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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지은이 서문 01 미디어의 역사에 관한 짧은 이야기 02 관심관리 03 월드와이드웹 시대의 저널리즘 04 텔레비전의 매력 05 조작에 대한 의심 06 도덕적 기능 07 재난의 소비와 공포 대비 훈련 08 여론의 폭정 09 기술적 재생산 시대의 정치 10 전쟁 : 모든 미디어의 아버지 11 사회적 지능의 학교인 오락 12 컴퓨터 속 학교 13 도구인가 장난감인가 14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15 네트워크의 논리 참고문헌 찾아보기 |
Norbert Bo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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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보면, 주관성이나 논쟁, 당파성이 지배하고 있음을 바로 알게 된다. 블로거들에게는 객관성보다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 진정성이 깃든 ‘목소리’야말로 웹 2.0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다. 보통 일기장과 마찬가지로 전자일기장도 ‘아웃팅’의 쾌락을 탐닉한다. 이러한 쾌락이 주는 중독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아도취의 마취성이 아니라 바로 ‘자기노출’이라는 마약의 중독성이다. --- p.55
텔레비전은 마치 날씨와 같다.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며, 대체로 좋지는 않지만, 그런데도 모두가 관심을 쏟는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은 바깥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은 ‘저 바깥’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까? 적어도 뉴스 편집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당연함에 주의해야 한다. 뉴스는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을 보도하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는 사건이 아니라 시선에 주목할 뿐이다. --- p.64 우리는 이미 주어진 대안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만을 위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행위에 주요한 관심이 쏠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저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왜 ‘스타 찾기’와 같은 새로운 포맷이 그렇게 성공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독일은 슈퍼스타를 찾는다고 할 때, 실제로는 다니엘이나 알렉산더나 제시카와 같은 출연자를 찾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그저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즐기는 것이다. --- p.75 매스미디어는 관심의 방향을 이끌어간다. 신화나 영웅, 그리고 추문은 이렇게 탄생한다. 관심의 조종을 통해서야 추문은 비로소 추문이 된다. 따라서 단순히 정치인들이 점점 더 무자비하고 파렴치해졌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우리에게 주기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스캔들은 미디어의 생산물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여론은 규범 위반을 스캔들로 비화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시스템을 통제해간다. 실제로 스캔들은 정치 속에 도덕이 등장하게 되는 유일한 형태다. 그리고 스캔들은 매스미디어가 행하는 도덕적 선택이 이루어지는 형식으로 작용한다. 스캔들에는 사회적 주변 환경에 순간적으로 눈부신 명료함을 제공하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자애로운 어둠 속에 묻어두는 헤드라이트 효과가 있다. --- p.99-100 저널리즘은 “실패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을 과대평가하도록 유혹하는 세계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 니체는 우리가 이미 위험에 중독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해일이나 이슬람 테러처럼 눈에 보이는 위험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이제 저 바깥에서 발생한 불행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당사자가 아닌 데서 오는 즐거운 안도감은 당사자에 대한 ‘감정적 동조’라는 보상적 태도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재앙의 충격과 시위 장면을 소비한다. 또한 매스미디어는 시위가 이성적 성찰을 대신해 나타나는 현장 어디에나 함께한다. --- p.104-105 정부는 여론을 쫓아갈 수 없지만, 여론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집권 정당은 여론이 정부를 따르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각각의 견해가 나타나는 수준마다 사람들이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 그렇지만 더욱더 요구되는 방향설정의 필요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질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리 짜 맞춰진 견해라고 할 수 있는 선전선동에 넘어가기 쉽다. 이러한 선전선동이라는 개념이 세뇌나 검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정부는 검열을 행하기보다는 제시된 사실에 다른 사실로 대응한다. 선전선동은 정치적 조작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마취제라고 할 수 있다. 또는 일종의 정보를 이용한 최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 p.121-122 시민에게는 경쟁하고 있는 정치인의 능력을 판별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심미적 판단만이 남게 된다. 최근에 정당들은 강령이 아닌 정치적 디자인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왔다. 이러한 정치의 의도적인 미디어 연출은 토크쇼와 TV 토론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내용보다는 출연자의 흥행력을 기대하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미디어 자문가와 마케팅 전문가 그리고 스핀닥터(spin doctor)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인을, 손님에게 특정 쏄트 상표로 접근해 현혹하려는 회사가 내놓은 상품처럼 다룬다. --- p.131 좋은 오락은 (너무 많은 자극에 따른) 스트레스와 (너무 적은 자극에 따른) 지루함 사이의 황금분할 지점에 위치한다. 거의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위험을 찾아다닌다. 그것은 위험이 우리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며, 이로 말미암아 욕망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은 실제로 위험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마치 위험한 것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찾는 것은 “안전한 위험(safe danger)”이다. --- p.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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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 미디어를 둘러싼 ‘진리’는?
오늘날 미디어는 우리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미디어는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조종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미디어를 통제하기는커녕 그것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닐 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미디어를 둘러싼 ‘진리’를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책에서 노르베르트 볼츠가 말한 ‘미디어 탈문맹화’가 목표하는 지점도 그곳에 있으리라. 이 책은 일반인이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 그러나 본질을 꿰뚫어보는 볼츠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은 여전하다. 볼츠는 미디어에 관한 일반인의 기존 관념을 무자비할 정도로 무시하고 뒤틀어버린다. 특히 미디어를 하나의 기술이나 도구로만 보지 않고, 미디어의 특징과 의미, 영향을 철저하게 미디어의 사회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우리가 발붙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고 존재하며 작동하고 기능하는지 알아본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미디어의 이해를 넘어 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이자 정보사회의 이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가끔씩 기존 관념, 선입견 및 편견에서 한걸음 물러나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현상을 차분하게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일상의 성찰적 재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며, 비판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이전에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다. 이 책은 독자가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미디어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미디어, 더 나아가 미디어가 지배하는 우리 삶을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