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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프롤로그 1. 이주민과 만족 2. 세계화와 게르마니 3.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4. 이주와 로마의 국경선 붕괴 5. 도주하는 훈족 6. 프랑크족과 앵글로색슨족: 그들은 엘리트 이동을 했을까, 민족 대이동을 했을까? 7. 새로운 유럽 8. 슬라브 유럽의 탄생 9. 바이킹의 확산 10. 최초의 유럽 연합 11. 이주의 끝, 유럽의 탄생 옮긴이의 말 지도 목록 주석 원사료와 참고문헌 찾아보기 |
Peter Heather
李順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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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과 관련된 최초의 사료에 따르면 790년 무렵 잉글랜드 남부 해안을 약탈한 노르웨이인들은 단 세 척의 배를 타고 왔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런 식으로 소규모 약탈을 한두 세대 가량 지속하다 830년대에 연맹의 성격을 지닌 대규모 집단들이 서쪽 해역에서 활동하면서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중의 일부 집단은 바이킹 사회에서는 이미 중요한 존재가 된 '왕' 또는 '백작'의 지휘를 받았다. 바이킹의 연맹적 특성은 860년대에 한층 수준 높은 힘이 요구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단들이 규모를 키워 새로운 방식으로 힙을 규합한 이른바 대군(?)의 시대에 정점을 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앵글로색슨족과 프랑크 왕국들의 군대를 격파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이 모든 점이 소규모 습격으로 시작하여 로마 도시들을 약탈하고, 황제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국경지대 예속 왕국들의 자산까지 착복하는 단계에 이른 3세기 게르만족 팽창의 양상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바이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게르만족 이주민들도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한층 수준 높은 힘이 요구되었으며, 그리하여 적절한 규모의 군대를 양성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새로운 연맹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 p.173
슬라브족 이주가 현대의 이주와 일맥상통하는 것은, 동일한 슬라브족 집단이 한 번의 이동이 아닌 수세대에 걸쳐 여러 차례 이동한 것으로도 확인이 된다. 현대의 이주 연구자들도 강조하듯, 이주의 습성은 한 인구 집단 내에서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친구와 친척이 이주를 하거나, 혹은 지난 날 그들이 이주를 행한 적이 있으면 그 인구 집단에 속한 다른 구성원들도 이주를 삶의 방식으로 택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슬라브족의 이주 프로필도 이 양상과 완전히 부합된다. 5세기 말과 6세기 초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로 처음 이주를 한 다음 2, 3세대가 지나자 본래 이주민의 후손들이 동로마령 발칸 지역으로 이주를 행한 것이다. 그 뒤 세대들도 동서쪽의 우크라이나와 중부 유럽 고지대로 이동을 계속하다, 북쪽으로 끈 모양의 기다란 정착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 모든 과정에는 수세대가 소요되었다. 이렇듯 이주는 다수의 슬라브족 집단들 사이에서 체계가 잘 잡힌 삶의 방편이 되어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이주민들도 거리낌 없이 이주에 동참하게 되었고, 앞서간 이주민들이 거둔 성공으로 이주의 습성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 p.548 1천년기 초 폴란드와 보헤미아는 게르만족이 지배했고, 따라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숲속에 군락을 이룬 나무 오두막집이 생활의 기본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천년기 말에는 삼림은 무성하게 남아 있었을지언정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지배 종족은 프르셰미슬 왕조나 피아스트 왕조 모두 슬라브족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무 오두막이 기본이던 생활 패턴도 동중부 유럽 일대에서 권력의 기본 요건이 된 성, 성당, 갑옷 기사들로 대체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중부 폴란드는 황제가 찾기에도 부족함이 없고 대주교구가 되기에도 손색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황제의 방문만으로 폴란드의 중요성을 말하기에 부족하다면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일원이 된 것이야말로 그것을 나타내는 상징이 될 만 했다. --- p.634-635 이런 배경 속에 기독교는 유례없이 광대한 영토를 통합시킬 꿈에 부푼 왕조들에게 또 하나의 강력한 유인책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마주쳤던 각양각색의 이교 신들은 오래 전에 확립된 옛 정치질서에 속하는 문화조직의 일부였다. 그 상황에서 기독교가 갖는 매력은, 타 종교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인가된 편협성이었다. 따라서 군주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충분한 사제를 갖춘 온전한 교회로 예전의 신앙을 대체할 여건이 되든 안 되든, 기존의 신앙 관습을 근절시킬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중요한 문화 장애물의 하나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기독교는 ‘긍정적인’ 다른 유인책과 더불어 기존의 종교 조직을 파괴할 권한을 부여해줌으로서, 왕조들의 정치통합 과정에서 완벽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 p.696-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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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유럽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리스도 탄생 무렵만 해도 유럽 대륙은 제국(Empires)과 야만(Barbarians)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발전한 지중해 유역이 북부 유럽의 미개한 지역 위에 군림하고 있던 세계에서 오늘날의 유럽이 탄생하기까지 천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은 새로운 국가와 지역이 출현하면서 지중해 중심의 세계 질서가 재편성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 속에서 Barbarian(만족)의 대량 이주는 로마 제국의 붕괴와 유럽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요인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종족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동하여 토착민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곳에 정착했다는 침략 가설은 인종 청소를 연상하게 했고, 훗날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리하여 고대 후기의 역사에서 이주는 부차적인 문제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주의 역할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 있을까? 피터 히더는 그럴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이주는 유럽 천 년의 역사에서 여전히 중요한 현상이고, 근대 유럽의 형성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피터 히더는 만족의 이주를 침략 가설로 정의한 지난날의 의견을 비판하고, 대신 ‘전진 파동 모델’, ‘엘리트 이동 모델’ 등 다양한 형태로 이를 분류하여 설명한다. 제국은 왜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까? 만족들이 다양한 이주를 감행했다는 사실은 고고학적 증거나 역사적 사료, 언어학적 증거로도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만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주 길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주를 초래한 것은 발전된 유럽과 미개한 유럽 사이의 불균형이었다. 이는‘왜 제국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 탄생 무렵, 로마 제국 외곽에는 수많은 종족이 소수 집단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4세기 무렵이 되면 종족의 이름이 눈에 띄게 줄면서 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그것은 그들이 로마 제국이 지닌 부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해, 혹은 제국이 행사하는 주제넘은 간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모으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따라서 만족의 이주 형태는 그들이 제국의 권력과 주고받은 상호작용으로 결정되었다. 피터 히더는 이러한 현상을 아이작 뉴턴의 ‘운동의 제 3 법칙’에 빗대어 설명한다. 제국이 힘을 행사하면 그 영향권에 든 종족들이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종래는 제국의 칼날을 무디게 할 정도로 스스로를 재편성하게 된다는 논리다. 유럽의 탄생을 밝히는 두 가지 열쇠, ‘이주’와 ‘발전’ 이렇듯 천 년의 기간 동안 유럽 대륙에서는 제국 세력과 그 제국의 문턱까지 도달한 만족 사이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수많은 소수 종족에 지나지 않던 만족이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이주를 하고 커다란 정치체를 형성하며, 종래에는 몇 개의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국과 만족 사이의 불균형은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지중해가 지배한 세계 질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대신 근대 유럽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1000년 무렵 대륙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을 가졌으며, 대규모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국가들이 출현하면서 유럽 특유의 역사적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진정한 유사성의 첫 등장은 만족 유럽의 이주와 발전으로 초래된 결과였다. 오늘날의 유럽은 바로 천 년 동안 진행된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탄생하였다. 천 년 전 유럽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천 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날의 모습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피터 히더가 만족의 이주를 설명할 때 현대의 이주 사례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예로 4세기에 훈족의 위협을 피해 로마 국경지대로 이동한 게르만족의 대규모 이주는, 1994년 소름 끼치는 학살을 피해 주변국으로 125만 명이 이주한 르완다 사태를 연상케 한다. 이처럼 위험으로부터의 대규모 도주는 이주를 유발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부유한’ 나라로 이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현대의 미국이 이주의 산물이며, 지금도 수많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동기에 의한 이주는 부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유발되며, 생활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기승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 년 전 유럽 대륙에서 이루어진, 제국과 만족의 상호작용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일까? 피터 히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금의 세계화춿 마찬가지로 천 년 전에도 제국의 과도한 간섭은 국가 건설의 촉진제가 되어 주변국이 강력한 힘을 배양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따라서 현재의 종속국이 내일의 경쟁국이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이다.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린 오늘날, 천 년 전 유럽에서 진행된 세계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도는 물론이고, 유럽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해외 서평 드라마, 재기, 분석의 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저자는 마치 로마 제국 후기의 황제가 된 듯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구조물에 질서를 수립할 결의에 차 있었고, 그들과 달리 질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선데이 타임스) 게르만족과, 로마령에 속한 그 밖의 여타 종족뿐 아니라 슬라브족과 바이킹도 포함시켜 1천년기 유럽의 정치?인종의 역사를 재구성한 피터 히더의 대표작. 유럽의 국가형성과 정체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역작이다. (브라이언 워드-퍼킨스, 『로마의 멸망과 문명의 최후』의 저자)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피터 히더의 유창한 능변이다. 1천년기 역사와 고고학이 집대성된 내용을 경쾌하고 쉬운 산문체로 풀어낸 저자의 실력은 가히 일품이다. 1천년기 이주를, 신세계로의 자발적 이주나, 혹은 코소보와 르완다의 비자발적 난민 성 이주와 대조하는 식으로 과거의 이주를 현재의 이주와 비교 고찰한 것이 특히 두드러진다. (크리스토퍼 캘리, 리터러리 리뷰) 격동의 1천년기를 살았던 인물과 사건들이 매혹적인 글 속에서 눈부시게 되살아난다.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 날카로운 위트, 그 시대의 매력이 넘쳐나는 흥미진진한 역사서.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중세 초의 게르만족 이주와 슬라브족 이주를 처음으로 비교 분석하여 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최근작. 명료하고 복잡한 논점과 더불어 흥미로움도 갖춘 책이다. (크리스 위컴, 『로마의 유산』의 저자) 앙리 피렌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고대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근대 유럽의 기원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역사서! 히더는 탁월한 필력으로 시종일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럽의 과거 및 미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수작. (톰 홀랜드, BBC 히스토리 매거진) 수백 년 이주의 역사를 꿰뚫는 친절하고 박식한 지침서! (라이브러리 저널) 엄청난 야망과 스케일을 지닌 작품. (뉴요커) 폭과 깊이의 균형감이 느껴지는 히더의 수작. (디스커버리매거진 닷컴) 속도감 있는 필치와 깊이 있는 분석이 어우러진 탁월한 작품. (폴 카트리지, 『알렉산더』의 저자) 권위, 가독성, 흥미로움을 고루 갖춘 책! (테리 존스, 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