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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신의 역사
양장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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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이루어진 고전문헌 연구의 부활
제1장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인문주의 이전 시기의 연구와 인문주의의 시작
―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제2장 제2세대와 제3세대 ― 살루타티, 브루니, 니콜리, 포조
제3장 로렌초 발라
제4장 폴리치아노
제5장 이탈리아 학문 연구의 종합 그리고 알프스 이북 국가들로의 확산

제2부 네덜란드와 독일의 인문주의와 학문 연구
제6장 근대의 경건(Devotio Moderna)
제7장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
제8장 에라스뮈스의 주변

제3부 프랑스 르네상스에서 독일의 신헬레니즘까지
제9장 프랑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과 학자들
제10장 홀란트, 르네상스 이후의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의 고전 연구
제11장 리처드 벤틀리와 잉글랜드에서의 고전 연구
제12장 벤틀리의 동시대인과 후계자들

제4부 독일의 신헬레니즘
제13장 빙켈만, 신헬레니즘의 창시자
제14장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볼프
제15장 볼프의 젊은 동시대인과 제자들
제16장 19세기의 시작 ― 니부어에서 드로이젠에 이르는 독일 고대학

해제 서양 인문학의 전통과 그 수용 과정 : 안재원
옮긴이의 말
인명 찾아보기
지은이 소개

저자 소개 2

루돌프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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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Pfeiffer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최고의 서양고전문헌자로 평가 받는 그는 뮌헨 대학의 오토 크루시우스(Otto Crusius) 교수의 지도 아래 서양고전문헌학을 공부했고, 1912~21년까지 뮌헨 대학의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1916년의 베르됭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파이퍼는 서양고전문헌학의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1920년에 휴가를 얻은 그는 베를린을 방문한다. 이 곳에서 그는 새로 발견된 칼리마코스의 파피루스 고문서를 해독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Ulrich von Wilamo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최고의 서양고전문헌자로 평가 받는 그는 뮌헨 대학의 오토 크루시우스(Otto Crusius) 교수의 지도 아래 서양고전문헌학을 공부했고, 1912~21년까지 뮌헨 대학의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1916년의 베르됭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파이퍼는 서양고전문헌학의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1920년에 휴가를 얻은 그는 베를린을 방문한다. 이 곳에서 그는 새로 발견된 칼리마코스의 파피루스 고문서를 해독하는 데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Ulrich von Wilamowitz-Moellendorff)를 만나게 된다. 당시 서양고전문헌학의 대학자였던 빌라모비츠는 그의 학자적 재능을 높이 샀으며, 그의 지도와 조력을 받으면서 파이퍼는 전도유망한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스승 빌라모비츠에 대해 파이퍼는 깊은 경외심을 품었고, 그의 [논문 모음집](Kleinen Schriften)의 편집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 에두아르트 슈바르츠(Eduard Schwartz)의 지도를 받아 헬레니즘 시대의 서정시인이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이었던 칼리마코스 연구로 교수 자격 논문(Habilitation)을 저술한 파이퍼는 1923년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의 초빙 교수로 부임했지만, 같은 해에 신생 대학인 함부르크 대학의 서양고전문헌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1927년부터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1929년부터 1937년까지 슈바르츠의 후임으로 그리고 다시 1951년부터 1957년 정년퇴임 때까지 뮌헨 대학에서 서양고전문헌학을 강의했다. 유대인 여성과 결혼했던 그는 1937년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고, 1938~51년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코르푸스 크리스티 칼리지(Corpus Christi College)에서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언어 문제 때문에 그는 1946년에야 비로소 서양고전문헌학의 역사를 강의하는 강사로 위촉 받았다. 1948년에 조교수(Senior Lecturer)가 되었고, 1950년에 부교수(Reader)가 되었으며, 그 후에야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험난했던 영국 생활 초기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도 취직할 수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모든 저서들을 이곳에서 출간한다. 마침내 그는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제2의 고향이 된 옥스퍼드는 그가 작고할 때까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영국에서의 망명 체류 기간은 파이퍼에게 연구자로서 활동을 펼침에 있어서 최고의 시기였다. 탁월한 서양고전문헌자들(이 중에는 에두아르트 프랭켈Eduard Fraenkel과 파울 마스Paul Maas 등의 독일인도 있었는데)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은 많은 희귀본들과 엄청난 수의 파피루스 고문서들로 넘쳐난 곳이었기에, 그의 관심 분야를 연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 영역은 이미 뮌헨 대학 시절에 그리스 문학 전체, 즉 호메로스, 서정시, 비극에 걸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연구 범위를 더 넓혀나갔다. 그는 이미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루었던 주제인 서양의 인문주의(Humanismus) 전통과 에라스무스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옥스퍼드 시기에 그가 몰두한 연구는 무엇보다 헬레니즘 시인인 칼리마코스에 관한 분석이었다. 이와 관해서 그는 이미 교수 자격 취득 논문과 또 새로 발견된 고문서를 다룬 책에서 쓴 일이 있었지만, 옥스퍼드에서 심화시킨 연구 덕분에 그는 옥스퍼드에서 최고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 발견된 문서를 다룬 글(“Meliorem locum unde Callimachus edi possit non invenias”)은 1949~53년에 출간되었는데, 20세기 출판이 거둔 위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 받는다. 1953년 이후부터 파이퍼는 자신이 주요 연구 분야의 서양고전문학의 역사를 처음부터 서술하는 연구에 착수한다. 이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그보다 더 적임인 사람은 없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그는 “문헌학”(philologia)이라는 학문에 “고전”(classical)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렇게 서양고전문헌학을 부르는 학문 명칭은 고문헌을 다루는 기능적 학문인 “문헌학”(Philology)에서 “고전학”(classical scholarship)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고전” 개념의 이해와 관련해서는 그가 비록 베르너 애거(Werner Jaeger)와는 다른 이해를 가졌지만 말이다. 서양고전문헌학계의 대가였던 빌라모비츠도 “고전학” 대신에 “문헌학”(Philologie)을 사용하였다. 그는 이 책의 집필을 마치는 데 성공하였고, 현재 그의 유고들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저서캷 Kallimachosstudien; untersuchungen zur Arsinoe und zu den Aitia des Kallimachos(1922), Callimachi fragmenta nuper reperta(1923), Humanitas Erasmiana(1931), Callimachus 1/2(1949/1953), Philologia perennis(1961),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From the beginnings to the end of the Hellenistic age(1968),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From 1300 to 1850(1976)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대제의 경제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산대학교 역사철학부 역사 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로마사 전공자로 30여 년간 서양고대사를 공부해왔고 최근에는 서양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 요소인 기독교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은 여러 권의 역사 입문서 집필로 이어졌다. 그러나 서양고대사 집필은 몇 배나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의 방대한 역사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문학, 종교 등 문화사까지 포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대제의 경제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산대학교 역사철학부 역사 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로마사 전공자로 30여 년간 서양고대사를 공부해왔고 최근에는 서양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 요소인 기독교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은 여러 권의 역사 입문서 집필로 이어졌다. 그러나 서양고대사 집필은 몇 배나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의 방대한 역사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문학, 종교 등 문화사까지 포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와 같은 주제는 전문 자료들을 뒤져 논문 여러 편을 작성하고 나서야 원고를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지난한 노력의 결실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 《역사를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역사란 무엇인가?》,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왜 유다는 예수를 배반했을까?》, 《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그리스도교의 탄생》,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공간과 시간의 역사》, 《종말의 역사》, 《성인 숭배》, 《교양, 다시 읽기》, 《청소년의 역사 1》, 《지식의 재발견》,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 《인문정신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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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94g | 153*224*30mm
ISBN13
9788964450338

출판사 리뷰

제1군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살루타티, 브루니, 니콜리, 포조, 로렌초 발라, 폴리치아노, 에라스뮈스, 레나투스, 기욤 뷔데, 로베르 에티엔, 유스투스 스칼리게르, 리처드 벤틀리, 요한 빙켈만,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볼프 …….

제2군
프랑수아 라블레, 토머스 모어, 후고 그로티우스(휘호 흐로티위스), 아이작 뉴턴, 로버트 보일,헤르더, 괴테, 멘델스존, 바흐, 에드워드 기번 …….

제1군의 인명과 제2군의 인명 사이에는 무슨 연관 관계가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두 무리 사이에는 ‘고전문헌학’(philologia)이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고전문헌학이란 무엇인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학문 분야임에 틀림없다. 고전문헌학이란 한 문헌이 최초의 원전으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해명하고, 그 전승 과정 중에 생겨난 오류들을 교정해서 최초의 원전을 복원하려는 학문이다. 우리가 현재 흔히 접하고 있는 서양 고전고대의 주요 작품(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등)들이 이런 고전문헌학의 도움으로 온전한 형태로 전승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로 철학자이기 이전에 고전문헌학자였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가 『비극의 탄생』을 비롯하여 고전고대의 작품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자신의 철학적 주저들 속에 고전고대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고전문헌학의 영향 때문이었다.

르네상스(내지 문예부흥)의 진정한 의미, 그것은 바로 ‘텍스트’ 자체로부터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나 문예부흥을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예술’의 획기적 발전 속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텍스트’(책)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학문의 존재, 그것은 책에 의존한다”라는 저자의 언급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즉 흔히 언급되듯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서 고전고대를 통해 새로운 근대를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고전문헌학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그동안 묻혀졌던 고전고대의 텍스트들을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페트라르카나 에라스뮈스, 보카치오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 선구적 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은 고대 문헌을 찾아 몰락한 귀족의 개인 장서고와 수도원들을 헤매고 다니며 필사본들을 발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고대를 이해하기 위한 주석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고전문헌학적 전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단순히 글자 하나하나를 엄밀히 교정하여 복원해내는 것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이들은 비판적 텍스트 읽기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전형을 발견했던 것이며, 여기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후마니타스(Humanitas)가 발현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대표적 인문주의자인 페트라르카는 그가 흠모했던 키케로에게서 로마인이 그리스인을 단지 학문의 모델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람다운 사람’(genus humanissimum)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배웠다. 로마인에 따르면 그들은 모든 시대 모든 종족에게 타당한, 교양의 모범을 수립하였다. 페트라르카가 부활시킨 문헌학적 학문 연구가 이후 모든 세대에서 ‘사람다움’이라는 개념과 융합된 것은 고대에 대한 그의 연구가 후세대 학자(특히 피렌체에서 활동했던)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르네상스 내지 문예부흥의 개념은 결정적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서양 인문학 600년 전통, 고전문헌학(philologia)을 바탕으로 설명해낸 역작!
이 책은 서양 인문학 600여 년에 걸친 역사 밑바탕에 깔린 고전문헌학의 유구한 전통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역작이다. 앞서 언급한 제1군의 인명들과 제2군의 인명들, 즉 언뜻 보면 잘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고전문헌학’을 매개로 서양 ‘인문학’을 발전시켰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본문 227쪽에 언급되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 고전문헌학자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와 당대 최고의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의 관계는 그 전형적인 면모를 우리에게 전해주는데, 현재까지도 ‘보일 강연’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이런 인문학적 전통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탈리아로부터 발흥한 고전문헌학의 전통은 이후 전(全) 유럽에 퍼져나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현재 우리가 인문학적 전통이 강고한 나라라고 보는 국가들 대부분에서 고전문헌학적 학문 연구방법은 뿌리 깊게 착근되었다. 아직까지도 이들 국가가 현재까지 인문학의 본고장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데에는 이런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국내 한 한문학자에 따르면 국내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경우,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하지만 결정적으로 원본에 가장 근접한 결정판본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독자들이 읽고 그 대의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학문 연구 대상으로서 원본에 근거한 국문학 내지 한문학이 설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원본 텍스트 상태로 복원해내는 작업은 무척이나 지난하고 사소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정신활동이 표현되는 가장 구체적인 형태인 텍스트를 온전하게 만듦으로써 학문적 토대를 견고히 쌓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이런 초석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만 함을 저자는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서양의 고전문헌학적 전통을 통해 우리는 서양 인문학이 어떻게 태동하여 발전해왔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음으로써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의 근본을 반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 근세 초, 서양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를 발견함으로써 인문학적 전통을 세웠으며, 그를 바탕으로 고전고대를 복원해나갔다. 그 가운데 고전문헌학이 있었으며 이는 자연스레 문(文)ㆍ사(史)ㆍ철(哲)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심대한 학문방법론적 영향을 끼쳤다. 서양의 장구한 인문학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고전문헌학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학문하는 자세와 인문적 전통이 어떻게 서양 학문세계에 뿌리내렸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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