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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한당 시대(기원전 207∼기원후 907)의 사상
제1장 서한(기원전 207∼기원후 7)의 경학 제1절 개설 제2절 육가 제3절 가의 제4절 동중서 제5절 유향 제6절 양웅 제7절 유흠 제2장 동한(25∼220)의 경학 제1절 개설 제2절 동한 훈고학자 1. 개설 2. 마융 3. 정현 제3절 동한의 사상가 1. 환담 2. 왕충 3. 왕부 4. 순열 5. 서간 6. 중장통 제3장 위진남북조(221∼588)의 철학 제1절 개설 제2절 경서 주석가 1. 왕숙 2. 하안 3. 왕필 4. 두예 5. 범녕 6. 황간 제3절 도가의 철학 1. 개설 2. 갈홍 제4절 불교의 영향을 받은 학자 1. 개설 2. 손작 3. 유협 4. 안지추 5. (수) 왕통 제4장 당대(618∼907)의 경학 제1절 개설 제2절 당의 경학자 제3절 당의 사상가 1. 한유 2. 이고 |
狩野直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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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서의 오행재이(五行災異)에 관한 설은 후세의 학자들로부터 상당히 배격을 받았지만 그가 왕(王)·패(?)의 차이를 설명한 말은 그 핵심을 잘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주자와 같이 한유(漢儒)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한유로는 오직 동중서가 순수하다. 그의 학문은 매우 바르다. … 대단히 좋은 곳은 역시 의를 바로잡고 도를 밝힌다는 두 구가 있을 뿐이며, 이보다 아래 가는 제자(諸子)들은 모두 말할 가치도 없다”고 하고 있다. 이 정의(正義)·명도(明道)란 동중서가 역왕에게 대답하여 왕·패의 구별을 논하면서 “대저 어진 사람이란 의를 바로잡지 이(利)를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지 공을 꾀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중니의 문하에서는 5척의 동자라도 오패(五?)를 칭찬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사온데, 그들은 사술(詐術)을 앞세우고 인의를 뒤로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단지 왕·패의 정치론에 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가의 입장에서 본 선(善)이란 것은 그 행위가 좋은 결과를 낳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을 깊이 우려할 바가 아니고 이를 행하는 수단 혹은 동기 여하에 있다고 하는 유교의 반공리주의인데, 이것을 그가 단적으로 표명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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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중국학자 가노 나오키가 교토대학 철학과의 일반 강의로 몇 차례 되풀이해서 행한 것을 정리 편집해 출간한 것이다. 저자의 초고가 남아 있는 부분은 그것을 기초로 하고, 초고가 없는 부분은 학생의 노트로 정리했다.
가노 나오키는 일본 현대에 청조 실증학을 최초로 본격적으로 수입한 사람이며, 청유(淸儒)의 학설을 광범하게 읽고 그 근대적 가치를 이해해 이를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중국학 연구는 경학의 범위에서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며, 문학, 사학에서도 심오한 조예를 나타냈다. 그의 학문 태도는 어디까지나 중국 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주안으로 하여 정치·교육과 혼선되는 것을 피하고, 그 연구 대상은 철학·문학·사학을 포괄하며, 근대 현대를 제외하지 않고 속문학(俗文學)을 경멸하는 일이 없는, 공정하며 치우치지 않은 입장이다. 비유하자면, 서양의 시놀로지(sinology)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의 시놀로지스트(sinologist)들이 흔히 그러했던 것처럼 오로지 연구 분야에만 활동을 한정하고 정치와의 접촉을 힘써 피했을 뿐 아니라, 세상일에 개입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문하(門下) 가운데서 가장 활발하게 행동했던 것은 지나학사의 동인들이었으며, 때로는 첨예적이기까지 했으나, 저자가 언제나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단지 외부로부터의 반발이 있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학 연구자로서의 범위를 일탈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가노 나오키는 청조(淸朝)의 고증학(考證學)을 연구 방법의 근저에 두고 있지만, 동시에 유럽의 학문 방법을 도입했고, 또 젊은 시절에는 중국의 민속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관심은 이 책의 제1편, 제2편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과 관심의 소재에 이 책이 다른 유서(類書)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 가치를 지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