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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릴레이
1. 소설가 김연수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 사연 많은 미녀 이야기에 빠져들었죠 2. 저술가 이종영 박범신의 『당신』, 그 연배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어요 3. 북디자이너 조원식 클로에 크뤼쇼데의 『여장 남자와 살인자』,보고 읽는 내내 행복했죠 4. 만화가 박흥용 김세윤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왜 다들 행복해지려고 하는 걸까요 5. 영화감독 이준익 윤동주의 시는 달을 가리키는데, 다들 손만 쳐다봐요 6. 영화배우 박정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어느 순간 깊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 7. 뮤지션 차세정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순 없잖아요 8. 뮤지션 한희정 시인 조원규, 그의 시집은 모든 페이지를 접게 됩니다 9. 「무나씨 드로잉」의 작가 김대현 헤르만 헤세의 『요양객』, 그의 맑고 투명한 문체가 그리웠습니다 10.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 소설가 제임스 설터, 그의 소설을 읽는 즈음 항상 누군가와 이별 중이었습니다 11. 재즈 뮤지션 허소영 조정래의 『태백산맥』, 노랫말처럼 읽히는 전라도 방언의 아름다움 12. 북바이북 대표 김진양 신현만의 『사장의 생각』, 30대 사장에게 필요한 70대 인턴 같은 책 13. 소설가, 에세이스트 임경선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 14. 소설가 장강명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 장편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준 교본 같은 책 15. 전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조성주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진보적〉라는 자기만족을 경계하며 16. 소설가 손아람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영리하고, 성실하고, 무시무시한 소설 17. 민변 회장 정연순 재일조선인 서경식, 우리 현대사의 풀리지 않는 업보들이 보이죠 18. 영화감독,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 임순례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그가 설계하고 실현한 삶이 제겐 가장 완벽해 보입니다 19. 작가,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조선희 강준만의 [한국 근현대사 산책] 시리즈, 역사의 디테일들로 한국사의 길을 닦다 20. 서울문화재단 대표 주철환 김훈의 『공터에서』, 우리에겐 여백과 공터가 필요합니다 21. 「비정상회담」의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 몬디 지금의 나로 이끈 다섯 번의 선택 두 번째 릴레이 1. 카카오 대표 임지훈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한 사람의 철학이 담긴 책을 좋아합니다 2.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댄 샤피로의 『핫시트』, 스타트업 CEO를 위한 아주 현실적인 조언 3. 배달의 민족 대표 김봉진 홍성태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경영이란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과정 4.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김주환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그 안에 담겼더군요 5. 바른세상병원 원장 서동원 『스티브 잡스』, 그의 완벽주의와 융합을 배웠습니다 6. 영화배우 안성기 최인호의 『인생』, 남은 날이 적다는 생각에, 다시 꺼내들었어요 7. 가수 김수철 『페터 춤토르 건축을 생각하다』, 눈으로 보는데 귀로도 들리면 그게 명작이죠 8. 경희대 명예교수 도정일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작은 쪽지들에 담긴 치열한 목소리들 9. 방송인 유정아 우르스 비트머의 『아버지의 책』, 스위스 작가한테서 남미의 향기가 납니다 10. 건축가 황두진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 언어라는 재료를 가혹하게 다루는 방식이 건축가를 닮았죠 11. 서울 오감도의 큐레이터 홍수영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어머니를 잃은 작가의 글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12. 소설가 정지돈 장 뤽 고다르의 『고다르 X 고다르』, 선언하듯 내뱉는 무모함과 예언으로 가득 찬 인터뷰 13. 영화감독 홍석재 제임스 엘로이의 『내 어둠의 근원』, 엄마의 죽음을 추적하는 한 작가의 회고 14. 포크 뮤지션 김해원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 극단의 경험에서 끌어올린 삶과 창작의 미학 15. 만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대표 이성민 허영만의 『오! 한강』,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화가의 성장기 16. 음식 문헌 연구자 고영 박찬일의 『미식가의 허기』, 음식 문화사를 모르고서야 미식가 행세 해봤자죠 17. 음악평론가 김작가 로버트 힐번의 『존 레넌과 함께 콘플레이크를』,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 18.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이기용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친 밤,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 같은 책 추천 도서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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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 사이사이에, 일과 삶의 영역 곳곳에 책이 숨구멍처럼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책을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종횡으로 모이고 퍼진다는 아름다운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 p.8 사회적 성취라는 것은 대부분 잔인한 기쁨이에요. 그런 기쁨들은 오래 가지도 않아요. 내 맘속에 오래 남는 진짜 기쁨은 성스럽게 여겨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 p. 34 우리도 조선이라든가 식민지 시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한국사 안에서 축소하고 말 것이냐, 아니면 세계사 안으로 편입시켜 떠받쳐 올릴 것인가. 저는 그것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승화시키는 것만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세계관을 넓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봐요. --- p.59 정말 풀리지 않는 날에는(어쩌면 조금 얄팍한 짓이라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요) 무작정 통독이라도 하다 보면 어떤 단어라든가, 문장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딱 잡힐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 p. 95~96 그림을 그릴 때,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곤 했습니다. 인문 서적들을 읽다가 흥미로운 생각을 얻게 되면 노트에 적어 놓았다가 그 생각을 이어가며 좋은 구상을 떠올립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주로 문장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해 놓고, 그 문장을 어떻게 그림으로 번역해 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만큼 저의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의 관계는 밀착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13 가만히 앉아서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책만 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 p. 145~146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소설가의 첫 책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트위터를 보니 첫 책을 낼 때의 긴장과 흥분, 그리고 뿌듯함 같은 것이 진하게 느껴지면서 저까지 흐뭇하고 행복해졌습니다. 모든 작가들의 〈첫〉 책을 읽어 보는 일은 그 설렘을 나누는 일 같습니다.--- p.161 그 패러디로 제가 상금 100억 원인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제정하고 제가 쓴 소설 『디 마이너스』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거지요. 소설 뒤쪽에 내가 직접 평론을 써서 수록하고 띠지에는 〈이 계절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 전율적으로 아름답다! ─ 손아람(소설가)〉라고 10자평을 쓰게 해달라고 출판사에 요구했는데 미쳤냐면서 만류하더라고요. --- p. 200 소설을 쓰는 건 무궤도의 드넓은 지평 위를 상상력과 자유 연상이 이끄는 대로 종횡무진 하는 거예요. 거기엔 객관성이나 공공적 가치 때문에 억압해 왔던 모든 사적인 것들이 내면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딸려 올라와요. 주관이나 취향, 수치심이나 상처나 성장기의 기억까지.--- p.237 저는 학교 다닐 때 제일 비교육적인 말이 〈너 무슨 생각해?〉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딴생각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너무 폭압적이에요. 좀 혼자 생각하게 뒀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여백이, 공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 주철환, 251면 저는 인생에 몇 권 안 쓰는 사람들의 책이야말로 정말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어떻게 보면 책을 잘못 썼을 경우에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죠.--- p. 281~282 책을 많이 보는 첫 번째 방법은 책을 많이 사는 거예요. 많이 사면 많이 읽게 되는데, 우리가 책을 한 권 살 때 너무 고민하다 보면 결국 꼭 베스트셀러만 사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구성원들에게 책 살 때는 고민하지 말고 일단 사라고 해요. 사놓고 읽지 않아도 하다못해 인테리어 효과라도 있으니까요.--- p.319~320 저는 모든 위대함에는 웃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말이 아니라 미하일 바흐친이 한 말이에요. 옛날에 어디선가 봤는데, 〈모든 근엄함, 진지함 뒤에는 폭력성이 있고, 활짝 웃는 거기에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다〉고 했어요. 〈웃는 얼굴이 위대하다〉고. --- p.351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이, 〈그래도 존재감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잠깐 나와도 그 사람이 화면에 떴을 때 존재감이 뚜렷하면 생명력이 있어요. 그런 존재감을 갖추기 위해 지금 자신의 준비, 마음가짐, 이런 걸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p. 391 인기라는 것은 바람이에요. 잡으려고 하면 안 돼요. 입산하면 하산해야 하듯이 인기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에요. 내가 모르는 것, 뭔가 하고 싶은데 부족한 것, 내게서 고갈된 것 이런 걸 끊임없이 채워 넣어야 한단 얘기예요. --- p. 426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정신을 불안한 상승의 높이 앞에 서게 하는 일, 정신이 정신에 도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독서가 창조적 대화라는 주장은 그런 의미의 것이 아닐까 싶어요. --- p.440 제 나름의 무질서한 책장 분류 방식이 있습니다. 장소성, 건축과 도시, 여행, 사랑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 책에 관한 책, 나무와 식물에 관한 책,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의 책, 실패한 사람 또는 결핍이 있는 사람에 관한 책, 지인들이 쓴 책, 응원하는 출판사 책 등입니다. --- p.485 설계한 건물이 자식이라면 끊임없이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을 하는 셈입니다. 떠나보낸 아이들은 각자 자기 팔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아주 망가지거나 심지어 없어지는 경우도 보는데, 애가 타지만 그것도 그 아이의 운명입니다. 반대로 한참 후에 가서 봤는데 제법 연륜도 생기고 제 손을 떠났을 때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 p.469~470면 저는 책이 현실 밖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우리 곁에 존재하는 친구나 가족처럼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삶과 생각과 행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다시 책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p.496 인터넷상의 짧은 글을 읽는 것, 정확히 이야기해서 찾아서 읽는 글이 아니라 눈에 보여서 확인하는 정보들은 확실히 소모적입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제 생각과 상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히 증발해 버린 시간을 확인하게 할 뿐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제대로 갖춘 글쓰기와 책이라는 몇십 쪽에서 몇백 쪽 분량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독서는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한 날이면 다른 날보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습니다. --- p.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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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독서 체험
책에 등장하는 39인 모두 책을 고르는 방식도, 읽는 습관도 제각각이다. 카카오 대표 임지훈은 책을 써서 얻을 것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그걸로 뭔가 잃을 수도 있는 사람의 책을 신뢰한다고 얘기한다. [저는 인생에 몇 권 안 쓰는 사람들의 책이야말로 정말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책을 잘못 썼을 경우에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추천 책을 고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인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는 랩 가수 조바노티의 열렬한 팬이다. 덕분에 조바노티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탈레반을 주제로 한 주세페 카토젤라의 Il Grande Futuro(위대한 미래)를 읽고 있다고 한다. [제가 믿을 만한 문학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추천하는 책을 보곤 합니다.] 민변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표 정연순 역시, 페이스북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에서 추천받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생명에서 생명으로』를 읽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과 연결 지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다. 음식 문헌학자 고영의 독서는 일반적인 독서라기보다 연구나 공부에 가깝다. [인류학이나 역사학 주제, 특정 역사 주제 전문서를 많이 보게 되는데, 보면서 주석과 레퍼런스를 아주 꼼꼼하게 따라가지요. 저는 원자료를 확인하면서 단행본을 보는 독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번역 준비도 되고, 제가 필요한 분석-해석 능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도 건축이라는 직업적 관심사를 독서를 연결한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 소설이 있다는 얘길 듣고 김남천의 『경영』(1940)과 『맥』(1941)을 찾아 읽고,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를 읽고 [그가 한국어를 능숙하면서도 가혹하게 다루는 방식]에서 [건축가가 재료의 통속적인 물성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뜻밖의 사람, 뜻밖의 책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터뷰이가 대체로 의외지만, 유독 낯선 인물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인터뷰이만큼이나 뜻밖이다. 먼저 홍대 주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인 만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대표 이성민. 만화 편집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이 대표는 허영만 화백의 『오! 한강』을 나름 인생의 책으로 꼽는다. 만화 속 주인공 이강토가 최인훈의 『광장』 속 이명준에 비견된다고. 현재 이 책은 절판 상태다. [배달의 민족] 대표 김봉진은 숨은 독서 고수다. 마케팅과 브랜드에 대한 책은 물론, 고전의 다양한 변주들까지 다양한 독서 이력을 자랑한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홍성태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이다. 이 책을 통해 김 대표는 회사 경영을 [하나의 인성과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밝힌다. 배달의 민족만의 독특한 기풍과 키치적 느낌, B급 정서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홍수영 큐레이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황두진 건축 사무소에서 인문적인 자료 조사를 맡아 한다는 그녀는, 자신의 거실 겸 서재를 비정기적으로 서점으로 개방하는 [서울 오감도]를 운영한다. 그녀의 큐레이팅은 도서관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제 나름의 무질서한 책장 분류 방식이 있습니다. 장소성, 건축과 도시, 여행, 사랑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 책에 관한 책, 나무와 식물에 관한 책,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의 책, 실패한 사람 또는 결핍이 있는 사람에 관한 책……] 큰 수술을 한 차례 경험한 그녀는 요즘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고 있다. 그 밖에 [뜻밖의 책] 명단에 올릴 만한 책으로는 작가 임경선이 추천하는 19금 만화 [시마 과장] 시리즈, 소설가 장강명이 추천하는 『촌놈』(우상호 의원), 소설가 손아람이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극찬한 『무기의 그늘』(황석영), 영화감독 홍석재가 만화계의 이언 매큐언으로 치켜 세운 『소년 마법사』(나루시마 유리) 등이 있다. [좋은 책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산재해 있고, 많은 이들이 곁에 두거나 가까이 하려 한다는] 소문, 정말 사실이었다. 그들은 왜 읽는가 인터뷰이의 개성만큼이나 책을 읽는 목적들도 다양하다. 영화감독은 작품 구성을 위해, 배우는 맡은 배역을 더 깊게 연기하기 위해, 음악가와 디자이너는 창작의 단초를 얻기 위해, 경영자는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읽기 위해 책을 꺼내 든다. 영화감독 박준익은 『정약용의 고해』(신창호)와 『다산 정약용 평전』(박석무)을 곁에 두고 읽고 있다. [수많은 어떤 이야기의 보물 창고를 계속 뒤적뒤적하다가 손에 뭔가 꽉 잡히면 그걸 영화화하는] 게 영화 창작자의 일이란다. 영화배우 박정민은 영화 「동주」의 송몽규 역을 확정 받고 촬영에 앞서 한동안 책을 끼고 지냈다. 『윤동주 평전』(송우혜)은 물론이거니와 송몽규 선생이 공산주의에 심취했다는 기록을 보고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 서민들의 삶을 알기 위해 관련 역사책들도 구해 읽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은 가사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엔 작업실에서 [강제 독서]를 한다. 한 음절의 가사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을 펴기도 한다. [무작정 통독이라도 하다 보면 어떤 단어라든가, 문장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딱 잡힐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무나씨 드로잉」의 작가 김대현은 그림을 그릴 때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인문 서적들을 읽다가 흥미로운 생각을 얻게 되면 노트에 적어 놓았다가 그 생각을 이어가며 좋은 구상을 떠올립니다. 주로 문장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해 놓고, 그 문장을 어떻게 그림으로 번역해 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만큼 저의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의 관계는 밀착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바른세상병원 원장 서동원은 책을 통해 병원 경영의 귀중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의 서가에는 피터 드러커의 『창조하는 경영자』가 꽂혀 있다. 페이지마다 단어만 바꾸면 병원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단다. 최근에는 전기 『스티브 잡스』를 읽고 잡스가 추구한 융합적 사고를 어떻게 의료 현장에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독서 너머의 찰진 인생 이야기 이 책은 독서 릴레이지만, 그렇다고 인터뷰가 책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혹독한 현실 앞에 아슬아슬하게 꿈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생 선배들 들려주는 삶은 그 자체로 귀중한 응원과 위로가 된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군 전역 후 2년간 백수 생활을 했다. 아역 배우로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만 해도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생태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저녁 시간을 돈 안 들이고 집에 폐가 안 되게 보낼 수 있을까] 싶어, [저녁에 밥을 먹고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힌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도 보고, 몸도 만들고, 개발새발 시나리오도 쓴 그 시절이 지금의 안성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으면 계속할 수 있어요. 자기를 놔버린다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다른 데서 뭘 찾아본다거나 그러면 곤란해요. 뭘 해도 불안한 미래인데, 자기가 준비를 잘하고 있으면 된다고 늘 생각해요.] 가수 김수철 역시 대중음악으로 입문해, 88 올림픽, 2002 월드컵 등 각종 국제 행사의 음악감독과 작곡을 도맡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 뒤엔 나름의 실패도 있다. 우리 소리 현대화라는 목표로 36년간 뛰며 냈던 25장 앨범 가운데 성공한 건 「서편제」 한 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꿈을 돈하고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럴 때일수록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하세요. 그 대신 고생은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면 사랑하는 거라면 기꺼이 이겨 낼 수 있을 거예요.]. PD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조그마한 가게의 다락방에 엎드려 혼자 뭔가 끼적거리던 다락방 소년 시기가 지금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제일 비교육적인 말이 [너 무슨 생각해?]였다고 떠올린다. [저는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모범 트랙》 말고 《모험 트랙》을 타라고 해요. 좀 모험적인 삶을 살라고 권해요.] [좀 혼자 생각하게 뒀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여백이, 공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책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립재 책을 읽을 시간도, 마땅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토로하는 요즘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독서 체험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책만이 줄 수 있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 분명 존재한다고. 소설가 정지돈 말한다.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 다만 생각을 구조화하고 정리하는 데 활자화된 언어만큼 효과적인 건 없습니다.] 음악가 김해원은 고백한다. [인터넷상의 짧은 글을 읽는 것, 정확히 이야기해서 찾아서 읽는 글이 아니라 눈에 보여서 확인하는 정보들은 확실히 소모적입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제 생각과 상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히 증발해 버린 시간을 확인하게 할 뿐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제대로 갖춘 글쓰기와 책이라는 몇십 쪽에서 몇백 쪽 분량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독서는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감독 홍석재도 독서만이 줄 수 있는 질적 도약에 주목한다. [책과 블로그 포스팅이 다른 건 사실상 양의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양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우리가 얻는 경험이 질적으로 도약하기도 해요.] 독서가 주는 고양감, 정서적 감동을 한차례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쉬이 잊지 못한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정신을 불안한 상승의 높이 앞에 서게 하는 일, 정신이 정신에 도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독서가 창조적 대화라는 주장은 그런 의미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독서인이 희귀종이 되어 가는 시대에, 우리가 새삼 책의 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전한 몰입을 통해 책의 감동을 맛본 사람들에게 책은 [대체재]가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립재]다. |