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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니스랍스키 도입 이전의 한국연극
2.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의 수용 3.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의 정착과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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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월회'는 일본 신파극을 못 벗어난 1920년대 연극계에 서구의 근대극을 공인하여 혁신을 가져오며, 사실적인 무대장치와 자연스런 대사와 스토리로 한국의 근대극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마추어로 시작된 그들의 활동은 창조적 작업으로 접근하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었고, 후반기에 가서는 현실적인 악조건과 상업주의적인 신파극 앞에 굴복하여 해산하고 만다.
당시의 한국 연극계의 가장 요긴한 문제는 전문 연극인의 부재였다. 이러한 시기에 서구 근대극의 토착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먼저 눈을 뜬 선각자 현철이 예술학원과 배우학교를 설립했던 것은 한국 신극사의 획기적인 일이었고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철의 "극다운 극을 일으키기 위해서 배우다운 배우를 양성해야 한다"는 원대한 포부는 당시 극계의 상황과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그 꿈은 좌절되고 한국에 근대극을 정립시키려는 숙원 역시 수포로 돌아간다. 현철의 이러한 연극에 대한 열망은 1930년대에 이르러 홍해성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한국에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을 소개하고 실천시킨 최초의 연극인이다. --- p.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