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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이상에게서 온 기이한 발신음 1_천재작가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 감나무 집 1|감나무 집 2|감나무 집 3 2_「동생 옥희 보아라」 전말 옥희의 만주행 전야|옥희 떠난 경성에서|옥희, 나의 유일한 이해자 3_『현대문학』판 「오빠 이상」 전말 26년 만에 쓴 옥희의 답장|오빠 해경을 위한 변명 4_『신동아』판 「오빠 이상」 전말 옥희가 말하는 가족애사|오빠 해경의 천재성|차라리 화가가 되었더라면|오빠의 여자 금홍과 친구들|옥희가 기억하는 효자 오빠|임이 언니, ‘변동림’|동경에서의 이상|오빠의 임종에 대해서 5_이상 유고의 행방 증식되는 이상의 텍스트|정인택의 사소설과 이상의 유고|이상의 유고에 대한 김향안의 가역반응 글을 마치며 다시 찾은 감나무 집 이상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
鄭喆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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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기론 이상이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게 된 게 백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백부가 이상을 공부시켰으니까 말을 듣긴 해야겠고 총독부에 억지로 근무하면서 백부와 트러블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 p. 33
사후의 이상은 폐병장이, 매독환자, 숱한 염문을 뿌린 스캔들의 주인공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치부된 일면이 있는데다 남동생 운경의 월북으로 인한 연좌제의 멍에까지 염두에 두면 어머니 박세창 여사가 운경의 이름을 살아생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은 천재 이상을 보호하기 위한, 그리고 이상 문학을 보존하기 위한 무섭도록 냉철한 본능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 p.54 너는 네 자신을 위하여서도 또 네 애인을 위하여서도 옳은 일을 하였다. 열두 해를 두고 벼르나 남의 맏자식 된 은애恩愛의 정에 이끌려선지 내 위인爲人이 변변치 못해 그랬던지 지금껏 이 땅에 머물러 굴욕의 조석朝夕을 송영送迎하는 내가 지금 차라리 부끄럽기 짝이 없다 --- p.76 이상이 동경으로 건너간 이래 불온사상 혐의로 니시간다 경찰서에 수감된 후 한 달 정도 조사를 받다가 풀려나 숨을 거두기까지 그에게 가해진 고문과 취조기록이 여전히 미궁에 있다는 건 한일관계사의 비극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사의 비극일 것이다. --- p.102 어머니도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늘 공손했고 뭘 못 해드려서 애태우곤 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큰오빠를 어머니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계십니다. 큰오빠는 어머니께뿐만 아니라 아버님이나 동생들에게도 퍽 잘했습니다. --- p.173 이상은 아무 항변도 하지 못한 채 1937년 2월 12일 밤부터 3월 14일까지 한 달 남짓 니시간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유치장 마룻바닥은 얼음장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한 달 남짓을 차가운 유치장에서 지내다보면 건강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폐결핵을 앓고 있던 이상에게 유치장 생활은 치명적이었다. --- p.220 “그가 하자는 대로 가치 술 먹고 가치 떠들고 가치 쏘다닌” 것이 자신의 탓인 양 가슴 아파하면서 급기야 “이상이가 하다 남긴 일, 제가 기어코 이루겠습니다”라고 맹세하기에 이른다. 이 편지를 보낸 직후, 정인택은 ‘이상이가 하다 남긴 일’을 자신에게 부과하기 위해 젊은 미망인(변동림)으로부터 이상의 유고를 건네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 p.276 이상은 경성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가 동경에서 탈고한 「동해」, 「실화」, 「종생기」를 변동림에게 보냈고, 변동림은 이들 원고를 김기림, 정지용, 정인택 등으로 추정되는 이상의 문우들에게 보여줬는데 이게 자신의 뜻과는 달리 『조광』에 발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작품 속 주인공을 자신으로 오인하는 곡해가 시작되었다고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 p.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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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중심 테마
이상의 조카 문유성 씨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외삼촌 이상과 어머니 옥희 이상은 한 점 소생도 남기지 못하고 27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에게는 엄연히 누이 옥희가 존재했고 그녀의 자식들은 여전히 이 시대에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저자 정철훈은 우연한 기회에 이상의 누이인 옥희의 아들 문유성 씨를 만나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를 녹취할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이상 애사이자 이상 사후에 남겨진 가족들이 어떤 경위를 거쳐 살아남았는지를 규명해 주는 비사였다. 한 걸출한 문학적 천재를 아들로 둔 어머니 박세창 여사와 누이 옥희의 여생, 그 감춰진 이야기는 한국문학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손창섭과 이상을 극적으로 잇는 이상의 조카며느리 박영분 씨의 육성 한국문학사의 이면에 해당하는 극적인 장면은 이어진다. 그건 문유성 씨의 부인(박영분)이 문청시절인 1960년대 전후戰後 세대의 대표적 작가인 손창섭 씨를 존경한 나머지 그의 집을 무작정 찾아가 가정부를 자처하며 일 년 동안 한 지붕 밑에서 손창섭의 집필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는 사실에 있다. 이상의 시대와 손창섭의 시대는 다르지만 그녀는 훗날 우연히 이상의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옴으로서 손창섭에서 이상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인연의 굴레를 스스로 완성해 보이고 있다. 오빠-누이의 구조로 본 이상 가문의 비사와 동시대인들이 남긴 비화秘話 이상이 육필로 쓴 「동생 옥희 보아라」(1937)는 이상이 남긴 텍스트 가운데 가장 사적인 사연이 묻어나는 육친의 혈서와도 같다. 이 텍스트는 천재 이상이 아닌 오빠 김해경의 입장이 묻어나는 동시에 이상이 동경행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만주 봉천에서 시댁인 평북 선천을 거쳐 해방 직후 경성으로 돌아온 누이 옥희는 두 차례에 걸쳐 「오빠 이상」이라는 제목의 회고기를 『현대문학』(1962. 6)과 『신동아』에 각각 기고함으로서 항간에 나돌던 이상의 퇴폐주의와 문란한 사생활의 허실을 적극적으로 해명한 바 있다. 저자는 오빠 이상과 누이 옥희가 육필로 생산한 세 텍스트를 저본으로 하여 거기에 적힌 문맥의 사이사이를 철저한 문헌조사를 통해 메워나가는 한편 동시대인이 남긴 증언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증언으로 본 이상’, 나아가 ‘실록 이상’을 복원함으로서 천재라는 완고한 껍질로 둘러싸인 이상의 인간적 체취를 맡을 수 있게 했다. 이상 유고의 행방 “오빠가 돌아가신 후 姙(임)이 언니는 오빠가 살던 방에서 장서藏書와 원고原稿 뭉치, 그리고 그림 등을 손수레로 하나 가득 싣고 나갔다는 데 아직 그 행방이 묘연하며……”(김옥희, 「오빠 이상」)라는 코멘트를 단초로 하여 이상 유고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이상 사후에 극적으로 발견된 일어습작노트에 의해 꾸준히 증식되어온 이상 텍스트의 정체를 규명하고 있다. 이 일어습작노트는 한양대생 이연복 군(당시)이 1960년 우연히 고물상을 하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발견한 이후 시인 유정, 김수영 등의 번역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저자는 이상 사후, 텍스트가 꾸준히 지면에 실리는 기괴한 사연의 전말을 추적하고 있다. 정인택의 사소설과 이상의 유고 이상의 친구 정인택은 이상 사후인 1930년대 말~1940년대에 걸쳐 사소설의 주인공으로 이상(김군)을 등장시킴으로서 이상이 생전에 쓴 것과 같은 유사 텍스트의 진위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정인택의 사소설과 이상의 유고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 진위는 무엇인지, 규명하고 있다. 이상의 천재적 유전자 이상의 천재성은 문학과 그림을 통해 구체화되었지만 그 천재는 발작적인 광기狂氣 또한 동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상의 이러한 기질이 유전된 듯 불우한 생애를 살다간 조카 내성 씨(옥희의 막내아들)의 일기 역시 최초 공개함으로서 이상 가家의 천재성과 광기의 이면을 되짚어내고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집필 배경 『오빠 이상, 누이 옥희』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상이라는 달의 이면을 우리 앞으로 당겨놓는다. “이상과 인간 김해경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몸체를 가진 인격체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 문학은 그동안 이상이라는 천재에 너무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다. 2015년 2월 이상의 생질이자 누이 김옥희의 아들인 문유성 씨를 만나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나는 천재라는 베일을 걷어내고 이상의 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일찍이 누이 김옥희에 의해 되짚어진 오빠 이상은 이상이 아니라 여전히 김해경이었다. 김옥희는 천재 이상에게 따라붙는 비운의 수식어를 떼어내고 평범하고도 효성 깊은 인간 김해경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건 이상의 생질인 문유성 씨도 마찬가지였다. 문유성 씨는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 과정에서 늘 낮은 목소리의 겸손을 보여주었다. 그 겸손은 천재를 낳은 가문의 보이지 않는 예의이자 본능에 가까운 자기 연민의 태도였다. 객혈의 고통 속에서 훼손되어가는 육체를 통과한 이상의 자기 몰입은 한국문학사를 뒤흔든 희대의 천재 예술가를 낳았지만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가족은 말없는 연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가족과 혈연을 초극할 수 없었던 인간 김해경의 비애야말로 이상 문학의 또 다른 육체성이기도 하다. 그의 자의식은 김해경이라는 자아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건 이상과 김해경이 서로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공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또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나는 공이 떨어지길 은근히 기다렸지만 공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공이 현란한 게 아니라 두 개의 손, 혹은 네 개의 손이 현란했던 것이다.”(‘머리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