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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론 요한복음 주석 도입(1:1-18) 말씀을 제시함(1:19-4:54) 말씀을 인증함(5:1-12:50) 말씀을 확립함(13:1-17:26) 말씀을 입증함(18:1-21:25) ■지도˙도표˙사진 목록 요한의 세계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에베소의 켈수스 도서관 유대 광야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 요한의 세례 나사렛의 위치 무화과나무…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신 7가지 표적 사마리아의 위치 가버나움의 위치 베데스다 못 심판과 구원의 순서도 유대력과 절기 갈릴리 바다 가버나움 회당 초막절 거부의 단계 초막절의 성전 “나는 양의 문이라” 마지막 일주일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중의 아멘(“진실로 진실로”)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심 다듬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당시의 예루살렘 예수님이 받으신 여섯 번의 재판 겟세마네의 위치 겟세마네 동산 예수님께 시행된 잘못된 재판들 산헤드린 빌라도의 안뜰 채찍 안토니아 요새 십자가 |
Charles R. Swind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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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한 형제들의 피가 새 신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때 요한은 그들을 양육했다. 바울, 바나바, 실라, 아볼로, 누가, 디모데, 디도 그리고 기타 많은 선교사들이 열심히 서쪽으로 교회를 넓혀나갈 때 요한은 교회의 기초를 받쳐주었다. 비판자들이 교회에 욕을 퍼부을 때 요한은 변호했다. 사이비들이 교회를 변질시킬 때 요한은 그들의 정체를 파헤쳐 드러냈다.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오도할 때 요한은 그들의 이단적 메시지를 논박했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세 편의 편지에 응축시켰는데, AD 65년경에 소아시아의 교회들이 맨 처음으로 그 편지들을 돌려가며 읽었다. --- p.20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살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에게로 추적해 올라갔고, 누가는 그분의 뿌리를 첫 인간인 아담에게로까지 추적해 올라갔다. 그러나 요한은 물리적 피조물을 훌쩍 뛰어넘어, 예수 그 리스도 안에 생명과 빛이 있었다고 진술한다. 생명과 빛은 모세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과 연결시켜 사용한 두 가지 이미지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우주를 지으신 후에 자신의 진리의 빛이 우주에 충만하게 하셨다(창 1:3). 이어 창조주는 각종 식물과 바다 생물과 새와 육상 동물 그리고 당신의 최고 걸작인 인간으로 지구상에 생명이 충만하게 하셨다. 그분은 남자와 여자에게 그분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어주셨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그분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 p.41 3장 3절에 ‘거듭’으로 옮겨진 헬라어 단어 an?hen은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흔한 번역은 ‘위에서’다. 요즘 우리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으로 쓰는 ‘위에서 도우셨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단어에 담긴 ‘위에서’와 ‘거듭’이라는 뜻이 합해져 심오한 진리를 예시해주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것은 이중적 의미의 표현일 것이다. 메릴 테니(Merrill Tenney)의 말대로, “출생은 우리가 세상에 들어서는 방식이며, 이 세상에 적응할 잠재적 소양도 출생과 더불어 온다.” 출생은 생명의 종류와 환경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일이다. “거듭난다, 또는 ‘위에서 난다’는 말은 사람이 다른 세상에 들어가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변화를 뜻한다… 천국에 속하려면 그 나라에서 태어나야 한다.” --- pp.93-94 현대 문화는 지도자의 자질을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능력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내가 평생 목회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진리란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진리를 감추고 대중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추종 세력을 대거 끌어 모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미지를 파는 것이다. 집결의 구심점이 될 상징과 증오의 대상이 될 상징을 하나씩 만들어내라. 상징은 거창하게, 메시지는 단순하게 하라. 사람들의 가장 깊은 필요에 영합하고, 당신만 따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설득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진짜 진실은 숨겨두라. 그러려면 절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게다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본보기로 벌을 주어야 한다. 그 보상으로 당신은 거대한 추종 세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얻게 된다. 반대로 진리는 거대한 추종 세력을 끌어모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진리는 못 그릇 속의 자석처럼 적들을 끌어모은다. 그래서 경건한 지도자에게는 용기와 끈질긴 자세와 오뚝이 근성과 무엇보다도 겸손이 필요하다.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은 이미지나 박수나 여론이나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은 그냥 진리를 제시하고, 그 진리가 사람을 끌어들이든 밀어내든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거부당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 p.139 언뜻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3장 17절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헬라어 단어 krisis(3:17)와 krima(9:39)의 근소한 차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krisis는 심판하는 행위를 뜻하고, krima는 심판의 결과를 나타낸다. 3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 적이 사람들의 죄를 묻거나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셨다. 그 일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실 것이다(단 7:13-14, 계 20:11-15).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매번 그 만남은 진실의 순간이 되었다. 각 개인이 빛이신 그분께 보이는 반응이 곧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드러내준다는 뜻이다(3:19-21). 그리스도의 빛 앞에 서면 마침내 선과 악의 참된 본색이 드러난다. --- p.237 고백컨대 내가 간혹 괴로울 때 되뇌는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에 의로우시며”라는 말씀은 그저 말뿐인 것 같고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마침내 주님이 개입하셔서 그분을 향한 나의 신뢰가 옳았음을 확인해주실 때까지 그 말씀이 나를 안정시켜준다. 비록 그분이 내 바람대로 설명해주실 때는 드물지만, 말로 가닿을 수 없는 저 깊은 곳에서 그분의 영이 내 영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선하신 하나님의 흠 없는 성품과 완전한 계획 안에서 안식을 얻는다. --- p.262 요한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하신 공적인 사역의 마지막 날들을 기술하면서, 사실적인 말투로 비참한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고의로 거부해왔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그 자기기만에 내버려두셨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유기의 형벌’이라고 한다. 하나님 편에서 엄한 사랑으로 내리는 이 결정은 수동적인 방출이 아니라 구속(救贖)을 목적으로 한 능동적인 ‘내버려둠’이다. 주님이 누군가를 죄에 내버려 두실 때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그 결과가 중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엎드러져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천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항을 고집할 것인가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다. --- p.267 미국인들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에 살고 있지 않다. 감히 말하건대 미국은 후기 기독교 국가도 아니다. 이제 나는 우리가 반기독교 국가에 살고 있다고 이전 어느 때보다도 확신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흐름이 바뀐 것일까?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헐뜯는 유머가 정치적 공정성의 이름으로 금기된 상황에서도 유독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만은 예외이며, 대중문화는 신성모독을 즐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는 박해의 물결이 곧 뒤따르게 되어 있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사실이다. --- p.344 예수님은 영생을 하나님 및 그분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정의하셨다. ‘안다(gin?k?k)’는 단어는 그냥 지식적으로 알거나 인지하기보다는 ‘이해하다’는 뜻의 헬라어 단어에서 왔다. 이 말은 생각과 가치관을 서로 주고받는 것을 암시하며, 그 주고받는 사람들은 서로 허물없는 사이다. 친한 친구들이나 결혼한 부부의 관계까지도 이 단어로 묘사된다. 영생이란 긴 삶만이 아니라 풍성한 삶이다(10:10). 많은 양에 높은 질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런 만족은 개개인이 본연의 지음받은 목적을 이룰 때에만 누릴 수 있는데, 그 목적이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 pp.368-369 아무도 몰래 혼자서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더 힘든 상황은 내 생각에 별로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므로, 정의는 하나님이 주신 뿌리 깊은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더러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갈망하는 정의는 철저히 이 기적인 추구로 변한다. 억울한 감정은 정의를 요구한다. 원한은 복수를 부르짖는다. 자기 중심적인 절망감은 하늘의 위안을 갈구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은 대변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는 내내 세상은 우리의 고난을 남의 일인 양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렇게 외롭고 억울하게 혹독한 시련을 당할 때면 하늘의 침묵이 고문일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지금 남모르게 고난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비방이 당신의 평판을 더럽혔다. 뒷말이 당신과 당신이 존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거짓 고소가 당신의 인생길을 바꾸어놓았다. 정작 잘못한 사람들에게 가야 할 박해가 당신에게 왔고, 게다가 그 가해자들이 정말 악한 사람들일 수 있다. 장담컨대 주님은 당신이 도움과 희망을 찾아 부르짖는 소리를 반드시 들으실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도 당신을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혹 당신이 원하는 때나 방식으로는 아닐지라도 그분은 억울함을 풀어주신다. --- pp.403-404 예수님이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무렵, 황제 티베리우스는 제국의 일상적 행정 업무를 자기가 믿던 오른팔 루키우스 세자누스의 손에 맡기고 카프리 섬의 화려한 별장으로 물러났다. 세자누스는 소부대에 지나지 않던 황실 경호대를 황제 친위대로 탈바꿈시켜 황제의 신임을 얻었는데, 일종의 비밀 경찰인 황제 친위대는 로마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묘한 술책과 폭력적 음모를 통하여 약삭빠르게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가 죽인 정적 가운데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친아들인 드루수스도 있었는데, 이 불운한 남자를 세자누스는 그의 부인의 도움 으로 서서히 독살시켰다. 드루수스가 병사한 듯 사라지자 세자누스는 사실상의 로마 수뇌로서 세도를 날렸고, 제국에서 가장 이름난 임지 가 운데 하나인 유대 총독 자리가 자기 친구 본디오 빌라도에게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그 자리는 아주 골치 아픈 자리였지만, 반면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보장된 자리이기도 했다. 세자누스는 유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유대를 평화롭게 복종시킬 수 있는 강한 통치자를 원했다. --- p.410 요한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다 알리기보다는 충분히만 알리기로 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그의 내러티브도 유한하다. 이 땅의 삶의 모든 것을 합해도 천국에서의 가장 작은 것보다도 부족하다. 그래서 요한은 독자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목표만 달성된다면, 그는 그들도 장차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알게 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을 완전히 다 알고 싶다면 그분을 믿으면 된다. 그러면 영원 속에서 마음껏 그분을 깊이,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계 22:3-5). --- p.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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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요한복음의 정수를 보여주는 탁월한 통찰력! 이 시대 최고의 강해 설교자이자 성경 교사로 손꼽히는 찰스 스윈돌은 지난 50여 년간의 깊고도 진지한 성경 연구를 그의 필생의 결실로 담아내기 위해 신약 전권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해석서를 기획했다. 이 신약 인사이트 시리즈는 성경 본문에 대한 분명한 해석과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로 성경을 전달할 수 있도록 어렵고 난해하지 않은 언어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학문적 이론과 살아 있는 설교를 위한 적용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 시리즈는 신학생을 비롯한 성경 연구자들과 설교자 그리고 평신도 리더들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것이다.특별히 성경 본문을 분석하고 핵심 주제를 짚어내는 정확한 통찰, 이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는 실제적이고 신선한 적용, 그리고 그것이 독자들의 가슴에 닿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찰스 스윈돌만이 줄 수 있는 이 책의 선물이다. 또한 이 시리즈는 성경 각 권을 구성하는 역사, 사회, 지리, 종교적 신념, 정치 등에 대한 중요한 배경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각종 차트, 지도, 삽화 등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많은 도구들을 사용함으로써 본문에 대한 큰그림을 놓치지 않게 돕는다. 이 책의 세밀함, 명료함, 체계적인 구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요한복음은 단순성이 지닌 매력으로 보나 심오함이 주는 도전으로 보나 이야기의 걸작이며, 재미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나 사상이 깊은 철학자들이 똑같이 즐길 수 있는 진귀한 문학 작품이다. 요한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은 어린아이들의 읽기 책처럼 아주 기초적인 헬라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개 요한복음은 코이네(평민들이 쓰던 헬라어)를 배우는 초보자들이 맨 처음으로 번역을 연습하는 책이다. 그런데도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요한이 전하는 심오한 진리들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평생을 바쳐 애쓰고 있다. 마틴 루터는 요한의 글에 나타난 이중적 특성에 감탄하며 “이보다 더 단순한 어휘로 써진 책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어휘는 가히 형언하기 어렵다”라고 고백했다. 요한복음은 성경의 다른 어느 책보다도 다정다감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제시한다. 요한복음은 또 예수님의 이중적 속성을 담대하고 명확하게 확증한다. 즉,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인간이시며 그 둘이 하나의 인격체 안에 완벽하게 연합되어 있다. 아울러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 달리 성령의 신비를 계시해준다. 게다가 요한의 내러티브에는 신자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폭넓은 실제적 교훈들이 들어 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누군가를 인도할 때 도움이 되는 구절들도 있고,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구절들도 있다.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전능자와 점점 친해지는 법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배운다. 또 주님은 하나님의 가족들 사이의 연합을 우선으로 여기시는데, 그 연합이 얼마나 귀한지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깨닫는다. 찰스 스윈돌은 이 시대 최고의 성경교사로서 이러한 요한복음의 핵심 진리를 분명하게 통찰해낸다. 적확한 원문 해석, 해당 본문에 대한 방대한 자료, 고금을 망라한 관련서들의 다채로운 인용 등 그가 지닌 최상의 은사들을 총동원하여 요한복음의 정수를 보여준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지금부터 우리도 요한이 가리켜 보인 그분을 만나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