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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위험한 시도…가슴은 요동칠 것이다
Ⅰ. 길에 빨려들다 또 다시 떠나다 밴쿠버 노숙자들의 생존경쟁 신의 품에 안기 듯 길에 빨려들다 길은 언제든 나를 받아주었다 비포장 길서 전복 사고 당해 완벽하게 혼자였다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 가는 길 프루도 베이에서 생각하는 미국 아버지는 수호천사 부러운 여성 라이더, 헬렌 인연은 분명히 있다 마사이족 불침번과 개코원숭이 중국 밖의 중국 인간 욕망의 상징, 뉴욕 Ⅱ. 끊긴 길. 이어지길… 미소와 체증의 나라, 멕시코 사람이 어떻게 종교가 없을 수가 있나? 여행, 쉼, 멈춤 타코와 테킬라 치아파스에 길을 묻다 국경의 풍경 하루에 두 나라 건너뛰기 비가 오면 떠오르는 내 생의 한순간 가난에 찌든 어두운 얼굴들 희망을 봤으면… 구름 속을 달리다 오토바이 통관 더 쉬웠으면 집중력, 나를 구하는 방패 경찰에 뜯기고, 소매치기 당하고 아픈 과거로 수놓은 모자이크 Ⅲ. 땅끝. 다시 길을 나서다 콜롬비아 미녀에 마음 흔들려 삶에 대한 감사로 홀로 흐느끼다 서양이 지배한 까닭은 꼭 오늘 떠날 필요는 없다 고대 도시는 왜 사라졌나 칼리는 살사로 뜨겁다 아! 길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삶은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는 일 인심이 다 같지는 않다 현대문명의 야만성 여기가 정말 지구인가 모랄레스 대통령은 정말 웃길까? 구정물 뒤집어쓴 삶도 아름답다 ‘땅 파먹고 사는’ 칠레 한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멀리 갈 때는 같이 가야 우연 또는 보이지 않는 힘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 서다 사고…4개월 만에 다시 달리다 아르헨티나가 슬픔에 빠진 날 사람들과 내 삶이 보였다 에필로그 - 바보야! 세상은 네 안에만 있는 게 아냐 오토바이 해외여행을 가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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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에 올라앉아 자연을 내 품에 안으며 인적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갈 때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오토바이는 자유입니다. 나는 두 바퀴 위에 몸을 싣고 눈앞의 길과 내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인생길 사이를 넘나들며 질주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도시를 누비고, 세상을 짓누르고 있는 시간 속을 헤쳐 나가면 어느 미지의 공간에 이르게 됩니다. 그 순간 나는 한없는 자유를 느끼곤 합니다. 욕망하는 모든 것을 얻은 뒤에 오는 성취감이나,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을 때 느끼는 초연함에 비할 만합니다. --- p.17
여행이란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간다는 점에서 어떤 여행이든지 필연적으로 약간의 모험을 동반하게 된다. 특히 과거, 여행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의 여행이란 얼마나 스릴이 있었을까? 지금과 비교해 보면 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이 여행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 먼 옛날의 여행자란 개척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p.84 나는 얼마나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가. 나는 또한 얼마나 아득한 깊이에 빠져 나의 허무를 완성하고 싶어 했는가. 그러나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단 한 순간도 사람의 바다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고 적막으로 채워진 무한한 공간 앞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때로는 통곡하고, 삶에 대한 감사로 홀로 흐느낄 때도 그 어딘가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p.147 볼리비아의 하늘빛만큼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잎 노란 색깔도 내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베리아에는 가을이 일찍도 찾아온다. 2007년 9월 중순, 시베리아 하늘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투명한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속살을 드러낸 듯 처연한 모습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은 벌판을 가로질러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자작나무 숲을 뒤흔들며 내는 쏴 하는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 p.187 여행은 그동안 어딘지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내 삶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결국,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나에게는 가야할 길이 조금은 더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길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은 진정 이르고자 하는 그 누군가에게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해서 일 것이다. --- p.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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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깨달은 삶의 가치들
오토바이는 엔진 달린 말이라고도 표현한다. 인간의 잠재된 기마본능을 일깨우는 교통수단이다. 저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파격적인 기간과 거리를 여행했다. 현대 문명의 이기이지만 온몸이 노출된 상태로 달려야 하는,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고 4년에 걸쳐 세계 5개 대륙, 12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글은 아메리카 대륙 종단을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간다. 일지형식이 아니라 각 아이템마다 고유의 주제를 설정해 그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 그 주제에 부합하는 과거 아시아-유럽 횡단여행 때나 동남아시아에서 인도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를 종단해 케이프타운에 이르렀을 때의 여행 경험담을 곁들였다. 어디를 가봤더니 어떻더라, 나는 어디를 어떻게 가봤다 라는 여행 흔적들을 담은 글이 아니다. 여행하며 느낀 사회과학적, 철학적 사유를 담았다. 아메리카 대륙 종단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시작해 도로상 아메리카대륙 최북단 도시인 프루도 베이까지 올라갔다가 팬아메리칸하이웨이를 타고 남하해 지구상 최남단도시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간다. 이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여행을 마친다. 오토바이를 배운 지 석 달여 만에 아시아-유럽 횡단에 도전해 사람들의 따뜻함에 눈뜨게 되며 행복해 한다. 또 길이 지닌 환상성에 빠져들며 인생길을 떠올리고 고해와도 같은 반성을 하기도 한다. 텅 빈 길에선 ‘완벽히 혼자’임을 깨닫고 대성통곡하기도 한다. 그렇게 길에서 인생과 삶의 깊이를 깨친 글이다. 풍족한 국가들에선 현대 문명의 뒤틀린 욕망을, 가난한 나라에선 팍팍함 속에서 희망을 염원했다. 각 국가에서 만나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문명들을 사람중심의 관점에 기록했다. 그러면서 폐쇄적이었던 삶을 후회하기도 하고, 우리는, 한국은 너무 결과지상주의 사회가 아닌가라며 묻는다. 궁극적으로는 저자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용서합니다. 길 끝에서 세상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의 말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그저 일에 파묻혀 살았다. 한국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이다. 하지만, 직업과 일이란 어쩔 수 없이 돈과 관련이 있어서 한 해 두 해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일 그 자체보다는 돈 버는 데 더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과 일에 몰입되어 있던 삶에 염증을 느꼈다. 나의 가슴은 무덤덤해질 데로 무덤덤해져 그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권태로웠다. 이대로 살 것인가? 그대로 살면 그래 왔듯이 안전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 삶을 죽여 가는 위험한 길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볼까? 새로운 시도는 늘 위험하다. 그러나 내 가슴은 다시 요동칠 것이다.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에 대해서 두 가지를 전제했다. 자유로울 것, 그리고 색다를 것. 그 두 가지 조건에 적합한 여행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스쿠터를 한 번 타본 것이 전부였다. 오토바이에 문외한이었다. 125cc 이상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필요한 2종 소형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겨우 3개월 정도 도로주행 연습을 하고선 2007년 6월 21일 아시아-유럽대륙 횡단에 나섰다. 오토바이를 오랫동안 타온 분들은 오토바이 주행기술이 아직 안정적이지 못하다며 나의 도전을 우려했다. 2007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국외로 오토바이 여행을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송 방법, 각 나라의 세관 통관 및 도로 정보, 장기간의 오토바이 유지 관리 등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내 주위에는 이와 관련해 내게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오토바이 주행 연습을 하던 중 만난 한 라이더가 2006년도에 오토바이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한 이가 있다며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강세환 군이었다. 나는 그의 경험담을 들으려고 2007년 5월 초순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와 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대화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비록 첫 만남이었지만 그에게 아시아-유럽 대륙 횡단여행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2007년 여행의 동료가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 도전이었다. 아시아-유럽 대륙을 횡단하기로 한 까닭은 뭐랄까, 대륙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조금은 감상적이라 할 만한 정서가 크게 작용을 했다. 우리는 분명히 대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남북 분단 이후 섬나라 사람들처럼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나슴 영문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언젠가는 시베리아의 광활한 숲과 몽골의 대평원에 서서 내가 상상만 했던 거대한 대륙의 정수를 느끼고, 호흡하고 싶었다. 속초 동명 항 국제 여객 터미널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로 가는 배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여행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 흥분된 마음은 나의 선택마저도 삶을 뒤흔드는 우연성이라는 요소의 결과로 치부할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 앞에 벌어질 수많은 일을. 그리고 전 세계 5개 대륙을 오토바이와 함께 여행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아-유럽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나는 오토바이 여행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밥을 먹으러 식당을 다녀온 사이에 길가에 세워 놓은 오토바이에 누군가 환영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주기 바란다. 전화 번호 xxx xxxx라는 쪽지를 남겨놓아 감격했었다. 러시아 알타이(Altai) 초원의 작은 도시 바르나울(Barnaul)에서는 주행 중에 차량 운전자가 생수를 건네주며 격려해줘 고무됐었다. 이탈리아 로마(Rome) 근교에서는 차량으로 남부 유럽을 여행 중이던 어떤 독일인이 휴게소에 도착한 나에게 다가와 시원한 맥주를 한 병 건네며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기를 기원해 주었다. 오토바이 여행 중 어디서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동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나에게는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7년 11월 24일 2만여 킬로미터 여정을 로마에서 끝내고 귀국하자마자 나는 다음 여행계획을 짰다. 아시아-유럽대륙횡단을 떠날 때 작정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광활한 대륙을 질주할 때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다른 대륙을 질주하고 있었다. 2차 여행은 한국에서 남아공의 희망봉까지였다. 거리는 4만 킬로미터 정도.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희망봉까지 갈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없었다. 이집트까지야 어찌해서 갈 수도 있겠지만, 아프리카, 그 미지의 대륙을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완주를 목표하되 중간에 변수가 생기면 핑계 삼아 그만두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좀 하면서 2008년 3월 27일 태국으로 오토바이를 공수했다. 그렇게 2차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1차 여행 때는 출발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고, 여행 말미에는 유럽연합(EU)의 자동차 보험 제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역시 2차 여행도 쉽지는 않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로 가는 육로가 막혀 싱가포르에서 인도 첸나이(Chennai)로 오토바이를 배편으로 운송해야 했고, 이집트에서는 그 해 9월 말 극적으로 수단 비자를 받음으로써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를 내려가는 동안에는 사막 지역을 통과하면서 모래 속에 처박힌 오토바이를 빼내느라 두 번씩이나 클러치 디스크가 부서졌고, 잠비아에서는 그동안 오토바이가 받은 충격이 커서였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다가 후배 황의선 군이 한국에서 보내준 부품을 받아 어렵게 수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결국 2008년 세밑을 하루 앞두고 희망봉에 도착함으로써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격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리고 두 번씩이나 대륙을 횡단하고 종단한 경험에서 나온 여유로운 마음으로 2009년 7월 1일 시작해 근 14개월에 걸친 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마침으로써 나의 길고 긴 여행, 5개 대륙의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끝내게 되었다. 2011.7 새로운 길을 꿈꾸며 문성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