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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대왕
대야성 함락 대륙 정벌 타협 소아씨가 척살 사비도성의 고민 갈등 흩어진 힘 이합집산 맹세 마지막 기회 악재 갈등의 씨앗 대륙 백제 끓어오르는 화산 변화의 조짐 반란, 그리고 깨어진 꿈 반전 혼란의 시작 아! 사비여 움직이는 열도백제 백제부흥군 또 다른 분열 마지막 불꽃 동쪽의 ‘해 뜨는 나라’ 「일본서기」에 전하는 기록 그들의 기원 : 일본과 「일본서기」 백제왕 가계도 및 연대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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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정녕 피할 수 없는 백제의 운명이란 말인가?’ 울분과 절망감이 울컥 솟아올랐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던 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침내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제의 멸망을 피하고자 아내와 자식을 죽여 그 피를 제단에 올렸건만……. ---p.336
“아, 백제여!”언제 그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지아비를 보고, 핏줄들을 다시 안아볼 수 있을 것인가? ---p.372 “만일 우리가 반도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열도에 계속 머물게 된다면 반도의 누가 우리를 기억해줄까? 지금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하고 반도에 남아있는 이들은 열도의 우리들을 그들의 형제로 기억해줄까? 그리고 그대로 또 많은 시간이 흐른다면 반도와 열도의 부여인들은 그들이 한 핏줄이었음을 알 수 있을까?” ---p.437 “우리 부여인들은 고래로 태양을 섬기는 천손의 핏줄이었네. 우리가 섬기는 삼족오(三足烏)도 태양빛을 먹고 사는 불새가 아닌가. 우리가 그리도 동쪽으로 동쪽으로 끝없이 나갔던 것도 다 그런 연유가 아니었겠는가. 밝은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朝鮮)이라는 이름도 같은 의미이고. 이제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뜻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려 하네.” ---p.445 “왕(王)이란 이름도 ‘천황(天皇)으로 바꾸려 하네. 본국백제가 사라진 이상 이제 본국백제의 대왕(大王)과 열도백제의 후왕(侯王) 사이의 연계도 없어졌네. 본국백제가 없어진 지금 이제는 이곳이 본국이 아니겠는가. 천손(天孫)의 아들이며, 천제(天帝)란 의미를 이어받아 열도백제의 왕을 천황(天皇)이라 부를 것이네. 본국백제 대왕이 열도백제 왕에게 하사했던 칠지도(七支刀)는 천황이 영원히 간직할 것일세. 천황의 이름으로 만든 천황의 칼로 후세에 기억될 수 있게.” ---p.445 “백제에 서기(書記)가 있었듯이 우리의 역사서는 국호를 앞에 부쳐 ‘일본서기(日本書紀)’라고 할 것이네.” ---p.446 “영광스런 역사가 필요하시다는 게 아니오. 이를테면 의자대왕은 부왕(父王)이시지만 패망의 군주이시니 역사서에는 열도백제와 관련이 없어야, 열도백제…… 아니, 이젠 일본이지, 일본의 위신이 손상을 면할 게 아니겠소? 그러니 의자대왕께서 열도백제의 천황으로 통치하셨던 사실은 지워져야 할 것이오. 또 새로운 일본의 정치적 결속력을 다지려면 패망의 역사가 아닌 만세일계의 영광의 역사,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오? 그러자면 멸망한 백제와의 연결을 끊고 천황이 중심이 된 역사를 기록하라는 말씀으로 생각되오.” ---p.448 “실제로는 본국 반도백제의 대왕이 제후왕인 열도 백제왕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는 의미로 칠지도를 하사하셨지만 일본서기에는 ‘백제왕이 일본 천황에게 칠지도(七支刀)를 바쳐 충성을 맹세했다’라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나당연합국에 침략당한 백제를 일본이 구원하려 군사를 일으켰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명심하시오. 백제연합국의 일원인 열도백제가 자신의 본국을 찾으려 군사를 일으켰던 게 아니오. 단지 ‘일본을 섬기던 백제를 구원하려다가 백강구에서 나당연합국에게 패했다’, 뭐 이런 식으로 써야할 것이오.” ---pp.448~449 본국 반도백제의 대왕이 되시기 전에 열도백제의 천황으로 계셨던 의자대왕의 천황 이름을 새로 지어야겠지요. 이름은 서명천황(舒明天皇)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쓸 일본서기에서는 서명천황과 의자대왕의 관계는 지워져야 합니다. 그러자면 서명천황이 본국백제의 의자대왕으로 즉위하시고 백제로 건너간 날은 서명천황께서 돌아가신 날이 되어야겠지요. 의자대왕은 열도백제 땅을 밟은 적이 없어야 한단 말이오. 패망의 군주가 한때 일본을 다스리고 왕권을 통합했으며 찬란한 아스카문화를 이루신 군주였다는 사실은 영광스러워야 할 일본의 모습에는 안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소?” ---p.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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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승자의 특정의도가 없더라도 자료의 제약과 시간의 흐름은 진실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을 갖고 보면 백제의 역사는 패자의 역사로 기록되어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된 가장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의자왕은 ‘백제 패망’의 책임을 지고 있기에 변명조차도 용납되지 않은 많은 시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하며 쓰여졌습니다.
서점의 책장 사이를 드나들며, 백제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고민하는 수많은 분들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료와 세상의 인식 부족 속에서 많은 분들이 백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계셨습니다. ‘대륙을 호령하던 상무적 부여의 후손 국가’, ‘해상제국을 건설하고 바다를 지배했던 나라’, ‘잃었던 대륙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백제의 왕들’. 평소에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백제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백제의 발자취는 대륙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열도를 개척하고 일본의 무존(武尊)으로 추앙받던 근초고대왕, 큐슈에서 나라까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백제의 숨결까지 『일본서기』의 기록은 『삼국사기』 보다 더 방대하고 생생합니다. 멸망해 가는 백제를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의자왕과 그의 부인 제명천황에 대한 『일본서기』의 기록은 백제와 일본이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였음을 기록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경험을 토대로 하듯 자신이 걸어온 길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는 과거의 기록이자 미래의 계획서입니다. 어떤 나라들은 없던 기록도 조작하고 무리한 해석을 고집하면서까지 자신의 역사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있었던 것’,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태양의 제국』은 그런 반성에서 시작된 작은 시도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상상’도 역사를 채우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확신합니다. 작게는 오명을 쓰고 1,400년 동안 중국의 북망산에 묻혀있는 의자왕에게 이 소설을 바칩니다. - 저자 우영수 ▶ 출판사 리뷰 1,400년 전 백제 멸망과 일본 탄생의 비밀을 담은 역사 팩션! 과연, 백제 멸망과 의자왕의 진실은 무엇인가? 일본 천황가는 왜 공주 무녕왕릉에서 제사를 지내는가? 삼천궁녀는 사서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조선 중기 시인 민제인의 ‘백마강부’란 시에 문학적인 수식어로 처음 등장할 뿐. 그리고 일제시대 대중가요 「백마강」의 애절한 곡조가 백제 망국과 묘하게 어우러져 대중에게 역사로 각인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전성기 때 느닷없이 망한 국가는 백제밖에 없다. 요절한 국가! 백제, 그리고 역사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의자왕! 이제 ‘삼천궁녀’와 ‘호색한’으로 왜곡된 의자왕을 복권시켜야 하지 않을까? - 류지열 한국방송 「역사 스페셜」 PD 우리 역사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왕은 누구일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광활한 만주 벌판을 확보한 광개토대왕이 아닐까? 그런데 이 두 대왕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왕이 있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다! 의자왕에게는 ‘대왕’이란 수식어는 없지만 ‘삼천궁녀’라는 수식어가 있다! 삼천궁녀와 의자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서 어디에도 삼천궁녀에 과한 기록은 없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1천 년이 다 된 조선 중기 시인 민제인의 ‘백마강부’란 시에 문학적인 수식어로 처음 등장할 뿐. 그리고 일제시대 대중가요 「백마강」의 애절한 곡조가 식민지 조선의 비애와 백제 망국이 묘하게 어우러져 대중에게 역사로 각인된 것이다. 삼천궁녀는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쩌랴. 삼천궁녀의 허구성을 아무리 강조하고 의자왕은 당시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었음을 상기해도 우리 머릿속엔 삼천궁녀의 치마폭에 휩싸여 방탕하게 놀고 있는 장년의 의자왕이 그려질 뿐! 그것은 망국의 왕이 안아야 할 숙명이었다. 『태양의 제국』은 망국의 군주로 우리 머릿속 깊숙이 각인된 의자왕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잘못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쓰인 책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Cornell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우영수 박사는 ??대륙을 호령하던 상무적 부여의 후손 국가, 해상제국을 건설하고 바다를 지배했던 나라, 잃었던 대륙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진취적인 국왕들과 같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던 백제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패망의 군주로 잘못 알려져 있던 의자왕에 관한 역사 자료를 살피면서, 죽은 의자왕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강한 의욕을 품게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특히 패망의 군주 의자왕은 ‘주지육림’의 패망 군주로 낙인찍혀 본인뿐만 아니라 백제의 명예,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 이에 이 소설은 방대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의자왕의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그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했다. 사실 의자왕은 본국백제의 왕이 되기 전 열도백제의 천황(서명천황)으로서 아스카 문화의 창달을 실질적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아울러 본국백제 대왕으로 등극한 후에는 잃어버린 대륙의 영토를 되찾고자 노력했던 매우 진취적이고 영민한 군주이기도 했다. 소설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바탕으로 백제 말기 대륙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배계급 간의 정쟁과 암투, 그리고 패망 후 열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백제 백성들의 삶, 일본 탄생의 미스터리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담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극찬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이 추천한 매우 흥미롭고, 파워 넘치는 역사 팩션! 출간 전부터 화제…… 저자는 서울대 출신 경제학 박사, 표지는 초등학생이 그려 사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서울대 출신 경제학 박사라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도 이력이거니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우리 시대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극찬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표지 역시 이전의 책들과 달리 초등학생이 직접 작업에 참가했다. 서울 압구정 초등학교 6학년 장경주 학생이 표지의 원안을 그렸고, 이화여대 김채송 학생이 전체적인 구도와 컴퓨터 도안 작업을 맡아, 바닷길을 통해 본국백제와 열도백제를 오가고 있는 의자대왕을 형상화했다. 백제 멸망과 의자왕의 진실 그리고 일본 탄생의 비밀이 팩션 형식으로 매우 흥미롭게 재구성된 책은 의자왕이 서명천황으로 일본을 다스렸고,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군을 파견했던 제명천황이 의자왕의 아내였다는 다소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소설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서기 및 다수의 역사 사료들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가가 공주에 있는 백제 무녕왕릉에 와서 천황궁의 법도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 역시 그 반증 중 하나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백제와 일본의 고대사를 다시 한 번 더 진지하게 살펴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