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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편│헤겔 이후 현재까지
머리말 일러두기 준비운동 독일로 부치는 철학편지 051. 쇼펜하우어에게 - 의지와 고통을 묻는다 052. 포이어바흐에게 - 인간의 자기소외를 묻는다 053. 키에게고에게 - 실존과 종교성을 묻는다 054. 마르크스에게 - 공산주의를 묻는다 055. 딜타이에게 - 삶의 이해를 묻는다 056. 니체에게 - 신의 죽음과 초인을 묻는다 057. 프레게에게 - 논리주의를 묻는다 058. 프로이트에게 - 인간의 심층심리를 묻는다 059. 후설에게 - 현상학적 환원을 묻는다 060. 셸러에게 - 인간의 지위를 묻는다 061. 카시러에게 - 상징과 문화를 묻는다 062. 야스퍼스에게 - 실존해명을 묻는다 063. 하이데거에게 -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064. 호르크하이머에게 - 비판과 이성을 묻는다 065. 가다머에게 - 진리의 이해를 묻는다 066. 요나스에게 - 기술과 책임을 묻는다 067. 하버마스에게 - 공공성과 합리성을 묻는다 프랑스로 부치는 철학편지 068. 콩트에게 - 실증주의를 묻는다 069. 베르크손에게 - 생의 약동을 묻는다 070. 바슐라르에게 - 상상력을 묻는다 071. 마르셀에게 - 신비와 희망을 묻는다 072. 라캉에게 - 주체와 욕망을 묻는다 073. 사르트르에게 - 실존을 묻는다 074. 레비나스에게 - 타인의 얼굴을 묻는다 075. 메를로-퐁티에게 - 지각과 행동을 묻는다 076. 레비-스트로스에게 - 야생의 사고를 묻는다 077. 리오타르에게 - 포스트모던을 묻는다 078. 들뢰즈에게 - 리좀, 다양체를 묻는다 079. 푸코에게 - 지식과 권력을 묻는다 080. 보드리야르에게 - 시뮐라시옹을 묻는다 081. 데리다에게 - 해체를 묻는다 082. 세르에게 - 기식자를 묻는다 083. 바듀에게 - 존재, 진리, 사건을 묻는다 영미로 부치는 철학편지 084. 벤담에게 - 공리주의를 묻는다 085. 밀에게 - 자유를 묻는다 086. 다윈에게 - 진화를 묻는다 087. 퍼스에게 - 프래그머티즘을 묻는다 088. 제임스에게 - 유용성을 묻는다 089. 듀이에게 - 도구와 탐구를 묻는다 090. 러셀에게 - 논리적 분석을 묻는다 091. 무어에게 - 상식의 옹호를 묻는다 092. 비트겐슈타인에게 - 언어와 세계를 묻는다 093. 카르납에게 - 검증가능성을 묻는다 094. 포퍼에게 - 반증가능성과 열린 사회를 묻는다 095. 오스틴에게 - 언어행위를 묻는다 096. 롤스에게 - 정의를 묻는다 097. 쿤에게 - 과학혁명을 묻는다 098. 로티에게 - 자연의 거울, 실용, 연대를 묻는다 099. 테일러에게 - 진정성과 인정을 묻는다 100. 싱어에게 - 실천윤리를 묻는다 부록 현대철학 주요인물 현대철학 주요저작 현대철학 주요개념 현대철학 관련 지도 |
李洙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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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쓴 철학사 II 전통편│헤겔 이후 현재까지
생각해보면 당신의 시대나 나의 시대나, 당신의 그리스나 나의 한국이나, 끝도 없이 ‘문제’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얽혀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 속의 모든 성원이 제가끔 욕망을 추구하며 산다는 본질적 구조가 있는 한, 인간들의 욕구는 충돌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 모두 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공장에서 생산된 ‘문제’들이었습니다. ---「플라톤에게 정의와 이데아를 묻는다」중에서 당신은 퀴벨레의 신전에 있던 큰 술통을 주거로 삼고 있었고, 또 여름에는 달구어진 모래 위를 굴러다니고, 겨울에는 완전히 눈으로 덮인 조각상을 끌어안고는 했다지요? 또 당신은 여름용 망토를 이중으로 해서 입고 다니다가 그것을 몸에 감고 자기도 했고, 망태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그 속에 든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 인간이야 거리에 얼마든지 다니고 세상천지에 넘쳐나는 것이 인간이지만, 당신의 눈으로 보면 이 인간이란 이름에 합당한 인간은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인간을 당신은 찾은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 이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작은 웃음을 웃어봅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인간을 묻는다」중에서 당신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역설적이라고 할까, 허를 찌른다고 할까, 기독교의 불합리성을 ‘구차하게’ 변호하기보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 불합리성을 오히려 전면에 내세웠던 것입니다. (…) 세상 일들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기대난망입니다. 나는 일찌감치 그 기대를 반쯤 접었습니다. 노력을 통해 일이 제대로 되는 경우는 참으로 적습니다. ‘합리의 한계’는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그러나 절반의 ‘기대’는 남아 있습니다. 이른바 기독교적 철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성립되는 것이지요). ---「테르툴리아누스에게 불합리와 신앙을 묻는다」중에서 그러한 대립들은 작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크게는 반목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대립이라도 우리가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결국은 별것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립은 결국 유한한 인간들의 좁은 시야에서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 그 ‘대립의 합치’가 한갓된 철학적 개념으로 그치지 않고,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지혜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그렇게 해서 이 지상의 쓰잘 데 없는 대립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쿠자누스에게 대립의 합치를 묻는다」중에서 이른바 ‘에세이의 효시’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철학자로서도 (…) ‘끄 세 주?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당신의 유명한 말은 물론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그리고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이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음미를 촉구하는 문구로도 이해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확대해석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나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을 향해서 당신과 함께 호소하고자 합니다. ‘끄 세 주?’ ‘나는 무엇을 아는가?’ ‘알아야 할 것을 아는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가?’ ---「몽테뉴에게 지적 겸손을 묻는다」중에서 당신을 향해 붓을 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나는 당신의 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신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인생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말한 그 이성 내지 정신도 진실이라 믿고 자유 실현을 향한 그 자기 전개에 나도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실 속에 역사 속에 정말로 그런 게 있어 작용하고 있다면야 그보다 든든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친애하는 헤겔, 이제 당신의 등 뒤로 근세의 해가 저물어가는군요. 그러나 그만큼 당신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현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 쪽으로. 아주 깊숙이. ---「헤겔에게 정신을 묻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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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철학’하고 있습니까?
철학은 어려운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선비놀음도 아닙니다 철학은 우리들의 삶과 뗄 수 없는 ‘나무뿌리와 흙’과 같은 생각의 ‘기초생활학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철학과 관계없이, 철학과 동떨어져, 철학을 무시하고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읽을 만한 철학책 -특히 철학사-이 너무 적은 탓이 아닐까요? 독자를 위한답시고 아무런 학문적 근거 없이 쓰여진, 엉터리 대중 철학책들, 그리고 학문의 엄격성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아카데미즘의 이기주의에 맹목적으로 함몰된 오직 한 줌밖에 안되는 전공자들을 위한 숱한 철학책들 사이에서 우리 독자들이 “아, 철학책은 별로 읽을 만한 것이 못 되는구나”라고 체험적으로 깨닫고 느낀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은 보시다시피 편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들을 이른바 ‘화석화된 지식’의 영역에서 불러내어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아있는 영혼의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만남’의 시도입니다. 매번 다른, 백 개의 매력적인 얼굴들과의 만남. (…) 하지만, 그 ‘다른 해석’ 또한 철학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하나라 생각하고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곧 ‘철학의 사유화私有化’인 것입니다. ‘나는 그의 철학을 이렇게 보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나의 철학’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부디 이 책이 우리 시대가 잊어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되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철학함에 있어 하나의 작은 기념으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편지로 쓴 철학사 II』 머리말 중에서 철학은 고대의 동떨어진 바스러져가는 유적이 아닙니다. 철학은 마치 수천 년을 사는 바오밥나무처럼 2,600년을 살아 숨쉬었고, 여전히 우리 삶과 공존하며, 앞으로를 살아 숨쉴 존재입니다. 철학은 여유로운 자들만의 신선놀음도 아닙니다. 철학자들도 삶이 던지는 물음에 끊임없이 고뇌하며 괴로워하고, 그들도 생활에 쪼들리고, 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인생의 시험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철학자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만큼 철학자의 삶도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이 고민하는 철학도 우리들이 고민하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철학은 우리의 삶과 켜켜이 얽혀 있습니다. 마치 나무가 뿌리박혀있는 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처럼 말입니다. 40년간 철학과 철학자의 삶에 대해 고민해온 한 서양철학자가 현재의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얼마나 철학하고 있습니까? 철학으로 삶을 고뇌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살아갈 날들을 준비하길 바라며 띄우는 철학편지. 서양철학 2,600년의 긴 시간 속 사유의 힘을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전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부터”라는 바람을 담아 이 편지를 전합니다. 철학은 사람의 수만큼 각양각색의 철학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어떤 것과 만나는 것! 그것이 ‘나의 그리고 우리의 철학’입니다 100인의 철학편지가 당신 자신의, 그리고 수백수만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정작 철학이 무엇인지는 참으로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그것들은 마치 보석함 속의 여러 보석들처럼 서로 다른 모양과 빛깔들을 지닌 채 나름대로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전개방식, 고유한 출발점과 귀착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고유한 체계 내에서 그것들은 자기 나름의 작은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 중에서 ‘자신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어떤 것’과 만나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나의 철학’이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지로 쓴 철학사 I』 머리말 중에서 보석은 종류에 상관없이 영롱한 빛을 내며, 그 보석만의 아우라를 가집니다. 보석이란 이름은 기나긴 시간을 뜨거운 땅 속에서 인내와 인고의 과정을 견뎌냈기에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은 마치 보석함 속의 여러 보석들처럼 서로 다른 모양과 빛깔들을 지닌 채 나름대로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 모든 것들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전재방식, 고유한 출발점과 귀착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고유한 체계 내에서 그것들은 자기 나름의 작은 완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생도 어느 하나 빛나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각각 힘든 인생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수만큼 각각의 철학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 중에서 ‘자신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어떤 것’과 만나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나의 철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의 철학’ ‘나의 삶’ ‘나의 인생’…. 『편지로 쓴 철학사』는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인생을 산 서로 다른 고민을 가졌던 100인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이 100인의 철학적 고민이 여러분의 101가지 인생 이야기로 이어지길, 그리고 수백수만의 철학보석-인생보석으로 반짝이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