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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
1장 햇볕에 바래고, 달빛에 물들어 망자에게 대관령 길 넓힌 죄를 묻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는 수령 가는 수령, 함께 울던 고갯마루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고려 충신들의 두문불출과 정선아라리 굽이굽이 한반도의 젖줄을 만들어내고 2장 기쁜 맛이더냐 슬픈 맛이더냐 역발상이 탄생시킨 오방지영물과 계륵 초당 순두부로 대박을 터뜨린 청백리 제왕의 수라상과 민초들의 투가리 거지 음식이 정력식품으로 둔갑하기까지 두메산골에서 서울 강남으로 진출하다 태국의 강원도 찰옥시기는 한국 돈 천 원! 3장 암하노불이 울뚝밸을 부리면 바위 아래 늙은 부처, 흉이냐 칭찬이냐 강릉서 양반 자랑 말고, 원주서 글 자랑 마라 심산에 홀로 남은 태종대와 ‘불사이군’의 절의 ‘삼일천하’로 막을 내린 분노의 쿠데타 이곳에서 잘난 체하다가는 큰코다친다 동지섣달에 발가벗겨놓아도 30리를 뛴다 4장 산천유곡에 남겨진 지존들의 발자취 삶과 죽음이 하나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 대동방국을 그리던 궁예대왕의 꿈과 좌절 마의태자, 과연 삼베옷 입고 금강산으로 갔는가 고려 마지막 임금과 세 무덤의 미스터리 동해안 남단에서 조선 왕조 창업이 움트다 동강 낙화암에 깃든 단종의 슬픈 영혼 5장 그곳에 어머니의 고향이 있었네 왜 거기에서 왕비가 많이 태어났을까 곡식을 심는 것보다 덕을 뿌리는 게 낫다 아들아, 2품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아라 내 죽더라도 새장가는 들지 마소 ‘만능 탤런트’ 신사임당과 ‘고시 9관왕’ 참고 문헌 및 자료 본관 성씨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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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대관령 이야기의 압권은 조선 중종 때의 명신 고형산과 관련된 일이다. 실록 등 각종 사료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중 횡성에 살고 있는 노모가 병환에 시달리자 사직을 청한다. 이에 그를 아낀 임금은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해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백성을 다스리도록 배려한다. 관찰사로서 각 지역을 순방하다가 대관령 길이 두 명이 메는 2인교 가마 하나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것을 보고 사재까지 털어가며 수개월 만에 이를 4인교 가마가 통과할 만큼 넓힌다. 지금으로 치자면,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 셈이다. 조정으로부터 선정善政을 펼친 목민관으로 칭송받던 그는 이후로도 호조ㆍ형조ㆍ병조판서와 우찬성 등 고위직을 두루 거치고 76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그가 죽은 지 100년이 훨씬 지난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조선 강토가 청나라 군사들의 말발굽 아래 놓이게 되고 ‘삼전도 굴욕’이라는 인조의 치욕스러운 항복이 있고 나서야 전란은 마무리된다. 이때 지하에 묻혀 있던 고형산에게는 예기치 않은 불운이 닥친다. 1940년판 《강원도지》에 따르면 ‘호란이 발발한 초기, 주문진으로 상륙한 청나라 군대가 대관령을 쉽사리 넘었기 때문에 한양을 조기에 장악할 수 있었다며, 결국 이 길을 편리하게 닦아놓은 고형산에게 책임이 돌아갔다’고 적고 있다. ‘도로 확장죄’라고나 할까? 어쨌건 분노한 임금의 명에 의해 횡성에 있던 그의 묘가 졸지에 파헤쳐지는 수난을 당했다. 다행히 그의 공적은 나중에 재평가되고 복권되어 그에게 ‘위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횡성 고씨 후손에게는 고향 마을 사방 10리 땅이 하사되었다고 한다. --- pp.21~22 강원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표현은 대체로 일관성을 갖고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암하노불岩下老佛’ 또는 ‘암하고불岩下古佛’이다. 암하노불은 암하고불이 의도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 불교에서 종래의 교종을 대신해 선종이 득세하게 되면서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일어나 범일국사 등 저명한 선승들이 강원도 일대 사찰로 모여들어 수도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고려 말까지는 강원도 사람들을 선승들에 빗대 ‘암하고불岩下高佛’, 즉 ‘바위 아래 있는 덕이 높은 부처’라는 뜻으로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교를 국교로 하면서 유학자들이 “부처의 시대는 물 건너갔다”며 암하고불岩下古佛 또는 암하노불岩下老佛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병을 일으키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는 만해선사한용운가 설악산 백담사에서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을 짓고, 한암선사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며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는 등 암하고불岩下高佛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 p.117 태봉국 궁예가 죽은 후 37년이 지나 또 한 명의 지존이 자신의 어머니 죽방왕후와 처자, 충신열사들을 이끌고 경주, 충주, 제천, 양평을 거쳐 강원도 깊은 산으로 찾아든다. 그가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이다. 《삼국사기》는 당시 상황을 ‘이에 경순왕이 시랑 김봉휴로 하여금 국서를 가지고 가서 태조고려에게 귀부를 청하게 했다. 왕자는 통곡하며 왕을 이별하고 곧 개골산으로 들어가 바위에 의지해 집을 짓고 마의와 초식으로 일생을 마쳤다’며 담담하게 기술한다. 그러나 정사의 설명과 달리 오래전부터 마의태자가 당시 강원도로 와서 원주와 횡성 어답산, 홍천 지왕동 등을 지나 설악산 기슭 밑 인제군에서 ‘신라소국’을 세우고 대왕으로 옹립된 후 상당 기간 동안 고려에 대한 항전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 일대에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지명, 유물, 유적 등 갖가지 증거가 수두룩하다. 우선 서울에서 속초 방향으로 가다 한계령을 넘기 전 나오는 인제군 상남면에는 김부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김부’는 경순왕의 이름金傅과 음이 동일하다. 다만 이 지명은 경순왕이 아닌 그의 아들 마의태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제군사》를 보면 ‘이곳은 과거 김부동, 김보왕촌, 김보왕동, 김보리를 거쳐 김부리가 되었는데, 신라 56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이곳에 와 머무르며 신라를 재건하고자 김부대왕이라 칭하고 양병을 꾀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지금도 김부대왕각이 있어 봄가을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pp.178~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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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입은 강원도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들고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고 머리를 지식으로 채워줄 것이다 중국에 동파육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초당 순두부가 있다 세계 최고의 식문화를 가진 나라 중국의 대표적 음식 가운데 동파육이라는 음식이 있다. 동파육은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소동파가 중국 항저우 지방으로 유배를 갔을 때 그곳에서 백성이 굶주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돼지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요리할 방법을 몰랐던 백성을 위해 소동파가 직접 요리법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요리가 바로 동파육이다. 우리나라에도 음식과 관련해 이와 유사한 미담이 전해진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은 삼척부사 시절, 기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백성을 보고 근심하게 된다. 고민 끝에 그는 강원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콩과 동해의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 순두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허엽의 호가 바로 ‘초당’이며, 여기서 초당마을과 ‘초당 순두부’가 생겨났다. 평소 담백하고 소화가 잘된다는 이유로 순두부를 즐겨 먹던 이들도 이런 유래를 듣고 나면 그 음식이 한층 더 정겹게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먹을거리뿐 아니라 사는 집, 마을, 뒷산, 앞 개천 등 우리 산하에서 탄생하고 자리 잡은 모든 것에는 전설과 역사가 있다. 우리 산하에서 찾아낸 주옥같은 인문학 이야기 천년고찰 낙산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동해의 풍경. 더운 여름 시원한 계곡에서 아홉 굽이를 돌아 쏟아지는 구곡폭포. 한강이 시작되는 검룡소. 매콤한 닭갈비와 시원한 막국수, 그리고 구수한 초당 순두부. 이런 표면적인 것들만으로도 강원도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여기에 이야기라는 옷을 입힐 때 그 매력은 더 깊어지게 된다.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는 우리 땅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 소개하는 책으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인 강원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본래 인문학적 소양을 타고난 저자는 10년간 강원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해 강원도의 드러난 모습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한 가지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 문헌을 찾아보고, 직접 찾아가 보고, 어르신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풀어지는 이야기들을 엮어냈다. 그 결과로 태어난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문화적 영역에서 강원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명소마다 깃든 기기묘묘한 사연, 순박한 심성의 민초들이 삶을 일구어간 투박한 이야기,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맞섰던 왕과 혁명세력 등 영웅호걸들이 명멸해간 대서사시가 이곳을 무대로 펼쳐진다. 익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낯선 이야기가 한 편의 인문학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고향을 찾아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는 곳이 바로 강원도다. 두 강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고 들판을 만나다보면 마침내 물줄기가 시작된 검룡소와 황지에 도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시작을 찾아 되짚어 가보면, 어느새 강원도의 옛 시간과 공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신라 건국 신화의 주인공 박혁거세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을 쫓아갔던 이야기, 신라와 고려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마의태자와 공양왕의 쓸쓸한 최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을 낳은 여걸 엄귀비의 일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과 시대를 뒤바꾼 혁명가가 자신의 꿈과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운명에 맞서 처절하게 싸워야 했던 무대가 강원도였던 것이다. 한편 강원도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자 안식처이기도 했다. 저자는 조선 왕조의 대를 이은 왕손을 낳은 두 명의 왕비와 두 명의 후궁이 태어난 곳이자, 이퇴계와 이율곡이라는 성현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고향으로서 강원도를 새로이 주목했다. 영화와 벼슬에 연연하기보다 학문 정진에 힘쓴 대학자로 이황을 이끈 춘천 박씨, 일찍이 이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열성적인 지도와 헌신으로 그것을 계발해준 신사임당을 배출한 곳이 강원도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황의 어머니 춘천 박씨라는 인물을 재현하고,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또 다른 면모를 밝혀낸 것이 흥미롭다. 그 외에도, 닭갈비와 추어탕 등 음식의 유래와 ‘암하노불’로 불리는 강원도 사람들의 독특한 성향 등에 대한 대목을 통해 강원도에 얽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킨다. 또한 첨단 문명의 이기와 실용주의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에게 ‘옛것에서도 얻을 것이 많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저자와 함께하는 책 속 여행을 통해, 이제껏 보지 못한 생경한 역사와 마주하며 색다른 경험과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정철도 감탄할 ‘21세기 관동별곡’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6월에 전국 4,0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름 피서지역으로 동해안이 1위(28.2%)를 차지했으며, 강원내륙권(12.6%)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강원도는 연인원 9,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처럼 강원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가지다. 가깝게 춘천 등은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고 조금 긴 휴가라면 동해안에서 산과 바다를 모두 접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낙산사, 백담사, 오죽헌 등 문화유적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도 그저 겉만 보기에는 허전한 것이 요즘 여행의 추세다. 여행자유화 시대에 세계 각국의 관광지들을 여행해본 독자들에게 이야기가 없는 여행은 밋밋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행도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이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깊은 이야기까지 풀어내야 한다. 그런 진짜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또한 여행 안내서의 역할을 온전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본문에는 실린 오래된 사진들이나 옛 그림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어 인물들과 사연들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관동팔경을 비롯해 곳곳을 유람하며 《관동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 그는 지방의 행정을 책임진 관리이면서도, 자신이 발견한 강원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가로서 이 책을 남겼다. 이후 4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는 강원도가 간직한 이야기에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적 의미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21세기 관동별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