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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8
1부·지원기·청원기 아직은 수사가 아니다 얼떨결에 수도원…14 기도보다 담배…19 옛 애인의 향기, 라틴어…23 만취의 기적…28 사막체험, 노숙자가 되었다…33 무전여행 하나…39 무전여행 둘…45 수도원까마귀…50 내면의 거울…56 비겁한 군대기…61 2부·수련기 다시 입회한다면 수련기에 머물고 싶다 똥 푸는 농장…70 꿈속의 나…76 일주일 단식기도…83 동지를 만난 날…89 3부·유기서원기 조금씩 수사다워지다 철들은 장학생…96 수해복구…101 나의 첫 직장, 고물상…106 25살의 수사 아빠…114 산을 좋아하는 형제들…120 인식론과 형이상학…125 내 생애 최고의 무기, 좌관…131 순수한 동성애자…136 죽음의 눈동자…142 부자와 극빈 그 간극…148 가끔은 웃긴 상상…154 정글의 법칙…159 ‘체체’와 춤을…164 주먹 큰 노숙자…168 시누리…174 4부·성대서약 수사는 ‘기도’ 자체여야 한다 버리는 준비…180 오직 바라봄…186 가재와 소나무 형제…191 무작정 떠나기…197 동굴에서 승냥이처럼…203 죽음과의 키스…209 천지창조…215 수도원 마지막 날…220 수도생활을 꿈꾸는 이에게…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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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이 넘게 ‘작은 형제회’ 수사로 지냈다. 그 시간들 중에 힘들고 아픈 시간들은 있었어도
헛된 시간이었다고 느끼는 시간은 없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지복(至福)이었다. 수도원을 떠난 몸이지만 그 안에서 달릴 만큼 달렸고, 웃을 만큼 웃었고, 아플 만큼 아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머리말」중에서 이 글을 쓰고 나서야 나는 나를 정의(定義) 내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리의 그림자를 맛본 사람이다.” 그것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변함이 없다.---「머리말」중에서 성 금요일 11) 그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수도원 들어온 첫해, 원장 이 아오스딩 형제님은 아침 미사 후 거룩한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는 형제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밖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굶던지 아니면 얻어먹던지 알아서 해야 했다. 그날을 형제들은 ‘사막체험’이라 부른다. --- p.34 형제들이 오손도손 정답게 사는 것도 좋고, 싸우는 것도 좋고, 작은형제라는 이름으로 거지 떼 마냥 샌들 신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내가 작은 형제회 수사로서 가장 값진 보석을 한 가지 얻었다면 그것은 바로 ‘좌관(坐觀)’이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앉아서 보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명상’ 또는 ‘묵상’이라고 표현한다.--- p.138 내가 아무리 산을 오르며 기도하듯 합장하며 손을 모아 외쳐대도 나는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지극정성으로 돌탑을 쌓아 올리듯 온몸으로 한장 한장 덕을 쌓는다 한들 가엾은 인간일 뿐이었다. 순례를 멈출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내 의지로 전장의 전리품을 획득하듯 달려드는 것을 멈춰야 했다. 무자비한 군인의 모습으로 달려든 단들 진리는 내손에 머물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한계 지어진 내 존재의 그림자만 바라볼 뿐임을 알았다. ---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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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마디]
저는 수도원을 기행한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서의 삶을 13년 동안 살았습니다. 아직 그 누구도 한국 남자 수도회의 수도자 양성과정을 구체적으로 저술하지 않았습니다. 그 첫발을 내딛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다를지라도 혹은 없을지라도 수도생활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먼 유럽의 수도원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존재하는 남자 수도원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들 중에 작은 형제회 젊은 수사로서 걸어왔던 길을 들려주려 합니다. 바삐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숙고를 또 다른 젊은 수도자의 성장 관점에서 바라보는 구도자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