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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말함 사경·문원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보냄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 보게 제2 사경(士敬)에게 답함 사경에게 보냄 사경에게 답함 사경·협지에게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여러분께 안부함 사경 보게 사경·협지·돈서(惇敍) 등에게 답함 월천 조 상사에게 부침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조사경의 유거(幽居)에 사경의 방문에 감사한 시에 차운함. 절구 두 편 부용동의 여러 시에 차운함 사경에게 알림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제3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안부함 조사경에게 부침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부용주인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제4 사경을 위로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말함 사경·문원에게 말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을 초대함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 보게 제5 사경과 문원에게 말함 사경에게 답함 별지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별지 사경에게 안부함 별지 사경 보게 사경에게 답함 사경께 답함 사경과 문원에게 말함 대성·간지·사경·문원에게는 전어 각 다섯 마리 사경에게 안부함 제6 사경에게 답함 사경 보게 별지 산에 살면서 우연히 병중의 심정을 써서 사경과 문원에게 부침 사경에게 조사경이 질문한 ≪심경(心經)≫에 답함 별지 사경이 술을 가지고 방문함 사경에게 말함 사경에게 말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별지 사경에게 답함 제7 사경께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 보게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께 답함. 다래 조 생원 댁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께 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에게 답함 사경에게 말함 사경에게 다시 말함 사경에게 안부함 사경·문원 제군에게 말함 제8 별록(別錄) 사경에게 답함 조·이·권·박 여러 상사에게 안부함 제군들에게 말함 별지 광영당에 가랑비 내린 뒤 지음 조사경의 ‘명(明)’ 자 운에 화답함 사경에게 안부함 부용산인에게 제군들이 점필재(?畢齋)에 대해 지은 시에 차운했던 한 수의 시를 지금 다시 고침 신숙계(申啓叔)에게 보낸 답장을 지금 보충함 문원 보게 정조 대왕 어제 발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退溪 李滉 (1501-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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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책을 읽고 이치를 완미하는 재미가 더할 것이라 생각되네. 영양(永陽)으로 가는 길은 그만두었다고 들은 듯한데 정말인지 모르겠네. 『이학록(理學錄)』 초고본 한 책과 함께 공책, 필묵을 보내니 번거롭지만 일을 시작해 주기 바라네. 그렇지만 마음 편하게 일하고 모쪼록 일정에 쫓기지는 말게. 전번에 수정한 것은 너무 소략한 듯해 요사이 다시 수정을 거쳤지만 반드시 다 적절하지는 않을 걸세. 온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다시 손질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리고 수록된 사람마다 「전(傳)」의 머리에 마땅히 ‘사전략(史傳略)’이라는 세 글자를 써 두어야 하네. 원(元)나라 이후 사람은 아직 다 쓰지 못했으니 반드시 하나의 양식에 따라서 하나의 예로 써야 하네. 「전(傳)」을 완전하게 쓴 것은 ‘약(略)’ 자를 없애는 것이 좋겠네.
차가운 서재라 벼룻물이 얼 텐데, 숯 한 섬으로 그런대로 질화로의 훈기를 갖추고, 백지 한 묶음은 혹시라도 책을 베끼는 데 쓰기 바라네. 붓이 얼어 급히 쓰네. 9일, 계로(溪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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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수간(師門手簡)』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의 나이 27세인 1550년부터 퇴계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570년까지 이황이 조목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으로, 월천의 나이 65세에 직접 8책으로 첩을 만들어 이황의 후손에게 전해 도산 서원 광명실(光明室)에 보관했다. 이후 정조 16년(1792) 도산과(陶山科)를 보일 때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사문수간』을 가지고 상경해 정조에게 올렸다. 이 서첩을 본 정조는 2년 뒤인 1794년 직접 발문(跋文)을 지어 승지 이익운(李益運, 1748∼1817)을 통해 도산 서원으로 보내 지금까지 전해져 오다가 지금은 옥진각(玉振閣)의 전시용 2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자료실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조목은 15세(1538) 겨울에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이황은 38세로, 조목과는 23세 차이가 난다. 당시 이황은 정6품 좌랑의 관직으로 서울에 있다가 한 해 전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후 조목은 18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잠깐 성균관에서 지낸 때를 제외하고는 스승 이황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공부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제자에게 이황은 수시로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심경을 펴거나 학문적 토론을 이끌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