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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생각하는 기독교인이어야 산다! 프롤로그 이상한 재판, 의아스러운 죽음. 한 유대인의 고백 1장 예수, 어떤 시대를 살았나? 2장 예수 출생에 얽힌 비밀들 3장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교인이었다 4장 예수, 세상의 무대에 등장하다 5장 예수의 하나님 나라 6장 예수 삶의 양식 7장 예수의 영성 8장 예수의 죽음과 그 이후 9장 예수의 길을 따라서 에필로그 예수의 삶이 메세지요 대안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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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동안 우리는 이 의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예수는 어떻게 살았기에 그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 p.11
기독교인은 예수의 삶을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예수를 정치나 사회 문제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인류의 영적 구원을 위해 오신 분으로 믿으려 한다. …… 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 p.35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고 또 전하고 싶었으면 ‘미혼모’, ‘사생아’라는 불명예를 감수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을까? 설령 예수가 사생아였음을 감추기 위해 성령 잉태설을 조작했다하더라도 그 성령 잉태설은 예수가 얼마나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삶을 살았는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 p.83 무슬림들 역시 ‘우리도 예수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다.’라고 말한다. …… 그리고 무슬림은 예수가 계시를 받은 것도 믿는다고 말한다. --- p.98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의 놀라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혹은 절대 타자로서의 신과 유약한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 사이라는 것이다. --- p.131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삶 속에 이미 도래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 p.185 우선 『성경』을 읽어 보면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한 분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이 명백하다. …… 한 유대인 청년이 ‘선한 선생님이시여!’라고 호칭했을 때 예수는 화들짝 놀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찌하여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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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이렇다.
#1 “인도네시아 쓰나미는 하나님이 심판이다.”, “일본 대지진 참사는 우상과 일왕을 섬긴 죄에 하나님이 노한 것이다.” #2 한국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대통령 하야 발언 뒤, 조찬기도회에서 무릎 꿇은 대통령 #3 불교 사찰 경내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기독교 예배 기독교와 예수가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기독교의 이슈는 사랑과 용서, 평화와 구원 등의 메시지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교회의 독선, 세속화, 권력화에 대한 구설수다. 어쩌다 한국 교회와 교회의 머리인 예수가 이토록 지탄을 받는 애물단지로 추락했을까? 1. 예수를 ‘헛’ 믿지 말고 ‘제대로’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한 편에는, 한국 기독교의 자성과 변화의 목소리도 있다. 제법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럼에도 교회와 교인들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 개혁의 요구조차 교회의 제도나 구조, 혹은 교회법 등과 같은 외형적인 문제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그것은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대로 믿으려면 인간으로서의 예수와 신앙 고백에 주체로서의 예수를 ‘통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기독교의 숨겨진 모순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정작 예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앵무새처럼 반복된 '교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전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의 삶과 말씀을 제대로 아는 목사가 많지도 않고, 조금 안다고 해도 '밥그릇' 때문에 말하거나 따르기를 두려워한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믿을 것이며,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를 따를 수 있겠는가! 목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예수를 우격다짐으로 믿으라며 요구하고, 교인들은 또 소화 안 되는 이야기를 꾸역꾸역 받아먹게 되어 '잘못된 믿음'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덧 기독교의 하나님은 돈의 신(神)인 ‘맘몬’으로 믿어지고, 예수는 대박 모델인 '로또 복권'으로 둔갑해 버렸다. 짝퉁예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개혁이나 변화의 움직임은 나중 문제다. 예수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역사 속 예수와 기독교 사이에 존재하는 2천 년의 시차를 뛰어 넘어 예수의 삶과 말씀을 철저하게 곱씹는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종교로서 기독교가 다시 거듭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2. ‘통째’로 읽는 예수란? 올바른 앎에서 올바른 믿음이 나오고, 올바른 믿음에서 올바른 깨달음이 나온다. 그리고 올바로 깨달아졌을 때 비로소 올바른 실천이 나온다. 예수에 대한 올바른 앎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기독교가 간과하거나 피해갔거나 혹은 금기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를 다룬다. 예수 출생에 얽힌 이야기부터, 삶의 현실적인 배경, 구도(??를 향한 정진과 출가, 삶의 양식과 영성, 죽음과 부활이 갖는 현재적 의미까지 추적한다. 또한 마리아의 처녀성, 예수의 사생아 논쟁, 쿠란의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 등 현대 기독교가 껄끄럽게 여기는 주제들을 균형감 있게 설명하고 있다. 통째로 읽었을 때 밝혀지는 예수를 대표적으로 몇 개만 살펴보자. 첫째, 기독교에서 예수를 ‘또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건 맞는 걸까? 예수는 자신을 단 한 번도 하나님으로 믿으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지도 않았다. 예수는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를 경계하며 살았다. 또 다른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人子‘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 자신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빌립보를 향해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느냐?” 하고 통탄한다. 이것은 자신을 제대로 보면 하나님을 본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자신 안에 하나님이, 하나님 안에 자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 기독교인은 믿지 못하겠지만 『쿠란』에 따르면 무슬림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슬림들 역시 ‘우리도 예수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다.’라고 말한다. 『쿠란』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사도들로 하여금 선임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였으며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그들을 뒤따르도록 하고 그에게 복음서를 내렸노라.”『쿠란』57장 27절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쿠란』에 마리아와 예수의 탄생과 기적, 승천에 대한 기록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믿지 않으려 한다. 기독교가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오만과 편견의 결과다. 셋째,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결정체는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헐벗고 굶주린 자, 병들고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하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행복을 맛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죽어야 갈 수 있는 천당이나 유토피아로 말한 적이 없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지금 이 순간 체험하는 삶인 것이다. 『통째로 예수읽기』는 '생각 없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준다. 또한 비기독교인들이나 이웃종교인들에게는 예수를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 종교의 창시자 혹은 신앙의 대상으로 가둬 놓은 예수를 풀어줘 그야말로 인간다운 예수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