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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쾌한 고독
고독을 피하면 불행을 만난다 악몽을 꿔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안하니까 악몽을 꾼다 유쾌한 고독 고독을 견뎌야 얻어지는 단독성 2. 잠재된 삶의 발견, 선택 가장 큰 선택의 딜레마 가능성의 허상 강요된 선택 소진된 인간 선택의 본질 3. 관계, 기쁨의 관계는 변용된다 반드시 너일 것, 반드시 나일 것 낯섦이 전해주는 의미 기쁨이 되는 관계 변용된 인간 4. 가족, 내 가면의 핑계 우아한 거짓말 답정너 감정 쓰레기통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할 용기 5. 의미, 당신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변화 위버멘쉬, 진화하는 인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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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며 곧 잊혀질 것이다. 가장 소중해야 할 내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인간을 지독하게 쓸쓸하게 만든다.
--- p.17 “우리는 악몽을 꿔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안하니까 악몽을 꾼다.” --- p.22 고독은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혼자가 됨을 선택해 자신의 지친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시간에 대한 구체적 욕망이다. 그릇된 선택이나 떠밀리듯 결정한 것들로 괴로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 혹은 어렴풋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달았지만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할 때,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도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는 어디인지 모를 때, 성과를 내기위해 무작정 달려와 피로가 산처럼 쌓일 때, 인간은 잠시 멈추어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을 걷어내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살고자 밀쳐두었던 내 내면의 욕구를 살피고,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진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걷어내고, 나를 짓누르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한 채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한걸음을 다시 내딛을 수 있도록 내 내면을 단단하게 다잡는 시간이다. 그런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불투명하던 삶의 안개가 걷히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보다 명료한 관점을 가지길 바라며 나를 방해하는 타인에게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발적 고독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되돌려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분별력과 내가 있어야할 자리, 내가 받아들여야할 현실의 무게를 내 역량의 크기에 맞게 재구성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욕망과 그것을 표현하는 일과 언어, 삶의 태도, 방식을 일치시켜나간다. 그래서 고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나를 완성해가는 일상의 정의다. --- p.35-36 아멜리에는 고독을 견디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독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 그녀의 삶은 무엇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지 찾아가는 끝없는 연습이었기 때문이다. --- p.41 지나간 내 삶 역시 가짜처럼 느껴지던 순간이 많았다. 죽을 듯 애를 쓰며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했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몰랐다. 다들 그렇게 했고 나는 살아갈 다른 방법을 몰랐으므로 따라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계적으로 씻고 밥을 먹은 이후 등교하거나 출근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어제 놓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 보았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눕지만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러한 일상에 큰 의미는 없다. 마치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살아갈 때 내 마음속에는 ‘스산한 느낌Unheimlichkeit’만이 가득했다. 숨 쉬고는 있지만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를 하이데거는 ‘불안’이라고 부른다. --- p.18-19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 앞에는 언제나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놓여 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의 무거움을 감당할 수 있는가? 감당하고 싶기는 한 건가? 항상 처음을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 p.51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며 곧 잊혀질 것이다. 가장 소중해야 할 내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인간을 지독하게 쓸쓸하게 만든다. --- p.51 종종 사람들은 자기의 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남에게 기대서라도 도망치길 원한다. 지금 당장 닥친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선택한다. --- p.20 인간은 불안을 느낄 때마다 동시에 이 현실에서 절대로 도망치지 못함을 깨닫는다. 탄생도 죽음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다시금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이를 두고 ‘기투’라고 부른다. 나 자신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던져진 존재라면, 나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다시금 나를 내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새롭게 내던질 수 있는 기투성의 자유이다. --- p.25 안전한 길만큼이나 꿈 또한 사회적으로 강요된다.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라는 압박과 가슴 뛰는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보는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 p.62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애당초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33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화는 답정너로 진행이 된다. 답정너란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반드시 그 대답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행하는 수많은 대화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머리로는 진정한 대화란 나와 너의 진실한 마음을 내보여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경우에 따라 그런 답이 나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 p.133 견뎌본 자만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을 구체적으로 꿈꾼다. --- p.164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목적이 없다. 도리어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인간이다. --- p.168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 위를 걷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존재하는 세계에는 끝없는 선택과 분기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선택된 길만을 걸어갈 수 있다. 선택은 마치 하늘의 별자리처럼 이어져 지금의 내 모습을 그려낸다. --- 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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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의 나와 화해하는 유쾌한 인문학
비좁은 선택지 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어느새 삶이 나를 이 자리에 데려왔다. 가끔 스치는 내 모습이 낯설고 부족해 보여 외면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열심히 일을 해도 점점 허무해지고 외로워졌다. 그때 인문학으로 돌아갔다. 소음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한 권 한 권을 만났다. 점점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옛 철학자들의 말이 생명을 얻었고, 나는 내 삶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그날을 살기에 급급했고 답이 두려워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나는 비로소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혼자일 때만 느낄 수 있는 빛이 있다. 좋든 나쁘든 누군가가 명명해준 나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만나고 세우는 시간. 거기에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빛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도망치는 시간이 아니라, 외로움에 움츠러드는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을 내 본성에 맞게 흐르도록 길을 여는 시간이다. 인문학과의 만남은 지극히 유쾌한 고독이었다. 그 안에서 하찮고 평범하게 느껴졌던 나와의 화해에 한 걸음 다가갔다. 2. ‘다들 그렇게 사니까,’로 넘어갈 수 없을 때, 유쾌한 고독 우리의 뇌리를 스치는 질문들이 있다. ‘이 대화, 왜 하고 있는 걸까.’ ‘선택한다고 했는데 왜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지?’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불안하지?’ ‘주변에 늘 사람이 많은데, 왜 쓸쓸하기만 한 걸까.’ ‘내 인생,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대체로 이런 질문들을 무시하고 습관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 사는 것이 누구에게나 이런 것이겠거니 하면서. 그러나 진정한 수긍이 아니기에 우리 안에는 답을 얻지 못한 의문이 쌓이고 그것은 혼란과 무의미하게 사는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돌아온다. 이 책은 인문학을 통해 우리의 그런 마음에 답한다. 흥미를 느끼고 위로받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몰랐던 영화며 소설과 추상적이게만 느껴졌던 하이데거, 니체 같은 대가 철학가들의 메시지가 어우러지며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된다. 작가가 풀어내는 삶 속의 인문학 이야기는 평범하고 더러 쓸쓸하게 느껴졌던 나의 질문들이 사실 삶을 관통하는 질문이며, 흐름의 일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들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3. 혼자의 시작, 개인주의 인문학 고독은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혼자가 됨을 선택해 자신의 지친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시간에 대한 구체적 욕망이다. 그릇된 선택이나 떠밀리듯 결정한 것들로 괴로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 혹은 어렴풋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달았지만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할 때,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도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는 어디인지 모를 때, 성과를 내기위해 무작정 달려와 피로가 산처럼 쌓일 때, 인간은 잠시 멈추어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을 걷어내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살고자 밀쳐두었던 내 내면의 욕구를 살피고,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진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걷어내고, 나를 짓누르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한 채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한걸음을 다시 내딛을 수 있도록 내 내면을 단단하게 다잡는 시간이다. 그런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불투명하던 삶의 안개가 걷히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보다 명료한 관점을 가지길 바라며 나를 방해하는 타인에게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발적 고독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되돌려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분별력과 내가 있어야할 자리, 내가 받아들여야할 현실의 무게를 내 역량의 크기에 맞게 재구성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욕망과 그것을 표현하는 일과 언어, 삶의 태도, 방식을 일치시켜나간다. 그래서 고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나를 완성해가는 일상의 정의다. -본문 중에서 날 잘 몰라서 헤매고 날 알려고 하지 않아 떠밀리고 날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외롭고 나로 살지 않아 날 좋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만큼 살던, 살지 못하던 내가 보는 내가 늘 초라하다. 그럴 때 우리는 고독과 만난다. 그 고독의 시간을 스스로를 비난하고 괴롭히는 데만 사용하지 않도록 더 외로워져 다시 원점이 되지 않도록 내 삶에 제대로 된 질문 하나 정도는 던질 수 있도록 그 고독의 과정 자체가 유쾌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통해 삶을 버티지 않고 음미할 수 있도록. 이 책은 고독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고독 사용설명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