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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들이 쓰러져 있었다. 축구장 서너 개만큼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축구장 절반쯤 될 만한 크기로 보리들이 누워 있었다. 그것들은 회전하듯 한쪽 방향으로만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보리들이 쓰러지지 않은 보리들과 경계를 그렸다.
그것은 둥근 원이었다. 둥근 원 안쪽으로는 쓰러지지 않은 보리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또 다른 무늬를 만들었다. 직선과 사선이 교차되어 사방이 어지러웠다.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이진우가 물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보셨잖아요. 처음 여기에 왔을 때, 1시간쯤 됐나? 그때는 저런 게 없었어요. 선생님이 보리밭 노래를 부르다가 쪽팔린다고 그만뒀을 때만 해도 저런 건 없었어요.”---「조우 2」중에서 땅에서 빛이 솟았다. 크롭 서클에 그려진 커다란 동그라미가 하늘을 향해 빛을 내뿜었다. 아이들은 불빛 기둥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얀 빛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이 입을 쫙 벌려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불빛이 둥글게 부풀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크롭 서클에서 솟아오르던 불빛의 기둥은 이제 하늘 위의 둥근 물체와 만나면서 빛의 폭포를 이루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 박에스더가 말했다. 에스더는 눈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우 5」중에서 “너희들은 어제 그 벌판에서 술을 먹었던 거야. 안 먹던 사람이 술을 먹으면 온 세상이 뒤집어져 보이고 그래. 나도 겪어봐서 알아. 감각이 확대되고, 뭐 그런 거겠지. 그리고 너희들이 보았다는 그 불빛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일 거야. 소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였겠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최동훈이 거칠게 말했다. 오 선생은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최동훈 옆에 있던 정수기 물통에서 뽀글거리며 귀엽게 생긴 물방울 몇 개가 올라왔다. ---「실종 3」중에서 “우린 뭔가를 봤어요.” 박에스더였다. 그 아이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센 운동선수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에스더는 뭔가를 봤다는 자기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고인아가 에스더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인아의 침착한 말을 최동훈이 잽싸게 맞받았다. “다들 거기 있었잖아. 안 그래?” 최동훈이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거짓말할 셈이야?” ---「실종 3」중에서 “새벽에 보리밭에 갔었어요. 크롭 서클 보러.” 멍하고 퀭한 눈으로 그가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알죠. 제 말은…….” “UFO였어요! 그건 확실히 UFO였어요!” 최동훈이 냉큼 대답했다. “아냐. 우리가 본 건 빛밖에 없어.” 고인아는 풀어진 운동화 끈을 조이다가 최동훈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원래 UFO는 강한 빛을 발산해. 영화 못 봤어?” 최동훈이 화가 난 원숭이처럼 꽥 소리를 질렀다. 뭔가 불안해 보이는 동훈을 향해 아이들이 눈을 흘겼다. “너희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소리도 들었어.” 우도윤이 말했다. “나도, 나도 소리를 들었어.” 박에스더가 잠에서 깨어났다. ---「실종 3」중에서 두 선생님들이 응급실을 나가자마자 아이들이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최대한 작게 속닥거렸지만 간호 장교가 성난 눈으로 노려볼 만큼 시끄러웠다. “UFO가 확실해. 우린 납치됐던 거야.” 최동훈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시간 지연 현상!” 변기태였다. “그렇지? 확실히. 난 거기에 한 달 정도 갇혀 있었던 것 같아.” 동훈이 기태를 보며 말했다. “난 일주일.” 우도윤이었다. “어, 얘들아, 난 아주 잠깐이었어. 한 5분?” 김철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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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어느 날, 전남 함평 돌머리해안.
무르익은 보리밭에서 그들이 조우한 것은… 새암고등학교 1학년들로 이루어진 중창단과 천문 동아리 아이들이 함평으로 현장학습을 떠난다. 천문 동아리를 이끄는 과학 교사 이진우와 중창단을 이끄는 역사 교사 오현미가 아이들을 인솔한다. 아이들이 평범한 고등학생들답게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고, 드론을 날리며 노는 동안 두 교사는 잠시 언덕 너머의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 바다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눈다. 두 남자아이의 몸싸움은 두 교사를 언덕 아래 보리밭으로 불러들이고, 엉겨 붙은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난 다음, 스무 명이 넘는 고등학생들과 두 교사가 다시 언덕을 올랐을 때 그들 눈앞의 보리밭에는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무언가가 펼쳐져 있었다. 보리가 누워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모양으로. 축구장 몇 배는 될 듯한 넓은 면적에 쓰러진 보리들은 어떤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쓰러진 보리 사이를 헤매던 중 스마트폰이 망가지고, 경찰들이 오고, 수확을 앞두고 있던 보리밭 주인이 현장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소동이 일어난 그날 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미래와 이야기의 향방을 바꿀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칼 세이건의 책을 즐겨 탐독하는 과학 교사 이진우, 여름이 가까워진 밤의 보리밭에서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중창단원 셋과 천문 동아리원 넷은 쓰러진 보리들이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도형 한가운데에서 만난다. (이 만남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이어지는 만남에 비하면.) 이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움직이는’ 별을 본다. 그리고 그 별은 곧……. ‘스토리의 귀환’ 을 알리는 신호탄! 잠 못드는 밤이 다시 시작된다……! 『메시지 오브 아더스 1: 조우』를 선보이는 송성근은 좀비 현상에 대한 독특한 과학적 해석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쓴 장편소설 『라브리: 최후의 피난처』로 제1회 대한민국전자출판대상 장려상을 수상했을 뿐인 신인이다. 『라브리』는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었다. “인간세계에서 망각되기 위해서 오히려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역동적인 문체와 탄탄한 스토리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 소설”(문학평론가 정여울)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결핍’이라는 철학의 문제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SF다. 그의 소설은 잘 만들어진 한편의 미드를 연상시킨다. 인물이 벌떡 일어서는 듯 생생한 캐릭터가 장면마다 등장한다. 송성근은 좀비, 뱀파이어, UFO 현상 등 가장 대중적인 장르 문학 속에 철학과 사회학, 신학 등의 문제의식을 풀어놓는다. 이번에 1권을 출간하는 장편소설 『메시지 오브 아더스(Message of the Others)』에서 그는 외계인과 UFO라는 대중적인 환상을 파고든다. 종교에서는 신이라 부르고, 과학에서는 외계생명체라 부르는 타자(other, the others)의 문제가 이 소설의 중핵이다. 이미 전편의 구상을 끝냈으며 10권 분량으로 기획된 대작이다. 2권과 3권은 연내에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신화와 상징의 유물론’이라 명명한 방법을 통해 쓰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는 새롭고 낯설게 다가올 것이고, 독자들은 사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뒤엉킨 세계를 체험할 것이다. 소설을 출간하기도 전에 영화 및 드라마 제작 논의가 나온 이 소설은 20년 전 『퇴마록』의 신화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스토리의 귀환’을 알리는 서막이나 다름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