원활한 혈액수급을 위한 기본자료 조사 Ⅰ. 서론 Ⅱ. 혈액수급현황 조사 Ⅲ. 고안 Ⅳ. 결론 -한국헌혈운동사 연표 -참고자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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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헌혈운동-혈액사업 대장정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헌혈’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매년 백만 명가량이 헌혈을 하고 있으며 의료현장에서도 피가 부족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러한 날이 오기까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숨은 노력이 필요했다.『한국헌혈운동사』는 바로 이러한 숨은 노력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헌혈자를 확보하고 혈액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존의 매혈풍토를 타파하고자 전력을 다한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헌혈 시스템을 정착시킨 선각자인 고(故) 김기홍(前 한양대 의대 교수), 이삼열(前 연세대 의대 교수), 고(故) 강득용(前 순천향대 의대 교수)이 집필한 것으로, 1952년 해군 혈액고에서 1981년에 대한적십자사까지 우리나라 혈액사업의 유래와 헌혈운동에 얽힌 사연들이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혈액사업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인식된 계기는 1950년 6.25전쟁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저자 김기홍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동족상잔의 6.25동란 때는 군의관으로서 전상자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겪으며 그들 젊은 용사를 치료할 혈액마저 미국인에게 지원받았던 전화(戰禍)의 악조건에서 의인의 도리를 지켜야 했던 비참한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그때만 해도 혈액은행(血液銀行)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처음으로 혈액의 자급을 시도한 것이 1952년 해군 혈액고(海軍 血液庫)였고, 민간으로는 1954년 백병원 혈액은행과 1955년 보사부 산하 국립혈액원의 개설이 우리나라 혈액사업의 태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혈액사업은 1950년 6.25전쟁을 기점으로 발전했으나, 혈액의 원활한 수급은 1970년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정착됐다. 그중에서도 혈액을 확보하는 인도주의적 헌혈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유교적 가치관과 헌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헌혈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즉, ‘피를 뽑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최후의 돈벌이’쯤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헌혈은 매우 드물었고 매혈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소중한 피를 매매대상으로 사고파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서울시내에는 약 10개소 정도의 이러한 비밀 혈액취급소가 있었다.…혈액은 물론 매혈로 충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곳을 찾아오는 매혈자의 대부분이 다른 병원의 혈액원이나 적십자혈액원에서 불합격 받은 공혈자라는 것이다.…의료기관에서는 가급적 이들 비밀 혈액원의 혈액을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환자가 급한데 적십자나 다른 혈액원에서 공급받을 수 없을 때에는 하는 수 없었다. 상습적으로 매혈을 하는 사람들의 피니 그 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혈액형 검사가 당초부터 잘못되어 부작용이 일어나 환자가 죽는 일도 있었고 수혈받은 후 부작용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런 일이 크게 문제가 된 일도 별로 없었다. 환자가 치료를 받다가 잘못되면 그것은 그냥 운명으로 치곤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매혈을 지양하고 헌혈을 권장해야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이에 따른 법적 뒷받침이라든가 국민들의 헌혈에 대한 인식이 극히 희박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뜻을 같이한 몇몇 의료인과 종교인을 중심으로 1969년 한국헌혈협회(저자인 김기홍이 회장직을 맡음)가 발족되어 민간차원의 헌혈운동에 불을 댕겼다. 대학생과 군인, 각계의 유명인사 등이 헌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직접 헌혈에 참여하며 뜻을 같이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정부는 1970년 혈액관리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하여 행정적, 법적 뒷받침을 하기에 이르렀다. 1974년 대한적십자사가 매혈에 종지부를 찍고 전량 헌혈충당이라는 목표 아래 헌혈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이에 헌혈의식의 정착을 위해 혈액의 수급조절사무 및 홍보활동을 강화, 헌혈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전국 혈액원을 회원으로 하는 협회의 발족을 정부에 건의하여 탄생한 것이 대한혈액관리협회였다. 1975년 발족된 대한혈액관리협회(저자 김기홍이 회장직을, 이삼열이 부회장직을 맡음)를 통해 정부의 주도하에 전국적 규모의 헌혈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76년 혈액사용량 중 50%를, 1977년에는 78%를 헌혈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혈액관리협회의 혈액사업에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독청년협의회의 헌혈제도규탄과 모 혈액원의 헌혈부정사건 보도로 1978년에는 유례없는 혈액파동을 겪었고, 1979부터는 혈액사업이 적십자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조직이 개편된다. 하지만 이러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연예인까지 동참한 지속적인 헌혈 캠페인으로 1979년에는 헌혈이 전체 혈액소요량의 90%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의료인으로서 몸소 의료현장에서 헌혈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절감하고 헌혈운동을 주도한 이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체험적 헌혈운동사’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저자들의 경험적 이야기와 풍부한 사진들을 통해 헌혈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치열했던 혈액사업의 역사가 다름 아닌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구하려는 휴머니즘의 역사임을 깨닫는 순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